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2021 여름 창작 스터디


 

“2박 3일 예약 확인되셨고, 저희 측의 착오로 원래 예정되어 있던 방이 준비가 덜 되어서 룸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드렸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아… 감사합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에 나는 얼떨떨하게 눈을 깜빡이다 카드키를 받아 챙기곤 짧은 인사를 남긴 뒤 돌아섰다. 처음으로 혼자 해 보는 여행인지라 친구들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숙소에 조금 더 힘을 줬는데 이런 행운까지 겹쳐 더 좋은 방을 배정받게 될 줄이야. 캐리어를 끌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버튼을 눌러두고 잠시 로비를 둘러보았다. 은은한 광택이 도는 상아빛 대리석 바닥부터, 현대적이면서도 퍽 우아한 조명이 늘어뜨려진 천장은 물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꽃이 풍성하게 꽂혀있는 사람 키만 한 화병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이 깔끔했고 고급스러웠다.

 

“안 타시나요?”

“아, 죄송합니다. 타요.”

 

불쑥 들려온 타지 않을 거냐는 물음에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보니 탑승한 사람은 나와 유니폼을 입은 호텔 직원뿐이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친절히 웃어 보이는 직원에게 어색하게 마주 웃어보였다.

 

“혼자 온 여행이신가요?”

 

묘하게 허둥거리는 게 티가 났던 걸까. 버튼을 누르고 한 걸음 물러서자 선선히 웃는 낯을 한 직원이 반쯤 몸을 돌리고 친절하고도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호텔 체인의 직원들은 이렇게 친절한가?

 

“네. 잡지에서 여행 칼럼을 읽었는데 너무 와보고 싶어서….”

“요즘 운양시는 여행하기에 진짜 좋아요. 지자체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환경 정화를 위해 노력도 많이 했고, 그 덕분에 상어들도 다시 운양 앞바다로 돌아왔어요. 아, 운양시가 원래 상어로 유명했던 곳이에요.”

“안 그래도 제가 봤던 칼럼에서도 상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더라구요. 사실 살아있는 상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이번 여행에서 상어를 볼 수 있는 투어도 신청해뒀어요.”

“그 투어, 저도 가본 적 있는데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아, 내리셔야 할 층이네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 좋은 기억 많이 만들어 가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벌써 좋은 기억 하나는 생긴 것 같아요.”

 

폭신거리며 발소리를 잡아먹는 카펫이 깔린 복도를 걸었다. 돌돌돌 캐리어 굴러가는 소리마저 파묻힌 복도는 시간 탓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어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오래지 않아 1921이라 간결한 숫자만이 붙어있는 문 앞에 다다를 수 있었다. 카드키로 잠금을 해제하고 들어간 방의 첫인상은 고급스럽고 청결하다-였다. 잘 건조된 세탁물이 머금을 수 있는 깨끗한 냄새가 방 안에 은근하게 깔려들어 있었고, 따뜻하고 밝은 톤의 조명이 방을 밝히고 있었다.

 

짧게 소리 내어 감탄한 나는 캐리어도 문가에 덩그러니 내버려둔 채 이곳저곳을 구경한 다음에야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었다. 두꺼운 암막커튼을 걷어내자 유리창을 투과하여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빛에 눈을 찌푸린 것도 잠시. 나는 내가 왜 커튼을 먼저 걷어보지 않았는지에 대해 아주 조그만 후회를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아무래도 숙박비가 부담이었던 것 같다’던 나의 생각을 단숨에 지워버릴 정도의 절경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짙푸르게 넘실대는 바닷물이 시릴 만치 새파란 하늘과 맞닿아 끝 간 데 없이 뻗어 있었다. 군데군데 작은 점으로 보이는 배가 몇 척 바닷물에 몸을 맡긴 채 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풍경의 좌우로는 육지의 그 어떤 모서리도 보이지 않아, 마치 허공에 뜬 채 수평선을 조망하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차를 몰아 호텔로 올 때만 해도 호텔이 다른 곳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런 풍경을 간직한 호텔이라면 얼마든지 동떨어져 있어도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멍하게 생각했다. ‘호캉스는 사치’라고 생각해왔던 지난날을 반성해야 할 것만 같았다.

