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뱅

하얀 건 눈이면 충분합니다

종뱅 전력 60분 | 폭설

hello world by no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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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수는 겨울 리그가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소속 팀의 리그 탈락이 확정되어서는 아니었다. 팀은 종수를 영입한 이후로 더 바랄 것이 없는 파죽지세를 이어가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당연히 최종수가 있었다. 종수가 돌아온 건 목요일 일곱 시 반. 미룰 수 없던 약속을 서둘러 마치고 씻지도 않은 채 TV 리모컨부터 집어 든 순간이었다. 거친 소리와 함께 현관에서부터 농구공이 튀어 올랐다. 박병찬, 너 그게 무슨 색인지 보여? 종수는 성마른 얼굴로 물었고, TV에서는 종수가 없는 선발팀이 열 점 경기를 앞서가고 있었다.

주황색 농구공이 창을 한 번 치고 맥없이 바닥을 굴렀다.

*

온 세상이 흑백 영화 같아.

끓는 내장을 억지로 삼키느라 열 오른 목소리가 말했다. 단내가 난다 했더니 바깥은 눈이 오는지, 젖은 바람막이를 현관에 걸어두었다. 종수는 뒤통수를 후려맞은 일도, 이상한 걸 주워 먹지도 않았는데 한순간 제가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눈깔이 뒤집혔다고 했다. 이 색도, 저 색도 모두 검정 아니면 하양, 혹은 회색이라고 했다. 

더 불행한 일이 있다면 종수의 눈알은 색이 빠진 세상을 기민하게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검정과 진한 적색의 유니폼이 같은 명도로 보였다. 감독님, 저 눈이 이상해요. 경기 시작 30분 전, 종수의 중얼거림에 감독은 의무팀을 불렀다가, 종수를 경기장 밖으로 (최종수의 표현이다, 아마도 병원에 다녀오라는 말이었겠지.) 내보냈다. 팀의 감독은 종수를 아꼈기에, ‘최종수가 상대방에게 정직하게 공을 넘겨주는’ 꼴사나운 일을 저지르기 전 종수를 구했다.

감은 눈두덩 위로 아이스팩을 올렸다. 누군가가 적당한 무게감은 사람에게 안정을 준다고 하여, 붓지도 않은 눈 위를 차게 눌렀다. 경기장에서 지하철로 30분 거리, 택시를 타고 왔다고 한들 병원에 들렀다 올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병원은.

가서 뭐라고 해.

가서 뭐라고 하기는, 있는 대로 말하면 되는 거잖아.

말했다가, 정말로 내 눈깔이 병신이 됐다고 하면. 나 박병찬 만났어, 근데 내 눈이 이렇다는 건 …… 니가 좆도 쓸모가 없단 소리잖아. 

애새끼 말버릇하고는, 넌 형아를 쓸모로 만나냐… 고, 평소라면 거리낌 없이 나왔을 말이 나오지 않는다. 세계 인구의 10%, 드물게 후천적으로 눈이 이 꼴이 되는 경우는 0.3%. 최종수는 운명의 상대니 어쩌니, 동화 속에만 나올 것 같은 단어로 인생을 지배당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스팩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눈가를 쥐던 손을 치웠다. 

누워있어, 형아 멀리 안 가니까 울고 있으면 안 된다. 

입 안 다물 거면 좀 꺼져……. 

지가 먼저 왔으면서 성질은. 

옷방까지 갈 것 없이, 현관에 걸어둔 바람막이를 챙겼다. 속이 젖지는 않았으니 짧게 입을만 했다. 종수의 주머니에는 당연히 없을 담뱃갑을 챙기고, 문 하나를 열면 곧장 발 들일 수 있는 테라스로 나갔다. 쏟아질 작정인지 곧장 코끝에 닿는 눈송이의 알이 컸다. 차양이 없는 바깥에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불 없는 담배를 문 채, 필터를 연신 씹었다. 농구와 사랑, 사랑과 농구. 둘의 무게가 비등한지, 혀로 굴려본다. 말캉한 혀 위로 묵직한 것들을 여러 번 굴리다 삼킨다. 최종수에게 두 개의 뜻이 크게 다를 수 있을까. 

와, 잠겨버렸으면 좋겠다.

눈송이가 점점 커졌다. 터무니없는 생각을 입 밖으로 뱉었다. 킬킬거리는 웃음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

종수야, 헤어지자.

뭐?

헤어지고, 너 빨리 센터 가. 운명인지 뭔지, 찾아서 마저 농구해야지.

느리게 일으킨 상체가 아이스팩을 허공으로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던 아이스팩이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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