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그것

유상일, 정은창

"뭐야, 뭘 봐?"

정은창이 담배를 물고 꼬라봤다.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것도."

"뭔가 기분 나쁜데…."

영 시원치 않지만 웃는 낯에 말을 더 덧붙이지 못한 정은창은 애꿎은 담배 필터만 잘근 씹었다. 다른 녀석들 같았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시비를 걸었을 텐데 참 상냥한 녀석이었다. 유상일은 그를 한 번,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진 그림자가 없는 것을 바라봤다.

'쉿.'

아이의 목소리였다. 웃으며 그에게 비밀을 종용하는 그것은 언제나 정은창의 주변에 맴돌았다.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흔치 않은 일이었다.

유상일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손을 흔들었다.

"뭐해?"

"아니, 허공에 뭐가 날리는 것 같아서."

"오늘따라 유독 이상하네, 너."

"그런가."

그랬다. 유상일은 타인의 시선에선 늘 조금씩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장아장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엄마아빠 옹알이를 하기도 전부터, 유상일은 남들과 다른 것들을 시야에 담았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은 그림자가 없었고, 살아있는 아이에게 다정하면서 잔혹했다.

이상한 걸 보는 녀석.

자라면서 아이들은 그런 그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귀신 본다며? 그런 소문이 돌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병원에 앉아 상담을 받으면서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절한 표정의 어머니에게 결국 아무 말 못 하고 얌전히 곁에 앉아 내민 종이를 읽었다.

유상일은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비정상이구나.

남들과 다른 것을 보고, 세상의 것이 아닌 걸 보고, 그림자가 없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 뒤로 그의 입은 꾹 닫혔다.

"상일아, 요새도… 그, 이상한 게 보이니?"

"이상한 거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괜찮다면 다행이야. … 다행이야."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저녁 메뉴를 그에게 물어보았고 유상일 또한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는 순간, 아이는 어머니의 태도를 학습한다. 아무렇지 않게 짓는 웃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행동. 그래서 그 뒤로 유상일은 어머니를 똑 닮은 미소를 지었다.

곤란하거나, 말을 하기 힘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웃음이란 좋은 행위였다. '아무렇지 않은' 모습은 타인의 시야에서 많은 것을 멋대로 짐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고, 유상일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겉에 걸치기만 했다.

"쟤 귀신 본다면서?"

"유상일이? 설마, 니 얼굴이 귀신이겠지."

채 지우지 못한 과거의 흔적은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갔다. 하하, 미소를 짓는 유상일의 낯이 무척이나 능청스럽고, 또 어른스러워서 또래의 애들은 금방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익숙해져 간다.

동경하는 사람이 생기고, 경찰이 되고, 또다시 신분을 버리고 잠입 수사까지 이어가는 많은 세월 동안 유상일은 그렇게 평범한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썼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릴 적만큼 이계二界의 것들이 선명하지 않았고, 목소리 조차 쉬이 닿지 않았으니 좋은 일이었다.

그래서 신기했다.

- 오빠 친구다!

정은창의 어깨에 매달린 새하얀 여자아이의 팔이.

아이, 라고 부르기엔 작진 않았지만 들려오는 목소리가 '아이'였다. 맑고, 듣기만 해도 기운 찬 밝은 목소리. 형태가 온전치 않다는 것만 제외하곤 참 부드러운 소리였다. 소리를 내는 성대는 없어도.

"정은창, 어깨 안 무거워?"

유상일은 아무렇지 않게 그의 어깨를 털어냈지만 팔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가 죽을 뻔한 순간마저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던 것은 기이하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었다. 평생을 보고 자란 것이 기이한 것인데, 이토록 이상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들려오는 그것의 목소리가 참으로 청명하니 다정하게 속삭이는 말들에 곧 유상일이 먼저 두 손을 들었다.

그림자가 없는 존재들에 평범이란 어디 있나. 팔 밖에 없고, 그림자가 없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두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유상일은 정은창의 곁에 서 있을 때마다 여러 이야기들을 듣게 됐다.

'있잖아요, 저는 은서에요.'

'오빠가 또 다쳤는데 치료를 안 해!'

'거짓말쟁이!'

팔 밖에 없는 것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아이의 어휘는 어렵지 않았고, 다양하지도 않았다. 정은창의 표정이 안 좋을 때면 나란히 기운 없어 보이는 팔의 형태가, 애꿎은 정은창의 머리카락을 꾹꾹 잡아 늘이는 걸 보며 애써 웃음을 감췄다.

동시에 외면하던 진실을 본다.

정은창을 오빠라 부르며 팔 밖에 없는 그것은, 그의 가족이었을 거란 걸.

"……아."

그렇게 엿보면 안될 것을 봐버린 것 같아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눌렀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정은창."

그에게 매달린 아이의 목소리가 애처롭게 떨리는 것이 들렸다.

"유상일…."

"너, 무슨 생각이야?"

"갑자기 사람 붙잡고 무슨 소리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참견하고 끼어들지 않기로 했는데, 입은 이미 벌어졌다. 그것에 정을 들어버린 유상일에게 그것은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은서가 네게 화났대."

그의 목소리는 고저가 없고, 반대로 정은창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갔다. 그에게서 들릴 수 없는 아이의 이름이 꺼내진 것에, 유상일을 붙잡았다.

"너, 방금 뭐라고."

"… …."

유상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재촉하듯 그의 팔을 잡아드는 손에 힘이 점점 그를 옥죄었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였다.

"은서가 네게 화가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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