 

창가에 마련된 턱에 앉아 홀린 듯 바깥만 내다보길 한참, 문득 갈증을 느낀 다음에야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업그레이드를 받을 줄 알았다면 2박 3일 내내 호텔에서만 박혀있는 건데.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지. 여행은 원래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어 차가운 물로 목을 축이던 나는 그제야 창가의 책상 위에 여러 가지 팸플릿이 가지런히 놓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보자 하나는 운양시 근교의 관광지를 정리한 안내책자였고, 나머지는 모두 운양시에 대한 관광 안내책자였다.

 

그 중에서도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운양시의 옛 모습을 재현해놓은 전통거리에 대한 안내책자였다. 그렇잖아도 일전에 읽은 운양시에 대한 여행 칼럼에서 주요 관광스팟으로 언급되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었다. 여러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쓰였다 알리는 글자를 뒤로 하고, 각 잡아 접은 종이를 넘기니 거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옛 모습을 재현한 전통 장터가 열린다는 광고가 실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오….”

 

오늘이 화요일이었다는 걸 어렵지 않게 떠올린 내 시선에 [매주 수요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전통 장터 개장!]이라는 문구가 들어왔다.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내일의 예정된 일정이 머릿속의 이쪽과 저쪽에 떠올라 사람을 갈등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고민은 의외로 쉽게 마무리 되었는데, 홀로 운양시를 찾은 여행객 가운데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특별한 저녁 식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글을 본 덕분이었다. 조선시대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조리법으로 만든 요리라니 누구든 탐을 낼 법했다. 매주 월요일부터 전화로 해당 주의 신청을 받는다는 안내글이 조그맣게 하단에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당장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운양 디미방입니다.]

“저, 안내책자에서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나 홀로 여행객을 위한 저녁 식사 프로그램 신청이 끝났나 해서요.”

[자리가 남아있는지 잠시 확인해볼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시겠어요?]

 

친절하게 알아봐 주겠노라 말하는 목소리에 얌전히 대답을 되돌리곤 창가로 걸어가 예의 턱에 걸터앉았다. 시선은 또다시 잔잔히 일렁이는 너른 바다로 가 닿았다. 눈앞에 가득 펼쳐진 것이라곤 바다와 하늘뿐이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소리 없이 눈으로만 전해져오는 일렁임이 퍽 평화롭다고 생각할 즈음 핸드폰 너머에서 반색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운이 좋으신가봐요. 원래 자리가 다 차서 마감됐었는데, 오늘 마침 취소하신 분이 생겨서 한 자리가 비어있어요. 예약하시겠어요?]

“정말요? 그럼 예약하고 싶어요.”

[네, 성함 말씀해주시고 연락처는 지금 전화 주신 이 번호 맞으신가요?]

“네. 번호는 이 번호 맞구요, 이름은 임주이요.”

[임주이 님 성함으로 예약되셨어요. 내일 7시까지 운양 전통거리 안에 있는 객점으로 찾아오시면 돼요. 운양 디미방이라는 간판이 같이 걸려있을 거라 찾아오는 데는 어렵지 않으실 거예요. 프로그램 참가비는 내일 현장에서 바로 결제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저 그런데 원래 모집인원이 몇 명인가요?”

[매주 7분씩만 받아요. 아무래도 나 홀로 여행객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예약 취소가 빈번한 편인데 대부분 금방 다시 차거든요. 운이 좋으신 편이에요.]

“아무래도 오늘 제가 운이 좋은 날인가 봐요. 그럼 내일 뵐게요.”

[네, 시간에 늦지 않게 오셔야 해요.]

