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팔

기억났어.

From. Earth

A1에게.

미안하다.

편지 받고 놀랐지? 그땐 방독면이 깨져서 제정신이 아니었어.

음, 일단 지금은 나름 멀쩡해. 아무리 내가 전신의체라지만 정신유지에 최소한의 산소는 필요해서 여전히 방독면은 쓰고있긴한데…

일단 마지막으로 편지한지 2년은 지났어. 그동안 살려고거처를 옮기느라 좀 많이 바빴다. 편지도 그 과정에서 잃어버려서… 미안하다. 전에 뭘 줬는지도 모르겠어. 전에 줬던 편지도 대충읽고 다급하게 적었던지라 기억이 잘 안나.

있지, 나 주마등을 봤어. 너 나랑 편지했었지.

어릴때 했던 편지 내용은 지금와서는 좀 가물가물해. 지구에 버려진지 지금은 20년도 더 지났다고. 네가 잘 모를지도 모르겠는데 인간 평균수명은 원래 지구에 떨어진 순간부터 길어봤자 4년이야. 뭐, 지구 밖에서 사는 인간들은 생명의 위협이 거의 없으니까… 개조안한 평균수명은 60이 끝이지만. 난 지금 인간수명의 반이나 왔단말이야. 기억력이 늘 멀쩡하진 않아. 그러니까 기억 못하는게 있어도 불만없이 봐.

웃긴소리긴 한데, 주마등으로 떠올리기 전까진 난 내가 쓰레기니까 구할필요 없어서 니가 편지 안한줄 알았어. 야, 편지를 보낸건 좋은데 너무 옛날로 보낸거 아니야? 편지를 보내도 어째 9살일때로 보내냐?

야. 나 힘들었어.

존나 힘들었어

씨발

또 버려진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새끼야

이상한데로 편지 보내고있어 개새끼야


난 지금 의사야. 18살부터 전투의사로 살았어. 어렸을때 쓴 편지에 의사되고싶다고 썼던것 같아서 그냥 한마디 한다.

원랜 돈받고 치료해야하는데 돈이없어서 쫒기는 놈들이 많길래 물물교환하다 뭐…마녀같다는 소문이 생겼어. 지들 맘대로 하라지 하고 뒀다가 이래됐다.

수류탄은 아마 내 활동에 불만이 생긴놈들이 했나봐. 난 어차피 내가 살려고 했던게 목적이라 돈이 필요없었을 뿐인데 물물교환으로 치료해준다니까 같은 전투의사로써 고까웠나보지. 덕분에 아직도 다리는 수리도 못했어. 물이 빠져서 가볍긴 한데 무게중심이 잘 안맞는다.

머리에 심었던거 결국 죽었어. 신경쓰기엔 내 몸 하나 건사하기 벅차서… 사실 좀 스트레스받아서 관리를 소홀히 한것도 있긴한데. 아마 깨졌던 틈 사이로 지구의 탁한 공기가 들어갔을거야. 고칠여력이 없었으니 식물에겐 거의 화생방이었을지도 모르겠네.

배에 있던것도 여유가 없어서 결국 죽었어. 이젠 다 필요없을것같아서 그냥 포기하려고.

어차피 살려놔도 결국 죽을놈들이고, 내가 값을 거의 안받고 다 살려놔도 은혜는 갚을생각도 없는 쓰레기새끼들밖에 없는 쓰레기행성이니까 여긴.

아무리 살려고 해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것같아. 봐, 2년전에 마지막으로 대화했던 편지에 매달리고있잖아. 얼마나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다 내려놓기 전에 너한테 편지를 보내겠냐? 이게 니가 나한테 했던것처럼 과거로 갈지 아주 먼 미래로 갈지는 모르겠다만 일단 아마 이게 마지막편지일거다. 보게되거든 내 명복이나 빌어. 난 의사직 내려놓고 나 죽이려던놈들 면상이나 보러가련다.


니가 생각난다면 궁금해할것같아서 옛날이야기나 좀 적어둔다.

일단 14살때 썼던 편지대로 난 전신의체를 쓰고있어. 내 입장에서는 큰 수술이었지. 제이 뭐시기… 기억도 잘 안나는 그 행성에서 살았고.

수술전엔 팔 하나가 없었고 그때도 식물은 좋아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덕에 지금 의사하고있는거다만.

난 지구로 이송된다길래 지구는 멀쩡한 행성일줄 알았어. 사람이 많고 사회가 있는 행성일줄 알았는데 그냥 날 폐기하던거였어.

가축처럼 집어 던지더니 눈뜨니까 지옥같더라.

여긴 쓰레기장이야. 우주의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려고 한곳에 모아두는거지. 나도 쓰레기고.

근데 좀 너한테 말하긴 뭐하긴 한데… 니가 줬던 대마로 방독면 사서 살았다? 웃기지. 30장쯤 내고 샀어. 아무리 생각해도 존나 바가지였어 그거.

여튼간… 난 편지 주인 찾아주기 전에 내가 죽을것같아서 니가 줬던 대마를 기초자본 삼아서 살았어. 마약은 대부분의 사람들 사이에서 통하는 화폐거든. 어떻게 쓰레기들 사이에 빌붙어서 좀 살다가 식물도 애지중지 키우고… 해서 18살에 사람 살리는걸 업으로 삼았어. 직접 식물 가공해서 약 만들고 그걸로 외상 치료하고 살았지.

막 의사짓 하려했을땐 내 몸 건사하기도 어려웠는데 몇년쯤 지나니까 제법 손상입는 일이 적어지더라고. 그래서… 제일 잘 쓰는 식물들을 들고다니기도 번거로워서 몸을 좀 개조했어. 그때가 스물넷이었나. 다리랑 머리랑 배를 화분으로 쓰려고 하바리움으로 개조해서 유용하게 쓰고 다녔지. 지금은 다 깨져서 내용물이 다 죽었다만.

그 후로는 말했듯이 전투의사짓 하다가 31세기의 마녀…뭐 그렇게 불렸고… 2년전에 지구와서 처음으로 니 편지 받았다.

사실 처음 네 이름 보고 어딘가 익숙한데 기억이 안나서 그냥 반송시켰어. 애초에 여긴 쓰레기장 행성이니까 반송시킬 필요는 없을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냥. 애초에 여긴 배달원도 없어서 반송 붙여놔도 안가져갈것같았단말이야. 그런데 답장이 오더라. 좀 많이 놀랐어. 난 떠돌이라서 발 닿는대로 돌아다니고, 거점이라고 부를만한곳도 식물 모아뒀던 한곳 뿐인데다 그 거점도 반년에 한번씩 들렀다 가는 곳이라 발견된적없는데 귀신같이 내가 있는곳에만 편지가 와서. 정보상한테 위치 팔린줄 알았어.

그래도 네 편지에는 후불이 된것처럼 들리니까 마지막 편지때 선불로 담배 붙여뒀었는데 넌 답을 과거로 보내냐. 내가 가진 것중 제일 돈되는거였단말이야.

여튼간… 뭐. 그리 살았어. 옛날 편지가 그리 기억이 나는건 아니다만 날 좀 찾으려던것같았는데 포기해라. 난 내 목숨 걸고 날 죽이려던놈들 찢어놓으러 갈거야. 다음편지가 오면 다행으로 알고, 아니면 어쩔수없는걸로 알아.

고마웠어.

-86번째이자 31세기의 마녀였던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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