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이후의 이야기

게나조

篝火 by 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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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위터 썰 몇 개를 합쳤습니다(기반 썰은 본문 아래 참조)

  • 키타로+미즈키

  • 사망 네타, 카니발리즘 요소, 유혈에 주의 바랍니다

키타로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볕이 잘 드는 어느 날, 노인은 그 말을 남기고 평안히 눈을 감았다.

끝 이후의 이야기

양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의 임종으로부터 무려 사흘이 지나고서야 키타로에게 닿았다. 까치의 전언을 듣자마자 키타로는 눈알 아버지와 함께 부랴부랴 어릴 적 살던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미즈키는 죽는 날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언젠가 잔뜩 지친 키타로가 발을 질질 끌며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그가 돌아온다면 그토록 좋아하던 핫케이크를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주변 동네가 재건축에 들어가고 이웃집이 으리으리한 빌라가 되어도 미즈키는 자신의 집을 절대 바꾸지 않았다고, 그래서 구청 사람들이나 건설사와 다투기도 했다는 말을 그는 검은 옷을 입고 상주 노릇을 하던 네즈미오토코에게서 들었다.

키타로가 인간과 요괴 사이를 중재하느라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는 동안, 의외로 네즈미오토코는 자주 미즈키를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미즈키는 죽을 때까지 나구라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진 못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네즈미오토코에게 기이한 친근감을 느끼고 살갑게 대했다고 한다. 항상 나한테 그랬어, 키타로에게 언젠가 한 번 들르라고 전해달라고. 네즈미오토코는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은 키타로의 팔에 ‘상주’라고 적힌 완장을 채워주며 투덜댔다.

네즈미오토코가 옆에서 재잘되었으나 키타로와 아버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수명이 이렇게 짧은 줄도 몰랐거니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의 마지막 순간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고, 사흘 뒤에야 부고를 알았다. 키타로는 요괴였지만 수치심을 아는 이였다. 그것 또한 미즈키가 알려준 감정이었다. 부끄럽고 창피해야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미즈키는 가르쳤다. 하지만 죽은 사람은 부활하지 않는다. 키타로는 실수를 고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주제도 모르고 그것이 너무나 분했다.

키타로의 부탁대로 장례는 나흘에 걸쳐 진행되었다. 어차피 미즈키를 찾아올 이라고는 요괴밖에 없고, 키타로가 상주이기에 문제는 없었다. 미즈키는 오랫동안 살았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미 땅에 묻혔고, 이웃과 교류도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그를 찾아올 인간은 없었다. 다만 사흘 째 밤에 변호사 한 명이 찾아왔다. 그는 키타로를 확인하고는 미즈키의 유언장을 보여주었다. 감동적인 글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 키타로도 사망 신고를 하라는 것과 난쟁이 요괴의 금고에 키타로 이름 앞으로 유산을 보냈으니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라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

“미즈키 씨, 의외로 계산을 잘 하는 편이었네요.”

계산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적힌 유언장에 키타로는 당황한 듯이 말했다. 야망 넘치는 혈액은행 사원 시절을 기억하는 눈알아버지는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너를 만나고 많이 달라졌단다, 키타로.”

그 말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미즈키를 다시 보고 싶다. 다시 보고 마주 안으면서 임종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전부 제가 이기적인 탓이었다.

나흘 째에 키타로는 미즈키의 집 마당에 장작을 쌓아놓고 미즈키를 태웠다. 화장터의 화로보다 낮은 온도 탓에 미즈키가 관째로 전소되는 데에는 한창 시간이 걸렸다. 아침에 피운 불길은 노을이 질 무렵이 되어서야 꺼졌다. 관의 마지막 조각까지 새까맣게 타 재가 된 뒤에야 키타로는 불을 끄고 긴 젓가락과 자기 항아리를 하나 가져와 유해를 수습했다. 숯과 재를 헤쳐 미처 타지 못한 뼛조각을 주워 담고, 가루는 흙과 재가 섞이지 않게 조심해서 손으로 모아 항아리로 옮겨 담았다.

그렇게 미즈키는 어린 아이인 키타로가 양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워졌다. 눈알이 기억하는 미즈키는 보통 인간보다 조금 더 크고 무거운 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보통 인간보다 조금 작은 키가 되었고, 나이가 듦에 따라 조금씩 작아지고 갸벼워지다가, 결국 키타로가 양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 작아져버렸다. 한참 미즈키가 담긴 항아리를 내려다보던 키타로가 중얼거렸다.