 

마침 한 자리가 비어있던 참이라니. 평소에 딱히 운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지라 오늘 일어난 일련의 일들이 조금은 얼떨떨하기도 했다. 룸 업그레이드에 특별 저녁 식사 프로그램 자리까지. 이번 여행은 아무래도 느낌이 좋았다. 퍽 행복해진 기분으로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예정보다 이르게 도착했다곤 하나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간단하게 챙긴 백팩을 어깨에 끌러 매고 숙소를 나서서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운양포구였다. 지금은 산책로가 조성되어있는 곳이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규모에 비해 오가는 배와 객이 많은 곳이었다던가. 평일 낮이었지만 날씨가 쾌청해 삼삼오오 산책로를 거니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부드럽게 내리쬐는 볕을 받으며 즐거운 웃음을 띈 사람들과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산들거리는 바람까지. 그 순간의 모든 풍경이 너무 예뻤다.

 

제법 운치 있고 훌륭하게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칼럼에서 읽었던 내용을 곱씹었다. 운양 앞바다에서 상어가 살았다는 기록은 고려 중기부터 확인되었다고 했다. 상어의 목격담은 조선말까지 남아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상어의 개체 수가 줄어들더니 1930년대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고.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일본의 무분별한 남획에 의해 터전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도 지자체에서는 운양시의 바다를 상어가 돌아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맑은 곳으로 가꾸어 상어를 불러들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20여년의 노력 끝에 4년 전부터 상어가 포착되기 시작했지만 운양시는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관광명소 가운데 한 곳이 되길 바란다는 포부를 가지고 움직인다던가, 뭐라던가.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나지 않아도 운양시에서 상어와 도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거기, 머리 묶은 처자. 잠시만 이리 와 봐.”

“…저요?”

 

앉아 쉴 수 있도록 벤치를 여럿 마련해둔 구간을 지날 때였다. 지팡이를 두 손으로 짚은 채 벤치에 앉아있던 노인의 목소리가 내 걸음을 붙잡았다.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시야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년의 여성이 들어찼다. 얼마간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주춤거리며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잠시 앉아보라는 듯 주름진 손을 움직여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왜 그러시는데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그래.”

 

원래 낯선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시작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슬그머니 그 옆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놓고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먼 바다만 바라보았다.

 

“운양의 상어 이야기 아는가?”

 

시선을 눈치 챈 걸까. 점잖은 목소리로 흘러나온 말은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의문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뜬금없이 지나는 행인을 앉혀 옛 이야기나 읊어줄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알아요. 사실 운양에 온 것도 상어를 보고 싶어서 왔거든요.”

“그럼 운양의 인어 이야기는 아는가?”

“네?”

 

갑자기 인어라니? 무심결에 황당함을 가득 담아 되물은 후에야 아차하며 입을 꼭 다물었으나 그는 내 반응 따윈 아무래도 좋다는 듯 묘하게 웃으며 시선을 마주해왔다. 빛바랜 고동색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 순간 머릿속을 부유하는 모든 생각들이 일시에 볼륨을 줄인 듯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침묵, 그러나 흩어낼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의 기세에 짓눌려 나도 모르는 사이 숨까지 죽인 채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렸다.

 

“운양 앞바다엔 본디 인어가 살았지. 상어가 아니야. 그들을 교인鮫人이라 불렀어. 운양이 한갓진 마을일 적부터 이곳은 그들의 터전이었고, 바닷일을 해 벌어먹고 살았던 운양의 사람들은 그들과 꽤나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지. 서로를 돕고 살았다, 이 말이야. 운양의 사람들은 바다에서 얻는 것에 욕심 부리지 않았고, 인어들은 사람들의 배려에 종종 보답을 하곤 했지. 진주며 귀한 바다의 것들을 가져다주었고… 운양의 사람들은 그것으로 부를 쌓고 마을을 키워갔어. 부가 쌓이니 마을은 고을이 되고 자연스레 외지인도 늘었고… 터가 넓어지니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테지.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는 걸 그땐 아무도 몰랐을 거야.”

 

운양 앞바다에 살았던 게 상어가 아니라 인어라는 이야긴 제법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인어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지부터가 의문이었다. 인어에 대한 각종 전설과 소문은 무수히 많지만 현대에 들어서 인어의 실존을 믿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선 나부터 인어의 실존을 믿지 않으니까.

