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2세 시뮬레이터 Version 0.5.5

러기 붓치 드림


* 드림커플 2세 합작 시즌 10 제출작.

“와, 이걸 선배가 만들었다고요?”

“예! 뭐, 부업으로 한 거라 전문성은 없지만, 그래도 꽤 그럴싸하지 않슴까?”

“그럴싸한 수준이 아니라, 정말 잘 만드셨는데요?”

 

내가 만든 인형을 본 아이렌 군은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 죽여 까르르 웃었다.

아, 평소에는 연하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운데. 이럴 때 보면 또 16살 같다고 할까. 하여간 볼 때마다 감상이 바뀌는 게, 참으로 묘한 사람이다. 이러니까 뭔가 주는 것도 좀 덜 아깝다고 할까.

……물론, 애초에 저런 헝겊 인형 같은 건 나한테 필요 없는 물건이긴 하지만 말이다.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물론이죠. 상품으로 팔 정도는 못되지만 큰 하자는 없는 거라서 가져가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렌 군은 이런 귀여운 거 좋아하지 않나 싶어서 챙겨왔슴다.”

“그렇구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음료수라도 하나 드실래요?”

“오, 저야 먹을 걸 사준다면 당연히 좋죠!”

 

이거 봐라. 이 기특한 후배는 하나를 주면 최소 둘로 갚아준다. 이러니까 예뻐하지 않을 수가 있나. 하지만 이렇게나 정 많고 손이 큰데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할 배짱이 있고, 제 사람이 아닌 이들에게는 선이 확실하니, 마냥 우습게 보이지는 않는 거겠지.

역시 인형을 챙겨오길 잘했다. 원래는 좀 더 빨리 전해주고 싶었지만, 그래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줄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나야 오늘 별다른 일정이 없지만, 아이렌 군은 동아리 활동이 있다고 했으니 자칫 잘못하면 못 만날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시간이 맞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지.

 

“아, 있다! 아이렌 씨!”

 

그때. 저 멀리서 오르토 군이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혹시 영화연구부에서 찾으러 온 건가.’ ‘그렇게 오래 잡아 두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든 나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괜히 머쓱해져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걸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했다.

 

“오르토, 무슨 일이야?”

“괜찮으면 잠깐 우리 기숙사에 같이 가줄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부탁?”

 

어라. 동아리 활동 때문에 온 게 아닌 건가.

예상 밖의 흐름에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서 오르토 군을 힐끔 보자, 오르토 군이 놀라운 제안을 해왔다.

 

“혹시 러기 붓치 씨도 같이 갈래?”

“예? 그래도 되는 검까?”

“응! 딱히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자면 가고 싶어지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이렌 군과 조금 더 같이 있고 싶기도 하니, 겸사겸사 따라가 볼까.

 

“뭐, 무슨 일인지 궁금하니 따라가도록 할까여.”

“좋아, 그럼 얼른 가자!”

 

정말 따라가도 곤란하지 않은 건지, 오르토 군은 흔쾌히 나와 아이렌 군을 이그니하이드 기숙사로 안내했다.

평소엔 별로 올 일이 없는 낯선 기숙사 건물 안. 담화실을 지나 점점 안쪽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 오르토가 멈춰 선 곳은 연구실처럼 보이는 넓은 방이었다.

 

“아, 왔구려! 아이렌 씨, 그리고…….”

 

대여섯 명의 학생들과 무언가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던 이데아 씨는 아이렌 군을 보며 인사한 후,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살짝 겁먹은 게 느껴지는 그 시선에 황당해진 나는 한마디 듣기 전에 먼저 나서서 이 상황을 해명했다.

 

“오르토 군이 따라와도 된다고 했슴다.”

“아니, 졸자는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오히려 잘 왔다고 할까, 후보군이 늘었다고 할까.”

“예?”

 

오히려 잘 왔다니. 대체 무슨 이유로 불렀기에,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의아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아예 지목까지 당해 온 만큼, 아이렌 군은 눈치 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이데아 선배, 부탁하고 싶은 거라는 건 뭔가요?”

“그게 말입니다만…….”

 

모닥불처럼 이글거리는 푸른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늘인 이데아 씨는 지하까지 닿을 거 같은 긴 한숨을 내쉰 후, 어렵사리 말을 이었다.

 

“아이렌 씨는 오타쿠니까 편하게 말해도 되겠지. 혹시 최근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불멸의 용자와 심연의 성’의 3부를 보셨는지?”

“아, 그거. 본 적은 없지만 유명해서 대충은 알아요. 2부까지는 용자가 주인공이었는데, 3부부터는 용자의 손자가 주인공이라면서요?”

“그렇소이다! 자식으로 세대교체 해서 만화를 이어가는 작품이 간간이 있긴 하지만, ‘불멸 용자’는 오랜만에 등장한 수작이라 이렇게나 인기가 있다고 할까…….”

