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시작된 곳에서
키타+미즈
트위터 썰 기반. 환생 AU
미즈키의 이름은 임의로 지었습니다
키타로의 무료하게 단조로운 일상에 새로운 일과가 추가되었다. 부정기적이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 나구라 마을로 향하는 것이었다. 나구라에 남아 있던 원념을 정화하고 기자에게 70년 전 이야기를 들려준 그날로부터 한 달 뒤, 인간 사이에 예상치 못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나구라 마을에 가면 그날 쿄코츠에게 죽은 사람을 볼 수 있다는 도시괴담. 한마디로 나구라 마을은 심령 스팟이 되버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투버나 오컬트 매니아, 심령 연구가 등이 나구라 마을을 찾아갔다. 일부는 사람이 죽은 집에서 노숙까지 했다. 70년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마을에 둥지를 틀었던 지박령과 요괴는 갑자기 나타난 인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겁을 주어 그들을 쫓아냈다.
이런 일을 겪고, 마을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후기를 남기고, 인터넷이나 sns 등에서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다시 말을 나르고. 이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구라 마을은 그 자체로 도시괴담이자 온갖 삿된 기운과 요괴의 온상지가 되었다. 때문에 나구라 마을에 갔다가 크게 다치거나 실종되었다는 뉴스도 잊을 만 하면 보도되었다. 더 많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나구라 마을에 들어가는 사람을 막아야 했다. 그 역할을 떠맡은 사람은 역시나 그곳과 가장 연이 깊은 사람, 키타로와 눈알아버지였다.
“그럼, 다녀올게.”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느냐?”
코나기지지가 게게게 하우스를 나서는 키타로에게 물었으나 그는 상냥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저 인간을 쫓아내는 정도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나구라 마을에 있는 지박령과 요괴는 다행히 키타로를 적대하는 이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키타로 덕에 사람이 줄고 있으니 고맙다고 했던가. 산뜻하게 나서는 키타로를 코나기지지는 영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어쩐지 이번에는 큰 사건이 부자를 기다리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게 시작된 곳에서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미즈키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친구들이 오래 된 잡지와 인터넷 커뮤니티 글을 긁어 와 궁금하지 않느냐, 너 귀신 보지 않느냐 독촉을 해도, 확실히 거절하지 못한 채 여름방학 계획이 잡혀버렸음에도, 미즈키는 이런 기분 나쁜 곳에 절대 오고 싶지 않았다. 미즈키는 으스스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이끼와 넝쿨로 뒤덮인 터널 입구를 노려보며 소름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렸다. 이미 앞장 서서 가던 남자애가 고개를 돌리며 재촉했다.
“뭐야, 유우. 안 오면 너 혼자 두고 간다?”
“쟤 정말 신사에서 사는 애 맞아? 귀신 안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설마 싫다는 애 억지로 끌고 온 거야? 인성 대박.”
옆에서 다른 애들이 끼어들어 수군거렸다. 한 명은 저런 겁쟁이 내버려두고 빨리 가자고 다그치고 있었다. 저런 놈을 소꿉친구라고 계속 옆게 끼고 다니는 내가 문제지. 미즈키는 한숨을 쉬고 철부지들을 따라갔다.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저것들을 두고 혼자 내려가나. 미즈키는 탐탁치 않은 기분으로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곧 어둠이 그를 완전히 가려버렸다.
아직 사태 파악이 안 된 철부지들은 꺄르륵 거리면서 사진을 찍고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기느라 바빴다. 한 명은 아예 실시간 인터넷 방송을 하는지 셀카봉에 핸드폰을 매달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두운데 뭐가 카메라에 제대로 잡히기는 하려나, 안 잡히는 쪽이 오히려 더 도움이 될지도. 미즈키는 상념을 하면서 일행 뒤에서 말없이 따라가고 있었다.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그 소리에 원한이 눈을 뜨는 기척이 느껴진다. 발목을 타고 개미가 올라오는 것처럼 소름이 천천히 전신으로 퍼진다. 믿지 않고 재미로만 삼으니까 무섭지도 않은가 보지. 미즈키는 멀쩡한 낯빛으로 이곳을 탐방하는 소꿉친구 자식이 처음으로 부러워졌다. 한 번이라도 그 실체와 악의를 눈으로 보았으면 절대 가볍게 소비하지 못할 텐데. 뭐 저것들도 한 대 세게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겠거니, 미즈키는 속으로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의 소꿉친구가 보았다면 ‘애늙은이도 아니고 왜 이렇게 한숨을 많이 쉬느냐’고 타박할 만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이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 명문 중의 명문이 왜 지금 생각났을까. 미즈키와 그의 일행은 터널의 반대편으로 빠져나오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발길을 멈추고 경박한 입을 다물었다. 나구라 마을 입구에 있는 숲은 학살극이 실존했느냐고 묻듯 평온하기 그지 없었으나 땅과 나무는 혈향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피해자들이 맞은 요괴의 피와 망르이 끝나던 날 주민들이 쿄코츠에게 먹히며 흘린 피가 섞여 초목의 양분이 되었다. 꺼림찍함의 근원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피를 먹고 몸집을 키운 숲과 그 숲이 가리고 있는 학살과 살육의 흔적. 하룻밤 새에 저주받아 사라진 괴담 속 마을 나구라 마을이, 바로 앞에 있다.