 

“어쩌면 처자도 알고 있겠지만, 인어에 얽힌 이야기가 세상엔 많아. 인어가 뱃사람을 홀려 바다 속으로 끌고 들어가 잡아먹는다거나…. 인어의 살과 피를 취하면 그들의 수명을 빼앗아 장수할 수 있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야. 물론 운양의 토박이들은 허무맹랑한 소문 따위 믿지 않았지만… 인어를 직접 본 적 없던 외지인은 그렇지 않았지. 그들 가운데엔 헛소문에 현혹되어 있는 이가 섞여있었던 거야. 운양의 토박이들은 처음에 인어의 존재를 숨기고자 했어. 인어들 또한 그것을 바랐고. 그러나 세상에 완벽한 비밀은 없는 법 아니겠는가? 결국엔 외지인들 역시 인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지.”

 

가볍게 숨을 내뱉는 노인의 얼굴에선 씁쓸한 기색이 묻어났다. 소금기를 품은 바닷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노인의 구불진 머리칼 사이로 스며들고 내 귓가를 부드럽게 간지럽혔다. 문득 그 한줄기 바람 속에 누군가의 속삭임이 담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러기로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시선이 바다를 향해 뻗어나갔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낮고 평화롭게 일렁이는 바다가 퍽 비밀스러워 보였다. 저 잔잔한 수면 아래를 유영하고 있을 존재는 과연 상어일까, 인어일까.

 

“그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요…?”

“말해 무엇하나. 비극뿐이었지. 탐욕에 눈이 먼 자가 인어를 꿰어내 잡아먹고, 까마득히 이어져 내려온 사람과 인어 간의 신뢰에 금이 가기 시작했어. 운양의 토박이들은 인어를 지키고자 했지만 소박하게 살줄만 알던 어부들이 나서봐야 무얼 할 수 있었겠나. 인어를 탐하기 시작한 외지인들은 저와 같은 사람을 해치는 일마저 예삿거리로 생각했지. 그렇게 인어며 토박이까지 죽어나가자 그간 뒷산에 틀어박혀 신을 모시는 일에만 골몰했던 운양의 어리석은 만신萬神이 깨달은 게야. 이대로 두었다간 수라장이 되겠구나. 모두 죽게 생겼구나. 그래서 만신은 무당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저주를 내렸지. ‘인어의 살과 피를 조금이라도 취하는 자는 그 즉시 인어가 되어 종래엔 똑같이 사냥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저주가 진짜 실현됐나요?”

“글쎄. 만신이 온 힘을 다한 저주를 걸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사이에 인어들은 운양 앞바다를 버리고 자취를 감추었거든.”

 

여행 칼럼에서 읽었던 내용이 오버랩 되었다. 언제부턴가 그 수가 줄어들더니 1930년대엔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어. 만약 노인의 이야기대로 자취를 감춘 것이 상어가 아니라 인어였다면. 다시 운양 앞바다로 돌아온 것은 어느 쪽이지. 하지만 궁금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르신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다 아세요? 꼭 직접 겪은 사람처럼….”

“내가 신기가 좀 있어.”

“…그럼 이런 이야기를 왜 갑자기 저한테 하세요?”

“처자한테 인어 그림자가 보여.”

“인어 그림자요?”

 

순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들뿐이었다. 신기가 있다고 해서 마치 직접 겪은 것처럼 이 이야기를 모두 다 알 수 있는 걸까? 내게서 인어 그림자가 보인다는 건 또 무슨 소리일까. 발치에 붙어있는 짧은 그림자를 내려다보는 사이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나는 황망하게 노인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사람을 불러 앉히더니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고 훌쩍 떠나려는 노인의 행동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이러고 가시는 거예요?”

“그럼, 가야지. 늙은이는 바람을 너무 오래 쐬면 안 좋아.”