 

자신이 좋아하는 걸 말하는 중이라 그럴까. 이데아 씨의 표정은 순식간에 밝아져 목소리까지 커졌다. 게다가 극적인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말을 이어갈수록 그 속도가 빨라지던 이데아 씨는 어느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것도 관두고 허공에 손을 휘젓고 있었다.

 

“그나저나 아이렌 씨가 아직 보지 않은 건 의외구려, 2부의 메인 라이벌이 완전히 아이렌 씨 취향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 캐릭터 때문에 알게 된 작품이에요. 보긴 봐야 하는데.”

“후후, 정주행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주시길. 영업용 블루레이는 이미 구매해 두었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그 들뜬 모습도 거기까지일 뿐.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사람처럼 흠칫 놀란 이데아 씨는 다시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속삭이듯 작게 중얼거리는 말투로 돌아갔다.

 

“아차, 이게 아니라. 어쨌든, 이그니하이드에도 ‘불멸용자’를 보는 사람이 많다 보니 2세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했는데……. 그러다가 모두가 합심해 이런 걸 만들어 버렸다고 할까.”

 

대화 끝에 이데아 씨가 가리킨 것은, 학생들이 모여있는 곳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기계였다.

크기는, 그래, 중형 세탁기 정도 될까. 생긴 건 조금 다르지만, 네모난 몸체에 가운데가 비어 있고 뚜껑도 있는 게 세탁기랑 비슷한 거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수조 같기도 한 기계다.

얼핏 보아선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를 힐끔거리던 아이렌 군은 겁도 없이 기계에 다가서며 물었다.

 

“이게 뭔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2세 시뮬레이션이라고 할까. 그렇지요, 네.”

“……예?”

“종족과 성별에 상관없이 2명 몫의 DNA 정보를 넣으면, 2세를 만들어주는 거지요. 이론상으론 그렇긴 한데, 아직 테스트해 본 건 아니라…….”

 

잠깐. 이게 무슨 소리야?

설명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얼른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데아 씨! 그러니까. 설마, 이거 생명 창조랑 관련된 마법을 쓰는 기계임까?!”

 

마법이 없는 세계에서 온 아이렌 군이라면 잘 모를 수밖에 없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마법은 단순 장난이나 흥밋거리로 사용될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잘 알지. 그리고 아마 여기 모인 똑똑하고 음침한 이그니하이드 녀석들도 다 알 테고 말이다!

그러나 이데아 씨는 심각하게 반응하는 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창조는 아니고, 흉내라고 할까 모방이라고 할까. 인공지능 챗봇에 가깝지 않을까 싶소만.”

“……저, 그런 쪽은 잘 모릅니다만. 그러니까 영혼이나 육신이 생겨나는 건 아니라는 말인 검까?”

“하? 러기 씨, 무슨 무서운 소리를?! 그런 건 연금술과 소환술의 극에 도달한 고수라 해도 불가능하고, 고대 마법을 써서 성공한다 해도 그런 짓을 하면 체포될 게 뻔한데! 졸자, 단순한 호기심으로 한 발명으로 끌려가고 싶진 않습니다만!?”

 

아. 역시 진짜 생명을 만들어 내는 기계는 아니라는 건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호들갑을 떤 건 민망하지만, 이런 건 확실히 해두는 게 나은 법이었다.

 

“그럼, 혹시 첫 테스트로 저를?”

 

안심하는 나와 황당해하는 이데아 씨를 번갈아 본 아이렌 군은 기계를 한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저 살짝 들뜬 목소리와 장난스럽게 위로 슬쩍 솟은 입꼬리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아이렌 군은 이 기계에 흥미가 가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원래는 이걸 만든 기숙사생 중 아무나 두 명 뽑아서 DNA 정보를 입력할까 했는데, 다들 ‘매일 붙어 다니는 놈과 내 유전자 정보가 섞인 뭔가를 보기엔 비위가 상한다’라고 하는 바람에…….”

 

이데아 씨의 말을 들은 나는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사바나클로 기숙사 학생 중 한 명과 2세 같은 걸 보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상대가 아무리 친한 상대라도, 결과물을 보고 나면 엄청 어색해질 거 같다고 할까.

물론 레오나 씨 정도로 시니컬한 사람이면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작 애니메이션 하나 보고 2세를 시뮬레이션해 주는 기계를 만들 정도로 상상력이 풍부한 저 개발자들에겐 괴로운 일이겠지.

 

“그래서 말입니다만, 어차피 계속 봐도 어색해질 인간 기숙사생도 없는 아이렌 씨에게 DNA 제공을 부탁하고 싶습니다만. 물론 상대는 누굴 골라도 OK. 아이렌 씨가 불쾌하지 않을 상대로 직접 고르면 되니까, 꼭 어떻게 좀…….”

