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ing

[아이던밀레/톨비밀레] 별을 비추는 것(上)

2021.09연성/밀레시안의 기억을 들여다보게 된 아이던, 그 기억에서 만난 이는...

La Fenetre~窓 by 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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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조 많으니 주의

- 여 밀레 설정, 아이던밀레/톨비밀레 요소가 있습니다

- 메인스트림 G25 배경으로, [고귀한 의지~가장 빛나는 별] 퀘스트의 사이 정도의 시간선.

- 글 자체가 G25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 밤이 끝난 이후 깨어나지 않는 밀레시안과, 그 밀레시안의 행적을 찾아 나서는 아이던의 이야기. 그 끝에서 본 것은...

- 공식에서는 만난 적이 없는 두 사람에 대한 날조와 메모리얼 아이템에 대한 적당한 날조가 있습니다.

새벽녘까지 내리던 비 냄새가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 타라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오늘도 영주 없는 성 앞을 지키던 이멘 마하의 근위대장은 조금 황망히 전령의 손에서 서신을 넘겨받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에일레흐 왕가의 인장이 찍힌 채 단단히 봉합되어 있는 봉투에 눈이 가 있으면서도, 어쩐지 좀처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제 입술만을 깨물었다가 놓기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 행동에서 망설임을 읽은 것인지, 타라의 전령은 잠시 기다려 주려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그를 마주 보고 선다. 지금 그의 관심은 이 봉투가 아니라, 이것을 전하러 온 제게 머물러 있을 테니까.

그런 자신이 좀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아이던은 그의 작은 친절에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여느 때 같으면 부엉이의 편에 보내도 될 서신이겠지만, 굳이 전령을 통해 보냈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뜻일 터. 그러나 야속하게도 지금 무려 국왕이 직접 쓴 이 서신은 그의 관심 대상 1순위가 되지 못한다. 오늘의 그는 제가 원하는 대답을 줄 수 있을까, 온통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으니. 

"혹시......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까?"

어렵게 이 한 문장을 겨우 뱉으며 아이던은 전령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제 안에서 한껏 요동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그런데도 끝내 지워내지 못해 희미하게 덮어 놓은 기대를 읽어낸 전령은 애석한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안 그래도 폐하께서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십니다. 바쁜 국정 수행 중에도 틈만 나면 그분께서 누워 계신 침실로 달려가실 정도니까요. 번번이 슬픈 얼굴로 돌아서시는 모습을 봐야 하는 저희도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죠."

"그렇습니까........."

"대체 언제 깨어나실까요. 저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으면 좋겠군요."

"....예."

일렁임이 없는 바다를 보듯 조용히 대답했다. 착 가라앉아버린 목소리를 가다듬을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정적이 흐른 뒤 전령은 그럼 이만, 이란 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겨우 손에 들고 있던 서신에 억지로 눈의 초점을 맞추며 아이던은 길게 한숨을 쉰다. 기대감이 사라지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피로가 한꺼번에 그를 감싼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밀레시안이 타라 왕성에 있다는 소식을 건너서 들은 지도 꽤 시일이 지났건만, 계속 잠이 든 채로 깨어나지 않고 있다 했다. 곧 만날 수 있다는 반가움과 기쁨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잦아들었다. 어딘가 잘못되신 건 아닐까. 아니면 모르는 사이 큰 상처라도 입으신 건가. 

한숨을 쉬는 사이 젊은 여성들이 재잘대며 그의 앞을 스쳐 지나간다. 근위대장은 반사적으로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그들을 바라본다. 오늘도 변함없이 시간은 흐르고 같은 일상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마치 자신만이 부자연스럽게 멈춰있는 것처럼 며칠째 똑같은 상념들이 머릿속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고 있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꺼내서 펼쳐보고 싶지만, 뭔지 모를 두려움에 애써 고개를 젓는다. 무사하실 거라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고 마는 건 어째서일까. 아이던 자신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재촉하듯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래봤자 나아질 건 없을 텐데도.'

쓴웃음을 짓고 만다. 이렇게 성 앞에 발이 묶여있는 처지라 당장 라흐 왕성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데. 설령 이대로 타라에 가서 그 밀레시안의 안위를 확인하려 한들 자신에게 무슨 명분이 있을까. 그 밀레시안에게 그는...

아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아닌가. 무언가 조금은 특별하다 정의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어떤 감정도 나누지 못한, 그저 [아는 사이]일 뿐이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도 딱히 정의할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연민일까? 아니면 동질감? 우정? 그게 아니라면...