“…워, 괜히 쫄았네.'”
여자애는 몸을 한 번 부르르 떨고는 질펀한 땅을 그대로 밟았다. 며칠 전 비가 내린 여파로 걸음을 딛는 곳마다 죄 물러 신발창에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마치 이곳을 감싸고 있는 원한과 과거처럼. 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보다는 심령 스팟이라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아이들은 그들을 붙잡는 망령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미즈키는 또 다시, 터널을 등에 지고 서서 가빠지는 숨을 고르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딱히 요기와 관련이 없더라도, 큰 물줄기를 두고 있는 숲이나 산을 보면 저절로 숨이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강 안에 있는 섬을 보면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도망쳐선 안 된다는 강박이 그의 심장을 꽉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생전 할아버지는 그런 미즈키를 가여워하면서 틈틈이 부적을 만들어 주머니나 목걸이 속에 넣어주었지만…. 이제 할아버지는 그의 곁에 계시지 않는다. 미즈키는 왼손목에 감은 할아버지의 염주를 매만지며 친구들을 따라갔다. 부디 이들에겐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기를.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와서 그런지, 아니면 멸망하기 전부터 숲길이 있었는지, 의외로 잘 정비된 길이 있었다. 그들은 닦인 길을 따라 무리없이 마을로 입성했다. 마을의 참상 앞에서 그들은 다시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반파된 집들과 무너진 석상이며 석탑들, 피를 뒤집어쓴 작은 신사들과 무너진 토리이 등이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풍기며 외부인을 맞이했다. 무려 80년이 지났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핏자국이 얼마나 많은 이가 죽었으며 그들이 얼마나 많은 원한을 낳았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원혼 부스러기가 남아 있지 않은 공간이 없을 지경이었다. 미즈키는 친구들이 마을의 현재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그들을 위해 합장을 해주었다.
“엇, 여기 차 한 대가 있는데요. 마을을 빨리 탈출하려다가 사고가 났나 봅니다.”
한 녀석이 훼손된 차량으로 다가가며 말을 했다. 미즈키는 그 차를 바라보았다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 차 안에 떠돌고 있는 유령이 희한하리만치 익숙했다. 그 유령은 누군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리다가 미즈키와 눈이 마주쳤다. 미즈키는 반사적으로 눈을 돌렸으나 그 유령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불렀다.
「미즈키 군! 갑자기 마, 마을 사람들이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고 있어!」
유령은 여전히 80년 전 마을이 쿄코츠에게 삼켜지던 때에 머물러 있었다. 지박령들의 특징이다. 유령은 과거에 박제된 존재나 다름없기에 주변이 달라졌음을, 그리고 자신이 죽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내도 사요도 보이지 않아 혼자 탈출하려던 참인데 다행이군. 자네도 어서 내 차에 타게! 이런 제정신 아닌 마을, 역시 오는 게 아니었어!」
미즈키가 아예 몸을 반쯤 돌려버리자 유령은 배신당한 표정으로 처절하게 외쳤다. 「미즈키 군! 어서!」
저 사람은 나를 부르는 게 아니야. 저것의 부름에 대답하면 안 돼. 미즈키는 계속 자신을 부르는 사람을 무시하고 멀어지려다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는 일행을 한 번 보고는, 도로 그에게 다가갔다. 결심을 마친 사람처럼 거침없이 그에게 걸어간 미즈키는 호흡을 고르고는 카츠노리에게 단호하게 일렀다.
“…저는, 미즈키가 아닙니다.”
유령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미즈키를 바라봤다. 미즈키는 염주를 손에 쥐고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당신이 찾는 미즈키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어요. 당신도 죽었고요.”