 

이데아 씨의 간절한 부탁에, 뒤에 있는 공동 개발자들도 동시에 말없이 고개를 꾸벅인다.

얼떨결에 여러 사람에게 기대를 받아버린 아이렌 군은 조용히 눈만 끔뻑이더니, 인사는 됐다는 듯 손을 저었다.

 

“이그니하이드 기숙사생 안에서 고르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라오. 이런 걸 부탁하는 와중 상대까지 제안하는 건 너무 양심이 없으니까, 아이렌 씨 마음대로 골라오면 좋소이다. 애초에, 아이렌 씨가 이런 부탁을 한다면 다들 허락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바로 그거다. 아이렌 군이랑 친하지 않거나 어색한 사이라면 모를까, 당사자가 직접 가서 2세 예상안을 보자고 할 정도로 친한 사이라면 이 부탁을 거절할 학생이 누가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자기가 해보고 싶다고 손들 녀석들만 한가득 있지.

‘흐음.’ 팔짱을 낀 채 침음한 아이렌 군은 잠깐 고민하는 듯 눈을 감고 가만히 있더니, 갑자기 눈을 뜨고 날 바라보았다.

 

“러기 선배, 어때요?”

“예? 뭐, 뭐가 말임까?”

“이거, 해볼래요?”

“예?”

 

어라, 잠깐. 이 아가씨가, 지금 뭐라는 거야.

전혀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잠깐 머리가 굳어버린 나는 바보같이 되물었다가, 지그시 날 보는 눈동자에 숨이 턱 막혔다.

저건 농담하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걸 눈치채고, 갑자기 온몸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자, 잠깐. 괜찮슴까? 저랑 해도?”

“아니,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할 질문 아닐까요.”

“저야 당연히 좋죠!”

 

아. 이건 너무 솔직한 대답이었나. 나도 모르게 그만.

하지만 매우 다행스럽게도, 저 기계의 제작자들은 이 상황을 놀림거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기들끼리 손을 잡고 발을 구르는 모습이, 그저 이제라도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듯 보였지.

……이데아 씨는, 질색하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럼, 둘 다 여기 검지를 올려 주시기를.”

 

놀리는 건 나중 일이라는 듯 금방 표정을 가다듬은 이데아 씨는 기계를 작동시키더니, 기계에 붙어있는 작은 판자 같은 것을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DNA 정보는 어떻게 얻는 거지?’

 

일단 시키는 대로 손가락을 올리긴 했는데, 대체 이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예상도 가지 않는다. 나는 고장 난 기계를 대충 손보는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이렇게 본격적인 기계공학은 모르니까.

그때.

 

“윽!”

 

잠깐 따끔 하는 고통이 손가락에서 느껴짐과 함께, 검지에서 피 몇 방울이 흘러나온다. 아무래도, 미약한 고통의 정체는 아마도 바늘이었던 모양이다.

손가락 끝을 찔러 새어 나온 피는 마치 마른 땅에 스며드는 물처럼 기계 안으로 빨려들어 가더니, 이내 텅 비어 있는 기계 중앙의 공간에 불투명한 액체가 차올랐다.

 

“오오, 작동한다! 오르토, 마력 흐름은?!”

“걱정하지 마! 마력의 흐름도 안정적이야, 형!”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이데아 씨와 오르토 군의 반응을 보면 잘 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금방 피가 멎은 손가락을 거둔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옆에 선 아이렌 군의 표정을 살폈다.

바늘에 찔렸던 부분을 매만지는 아이렌 군은, 내 시선은 눈치채지도 못한 건지 작동되는 기계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삐빅.

 

요란한 기계음이 계속된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순식간에 조용해진 기계에서 무미건조한 알림이 울리더니, 짙은 푸른색 액체가 가득 찬 공간의 뚜껑이 열린다.

 

‘서, 성공한 건가?’

 

저 액체가 2세라면 실패한 거겠지만, 수인족인 나는 알 수 있다. 저 통 안에 들어있는 것은 정체 모를 액체만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이진 않지만, 저 액체 속에는 무언가가 있다.

모두가 침묵하며 눈치만 살피는 와중.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아이렌 군이 액체가 든 통으로 고개를 숙이는 순간.

 

“헉!”

 

새하얀 팔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가까이 다가온 아이렌 군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이게 너랑 아이렌의 딸이다?”

“그렇슴다. 누가 봐도 저랑 아이렌 군을 닮지 않았슴까?!”

“…….”

 

레오나 씨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명, 놀라울 정도로 나와 아이렌 군을 반반씩 닮아서 심통이 나신 거겠지.

아, 내가 한 건 피 몇 방울 제공한 것밖에 없지만, 이 승리감은 대체 뭘까.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에 품속의 아이를 고쳐 안은 나는 아이렌 군을 쏙 닮은 눈을 한 내 딸을 또다시 낱낱이 뜯어 보았다.

