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어린

김성식, 정은창 / 성식은창 / 동갑도시

우리 동네에, 나와 동갑이던 애가 있었어.

그리고 죽었지.

 

다 못사는 동네였다. 전부 그랬다. 도시 자체가 못사는 도시였을지도 모른다. 도시? 이곳을 도시라고 부를 수는 있나? 아무튼, 그래도 도시라고 부르자. 그리고 그 도시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그 선을 따라 사람들이 나뉜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그래, 우리가 살던 동네는 못사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였다.

그런 동네에서 유독 책을 끼고 다니던 애가 있었다. 똑같이 낡고 헤진 옷을 입고 다니면서, 옆구리에 두꺼운 책을 끼고 다녔다. 책은 며칠에 한 번씩 꼭 바뀌었다. 제 눈에는 일단 비슷한 또래로 보였지만 훨씬 체격이 왜소하고, … 음침한 느낌을 가진 녀석이었다.

“야”

어느 날 하루는 녀석이 옆에 끼고 있는 책이 어떤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서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삐죽 내밀었다. 돌아온 답변이 단호했다. 

“꺼져.”

 이상한 놈이었다. 잔뜩 무안해진 상태로 이미 저 멀리 가버린 녀석의 뒤를 눈으로 좇았다. 그러나 이 별것도 아닌 일이 결국 김성식과 인사하고 지내게 된 계기라고 생각하면 썩 나쁘진… 않다. 오기가 생긴 나는 녀석에게 또 말을 걸었고 일주일 넘을 무렵엔 녀석도 꺼지란 말 외의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가 나에게 그 녀석과 친하냐고 물어보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걔랑 친하기는 하나? 우리의 관계가 친한 사이인 건 맞나? 걔한테 물었다.

"뭐래냐?"

그래도 일단 친한 걸로 해두자. 지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 건데. 이제 그렇게 말할 수도 없을 거면서.

사람은 돈이 없으면 학교에 다닐 수 없다. 나는 또래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시간에 작은 소일거리라도 찾아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야 은서와 내가 먹고 살 수 있었다. 김성식은, 아버지가 고기 잡으신다고 했다. 고래 고기에서 물고기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배를 타고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걔는 학교를 다녔다. 하루는 김성식이 다니는 학교 근처를 지나가다가 한 무리가 걔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걸 들었다. 

"걔 비린내가 나는 것 같지 않아?"

"그 새끼는 눈깔이 진짜 마음에 안 들어."

비린내? 나는 잘 모르겠던데. 김성식 눈초리가 좀 사납긴 하지. 고개를 끄덕이곤 나는 근처 파출소에 가서 경찰을 불러왔다. 귀를 붙잡혀 끌려가는 녀석들을 잔뜩 노려봐줬다. 

"안녕."

"어? 어, 그래 안녕."

언제부터인가 김성식이 우리 집을 자주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은서를 맡기고 좀 더 편하게 일하러 갈 수 있었다. 은서를 해코지 하려는 놈들에 대해 이야기 했던 다음날부터 오기 시작해서 괜히 녀석에게 물었다. 나 때문에 은서 봐주려고 오는 거면 괜찮아. 

김성식은 이렇게 대답했다.

 “또라이 새끼‥.”

 정말, 정말, 정말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김성식에겐 안 좋은 버릇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거나 감정이 상했을 때 손을 올렸다. 다행인 것은 은서에게 휘두르진 않고 상대는 오직 나 뿐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은 그래, 그는 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습관이었다. 김성식은 대답도 그렇게 재수 없게 해놓고 내게 주먹을 휘둘렀다. 제 물음이 녀석의 심기를 뒤틀리게 했는지 어쨌는지.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지껄여봐.”

 자신보다 훨씬 말라보여서 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김성식은 생각보다 힘이 강했다. 김성식이 제게 주먹을 휘둘렀을 때 당연히 우습게 보고 대들었다가 죽도 못 쒔다. 살면서 그렇게 줘터진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녀석은 손으로만 사람을 패지 않았다. 주변에 잡히는 걸 아무렇게나 쥐고, 사람을 향해 내려쳤다. 그래 놓고선 뻔뻔하게 옆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새끼가 제일 또라이 새끼야.

 맞은 부위를 감싸고 몸을 숙였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 혼자 상처를 만졌다. 녀석도 대가리가 그냥 있는 게 아닌지 꼭 은서 없을 때만 저 난리였다. 그의 폭행은 한두 번이 아니었고, 내 탓이 아닌 일에도 주먹을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는 녀석을 내치거나 떠나지 못했다. 왜, 라고 이야기하면 표현하기 어렵지만…. 녀석과의 관계에서 녀석이 갑이고, 내가 을이라 그랬나 싶기도 하다. 젠장, 내가 왜 을이지?