그제야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 유령은 천천히 눈앞의 소년과 이끼가 낀 자동차를 보고는 기억이 돌아왔는지 ‘아아’하고 한숨 같은 탄식을 뱉었다. 미즈키는 그가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한때는 류가의 데릴사위로서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를 누렸으나 그 집안의 구린 짓에 얽혀 죽은 류가 카츠노리. 미즈키는 머리 안쪽이 따끔거리는 느낌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당신도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세요. 당신의 딸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의 딸, 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따끔거림이 강해졌다. 미즈키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을 마쳤다. 의외로 카츠노리는 날뛰지 않고 순순히 제 처지를 받아들였다. 곧 그의 몸이 희미해지면서 하늘로 흩어졌다. 이승에서 완전히 물러나기 전, 카츠노리는 미즈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자네, 미즈키를 많이 닮았어.」
“그런가요.”
「그래, 외양이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눈쪽 상처까지 닮을 수 있는지.」
그 말과 동시에 카츠노리는 이승에서 영영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더 물어보지 못하고 미즈키는 멍하니 서서 왼눈을 더듬었다.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생긴, 세로로 죽 그어진 흉터 자국. 왜 이런 게 생겼느냐고 물어도 어른들은 쉬쉬하기만 할 뿐 사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손주보다 미즈키를 유독 예뻐하신 할아버지도 왼눈 이야기를 하면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에게 제대로 된 힌트를 알려준 것은 인간이 아니라 요괴였다.
‘그 할아버지라는 놈이 일부러 남긴 거군.’
중학생 시절, 규슈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만난 시라누이라는 오래된 요괴가 알려준 충격적인 사실. 할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고 하자, 시라누이는 그 흉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만나야 하는 놈이 요괴인가 보군. 요괴는 중요한 특징 하나라도 달라지면 상대를 못 알아보니까.’
만나야 하는 놈이 누구냐고, 그 인연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할아버지가 그런 짓을 하느냐고 물어도 시라누이는 말하지 않았다. 다른 이의 운명을 함부로 말하면 부정을 탄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다만, 이라며 시라누이는 헤어지기 전 덧붙였다.
‘그 인연은 네 업을 푸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거야. 그러니 너는 만날 수밖에 없어.’
“유우! 뭐 하는 거야, 빨리 와!”
곧 해가 질 거야, 소꿉친구가 미즈키를 불렀다. 미즈키는 왼순에 올린 손을 내리고 몸을 돌려 일행을 향해 뛰어갔다. 그들의 말대로 해가 지기 전 안전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특히 이런 곳은, 외부인에게 악독하므로.
“이제 더는 없나….”
키타로는 중얼거리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아직은 느껴지는 인기척이 없다. 나구라 무라 붐도 이제는 시들어가는 중인지 사흘 동안 섬쪽 숲에서 마을을 감시했으나 별 이상은 없었다. 이대로 다시 발길이 끊기면 요괴에겐 좋지 뭐. 키타로는 한숨을 쉬면서 나무에서 내려왔다. 내일 중으로 임시 거처를 정리하고 게게게의 숲으로 돌아갈 것이다. 카랑대는 맑은 소리가 아닌 진흙에 묻혔다가 떨어져 나오는 듯한 텁텁한 소리가 울린다. 한때 쿄코츠에서 흘러나오는 원한으로 미쳐버린 요괴가 가득했던 이 숲은 고요하기 짝이 없다. 하루에 한 번씩 울리곤 했다는 용곡도 자취를 감춘 지 어언 80년 째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요괴란 땅에서 발생하는 것, 자신이 태어난 토지를 벗어나는 것이란 단순히 이사가 아닌 제 몸 일부를 떼어놓고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직 이주할 만큼의 힘이 없는 요괴나 너무 오래되어 터줏대감 비슷한 것이 된 요괴들은 이곳에 남아 민폐를 부리는 인간을 혼내줄 궁리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키타로에게 다가와 말했다.
“벌써 가려고?”
“음, 이제 인간은 오지 않는 거 같으니까.”
“말도 안 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게 아니라?”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방금 전 터널 앞까지 다녀왔지만 사람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몰라 류가 본채의 입구부터 시작해 섬의 구덩이로 이어지는 길목도 샅샅이 확인했다. 그래도 인간의 냄새따위 조금도 나지 않았는데, 이 녀석은 왜 자신이 건성으로 순찰을 돌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키타로가 한쪽 눈을 접고 가만히 바라보자 말 머리를 닮은 요괴는 겁이 났는지 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니, 여기 요괴들이 놀래키다가 죽은 인간들이 좀 있잖냐. 그리고 그것들 중 일부가 또 쿄코츠가 되었고.”
“응. 그래서 내가 정기적으로 이곳에 오는 거잖아. 더 이상 새로운 쿄코츠가 태어나는 걸 막기 위해서.”