“아니……”

“아이고, 참. 그래. 바다에서 난 것을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노인은 느릿하지만 멈춰서는 일은 없을 거라는 듯 단호한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그 뒷모습에서 할 일을 다 한 사람 특유의 가분함이 느껴졌다. 노인을 만난 순간부터 떠나가는 모습을 보는 지금까지 그저 기묘하기만 해 나는 조금쯤 넋을 놓았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땐 파랗던 하늘이 짙푸른 빛으로 어두워진 후였고, 짧은 시간 스스로를 불살랐을 태양의 머리꼭지가 수평선 끄트머리에 간신히 걸쳐있었다.

 

“…아.”

 

어둠에 잠긴 하늘을 보자마자 머릿속을 스쳐 지나는 것은 오늘 오후에 예약해두었던 상어 투어였다. 대체 몇 시간을 이곳에 앉아 있었던 거지. 시간을 궁금해 하면서도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 망부석처럼 바다만 관망할 뿐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을 놓쳤음에도 어째선지 큰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를 들은 후 투어에 참가했다가, 상어가 아닌 진짜 인어를 마주할까 두려웠던 걸지도 몰랐다. 각종 매체 속 인어는 일견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막상 실제로 본다고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불쾌한 골짜기를 마주한 기분일 것 같달까.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득히 들렸다. 산책로를 따라 불 밝힌 조명들이 은은하게 어둠을 밝히자 분위기는 퍽 안온한 듯 했으나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선득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해가 밝을 때까지도, 나사가 하나쯤 빠진 듯 집나간 넋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노인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주문이라도 걸어둔 게 아닌가 하는 멍청한 상상을 할 정도로 기분이 묘했고, 햇빛 들이치는 창밖의 풍광은 현실감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아름다웠다. 저 바다 아래에, 어쩌면 인어가. 부메랑이라도 된 양 또다시 인어로 귀결되는 생각에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마를 찰싹찰싹 때렸다. 홀리기라도 한 건지. 그저 한낱 이야기일 뿐인데 왜 이렇게 떨쳐내지지가 않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하…미치겠네.”

 

듣는 이 없는 넋두리를 긴 한숨과 함께 토해내며 아픈 이마를 문질렀다. 오늘은 아무래도 얌전히 숙소에서 계획에도 없던 휴양이나 해야 할 것 같았다. 넋나간 상태로 돌아다녀봐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을 게 뻔했으므로. 그냥 오자니 괜히 아쉬워서 책을 한 권 챙겨왔는데, 아주 현명한 선견지명이었던 셈이다. 물론 오늘 저녁에 예약해둔 식사 프로그램은 반드시 참여해야했다. 운이 좋아 잡은 건데 그것마저 포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해본 적 없던 호캉스나 한 번 즐겨보자 하고. 그래서 편의점 음식으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창가의 턱에 앉아 한가로이 독서도 하고, 느긋하게 누워 천장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기도 하고, 새하얗고 푹신한 이불에 감싸여 낮잠도 잤다. 제법 그럴듯한 호캉스를 만끽하고 나니 잃어버린 넋이 조금은 돌아온 듯 했다.

 

평화롭고 기분이 좋았다. 마치 뭘 해도 다 좋게 풀릴 것 같이 마음이 편안한 기분은 오랜만이라 저녁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절로 콧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여유롭게 준비를 끝마친 나는 약속된 시간인 7시보다 이르게 전통거리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고 택시를 잡아탔다. 이른 퇴근을 맞이했을 차들이 도로에서 슬슬 퇴근길 정체를 빚어내기 시작했음에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약 20여분을 달려 이윽고 전통거리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제법 그럴싸하게 꾸며진 고을 입구 같은 모습이 나를 반겼다. 붉게 칠한 나무판자들을 못질해 만든 성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너머 펼쳐진 것은 사극에서나 볼 법한 저자거리였다. 팸플릿 속 사진처럼 무명천으로 지은 한복을 입고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과 현대적인 옷을 갖춘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진 광경은 꼭 현대와 과거의 시간이 한데 뒤섞인 판타지 같아서 얼마간 거리 초입에 멀거니 서서 그 광경을 구경했다.