“인간이란 죽으면 이렇게 허무해지는군요.”

요괴는 웬만해선 죽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은 유령족, 마음만 먹으면 요력을 모아 몇 번이고 부활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남겨질 이의 외로움이나 사랑하는 이의 유해를 끌어안을 때 가슴을 파고드는 허무함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키타로는 그것을 배웠다. 인간 양아버지로부터, 그의 죽음으로부터. 요괴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다.

인간의 관습대로라면 미즈키의 집도 철거해야 하지만 그것은 조금 뒤로 미루기로 했다. 키타로는 이제 게게게의 숲에서 살지만, 이 집을 밀어버리고 완전히 떠나기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이곳은 그가 자란 곳이고, 그만큼 미즈키와의 추억이 진하게 밴 장소이다. 키타로는 자신이 자던 방을 열어봤다. 진작 치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미련은 미즈키도 진하게 남은 모양인지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키타로가 좋아하던 이불과 베개가 바닦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끙끙대며 숙제와 씨름하던 책상도 창 아래에 놓여 있었다. 그 시절 교과서와 동화책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키타로는 그것들을 손으로 쓸어보려다가, 세월을 못 이기고 바스라져 먼지가 될까 두려워 손을 거두었다. 대신 미즈키의 유골함을 꼭 끌어안고 이불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지 못하던 시절, 잠을 못 자고 칭얼거리고 있으면 미즈키가 귀신 같이 알고 들어와 등이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서툴게 자장가를 들려주었다. 듣기 좋게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는 가락과 등을 두드리는 손의 온도, 일정하고 느린 박자를 가만히 느끼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눈이 감기면서 바로 잠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의 손이 없다. 앞으로 영원히 느끼지 못한다.

더 늦기 전에 한 번 들를걸. 이 이불 위에 누워서, 모르는 척 잠이 안 온다고 어리광 부려볼걸. 그러면 ‘지금이 몇 살인데 아직도 혼자 잠을 못 자냐’고 장난기 섞인 타박을 하면서도 당신의 양아들을 재워주려 자장가를 불러주었을 텐데.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토닥이면서, ‘잘 자거라 키타로’하고 한 번 더 이름을 불러주었을 텐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준 텐구를 배웅한 뒤 눈알아버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친구를 위해 술 한 잔을 올릴까 했는데, 역시나 찬장에 손이 닿지 않는다. 몸이 돌아오지 않으니 어렵구먼. 눈알아버지는 한숨을 푹 쉰 다음 키타로를 불렀다. 키타로, 잠깐 나와 보겠느냐. 그러나 아들은 울다 지쳐 잠들었는지 답이 없었다. 보나마나 어릴 적에 쓰던 방에 있겠구나, 눈알아버지는 싱크대에서 내려와 키타로의 옛방으로 향했다. 미즈키의 집에 있는 모든 문에는 눈알아버지를 위한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눈알아버지는 노크도 없이 구멍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갔다가, 아들을 보고 잠시 멈추었다.

키타로가 유골을 먹고 있었다.

끈으로 봉한 유골함은 진작 열려 뚜껑은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불 위에는 그가 흘린 유골 부스러기가 자잘하게 떨어져 있었고, 키타로는 유골함에 거칠게 손을 넣어 큰 덩어리를 건져내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남은 뼈를 어금니로 부수고 부숴 가루로 만들어선 목구멍 너머로 삼키고 있었다. 대체 몇 조각을 그렇게 뱃속에 채워 넣었는지 입가와 손가락에 하얀 분가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살짝 충혈된 눈으로 유골을 폭식하던 키타로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와 눈을 마주친 그는 자신의 손을 보고, 절반이 빈 유골함 안을 보다가, 그제야 수치심과 후회를 느꼈는지 유골함 뚜껑을 끌고 와 함 위에 덮었다. 부자 사이에 오랫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변명할 말을 찾아 키타로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굴러갔다. 눈알 아버지는 다그치는 대신 침착하게 그를 기다렸다.

“…세 조각밖에 안 먹었어요.”

