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Chrysanthemum

쟈밀 바이퍼 드림

* 드림 사군자 합작 제출작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의 언성과 물건을 구경하는 손님들의 감탄사. 그리고 바쁘게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덜컹거리는 소리까지.

이른 시간부터 문을 연 열사의 나라 최대 규모의 꽃 시장은 오늘도 활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음! 역시 꽃 시장은 언제 와도 북적거리고 좋네!”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마음에 드는 걸까. 카림은 평소보다 더 들떠 보이는 얼굴로 장내를 돌아다닌다. 곧 있을 형제의 생일을 기념하여 선물과 함께 꽃을 보내주기 위해 온 그는 제 목적을 기억하고는 있는 것인지, 진지하게 물건을 고르기보다는 그저 감탄만 연발하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그 불안한 꼴을 한 걸음 물러서서 보고 있던 쟈밀은 언제나처럼 잔소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카림. 사람이 많으니까, 떨어져서 걷지 말고…….”

“오! 저 꽃은 처음 보는데? 뭐지?”

“…….”

 

‘아, 그래. 순순히 말을 들을 리가 없지.’ 쟈밀은 황당하지도 않다는 듯 혀를 찼다.

제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카림은 어느새 낯선 꽃 무더기 앞에 앉는다. 원래라면 당장이라도 카림을 쫓아가 그가 미아가 되지 않게 곁을 지켜야겠지만, 오늘의 쟈밀은 다소 느긋하게 상대의 뒤를 따랐다.

왜냐하면, 이번 외출엔 든든한 조력자가 함께 와주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렌! 이거 봐, 동방에서 온 꽃이래!”

 

카림의 바로 옆에 있었던 아이렌은 상대가 가리키는 꽃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꽃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따라온 만큼, 유명한 꽃은 대부분 머릿속에 들어있기 때문일까. 카림이 지목한 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본 그는 몸을 낮춰 꽃과 거리를 좁혔다.

 

“이거 국화네요. 예쁘다.”

“국화?”

“네. 제가 살던 나라에서는 여기저기서 많이 기르는 꽃이었어요.”

 

호기심 가득한 카림에게 조잘조잘 꽃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아이렌에게는 귀찮아하는 기색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는 후배 덕분에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한 쟈밀은, 두 사람 바로 뒤에 선 후에도 대화를 끊지 않고 가만히 귀만 열어두었다.

 

‘즐거워 보이니 됐나.’

 

이렇게 되면 자기 역할은 경호랑 짐을 드는 것밖에 없게 되니, 가만히 내버려 둬야지.

쟈밀은 아이렌을 데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주변에 수상한 그림자가 다가오진 않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이렌이 좋아하는 꽃이라면, 하나 사줄까?”

 

화기애애한 대화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렌의 설명을 듣던 카림은 언제나처럼 지갑을 여는 것으로 호의를 표현하려 했다.

‘어차피 거절할 텐데.’ 마음속으로 그리 중얼거린 쟈밀은 자연스럽게 후배의 표정을 살폈다. 무엇이라도 하나 더 얻어가려고 아짐가 주변을 맴도는 이들과 다르게, 아이렌은 놀라울 정도로 물욕이 없고 신세 지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상엔 언제나 예외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까.

잠깐 고민하던 아이렌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꽃이라면 뭐든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되나요?”

“물론!”

“그럼, 감사하게 받을게요.”

 

‘어라.’ 예의상 한 번은 거절할 법도 한데, 저렇게나 한 번에 승낙하다니. 그렇게나 꽃이 가지고 싶었던 건가.

뜻밖의 흐름에 의아해진 쟈밀이 눈만 끔뻑이는 사이, 카림은 각양각색의 국화를 둘러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럼 어떤 색이 좋아? 노란색이 많이 보이는데……. 아, 저기 분홍색도 귀여운걸?”

“그렇네요. 으음, 어떤 걸로 할까.”

 

마음에 드는 게 너무 많아서 고민인지, 아니면 성에 차는 게 없어 고민인지. 흔쾌히 호의를 받아들인 것 치곤 선물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아이렌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꽃들을 둘러보던 아이렌은 결국 가만히 상황을 관망하던 쟈밀에게 손을 내밀었다.

 

“쟈밀 선배, 어떤 게 제일 예뻐 보여요?”

“어?”

 

갑자기 제 의견을 구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그는 습관적으로 반문한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제비꽃색 눈동자에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삼킨 쟈밀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기를 거니 네가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는 게 좋지 않겠어?”

“그거야 그렇지만, 제 눈에는 다 예뻐보여서요. 선배의 추천을 받고 싶다고 할까.”

 

‘오늘따라 별나게 구는구나.’ 그는 혀끝까지 튀어나올 뻔했던 말을 도로 삼켰다.

