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tty Bad Guy

[매뉴패치] Pretty Bad Guy 3


패치?—

—무슨 일이지?

진짜네—

—그건 무슨 의미지?

패치—

뭐 해요?—

패치?—

설마 벌써 차단했어요?—

—바빴어.

언제 시간 나요?—

피해서 전화할게요.—

지금도 바쁜가?—

—전화하지 마.

가게에 공고 붙었어요—

일찍 안 오면 자리 없을 거예요—

—어디인지 말이나 하고 이야기하지 그래?

지금은 안 바빠요?—

전화해도 돼요?—

—전화하지 마

이 작은 자판 치는 거 꽤 힘든데.—

—그럼 편하게 메일이나 보내지 그래?

답장 안 해줄 거잖아요—

—당연히

"이봐, 휴대폰에 잡아먹힐 것 같은 현대인."

날아드는 목소리와 함께 어깨를 툭 치는 손길에 매뉴얼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다가온 스턴은 언제나 그랬듯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매뉴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그 속에 숨은 약간의 장난기를 알아볼 수 있게 된 매뉴얼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너 이 교실 아니잖아?

"파티에도 안 나오고, 교회에도 안 나온 누구가 엄청 궁금해서 말이지."

"네가 언제부터 날 그렇게 열심히 찾았다고?"

"오늘부터?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었어?"

매뉴얼이 이런저런 이유로 놀러 가자는 연락을 거절한 것도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다. 처음 두 번은 가게 오픈 준비를 돕느라 정말 바빠서, 세 번째는 때아닌 몸살로 끙끙 앓느라. 그리고 벌써 세 번이나 거절당한 스턴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이유를 들어야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굴었다. 아프지 않았던 것도 알고, 이제 주말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전화며 문자를 모조리 무시해 버린 연유가 대체 무엇인지 좀 알아야겠다.

"그것도 한나의 파티를 거절하면서까지 말이야! 네가 초면인 사람을 매정하게 내칠 것도 아니잖아?"

"언제는 초면 아닌 사람도 있었나! 너 지각 아니야? 곧 종 치겠는데?"

갑자기 달려드는 탓에 엎치락뒤치락 몸싸움까지 벌이던 그들은 정말 머리 위에서 울리는 종소리에 겨우 떨어졌다. 발에 불이 붙은 듯이 튀어 나가는 스턴을 보며 매뉴얼은 혀를 쯧 찼다. 그러게 굳이 지금 들어야겠다 닦달해서는.... 구겨진 셔츠의 옷깃을 매만지며 자리에 앉던 매뉴얼은 반짝이며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잠시 옅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왜, 내가 말을 돌렸을까.

생각해보니 가게가 어딘지 말 안 해준 것 같아서요—

오크 애비뉴에 새로 생긴 가게에요—

예전에는 맛없는 햄버거 가게였다던데요—

찾아와요—

"너 지각했다며?"

캐비닛 앞이 시끌벅적해지는 짧은 쉬는 시간, 검은 말총머리를 발랄하게 흔들며 다가온 키 작은 여학생이 스턴에게 장난스레 말을 붙였다. 난감한 웃음을 짓던 스턴은 그 뒤로 다가오는 백금발의 남학생에게 눈을 흘겼다. 너야?

"괜한 사람 잡지 마."

"그래, 크레인 아니야."

"네가 감싸준다고 숨겨지는 줄 알아, 다이앤?"

"물론 아니지!"

"그래, 늦어서 어텐션 받을 뻔했다. 저 녀석 때문이야."

"내가 뭐?"

그 옆에서 캐비닛 문을 닫다 갑자기 지목당한 매뉴얼은 화들짝 놀라며 곁을 돌아봤다. 세 쌍의 시선이 와닿는 얼굴은 금세 억울한 표정을 자아냈다. 내가 뭘 했다고!

"아무 연락도 없이 파티에 오지 않은 이유를 숨기는 건 잘못한 일이지."

"그러게. 왜 안 왔어?"

"나만 안 갔어? 크레인 쟤도 안 갔을 거 아냐!"

"쟤는 파티 안 좋아해."

"나는 왜 이해해주지 않는데?"

"넌 아닐 것 같은데?"

"너 그거 편견이다 인마? 알아?"

이 녀석 취조하다가 늦었어, 하며 스턴은 손사래를 쳤다. 장난기 넘치는 친구 다이앤은 마치 탐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하며 매뉴얼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마 친구의 얼굴을 잡아 밀어낼 수 없던 매뉴얼은 대신 옆으로 쏙 빠져 도망칠 준비를 했다. 어서 흩어져, 이 녀석들아!

"넌 점심시간에 보자."

"아니, 별일 아니라니까?"

"자꾸 숨기는 게 수상한데?"

"저리 가라고 이 자식들아!"

급기야 매뉴얼은 가방을 끌어안고 도망쳤다. 그러잖아도 바쁜 틈에 사람을 붙잡고 취조할 여유가 있는지. 저러다 정말 상습 지각으로 징계받아도 변호해 주지 않을 거라고. 괘씸한 친구들을 뒤로하던 그는 머리 위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급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징계는 저도 받게 생겼다.

—한 가지 묻지

—왜 나에게 네 가게를 소개해주는 거지?

"매뉴얼."

"......."

"매뉴얼?"

"...예, 예?"

초점 없는 눈을 멍하니 뜨고만 있던 매뉴얼은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분명 교실 앞에 서 있던 선생 리버가 어느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오싹 돋는 소름에 매뉴얼은 손끝을 움찔 떨었다. 휴대폰으로 몰래 딴짓한 것을 들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래도 손에 다른 것을 들고 정신을 팔고 있는 모습이 그리 믿음직스러워 보이지는 않는 게 당연했기에, 리버의 목소리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뭘 하고 있었지?"