그러나 곧 그는 고개를 젓는다. 그 귀한 단어만큼은 감히 그것이 맞노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다. 이렇듯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감정의 시작점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 도착점을 찾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이던은 이내 생각을 끊고 혀를 차며 정면을 보고 선다. 아직 근무 중이니 괜히 생각을 길게 늘여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 어느덧 물기를 머금고 있던 대기가 걷히고 맑은 하늘이 화창하게 뒤에 그림처럼 걸려 있다. 오늘도 꽤 더울 거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하며 자세를 바로 고쳐 본다.


문을 닫자 철컹, 무거운 소리가 어두운 집에 내려앉았다.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아이던은 느린 걸음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향했다. 늘 그렇듯 혼자뿐인 집은 그가 정리해 놓은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주인을 맞는다. 

혼자 이 집에 산 지도 꽤 시간이 지났건만, 가끔은 누군가의 침입으로 원래의 모습을 잃은 집 안의 광경을 상상해보곤 한다. 이를테면 늘 잘만 열리던 열쇠가 어느 날 갑자기 열쇠 구멍에 맞지 않아 문을 열지 못해 애를 먹는다든지, 분명 다 치워서 아무것도 없던 거실의 테이블 위에 낯선 책 따위가 놓여있는 그런 상황을. 당연히 그럴 리가 없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마치 어린애 같다 생각하면서도 숨바꼭질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선다. 딱히 누군가를 이곳에 들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누구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집이면서도 스승님의 집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도 오늘따라 혼자인 이 공간이 왜 이리도 낯선 것인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일하느라 바빴는데도. 그의 코끝을 맴도는 익숙한 집의 향취조차 옅어지는 것만 같았다.

".........."

고개를 저으며 옷깃을 젖혔다. 손가락에 걸려 길게 끌려 나오는 사슬을 잡아당기자 찰랑거리는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작은 반지가 눈앞에서 흔들린다. 자신을 위해 밀레시안이 직접 만든 특별한 수호의 부적.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이것을 내려놓을 때면 아직 밀레시안이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면서도, 어쩐지 저 혼자만의 것은 아니라는, 그런 묘하게 섭섭한 기분이 들곤 했다. 

그 밀레시안은 제게 닿지 않는 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니까.

「툭」

벗어놓은 옷에서 뭔가가 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났다. 느릿하게 시선을 옮기다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떨어진 것을 집어 들었다. 이전에 밀레시안이 저를 보러 왔던 날 주운 작은 고대 십자가 모양의 장신구였다. 귀하게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이라기엔 정작 밀레시안이 이걸 떨어뜨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했고 그렇다고 딱히 분실물 같지도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갖고 있던 터였다. 가만히 손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다 다시 옷 속에 넣으려던 찰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거라면..."

무언가를 생각하는 아이던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쩌면, 이게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메모리얼 아이템을 만드는 방법.... 이요?"

흘러내린 안경을 손끝으로 밀어 올리며 스튜어트가 말꼬리를 올렸다. 제 앞에 서 있는 이의 정체도 놀랍지만, 그의 표정도 뭔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온몸에 받으며 서 있는 게 민망했는지, 구석에 놓인 칠판을 흘끔 보던 아이던은 잠시 후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글쎄요. 아마도... 몇 가지 원리를 응용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대장님께선 마나를 운용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으시니, 좀 더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겠네요." 

공연히 스튜어트는 그가 신경 쓰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조금 들었지만, 오죽하면 이런 부탁을 하러 이멘 마하에서 이 던바튼까지 달려왔을까 싶어 그만두기로 한다. 그가 가져온 수호의 부적은 스튜어트 자신에게도 매우 익숙한 물건이지만, 이미 강한 마법이 담긴 물건이라 적합하지 않다며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혹 다른 물건이 없는지를 묻자, 아이던은 작은 십자가 모양의 액세서리를 내밀었다.

"음, 이거라면 괜찮겠네요."

여기저기를 뜯어보던 스튜어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신기한 물건이네요. 뭔가, 저도 처음 느끼는 힘이 배어있거든요. 마법과는 조금 다른, 깨끗하고 강한 기운이."

"...그렇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덕분에 저도 더욱 흥미가 생기네요. 어쩐지 마법적인 조치도 더 잘 될 것 같은 안정적인 힘이 느껴지거든요. 아무튼 좋습니다. 이거라면 좋은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동정보다는 기대와 확신 사이의 어딘가에 서 있을 뿐이었지만, 그는 어떻게든 밝은 대답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던 투명한 불안감이 그의 시야에서 흔들리다가, 이윽고 생기를 되찾으며 불안한 빛을 지워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최대한 빨리 회신을 드릴 테니까요." 

조금 전보다는 훨씬 고양된 목소리로 그는 스튜어트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대로 학교를 빠져나와 걷는 발걸음이 꽤 가볍다. 그의 가혹한 시련도 점점 끝이 보인다. 그제야 잔뜩 힘을 주고 있던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늦은 오후의 햇살이 구름에 가렸다가 반짝이며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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