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ch ado about something
아이네 유즈리하 x 태량 (600일 로그)
오늘의 소동의 시작은 어찌 보면 겨울이 가신 봄의 날씨처럼 훈훈한, 어느덧 따듯해진 날씨에 깨어 만발한 매화꽃처럼 갑작스러운, 저 창밖의 푸른 잎사귀를 잔잔히 흔드는 산들바람처럼 설레는 말 한마디였다.
“우리 결혼하면 어떨 것 같아?”
끔벅끔벅. 자신의 건너편에 앉아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만끽하던 태량은 맑은 하늘 같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이윽고.
“유즈, 방금 그거 프러포즈야?”
조금은 놀라고, 조금은 어이없다는 어투로 반문했다.
어, 그런가? 내가 생각하던 프러포즈는 이것보다 좀… 그러니까 좀 더 뭔가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눈 사이의 골이 파이는 걸 느끼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치만 당연한 거 아냐? 인생에 한 번,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하는 약속이 프러포즈인데, 하는 거 분위기 잡고 멋있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팔짱을 끼고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태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 거야? 내용만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씩 웃으면서 태평하게 대꾸했다. 일단 그건 나중을 기대해 봐. 머릿속 한구석에서 미래의 이벤트를 몰래 꾸미기 시작하며 턱을 손에 괴었다. 우리의 거리가 더 가까워진 만큼 태량의 얼굴이 더 가까이서 시야에 담겼다. 차오르는 만족감에 다시 한번 재촉했다. 그치만 기왕 말 꺼낸 김에 한 번 말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이번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싶었는지 태량의 눈이 잠시 가늘어졌다가 이내 자신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래, 그럼 우리 같이 얘기해볼까?
‘우리’라는 단어가 귀에 참 달콤해 잠시 그 부드러움에 취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나 태량이 말을 잇기 시작하자 얼른 생각의 흐름을 끊고 집중했다.
글쎄… 언제쯤이 될까? 난 빠를수록 좋아! 농담하지 말고, 유즈. 농담 아닌데… 아무튼 이맘때쯤이 좋지 않겠어? 날씨도 따듯하겠다, 꽃도 많이 피었겠다. 그건 그렇지만, 밖에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지? 난 좋아! 답답하게 안에서만 있는 것보단 날씨 좋은 날을 잡아서 하는 야외 웨딩도 즐거울 것 같지 않아?
조곤조곤. 두런두런. 조금씩 온기가 더해져 가는 대화는 포근해 기분이 좋았다. 태량의 볼이 들떠 발그레 물든 것처럼 자신도 비슷한 온도를 띠고 있지 않을까? 닮은 점 보단 다른 점이 많은 둘이었지만, 같이 있는 시간만큼 조금씩 닮아가는 부분이 슬쩍 눈에 밟힐 때마다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느덧 이야기가 흘러 흘러 주제가 초대할 사람들의 목록까지 흘러갔다. 마치 내일이라도 청첩장 돌릴 것 같네, 나야 좋지만. 그런데 내가 청첩장을 돌릴만한 사람이 있던가? 가족은 어쨌든 패스. 친구… 부를만한 애들 한둘은 있지 않을까? 잠깐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아마 내 쪽 손님보단 네 쪽 손님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뭐, 괜찮겠지?”
음… 자신의 (미래) 손님 목록을 작성하는지 잠시 멍해진 태량이 꽤나 귀여웠다. 유즈, 그거 콩깍지야, 라는 태량의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으나 어차피 사실이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러고 보니 량, 저쪽 세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편 아니었던가? 어쩌면 우리 웨딩,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질 수도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사람이 많아도 나쁘진 않겠지만, 꼭 많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태량이 살짝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조금은 질린듯한 표정에 키득이며 눈을 휘었다.
“맞아, 어차피 나한테 제일 중요한 사람은 량인걸?”
음… 그건 아는데, 정말 돌직구로 들어오네. 귓가가 붉게 달아오르는 모습이 귀여워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살짝 들었지만 지금 상당히 중요한 얘기 중이었으니, 얌전히 충동을 떨쳐버리고 그저 헤죽 웃었다. 사랑해, 알지? 그럼, 알지. 나도.
누군가가 본다면 눈꼴시린 커플의 애정행각이라고 할만했으나 그건 자신에게 알 바 아니었다. 량이 나를 사랑한다는데 다른 사람이 중요할쏘냐.
“우리 웨딩이 끝나면 신혼여행도 가겠지? 유즈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그야 당연히 가야지! 그런데 어디냐고 물어보면… 당장 떠오르는 곳은 없는데. 아직 안 가본 곳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 힘든 거 아닐까?”
그럴 수 있지, 태량이 끄덕이는 짧은 시간 동안 맹렬히 머리를 굴렸다. 장소… 구체적인 장소는 역시 당장 정하긴 힘들 것 같지만.
“일단 량, 네 세계에서 한 번, 내 세계에서 한 번. 여행 두 번 가는 건 어때?”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려 해맑게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그편이 공평하고, 재미도 두 배! 자신이 들어도 설득력이 굉장했다. 태량이 풋 웃음을 터뜨렸다.
“두 번이나? 뭐… 그것도 좋을 것 같네. 그럼 각자 자기 세계에서 어디로 가고 싶은지 정해서 오는 건가?”
“좋아 좋아. 넌 어디 특별히 가고 싶은 곳 같은 거 있어?”
“아마도 아직? 아직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배시시 미소짓는 량의 머리 위로 오후의 따스한 빛이 머물렀다. 태량의 주변으로 레몬 빛이 반짝이는 것만 같아 눈을 떼지 못한 사이.
“그렇지만 유즈랑 함께라면 어디든지 좋을 것 같아.”
말갛게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뻤던지라, 단번에 일어서서 다가가 훌쩍 안아 올린 것은 불가항력이었다고, 후에 자신을 그렇게 설득했다. 물론 당장은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사람이 내 애인이고, 내 여친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지만 말이다. 량의 놀란 얼굴이 살짝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진짜,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는지. 온 세상을 다 뒤져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멋지기까지 한 사람은 없을 거라 무엇이라도 걸고 장담할 수 있었다.
“우리 웨딩 기대해도 좋아. 열심히 준비해서 멋지게 만들 테니까. 그러니까 앞으로도 내 옆에서 잘 부탁해?”
콧등에 따듯한 온기가 닿았다.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콧등에 가벼운 키스를 남긴 량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좋아, 기대하고 있을게. 우리가 같이 만드는 거니까.”
어떠한 소동이 있을지라도, 오늘도 우리의 세계는 따사롭고, 찬란하고,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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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happily ever after
Written 2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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