“그, 그런데 그놈들 중 하나가 말하는 걸 내가 똑똑히 들었거든? 방금 전에 인간 애들 대여섯 명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짜증나니까 적당히 두 명 정도 먹어서 겁을 줄까 막 그러면서….”
키타로는 하늘을 쳐다봤다.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다. 키타로는 또 뭐라고 말을 잇는 말 요괴를 뒤로 하고 전속력을 향해 마을로 달려갔다. 어엇, 하고 소리를 낸 말 요괴는 키타로의 등을 허망하게 바라보다가 외쳤다.
“그, 그런데 그 애 중 하나가 낯이 익다고 했어! 예전에 이 마을에서 본 것 같다던데! 어, 눈에 막 흉터도 있고!”
놀랍게도 그들이 야영장으로 정한 곳은 류가의 별채였다. 미즈키는 정말로 이곳에서 잘 것논리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본채에 묵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미즈키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냐고 물었으나 그들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일관했다. 원한이 깊은 곳에서 자야 귀신이 잘 보이지 않겠느냐는 말은 오히려 논리적이기까지 했다. 그나마 본채가 완전히 무너져서 잘 수 없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지. 미즈키는 그들의 고집에 한숨을 푹 쉬며 짐을 풀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켜주기라도 하는 듯 이곳은 나구라 마을에서 그나마 요기와 원한이 옅은 곳이었다. 계속 여긴 어떠느냐고 물어본 걸 보니 아무리 그래도 귀신에게 잡아먹혀 죽고 싶진 않았나 보지. 미즈키는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가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느 새 다가온 소꿉친구가 그의 볼을 사정없이 누르며 말을 걸었다.
“유우, 진짜 잘 거야? 아직 여섯 시밖에 안 됐는데?”
“피곤해. 잘 거니까 내버려 둬.”
“재미 없는 녀석.”
소꿉친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무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어디서 났는지 모를 라이터로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괴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대체 왜 저런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는 건지…. 미즈키는 일부로 그들을 등진 채 누워 눈을 꾹 감았다. 귀신과 요괴가 그들을 바라보며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자겠다면서 눕긴 했지만 이래서 잠을 잘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미즈키는 주머니에서 공부용 귀마개를 꺼내 귓구멍을 틀어막았으나 이형이 내는 소리는 고막이 아닌 가슴속으로 파고 들어 둥둥, 북소리처럼 계속 가슴속에 울렸다.
“그런데, 사카모토는 대체 왜 미즈키랑 어울리는 거야?”
택시를 타고 마을로 오는 내내 실황 중계를 하던 노란 머리 남자애가 물었다. 제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미즈키는 사정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다른 애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말을 얹었다.
“맞아. 솔직히 니 친구래서 같이 다니는 거지, 좀 그렇지 않냐. 다 쓰러져 가는 신사에서 할아버지랑 단둘이 산다며.”
“걔네 부모님도 귀신에게 홀려서 교통사고로 죽었다잖아.”
“그런데 같이 차에 탔던 쟤는 멀쩡했다며. 솔직히 세 살 짜리가 그 사고에서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어?”
신사 집 아이, 귀신을 본다는 아이, 부모님도 할아버지도 귀신에게 홀려 미친 집안. 모든 게 기괴한 교통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 불량스럽게 흉터를 달고 있는 녀석. 그게 보통 사람들이 미즈키를 생각하는 방식이었다. 꺼림찍하고 이상한, 귀신이 들렸을지도 모르는 녀석.얼굴도 성적도 발군이라고 좋아하는 녀석들도 소소하게 있지만 대개는 미즈키를 그러한 이유로 기피하고 불길하게 여겼다.
피를 나눈 친척이라고 다르지 않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미즈키를 잘 챙겨주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미즈키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사의 주인이 될까 두려워서 그런 것이다. 이전에 어느 장례식에서 어른들이 수군거린 말을 기억한다. 그 신사 땅이 얼마인데, 할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못 팔게 생겼다며 혀를 차던 그들. 그때부터 미즈키는 아무도 믿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시라누이는 언젠가 인연을 만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린 인간을 놀리기 위한 요괴의 장난 정도로만 생각했다.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이 없는 사람에게, 운명의 사람이라는 낭만적인 인연이 있을 리가.
“왜, 쟤 재미있어.”
과자를 우물거리며 친구가 대답함과 동시에.
훅.
불이 꺼졌다.