"조금 피곤해서요."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는 들었고?"

"저... 수요 그래프를 보고 해석해 오기?"

"그래, 수기로 한 페이지 이내다."

그의 의심스러운 눈초리는 이내 매뉴얼에게서 떠나갔다. 다음 시간에는 집중했으면 좋겠구나, 하는 질책을 끝으로 리버는 수업의 끝을 알렸다. 조금 일찍 끝난 수업에 학생들은 기뻐하며 벌떡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겨우 선생님의 의심에서 놓여난 매뉴얼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칠판을 카메라로 찍었다. 당장 도서관에 달려가 얼마 되지 않는 자투리 시간을 쏟아부을 만큼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곧장 시작하면 금방 끝낼 수 있을 정도니, 지금은 잠시 노닥거리다 체육관에 가야겠다. 칠판을 찍은 휴대폰을 내려두고 가방을 챙기고 있으려니, 책상 위에서 짧은 진동음이 들려왔다.

—나 훈련에 조금 늦는다고 이야기해 줘

디텐션 룸?—

—금방 갈 거야. 징계 아니야

점심시간에도 매뉴얼을 붙잡으려다 수업에 지각한 스턴은 결국 징계를 받으러 가야 할 모양이었다. 워낙 행실이 좋으니 10분 정도 상담하고 나오는 게 고작이겠지만, 그것도 징계지. 잘 받고 오라며 놀리는 말을 적어 넣은 매뉴얼은 무심코 대화방을 나오다 아직 답장하지 않은 메시지를 읽었다. 패치라는, 그 이상한 남자에게서 온 메시지.

왜 가게를 소개해주려 안달이냐고? 매뉴얼은 방금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미안하니까, 하고 사실대로 말하면 이 사람은 믿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들어서. 대체 뭐라고 답해야 납득할 터인지, 아무리 고민해 봐도 도통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잘못 그린 그래프마냥 남자의 신뢰가 뚝뚝 떨어지는 선택지만이 보이는 환상에 선생님에게도 혼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한다는 건가? 거짓말에는 영 소질이 없는 매뉴얼은 애꿎은 옆머리를 죽죽 잡아당기다 가방을 챙겨 들며 자판을 꾹꾹 눌렀다.

난 사람 실직시킨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요—

그리고 우리 가게도 지금 급해요—

가족끼리 얼마나 바쁘게 일하는지 알아요?—

패치가 가면 부모님은 문 앞까지 뛰쳐나와서 환영해줄 걸요—

더플백을 대충 어깨에 걸친 매뉴얼은 마지막 전송 버튼을 누르고는 그대로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학교 수업은 몰래 휴대폰을 보면서 대충 듣는 게 가능했지만, 농구부 훈련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저 왔어요."

"어서 오렴."

가게 문에 붙은 도어벨이 울리는 소리에 잠시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가 매뉴얼을 반겼다. 매뉴얼은 그에게 눈인사하며 곧장 부엌 옆의 창고 문을 열었다. 그곳에 가방을 던져 두고, 벽에 걸린 앞치마를 걸치고 근태기록기를 찍는다. 학교에서 대충 감은 머리를 마저 말리고, 종일 걸치고 있던 옷을 갈아입고도 싶지만, 매뉴얼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얄궂게도 학교가 끝나고 곧장 자전거로 달려오면 붐비는 시간대 직전이라. 이미 종일 손님에게 시달린 어머니를 홀로 둘 수는 없으니 당장 나가 일을 도와야 했다.

"파트타임 지원자는 많이 왔어요?"

"응, 몇 명 다녀갔단다."

"어땠어요?"

"당장 면접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니. 겉모습으로만은 알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래도 왠지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있을 것 아녜요."

"얘는... 오. 그러고 보니 와서 정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은 있더라."

"그게 왜요?"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여덟 시까지 일할 수 있냐고. 그렇게나 오래 일을 시키지는 못하기도 하고, 우리는 일곱 시부터 문을 열어야 하니까 어떻게 협의할 지 고민했지. 그리고 또, 마스크를 쓰고 있던데."

"마스크요?"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혹시 빨간 머리에 파란 눈은 오지 않았어요?"

"어머, 아는 사람이니? 내가 방금 이야기했던 남자가 붉은 머리에 벽안이던데."

"네?"

카운터 안쪽에 마련된 작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이것저것 묻던 매뉴얼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도 덩달아 놀라서는 무슨 일이냐며 그에게 질문했다. 얼떨결에 아무 일도 아니며 그 사람과는 모르는 사이다 변명하려던 매뉴얼은 문득 떠오른 의문에 입을 다물었다. 아는 사이는 맞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친구? 주먹 좀 대신 맞은 사이?

"...그 사람도 내일 면접 보러 오기로 했어요?"

"응. 아마 너는 못 보겠지만."

매뉴얼은 곁에 걸린 행주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오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으면서 제가 없을 때 몰래 다녀갔다니. 내심 패치가 이대로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던 그는 마음 한구석에 쌓여있던 짐덩이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남의 일자리를 멋대로 걷어차 버린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라. 패치가 면접만 통과한다면 그에게 진 빚은 얼추 갚는 셈이었다. 그리고 이전에 만나보기로, 패치는 얼마든지 거칠어질 수 있는 입과 담배 냄새만 아니면 충분히 면접을 통과할 수 있을 사람이었다.

그래도 면접이니 담배 냄새는 지우고 오지 않겠나. 매뉴얼은 조금 가벼워지는 기분에 신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패치가 고용된다면 저와 같은 시간에 일할 테다. 다시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할 지 고민하는 매뉴얼의 손길은 즐겁게 통통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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