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는 과제는 안 하고
케이터 다이아몬드 드림
* AU 드림 웹진 참여작. 마법이 없는 현대 배경 캠퍼스 AU입니다.
* 제2의 드림주로 트레이 클로버 연애 드림이 소량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학가에는 다양한 종류의 카페가 존재한다. 외관이 화려하고 특색이 있는 카페에는 보통 커플들이 데이트를 위해 방문하고, 내부는 수수해도 커피 종류가 다양하고 전문 바리스타가 존재하는 카페에는 ‘진짜 커피’를 즐기러 오는 미식가들이 방문하지.
그렇다면 어디에나 볼 수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는 어떠한가.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는, 와이파이와 콘센트가 존재하는 그런 대중적 브랜드의 카페에는……. 언제나 과제 하는 대학생들로 붐비기 마련이었다.
“케이터, 무슨 일 있어?”
월요일 오후 4시. 그날 수업을 모두 마친 후 각자 간단히 배를 채우고 과제를 하기 위해 케이터와 함께 학교 앞 카페에 온 나는 노트북은 내버려 둔 채 스마트폰만 노려보는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아무렇게나 정리하며 검지로 화면 여기저기를 터치하던 케이터는 내 물음에 고개조차 들지 않고 답했다.
“아냐, 아무 일도 없어.”
“그런 것치곤 표정도 대답도 시원찮은데.”
정말 아무 일이 없었다면, 혹은 괜찮은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눈을 마주치고 웃어 보이기라도 했겠지. 저 구겨진 미간과 삐죽 튀어나온 입, 그리고 웃음기 하나 없는 목소리는 도무지 괜찮은 사람의 대꾸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수상하게 여기는 것조차도 모르는지, 케이터는 여전히 스마트폰에 열중하며 불만스레 중얼거렸다.
“왜 SNS는 하면서 메시지는 안 보는 거야?”
아하. 왜 그렇게 심통이 나 있나 했는데, 여자친구 때문인가.
이제야 케이터가 왜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 있게 된 나는 PPT를 손보던 걸 잠깐 멈추고 반쯤 남은 커피를 홀짝였다.
“너도 가끔 그럴 때 있는 거 아냐, 케이터.”
“뭐? 내가 언제?”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건 아니지? 얼마 전에도 내가 같이 학식 먹으러 가자고 불렀는데, SNS 댓글에 답글 적느라 한참 뒤에나 답했잖아.”
“아.”
저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 까먹고 있었나 본데.
하긴. 사람이란 대부분 제 잘못은 기억하지 못하고 남의 잘못을 탓하기 마련이지. 할 말을 잃은 케이터를 향해 익살스럽게 어깨를 으쓱인 나는 화제를 다시 녀석의 여자친구 쪽으로 돌렸다.
“급한 일이야?”
“그건 아니고.”
“그럼 기다리면 되잖아.”
내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없는 걸까. 다시 조용해 진 케이터가 ‘그런데…….’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다.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니, 모르는 건 아니지. 다른 건 다 하면서 내 연락만은 받지 않는다니, 굳이 여자친구가 아니라 단순한 친구 관계더라도 이건 기분 상할 만한 일이지 않은가.
“잠깐만 기다려 봐.”
기껏 과제 하자고 모여 놓고 여자친구 때문에 집중을 못 하고 있다니, 내가 도와줘야지.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것 아니겠나.
나는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초 정도 신호 대기음이 울렸을까. 카타리나는 금방 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카티. 혹시 지금 블라섬이랑 같이 있어?”
「그렇다만. 무슨 일 있나?」
역시 그럴 줄 알았다. 하이스쿨 때도, 둘은 항상 붙어 다니지 않았나.
나는 내 통화를 엿듣는 케이터를 애써 모른 척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그쪽 남자친구가 오매불망 연락만 기다리니 괜찮으면 메시지 좀 봐달라고 전해줄래?”
「오…….」
‘그러도록 하지.’ 그리 덧붙인 카타리나는 그대로 통화를 끊었다. 그건 꽤 매정한 전화 예절이었지만, 나는 딱히 상처받진 않았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를 보아하니 번화가에 있는 모양이었으니, 괜히 잡담하느라 시간을 끌었다가 사람에게 치이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카타리나는 안 그래도 뼈밖에 없어서, 잘못 넘어지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단 말이다.