겨우 키타로의 입에서 떨어져 나온 말은 변명도 되지 못할 얼버무림이었다. 그러나 눈알 아버지는 화를 내지 않고 아들을 달랬다.

“키타로야, 그러면 미즈키가 없어져 버리지 않느냐.”

그 말에 키타로는 둑이 터진 것처럼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트렸다. 감정 표현이 적어 항상 미즈키를 걱정시켰던 애가 이렇게 서럽게 우는 모습은 친부인 눈알 아버지도 처음 보았다. 키타로는 제가 울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눈물을 닦지도 않고 갈라지고 쉰 목소리로 서러움을 토해냈다.

미즈키 씨가 보고 싶어요.”

오열의 끄트머리에 겨우 터져 나온 본심이었다.


다음날 그들은 숲 요괴를 통해 버드나무 묘목 하나를 구했다. 화분에 심어 기를 수 있을 만큼 아주 작은 묘목이었다. 부자는 유골함과 옥토, 버드나무 묘목을 들고 게게게의 숲으로 향했다.

그들은 아지트로 삼고 있는 게게게 하우스(이 촌스러운 이름은 미즈키의 작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작명 센스는 영이군, 눈알 아버지가 토호호 웃으면서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로 돌아갔다. 아지트 앞에는 오래된 연못이 하나 있었다. 삽을 가져온 키타로가 연못가를 깊이 파 유골함을 먼저 넣은 다음, 그 안에 버드나무 묘목을 심고 옥토와 연못가 진흙을 부어 고정시켰다.

키타로가 버드나무를 유골함 안에 옮겨 심는 사이 눈알 아버지가 집에서 과도를 가지고 나왔다. 키타로는 그것을 넘겨 받고는 제 팔을 거침없이 그었다. 귀하디 귀한 유령족의 피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키타로는 그것을 아낌없이 버드나무에 부어주었다.

작업을 마친 키타로는 아지트로 들어가면서 물었다.

“정말로 미즈키 씨의 혼이 정령으로 자리를 잡을까요.”

“사실 나도 장담은 못한다. 어디까지나 요괴들 사이에서 떠도는 속설이지. 하지만 그리 되지 않아도, 저 나무를 미즈키처럼 아끼며 키우면 되지 않겠느냐? 키타로.”

눈알 아버지의 다정한 물음에 키타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모습을 보면 미즈키가 허탈해 할지도 모른다. 이 녀석들아, 좋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너네 이러면 나 지옥에 못 가. 그 딴에는 협박일 수 있겠지만(실제로 인간에게 있어 죽어서 저승에 가지 못하는 것이 최고의 불운이므로) 요괴에게는 영 먹히지 않을 겁박이다.

그 후로 키타로는 달에 한 번씩 버드나무에게 제 피를 물 대신 쏟아주었다. 인간이었으면 즉사하거나 지성을 잃은 반요가 되었을 양이지만, 나무는 그 성질이 느긋하고 온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정화의 힘을 가진 물가에서 사는 나무이니 천천히 요화하기에 충분한 양이었을 것이다. 키타로는 그 나무에 미즈키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말도 걸고, 미즈키와의 일이나 오늘의 하루 등을 주절거리기도 하면서 나무에게 빌었다. 만약에 네게 자아가 생긴다면, 너의 양분이 되어준 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50년이 지나고, 100년이 지났다. 미즈키의 뼛가루와 유령족의 피를 마시고 자란 나무는 점점 자라 성인 다섯 명이 겨우 껴안을 수 있을 만큼 아름드린 나무가 되었다. 나무는 여전히 나무였고, 정령이 생길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나 유령족은 실망하지 않았다. 미즈키를 먹고 자란 나무는 그들에게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미즈키의 추억을 공유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롭지 않았다.

그리고 150년이 흘러, 의뢰를 해결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즈키의 집을 어찌할 것인지 논의하던 부자가 게게게 하우스에 돌아왔을 때, 버드나무 앞에 익숙한 사람이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조금 길다는 것 외엔 기억하는 모습을 쏙 빼닮은 버드나무의 정령이 두 팔을 벌렸다. 돌아온 아들을 반기는 것처럼.

키타로는 우뚝 섰다가, 진흙탕에 게다와 다리가 더러워지는 것도 잊은 채 버드나무를 향해 달려가 있는 힘껏 안겼다.

“돌아왔어요, 미즈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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