 

그렇게 십여 분의 시간을 쓴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 오묘한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 조명이 즐거운 표정을 띈 사람들의 얼굴 위로 화사하게 번졌다. 상인들의 호객소리, 일행들과 어떤 물건이 좋을지 두런두런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소리, 조리되는 음식들이 익어가는 소리 따위가 혼잡하게 귓가로 흘러들었다. 제법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하루종일 조용한 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다 나온 탓인지 그 소란이 불쾌하지는 않았다. 조금 걸어들어가자 마주한 작은 공터에서, 한편에 우뚝 세워진 안내판을 통해 전통거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위치를 표시해둔 빨간색의 점에서부터 찬찬히 주변으로 시야를 넓히다보니 목적지인 객점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객점까지의 대략적인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본 나는 마치 유랑을 나온 조선시대 선비라도 된 양 느긋하게 사람들 사이를 거닐기 시작했다. 한복 대여점 앞에 색색의 고운 한복을 입고 늘어선 마네킹들이 뭇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다음엔 친구들과 함께 이런 곳으로 와 다 같이 한복을 빌려입고 기념사진을 남겨도 좋을 것 같았다. 나무로 만든 식기며 조각품 따위의 다양한 잡화를 진열해놓은 좌판들을 기웃거리며 지나쳤다. 곧 근사한 저녁식사를 하게 될 테니,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각종 간식류는 눈에 담는 것으로만 만족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등불모양의 조명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담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었던 대로, 객점임을 알리는 현판과 함께 ‘운양 디미방’이라는 고풍스런 서체의 현판이 걸려있었다. 활짝 열린 대문 안은 복닥거리는 저자거리와 사뭇 다르게 인적이 드물었고 고즈넉했다. 괜히 조심스러운 기분이 들어 발소리를 죽인 채 대문의 문턱을 넘었다. 멀뚱히 서서 두리번거리는 사이 사락사락 비단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여성이 온화한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식사 프로그램 예약하셨나요?”

“네. 임주이란 이름으로 예약했어요.”

“아, 임주이 님이시구나. 어서오세요. 안내해드릴게요.”

 

디딤돌 위엔 이미 여러 켤레의 신발이 이미 놓여 있었다. 이르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기름 먹여 짜놓은 마루가 반질반질했다. 바깥으로 노출된 복도를 이리 꺾고 저리 꺾어가며 제법 안으로 깊이 걸어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규모가 있는 편인가보다, 하고 생각한 순간 앞장서던 흰 버선발이 멈춰섰다. 불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장지문이 열리자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순 내게로 쏠렸다. 그들 사이를 부유하던 어색한 분위기도 함께.

 

“어,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와 함께 머뭇거리며 들어선 나는 눈치껏 반듯하게 놓인 빈 방석 위에 조심스레 엉덩이를 붙였다.

 

“오늘 한 분이 직전에 취소를 하셨거든요. 오실 분은 다 오셨으니 곧 음식 내어드릴게요. 조금만 대화 나누고 계세요.”

 

장지문이 부드럽게 닫히자 방 안은 다시 정적에 빠졌다. 활짝 열린 원형창 너머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만이 겨우 숨통을 틔워주고 있었다. 언제쯤 이 어색함을 타파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할 무렵 장지문 너머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얌전히 앉아 핸드폰만 만지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지문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반색하는 눈빛들이라 슬그머니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오늘의 메인 메뉴는 어묵탕이에요. 좀 더 거창한 메뉴를 기대한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이 어묵탕은 수라상에 진상되곤 했던 특별한 어묵탕이에요.”

 

각자의 앞에 나무 쟁반이 하나씩 놓였다. 조근조근한 설명에 사람들의 시선이 제 앞에 놓인 쟁반 위로 떨어져내렸다. 밥과 국, 4가지의 반찬이 소담하게 담긴 한 상 차림으로 꽤나 건강해 보이는 식사였다.

