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짧게 썼음

멜이 포림을 짝사랑한다는 건 그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처음 떨어진 것도 포림의 행성이었고, 겁을 집어먹고 덜컥 굳어있던 멜을 발견하고 도와준 것도 포림이었다지. 눈물 많은, 다정한 다마라와 금새 말을 터 조잘조잘 웃는 멜의 뺨에 포림의 손길이 닿을 적마다 아이의 머리에서는 꽃이 퐁, 소리를 내며 피었다. 붉은 장미와 가지를 늘어트린 월계수 이파리는 영락없이 포림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수줍음 가득한 얼굴로 언니, 그렇게 부르며 포림의 품에 색 고운 꽃을 안겨주는 멜의 웃음을 그들 모두 기억했다.

“ 왜, 왜…? 미나, 미나, 제발 멈춰!!”

“ 이게 최선이야.”

자홍빛 눈동자에 푸른 피가 튀었다. 숨이 멎은 아라네아의 몸이 바닥에 떨어진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본 미나가 착찹하게 손을 쥐었다가 폈다. 이 세션이 무너지면 우린 어차피 죽어. 내 힘으로 우리가 머물 도피처를 만들거야. 걱정하지 마. 널 어떻게 빼놓겠어? 웃음 한 점 찾을 수 없이 공포와 절망 가득한 얼굴에 미나가, 마지막 남은 생명의 플레이어가 이레귤러에게 손을 뻗었고-

그대로 멜은 튕겨졌다. 머나먼 고리로, 세션 바깥의 침묵 속으로. 당황한 미나가 멜을 찾다가 결국 최후의 최후가 다가와서야 그녀를 포기하고 드림버블을 만들어내는 순간까지 멜은 끝없는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수만년에 가까운 긴 어둠. 그 끝에 드림버블에 추락한 멜에게선 웃음을 찾을 수 없었다. 죽음으로 미쳐버린 트롤과 적막한 고독에 망가진 인간. 드림버블에 머무르기엔 참으로 적절한 인선이었다. 쿠를로즈의 차가운 손바닥에 제 뺨을 올려놓은 채 눈을 감고 있던 멜은 진저리가 날 만치 오싹한 속삭임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나한테 네 능력은 잘 안통해. 알잖아.”

“ …아주 유감이야.”

“ 입 아프지 않게 관리 잘 해.”

“ :o) ”

여전히 포림을 사랑하느냐 묻는다면, 빛이 바랬더라도 그것은 사랑이라 외칠 수 있었다. 멜은 제 머리에 돋아난 장미와 월계수 가지를 뚝 꺾었다. 핏물이 떨어지다가 오래 가지 않아 멎었다. 멜은 혀를 찼다. 칸크리가 잘난 ‘중재자’ 따위를 자처하지 않았더라면 언제든 자신은 제 감정을 가꾸어나갈 수 있었다. 포림과 단 둘이 남으려 하면 잽싸게 끼어드는 꼴이란. 반대로, 칸크리와 단 둘이 남아도 포림은 현명하게도 알아차리고 찾아와주지만…. 멜은 정성껏 꽃과 가지를 손질해 꽃다발 형태로 만들었다. 칸크리가 끼어들면 망가질 확률이 높지만, 그래도 포림에게 주고 싶었다.

아, 언니. 오늘도 사랑해요. 제 힘과 애정을 불어넣은 멜은 집착에 가까워져가는 감정을 못 본 채 하며 포림을 찾아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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