미즈키는 몸을 굳혔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면서 숨이 막히는 기분. 악의 가득한 이형의 것이 고개를 들었을 때 나오는 반응이었다. 도망칙고 싶어도 몸이 움직여주지 않는다. 흡사 가위에 눌린 것 같은 불쾌한 감각을 깨어 있는 머리로 느낀다. 한 가지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영감이 전혀 트이지 않은 사람도 느낄 만큼 악질적이라는 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일행은 몸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였다. 마치 저 위에 있는 것을 보면 안 된다는 듯이, 저것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걸 본능처럼 감지한 듯이. 금발이 팔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오우 씨, 7월이어도 해 지니까 춥네.”
“이거 불 왜 꺼진 거야? 다시 피울까?”
“다시 피우는 게 낫겠지.”
피우지 마, 피우면 안 돼. 저건 불을 지핀다고 도망치는 부류가 아니야. 미즈키는 목구멍을 쥐어짜 외치고 싶었지만 성대가 굳어 바람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사위가 캄캄한 와중에 영기가 트인 미즈키에게는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손이 보였다. 겨우 침낭에서 벗어난 미즈키가 근처에 굴러다니던 주먹 만 한 돌을 쥐었다. 손은 어느 새 실황의 머리 위로 드리워졌다. 미즈키는 이를 악물고 겨우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
외침과 동시에 돌을 던졌다. 다행히 돌은 실황의 머리에 떨어지지 않고 정확히 손을 맞추었다. 악의가 꺵! 하고 단말마를 질렀다. 고작 외마디였음에도 땅이 울리고 바람에 나뭇가지가 나부꼈다. 그 소리를 시작 삼아 아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달렸다. 방금까지 공포로 굳어 있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이들은 쏜살같이 달려 별채에, 수풀에, 나무 뒤에 흩어져 숨었다. 그러나 정작 미즈키는 도망치지 못했다. 놈의 외침을 듣자 갑자기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천천히 몸을 돌려 혼자 남겨진 미즈키를 보더니 히죽 웃으면서 가까이 왔다. 먹잇감을 찾아 기분이 좋은지 푸른 불까지 켰다. 미즈키는 멈추지 않는 코피를 대충 문질러 닦으며 놈을 응시했다. 쿄코츠, 유령족과 피해자의 원한에서 태어난 악령. 동시에 나구라 마을 경험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요괴이기도 했다. 그저 자기네 집을 헤집으러 온 인간을 적당히 겁주어 쫓아내는 보통 요괴와 달리 이 녀석들은 말 그대로 원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겁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상대를 물어 뜯어 죽여야 성이 풀리는 놈들인 만큼, 한 번 걸리면 얌전히 돌아가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잖냐, 빨리 어떻게든 움직여달라고 망할 몸뚱아리 자식아. 미즈키는 스스로에게 욕을 퍼부으며 조심스럽게 가위를 풀어냈다. 그 새 쿄코츠의 파란 불꽃은 거의 눈앞까지 다가와 일렁이고 있었다. 눈이 타는 듯한 열기에 머리카락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미즈키는 억지로 다리를 움직여 가까스로 쿄코츠의 1차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위가 덜 풀린 상태에서 억지로 움직인 탓인지, 몸을 움직이던 중에 발목이 망가지고 말았다. 최소 접지름, 최악의 경우 인대 혹은 아킬레스건 파열이다.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러냐. 미즈키는 머리를 땅에 박고 한탄을 했다. 대체 전생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지금 내가 이렇게 굴러야 하는데…. 등 위로 다시 쿄코츠의 불길이 느껴졌다. 화상을 입을 만큼 뜨거운 온도에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소리를 지르면 다른 요괴들도 몰려올 것이다. 기껏 숨은 아이들이 그들에게 희생당하게 둘 순 없다. 차라리 죽어도 내가 죽는 게….
‘그 인연은 네 업을 푸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거야. 그러니 너는 만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그 만나야 하는 인연은 언제 나타나는 건데. 미즈키는 이를 악물며 시라누이에게 항의했다. 지금 내가 죽을 판인데 내 운명이라는 건 언제 오는 거야?
“머리카락 침!”
왼쪽에서 누군가가 이상한 기술명을 외침과 동시에(솔직히 미즈키는 조금 구리다고 생각했다. 아동용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필살기 이름도 아니고 이게 뭐람) 쿄코츠가 비명을 지르면서 멀어졌다. 곧 요란한 게다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미즈키의 등에 천 하나를 덮어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천을 뒤집어 쓰니 발목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오한, 두통이 가시는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옷에 게다를 신은 소년이 자신을 가로막고 쿄코츠와 대치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적 있는 외형이었다. 미즈키는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게게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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