“트레이 군, 그렇게 과장해서 전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통화를 전부 듣고 있었던 케이터는 내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기 무섭게 저런 소리를 했다.
마냥 싫은 건 아니지만 쑥스러워하는 티가 잔뜩 나는 녀석의 그 얼굴에, 나는 척수 반사적으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오버는 무슨. 거울을 좀 보는 게 어때?”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케이터가 저러는 이유를 모르는 것도 아니다. 녀석과 블라섬은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오랜 기간 깊은 교류를 하며 지냈지만, 정작 사귀게 된 건 하이 스쿨을 졸업하고 대학교에 온 후였으니까. 게다가 같은 학교에 다닌 것도 엘러멘터리 스쿨 시절에서도 2년 정도일 뿐, 나머지 기간은 편지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지내지 않았나.
곁에 붙어 있을 수도 없는데, 고백했다가 괜히 어색한 사이가 되고 연락이 끊기는 건 싫다.
그런 마음으로 지냈던 두 사람이, 같은 대학으로 진학하자마자 사귀게 되었으니 저렇게 붙어 있으려고 하는 걸 어찌 이상하다고 여기겠나. 나와 카타리나는 하이 스쿨 외에는 전부 같은 학교에 다녔으니 바로 옆에 상대가 있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건 우리가 특이한 거니까.
“아.”
전화가 끝나고 얼마나 지났을까. 잠잠하던 케이터의 폰이 요란하게 진동한다.
수신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곧게 허리를 편 케이터는 허겁지겁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응? 아, 무슨 일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네가 연락을 안 받는 거 같길래.”
방금까지 그렇게 초조해했으면서, 여자친구 목소리 듣자마자 표정이 펴지다니. 정말이지, 놀리고 싶을 정도로 좋을 때다.
“……이번주 토요일? 어, 나야 시간 있지만. 그래? 그럴까?”
좋아. 데이트 약속도 잡은 모양이니, 이제 토요일을 즐기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과제 하겠지.
겨우 안도할 수 있게 된 나는 다시 PPT를 만지작거렸다.
“블라섬, 이미 충분히 둘러보지 않았나. 슬슬 고르는 게 어떤가 싶네만.”
벌써 2시간째 백화점 패션 소품 코너를 돌아다닌 나는 더는 다리가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마치 구조신호 같은 한 마디를 블라섬에게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이런저런 시계를 비교 분석하고 있는 블라섬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딱 잘라 내 요청을 거절했다.
“무슨 소리야, 카티! 딱 한 번뿐인 100일 기념일에 줄 선물인데, 대충 고를 순 없잖아? 정말이지, 오래 사귀어온 애들은 기념일의 재미를 모른다니까?”
글쎄. 그건 그냥 오래 사귄 게 문제가 아니라, 나도 트레이도 기념일 같은 걸 챙기는 것에 집착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은데. 그리고 재미라면 이미 트레이의 얼굴만 봐도 재미있으니 상관없다.
하지만, 그래. 몰래 선물을 준비하는 즐거움이라면 나도 알고 있지. 나 또한 가끔 트레이에게 아무 의미 없는 날 선물을 쥐여주곤 했으니까. 문제는, 마음에 드는 시계마다 찍어서 SNS에 올려서 팔로워들에게 의견을 구하는 블라섬의 행동은 ‘몰래’라는 단어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뿐일까.
“SNS에도 반응을 물어볼 정도라면, 그대 남자친구도 이미 다 봤으리라 생각하는데.”
“당연히 보라고 올린 거지.”
“음?”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좋아요 누를 거 아냐? 그럼 그걸로 사려고 했지. 그런데 왜 반응이 없는 거야, 이 녀석? 또 네 남친이랑 논다고 바쁜 거 아냐?”
아. 그런 거였나. 말하자면 함정 수사 같은 거군.