 

“어묵탕에 들어간 어묵은 상어고기를 이용해 만들어졌어요. 아직도 일부 지방에서는 제삿상에 상어고기를 올리곤 한다는 거, 아시는 분들도 계시죠? 상어고기는 육질이 담백하고 탄탄해 어묵으로 만들었을 때 식감이 좋은 편이에요. 운양시에서는 앞바다의 생태계를 위해 상어의 개체 수를 조금 조절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고, 디미방에서는 그 상어고기를 활용한 궁중 요리를 선보이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병들거나 폐사한 개체를 사용하진 않으니 걱정 않고 맛있게 드시면 된답니다. 서로 대화도 나누시고 즐거운 식사 시간 되세요.”

 

친절함이 가득 묻어나는 인사를 끝으로 방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색하던 분위기가 조금은 풀어졌다는 점일까. 한 청년이 머쓱하게 입을 열었다. 식사 할까요, 하는 그 짧은 말에 각자 수저를 집어들며 음식을 다시 찬찬히 탐색하듯 살폈다.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부연 김과 함께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숟가락을 쥐고 어묵탕을 가볍게 저었다가, 국물부터 한 숟갈 떠먹었다.

 

“…진짜 맛있네요.”

“그쵸? 저도 그 생각했어요.”

 

나처럼 국물을 먼저 떠먹은 두 사람이 눈물 마주치며 작게 감탄했다. 그러자 너도나도 입을 열어 동의의 뜻을 덧대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어묵탕은 정말 맛이 좋았다. 사전에 들은 설명대로 어묵은 식감 자체가 탱글탱글했다. 어묵 특유의 비린 듯한 향도 한결 적었고,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식사는 퍽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졌다. 음식이 곁들여진 덕분인지 방 안의 어색함도 많이 희석되어 간간이 대화가 오가기 시작할 쯤이었다. 문득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한 것 같기도, 숨을 쉬는 것 자체가 편치 않은 것 같기도 해 어리둥절한 찰나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남자가 기침을 시작했다.

 

“괜찮으세요?”

“숨이… 숨이… 잘…”

 

그리고 그것이 신호탄이 된 것처럼, 나를 포함한 모두가 헛숨을 삼켰다. 난폭한 해일처럼 거대한 갈증이 들이닥쳤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숨을 들이마시는 일이 되지 않았다. 하나둘 가슴께를 부여잡은 사람들이 괴로움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상했다. 알러지 반응이라기엔 모두가 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고, 음식에 독극물이라도 섞였다기엔 시에서 운영하는 곳인데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은 것이다.

 

‘인어의 살과 피를 조금이라도 취하는 자는 그 즉시 인어가 되어 종래엔 똑같이 사냥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야.’

 

갑자기 해안가에서 마주쳤던 노인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는 운양시의 앞바다에 살던 것이 상어가 아니라 인어라고 했다. 하지만 어묵탕은 상어고기로 만들었다고 했는데. 불쑥 두려움과 거북함이 차올랐다. 어쩌면, 어쩌면 우리가 먹은 것은 상어가 아니라 인어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패닉에 빠지게 했다. 인어는 바다에서 산다. 대다수의 물살이는 물 밖에서 호흡하지 못한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시선 끝에 원형창 너머 잘 가꾸어진 연못이 보였다. 저곳에 뛰어들어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번뜩이며 떠올랐다. 아니, 생각이라기보다 본능에 가까운 직감이었다. 담수인지 해수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옷자락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만 개의 바늘로 쑤셔대는 것 같은 통증이 다리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들숨을 마시지 못한 몸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간신히 몸을 움직여 창가로 다가간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창틀을 부여잡고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거친 물소리와 함께 무수한 공기방울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목이 졸리다 풀려난 사람처럼 일시에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살았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뒤이어 나를 따라 뛰어내린 사람들 주위로 하얀 물거품이 일었다. 한 차례의 소요가 지나간 뒤 우리는 물속에서 서로를 마주보았다. 서로의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매끄러운 비늘로 감싸인 인어의 하반신이 생겨난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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