 정정한다. 우리의 관계는 친한, 그런 수식어가 붙을 수 없었다. 

병든 관계였다.

그래도, 김성식이 우리 집에 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덕분에 마음 놓고 집을 비울 수가 있었다. 은서도 김성식을 잘 따르곤 했다. 김성식도 은서 앞에선 얌전히 내숭 떨었다. 잘 놀아주는 건 아니었지만, 집에 누군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은서는 기쁜 듯했다.

"오빠랑 결혼할래!"

"은서야, 그건 절대 안 돼."

그건 안돼. 절대 정말 진짜 안돼. 걘 아냐.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김성식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당시엔 뭐 연락할 수 있는 방도가 있던 것도 아니니까, 녀석에 대한 소식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예전처럼 은서를 홀로 두고 나가며 녀석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 생각해보니 나는 김성식의 집이 어디인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얘가 뒤졌나, 생각 할 때 쯤 이야기가 들렸다. 김성식의 아버지가 배 타고 나갔다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가 동네에 파다했다. 그래서 안 보였구나. 하는 짧은 생각 뒤에 뭐? 하고, 크게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떠오른 생각은 금방 가라앉았다. 내가 하긴 뭘 해.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칭얼거리는 은서를 재워놓고 마루로 나왔다. 그 녀석은 뭐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대뜸 들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녀석을 생각하다가 옆을 보곤 화들짝 놀랬다. 문 앞에 김성식이 있었다.

 “아 미친, 깜짝이야!”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난 귀신이라도 본 줄 알았다. 사실 죽었다는 게 저 녀석의 아버지가 아니라 저 놈은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제 생각보다 크게 나온 목청에 움찔하며 은서 방을 바라보다가 다시 앞을 바라봤다. 남의 집 문을 마치 자기 집 마냥 드나드는 녀석을 보며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야, 네 꼴이,”

가까이에서 본 김성식은 개판이었다. 말 그대로 개판. 피곤으로 절인 것은 둘째치고 곳곳에 보이는 멍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침을 꼴깍 삼켰다. 평소보다 더 가라앉은 그 분위기에 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괜찮냐는 말 따위도 함부로 뱉을 수 없었다.

"…왜 안 왔냐. 그동안."

알지만 괜히 물었다. 녀석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에 대한 작은 심통이었다. 김성식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야, 왔으면 말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왜 열어줬어."

"뭐?"

"왜 문 열어줬냐고."

"무슨 소리야. 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너잖아."

오랜만에 듣는 김성식의 목소리는 한껏 갈라져 있었다. 열어주지 말았어야지. 라고 말하는 녀석은 머리도 아픈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대체 왜 이러나 싶을 무렵, 그의 손이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한 대 맞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는데 통증이 없었다. 오히려 닿은 것은, … ….

말도 안돼. 

김성식이 다짜고짜 지 주둥이를 비벼왔다. 폭행이 아니었다. 아니 이것도 폭행이면 폭행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난폭한 입맞춤이었다. 혀가 들어왔다. 입술이 깨물리고, 이상한 느낌이었다. 당황한 나는 녀석을 밀어냈지만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심코 주먹을 꽉 쥐고 휘둘렀다. 짧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고개가 반쯤 돌아가 있었다. 

뒤늦게 좆됐다는 생각이 싸늘하게 들었다. 짧게 숨을 삼켰다. 

"너, 대체 왜 이래!"

떨리는 제 목소리에도 크게 반응 않던 놈이 소매로 자기 입가를 닦더니 고개 돌려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 눈은 이미 눈깔이 돌아간 사람의 것이었다. 나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되돌아올 폭력이 눈앞에 그려졌다. 둘 사이의 거리는 고작 한 걸음 밖에 되지 않았고 맴도는 침묵은 무거웠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꽉 붙잡은 손이 아팠다. 그보다 더 아픈 통증이 뺨을 내려쳤다. 아까와 다른 매서운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면 또다시 손이 날아왔고, 지르지 못한 비명을 목구멍 아래로 꾸역꾸역 삼켰다. 늘 그렇듯 녀석의 손길은 배려 없었고 반항에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폭력 뿐이었다. 익숙한 폭력. 얼얼한 뺨에 시야가 흔들리고 어지러웠다. 쓰러지는 몸을 억지로 다시 세우고 주먹을 휘두르는 김성식은 끝까지 나와 시선을 맞췄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지를 수 없었다. 너머엔 은서가 자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불현듯 손을 멈춘 이번엔 아프지 않게 내 볼을 톡톡 쳤다. 무서웠다. 동시에 녀석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녀석의 손이 험하긴 했지만 ……아무 이유가 없을 녀석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김성식의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더니 얼굴을 와작 구겼다. 

