사금
홍철 없는 홍철팀 애쉬 없는 재비
"저기, 흰나비 씨. 두 분이 꼭 같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결혼하거든요……."
청첩장을 받은 흰나비가 수줍은 표정으로 몸을 꼬며 앉은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굉장히 어른스럽고 공감능력이 뛰어난 흰나비가 말했다.
"사내연애 같은 짓을 왜 하는거지? 심지어 결혼까지? 굉장하네용."
그닥 신경쓰진 않는 모양이었지만(자신을 제외하고도 다섯 쯤 그들에게 어째서 사내연애 같은 걸 한 거냐는 질문을 했다고 했다. 그 얘기를 하며 커플은 굉장히 사회인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뭐가 되었든 이제 막 결혼을 공표한 예비 부부에게 말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발언이었다.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반성 끝. 언젠가 소개받은 적이 있는 카페 2층 테라스에 앉아 펄이 잔뜩 들어간 음료를 못살게 굴던 흰나비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결혼을 결심하는 데에 애쉬가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본인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그렇게까지 엄청난 조언을 한 적은 없노라고 말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그는 다소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남의 연애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니. 이거 완전 어른 아냐? …대충 이런 생각 때문에.
흰나비는 문득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날들이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이 남았다는 것을 인지한다. 따지자면 그는 일종의 신화적 존재다. 전래동화나 전설 속에서 나오는 햇님과 달님, 혹은 담배 피우는 호랑이 같은 거.
시간의 총량이란 늘 상대적인 것이다. 시간 뿐 아니라 실체를 갖지 못 한 무형의 개념들은 늘 상대적인 기준 아래서 평가되곤 한다.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는 순간 사실 완전히 이해하지 못 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경험을 몇 번쯤 겪고 나면 확언하는 일을 조금은 피할 법도 한데. 도무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삶은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길거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구별해내는 것만큼,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더.
사람과 함께 섞여 살겠노라는 어설픈 소망을 가지고 섣불리 무리에 섞여 들었으나 애초 타고나기를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아주 많았고,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몰이해는 결국 고립의 지름길이다. 깨달은 순간 그는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그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그를 떠난다. 떠나려는 사람들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도, 누군가 그를 이해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제부턴가 삶은 그저 견뎌야 할 대상이 되었다. 어째서 사람은 타인을 위해 유한한 것들을 자꾸 바치고 싶어하는 건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자꾸만 충동적인 선택을 저지르는지. 왜 그 선택의 결과로 짧은 시간들을 자꾸 내놓고 마는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로운 시간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려워도 괜찮다. 이해할 수 없어도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이유를 찾아낼 수도, 어째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한 건지 알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그 간단한 걸 깨닫기 위해 이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그걸 낭비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여전히 흰나비는 그들을, 자신의 삶에 있어 조금은 특별했던 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그들과 같은 길을 걸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누군가의 곁에 함께 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일. 그리고 상대가 쥐여준 것들을, 혹은 들은 말들을 오래 기억하는 일. 저 역시 그들과 같은 삶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조금은 덜 외로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는 걸 이제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극야가 사람들과 함께 섞여 살며 처음 이해하게 된 개념이다. 흰나비는 그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기 신메뉴가 맛있는데요, 커피가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향이 확……. 그래도 케이크는 괜찮았는데, 오늘 퇴근 일찍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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