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손을 뻗고
엔딩... 겸 호봉과 진궁
둥글게 말라붙은 소인들의 손. 서로 절대 놓지 않을 것처럼 서로를 갈망하며 엉겨 붙은, 거죽이 벗겨진 붉은 손. 그 조그마한 손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나는 인간이 아니라 더 거대한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들이 입을 모아 나를 부른다. 패를 뽑는 나의 손에 깃들고 싶다고 말한다. 천의의 손 같은 건 하등 관심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바라볼 뿐 달리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 이상하다. 그 해괴한 모양새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불현듯 내가 살아서 한 번도 바란 것 없던 것들이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온다. 그들은 나에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얻고 원하는 대로 천하를 재조립하라고 속삭인다. 나는 불쾌할 만큼 진득한 욕망에 괴로워하며 급하게 그것을 잡아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다. 그 조그마한 손들은 사실 소인들의 손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게 뻗은 거대한 손이었고, 나는 그것에 굴복하여 그 손을 마주 잡은 것이었다.
* * *
고작 점수를 세기 위해 만든 막대기들이 사람의 생사를 결정한다. 죽음이 확정된 이들은 두개골 안을 휘저어 놓는 고통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렇게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혼자서는 사람을 해칠 수도 없는 작탁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나면 다음 전투를 위해 스스로 육신을 재구성한다. 전동작탁의 몸속에서 무기물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소리가 난다. 상아와 대나무로 만든 작패가 요란하게 뒤섞이는 소리…
옛날에는 말을 타고 달리며 싸웠다지. 백만대군이 창을 들고 피 흘리며 싸우고, 언젠가는 그 시체로 강을 메운 적도 있다지. 그러나 이곳에서는 창날이 부딪치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무겁고 각진 패끼리 몸을 붙이는 소리, 집중하여 한껏 억눌린 호흡,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울리는 것은 제 심장 박동 소리고… 모든 것이 끝나면 작패를 뒤엎는 자. 무언가에 쫓긴 것처럼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자. 고통에 신음하는 자. 사방에 앓는 소리가 가득하다. 호봉은 순간 이방인이 된 기분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고, 자신은 그곳에 결코 속하지 못하고 이 모든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호봉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외치고 싶었다.
우리, 차라리 칼을 들고 서로 찌르자!
원시로 돌아가자! 날을 잘 벼린 검을 뽑아 맞대고 서로 살을 베어내며 싸우자!
왜냐하면…….
* * *
호봉은 막사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을 디딜 때마다 머리가 울려 관자놀이가 욱신거리고 다리가 쇳덩이처럼 무거웠다. 늘 뻔뻔한 태도를 지켜왔지만 전투 마작이 끝나고 나면 언제부턴가 손끝이 떨렸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랬다. 돌이킬 수 없는 손상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와 호기심이 혼재했다. 어쨌거나 이건 매우 지치는 일이었다… 그러다 작탁 아래에 모로 쓰러진 시체 하나가 발에 채 멈춰 섰다. 아직 아무도 그 시체를 치우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방치되어 있다. 그를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는 백의 군사다. 그는 위의 군주를 배신했다던 사람이고, 대의를 좇겠다 했던 이다. 그는 지금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그저 고꾸라져 죽어 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그가 새롭게 모신다던 군주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였다…….
호봉은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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