"…젠장."

붙잡던 나를 내팽개쳐진 그 녀석은 곧바로 등을 돌려 도망쳤다. 바닥에 넘어뜨린 채 엉망이 된 얼굴로 나는 허망하게 그 모습을 붙잡지도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분명 맞은 건 난데, 도망치던 녀석의 얼굴이 훨씬 겁에 질린 듯 질려 있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는 다음날이면 녀석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뒤지게 맞더라도 욕해야지. 그렇게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다음 다음날엔 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기다려도 녀석이 걸음 하는 일은 없었다. 사라져가는 멍 자국을 보고 새벽을 보냈다. 벗어날 수 없는 우울함을 옆으로 미뤄두고 결국 다음날의 삶 연장을 위해 움직였다. 나는 가난했고, 우리는 가난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다 우연히 네 이름이 들렸다. 깡패 짓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같이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그러나 시장으로 가는 골목길에 서 있는 그 녀석을 봤다. 거의 두 달 만에 본 모습이었다. 제가 기억하는 멍은 이미 다 사라졌었고, 딱 봐도 질이 안 좋아 보이는 무리에 섞여 있는 김성식의 손엔 담배가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 같았다. 거기엔 낯선 사람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날 밤, 대체 왜 그런 거냐고, 왜 다시 오지 않았냐고 묻고 싶었다. 여기서 대체 뭐하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 있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무리 물어도 김성식은 그날 밤에 그랬던 것처럼 제대로 대답하지 않을 거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번엔 경찰서에 들리지 않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어쩐지 그 뒤로 녀석의 시선이 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녀석과 마지막이었다. 나는 말을 걸지 못했고, 녀석은 나를 찾지 않았다. 그게 끝이었다.

우리 동네에, 나와 동감이었던 애가 있었어.

그리고 죽었지.

 그랬다. 김성식, 너는 죽었다. 그 성깔 못이긴 건지, 아니면 누가 좆되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뒈졌다. 초라한 죽음이었다. 물론 아직도 네 죽음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들려온 이야기가 있었다. 녀석이 읽던 어려운 책 속에 나오던 죽음들에 비하면 무척 의미 없는 죽음이 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칼질 하다 죽었댔나, 배우지도 않은 총질 하다 죽었댔나. 깡패들과 어울리던 그 아이의 죽음을 기리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나 밖에 없었다. 아직도 나는 그날 밤, 그가 내게 입 맞췄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고, 녀석이 제게 보인 감정의 의미도 알 수 없었다. 김성식은 제게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죽었다. 나는 평생이 가도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랬다. 그 뿐인 이야기다.

 

사랑도 되지 못한 이야기다. 

- 김성식: 폭력적인 아버지가 싫었던 소년.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죽고 초라한 장례식장에 쳐들어온 깡패들에게 일방적인 폭행을 당하다 그를 눈여겨본 깡패에게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고 이야기 들음. 본인의 의사와 크게 상관 없이 억지로 끌려다니다가 불현듯 그렇게 싫어하던 아버지와 자신이 닮았다는 걸 깨달음. 그러다 무작정 정은창 집 앞으로 찾아감. 정은창이 나오지 않으면 아예 깨끗하게 잊고 모른 척 살기로 했는데 그 순간, 정은창이 밖으로 나와 눈이 마주침. 만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거부 당했다는 생각에 손을 올림. 정은창의 눈동자에 비친 그토록 싫어하는 아버지와 같은 남자가 있었고,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 자기 혐오적인 감정이 올라와 그 길로 도망침. 그 뒤로도 자신을 모른 척 지나가는 정은창의 뒷모습을 늘 눈으로 좇았으나 다가가진 않고, 깡패 생활을 이어감. 

깡패 세력 다툼 도중 죽었던가.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다던가. 칼에 찔려 죽었다던가. 아무도 정확하게 모름. 

다만, 아마도 훗날 서울에서 정은창은 그와 닮은 깡패를 다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 김성식과 닮은 깡패는 사실 잠입 경찰일 수도 있고,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살아있을 수도 있고. 모든 건 훗날, 결국 친구를 잃고 가족을 잃은 정은창이 길을 떠돌다 닿은 서울에서 이어질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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