하지만 그럴 거라면, 그냥 솔직하게 물어보거나 같이 사러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긴 해도, 블라섬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는 걸 테니 함부로 조언하기는 좀 그렇겠지.
더는 설득하기도 지친 나는 슬쩍 블라섬의 어깨에 기대어 상대가 만지작거리는 스마트폰을 함께 바라보았다.
“……자네는 대체 무얼 하기에 알림이 이렇게 많이 떠 있나?”
“딱히 뭔가 하는 건 없는데. 연락이 많이 올 뿐이지.”
“그렇게 알림이 많이 떠 있으면 신경 쓰이지 않나?”
“별로.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는 가끔 확인하고 있고, 어플에 뜬 알림은 어플 켤 때마다 보니까.”
보통 알림은 뜨자마자 확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었던 건가. 어플을 켤 때 확인한다면, 그건 알림을 설정한 이유가 없다고 보는데.
하여간, 하이스쿨 기간 동안 함께 다니긴 했지만 정말 특이한 아이다. 물론 그런 점이 신기해서, 대학교에 와서도 함께 다니는 거지만.
“음?”
그때. 내 주머니의 스마트폰이 짧게 여러 번 진동했다. 이런 알림이라면 분명 통화일 텐데, 누굴까.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꺼낸 나는 화면에 뜬 트레이의 이름을 보고 탄식했다. 혹시 저녁을 같이 먹자고 부른 거라면, 오늘은 곤란한데. 아까워라.
이미 머릿속으로 거절의 말을 생각해 둔 나는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응, 카티. 혹시 지금 블라섬이랑 같이 있어?」
“그렇다만. 무슨 일 있나?”
아,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 소리가 들린다.
보아하니, 아무래도 트레이가 전화한 목적은 내가 아니라 이 옆에 있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쪽 남자친구가 오매불망 연락만 기다리니 괜찮으면 메시지 좀 봐달라고 전해줄래?」
“오…….”
아무래도 트레이도 케이터와 함께 있는 모양이다.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 둘이라면 아마 같이 과제를 하거나, 밥이라도 먹으러 간 거겠지.
“그러도록 하지. 그럼 이만.”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케이터가 기다린다면 전해줘야지.
전화를 끊은 나는 여전히 시계로 고민 중인 블라섬의 귀에 살짝 귀띔했다.
“블라섬이여, 그대 남자친구가 메시지를 보낸 모양인데.”
“뭐?”
애지중지 아끼는 남자친구의 일이라 그런 걸까.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고개를 든 블라섬은 알림이 20개쯤 쌓인 메시지 함을 뒤적였다.
“헐, 진짜네.”
저 20개의 메시지 중 과연 몇 개가 케이터가 보낸 걸까.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곧바로 통화를 거는 걸 보니 한두 개만 보낸 건 아닌 모양이다.
‘오매불망’ 기다린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던 걸까. 블라섬이 전화를 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는 통화를 받아주었다.
“미안, 케이터. 왜 연락했어? ……그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급한 일 있으면 전화 주지!”
그렇게나 그가 좋은 걸까. 케이터와 대화하는 블라섬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생각해 보면 하이 스쿨에 다닐 때……, 그러니까 두 사람이 아직 연인이 아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일 관계일 때도 블라섬은 케이터의 연락만 오면 저렇게 웃었지. 저렇게나 좋아하면서 왜 대학교에 올 때까지 고백을 안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트레이랑 인생 대부분을 붙어 있었지만, 그래도 얼른 고백해버려야겠다 생각해서 미들 스쿨 때 말해버렸는데.
“맞아! 이번 주 토요일에 같이 쇼핑 갈까? 나 100일 기념으로 커플룩 맞춰 입고 싶어. 내가 사줄게. 같이 놀자, 응?”
……하긴, 때로는 소중히 여겨온 관계이니 더 단정 짓는 것이 두려울 때도 있는 거겠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좀 일찍 사귀나 늦게 사귀나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
‘좋을 때군.’
100일을 챙기는 재미는 모르지만, 친구가 기뻐하는 걸 보는 재미 정도는 알고 있다.
나는 이 틈을 타 근처 의자에 앉아, 블라섬의 행복한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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