평소엔 너무나도 독립적이라 호의도 도움도 다 거절하고, 크고 작은 선택도 스스로 하려는 녀석이 이렇게나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다니. 장소에 따라 마음가짐도 바뀐다고, 꽃이 가득한 곳에 오니 마음이 열리기라도 한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제겐 이 상황이 나쁠 게 없지. 쟈밀은 선뜻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국화꽃들을 둘러보았다. 모양도 색도 조금씩 다른 꽃을 찬찬히 둘러본 그는 검붉은색의 국화를 가리켰다.

 

“저거, 색이 독특하고 예쁘네.”

“흠.”

 

상대의 선택이 마음에 든 걸까. 쟈밀이 가리킨 국화를 유심히 살펴본 아이렌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저걸로 사야겠다.”

 

조금 길었던 신중한 선택이 끝나고 나자, 국화는 순식간에 아이렌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반 정도는 꽃이 피어있고 나머지는 꽃봉오리 상태인 국화 화분은 그리 작지 않았지만, 혼자 들기 무거울 정도로 크지도 않았다.

금은보화라도 얻은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분을 든 아이렌의 모습에 저 또한 슬쩍 웃어버린 쟈밀은 꼭 다문 꽃봉오리를 손끝으로 툭 건드렸다.

 

“그런데 지금 사도 되는 건가? 지금은 가을이라 금방 시들어버릴 것 같은데.”

“국화는 가을에 피는 꽃이라서 괜찮아요.”

“……그래?”

 

하긴, 어떻게 보면 꽃이 봄에만 핀다는 건 편견이긴 하다. 겨울에도 피는 꽃도 있는데, 왜 자신은 당연하게 이 꽃이 봄꽃이라 생각한 걸까. 쟈밀은 아직 필 기미가 보이지 않는 봉오리를 만지작거리며, 오래간만에 들떠 입이 열린 아이렌이 조금 더 떠들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제가 살던 지역에서 국화는 절개를 지키며 속세를 떠나 살아가는 은둔자를 나타내곤 했죠. 추위와 서리를 이겨내며 피는 점에서, 꿋꿋하고 높은 절개를 가진 꽃으로 여겨졌다고 해요.”

“과거형으로 말하는 걸 보면, 지금은 아닌 건가?”

“뭐. 최근에는 그냥 예뻐서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까요. 절개니 고고함이니 하는 게 고평가받는 시대는 끝나 버렸으니까요.”

 

아이렌의 말투는 장난스러웠지만, 화분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퍽 냉담했다.

상반되는 태도에서 무엇이 상대의 진심인지 본능적으로 눈치챈 쟈밀은 슬그머니 꽃봉오리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거두었다.

 

“너랑 잘 어울리는데.”

“예?”

“이 꽃말이야.”

 

절개니 고고함이니 하는 말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렌은 여러모로 속세와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지. 물질적인 거에는 관심이 없었고, 명성 같은 것도 원하지 않았으니까.

그야말로 제 신념과 의지를 관철하며 제 길을 걸어가는 사람. 그 과정에서 애착이 붙는 게 생긴다면 곁에 두었다가, 상대가 떠나간다면 굳이 붙잡지 않고 조용히 손을 흔들어 줄 여자.

그런 점에서, 아이렌은 역시 이 꽃과 닮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꺼낸 말이었지만, 아이렌은 조금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와, 선배도 이런 작업 멘트를 할 줄 아셨군요.”

“뭐?”

 

분명 제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을 텐데, 일부러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장난기 어린 상대의 눈빛을 눈치챘음에도 일순 당황한 쟈밀은 멋없게도 변명을 쏟아내고 말았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은둔자라든가 고고하다든가 하는 그런 점이…….”

“그래요? 흐음, 그렇구나.”

 

소리 죽여 킥킥거린 아이렌은 그답지 않게 횡설수설하는 쟈밀의 손을 부드럽게 맞잡았다.

 

“하지만 그런 점에선 선배랑도 잘 어울리는걸요.”

“나랑?”

“예.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지켜주잖아요. 그리고 제 눈에 선배는 세속적인 면도 있지만, 분명 고고한 면도 있어 보이거든요.”

 

‘아니, 그건 콩깍지가 아닐까.’ 저 자신을 완전히 안다고는 할 수 없어도 확실히 아닌 건 아니라 할 수 있는 쟈밀은 너무나도 달콤한 아이렌의 칭찬에 머쓱해졌다.

고고하다는 말이 싫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은 상당히 야심가인데 속세랑 떨어져 있다는 말은 좀 그렇지 않은가? 물론 모든 걸 내려두고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하지만, 그거랑 야망은 별개란 말이다.

 

“나중에 꽃이 활짝 피면 구경하러 와주세요. 알겠죠?”

“그래.”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녀석이 기르는 거라면 분명 죽지 않고 잘 자랄 것이다.

그리 확신할 수 있는 쟈밀은 꽃봉오리와 닮은 야무진 손을 꼭 쥐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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