나와 똑같은 머리카락 색. 머리 위 삐죽 솟은 하이에나 귀. 너무나도 작고 하찮아 긴 상의에 그대로 가려지는 짧은 꼬리와 야무지게 다문 입술까지.

누가 봐도 내 아이고, 아이렌 군의 아이다.

서늘한 체온에서부터 이 아이가 진짜 생명체는 아님을 알려주고 있지만, 대체 그게 무슨 큰 대수냔 말이다.

 

“확실히, 얼핏 보면 티가 안 나지만 피부 촉감이나 체취가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이그니하이드 학생들의 천재적 결과물이 신기한지, 어색하게 거리를 둔 채 아이를 보던 잭 군은 조심스럽게 다가와 딸의 팔을 쓰다듬었다.

인간의 살결이랑은 확실히 다른, 마치 물주머니를 만지는 듯한 촉감.

이 아이가 진짜 생명체는 아니라는 걸 실감케 하는 피부를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는 잭 군의 표정은 꽤 혼란스러워 보였다.

 

“잠깐, 잭 군! 너무 만지지 마십시오! 나쁜 의도는 없다는 걸 알지만, 보시다시피 여자애란 말임다!”

“앗, 그……. 죄송합니다, 선배.”

 

내가 주의 주자 잭 군은 금방 손을 거뒀지만, 표정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마치 진짜 딸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고 싶은 눈빛이었지.

그래. 나도 안다. 이 아이는 어디까지나 마법으로 만든 환상과 같은 존재라는 걸.

하지만 막상 잭 군도, 나와 같은 처지가 되면 더 유난스럽게 제 딸을 지키려 들게 분명하다. 이건 내 하루 아르바이트 임금을 걸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가짜 딸은 왜 네가 돌보고 있는 거지?”

 

누가 봐도 유쾌해 보이진 않는 표정으로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보던 레오나 씨는 너무나도 무신경한 질문을 던진다.

배려라곤 없는 단어 선택에 놀란 나는 얼른 아이를 내려놓고 자그마한 두 귀를 막아주었다.

 

“애가 듣는데 가짜라고 하지 마십셔! 아이렌 군은 오늘 동아리 활동이 있어서 지금은 제가 돌보기로 했슴다.”

“하, 애처가 납셨군.”

 

코웃음 치며 고개를 돌린 레오나 씨는 늘어지게 하품하더니,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되든 좋으니, 성가신 짓 하지 않게 신경 쓰도록. 나는 애는 질색…….”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 귀를 막고 있는 내 손을 가볍게 벗어난 딸은 종종걸음으로 레오나 씨에게 달려가 버린다.

‘아.’ 하고 탄식하는 순간. 내가 대응하기도 전에 손이 닿지 않는 범위까지 간 아이는 방으로 가려는 레오나 씨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더니, 겁도 없이 체중을 싣고 매달리기까지 했다.

 

“허?”

“자, 잠깐! 프린, 레오나 씨를 귀찮게 하면 안 됨다!”

 

‘대체 언제 이름까지 지은 거냐.’ 레오나 씨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내겐 그걸 설명할 여유가 없다.

상대는 진짜 아이가 아니다. 그러니, 레오나 씨같이 성격 나쁜 사람이라면 다소 거칠게 아이를 떼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피가 차게 식은 나는 다급히 두 사람을 분리하려고 했지만, 프린의 반응은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아빠. 나 이 오빠랑 놀래.”

“허?”

“멋있어.”

 

아버지의 심란한 마음을 알 리 없는 천진난만한 딸은 레오나 씨의 다리에 제 뺨을 비볐다.

아이 특유의 솔직한 애정 표현에 할 말을 잃고 눈썹만 까딱이던 레오나 씨는 이내 몸을 떨더니,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푸핫!”

 

이게 바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게 아닐까. 레오나 씨는 짜증을 내는 대신 헛웃음을 흘리며 프린을 안아 올렸다.

 

“아무래도 생긴 건 네 쪽을 더 닮았지만, 취향은 아이렌 쪽을 더 닮은 것 같군. 러기.”

 

아이렌 군과 똑같은 눈을 가진 딸을 가만히 바라보던 레오나 씨는 놀리는 의도가 명백한 말을 던지곤, 얌전히 안겨있는 프린의 코를 가볍게 꼬집었다.

 

“네 엄마나 데려와라, 꼬맹이. 어이, 잭. 받아라.”

“아, 예!”

 

아, 저렇게 귀여운데 10분도 놀아주지 않고 가다니. 역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아무리 귀여운 애라도 그저 불편한 존재일 뿐인 건가.

급히 달려온 잭에게 아이를 넘기고 사라지는 레오나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슬럼가에서 나보다 어린 녀석들과 어울려 산 덕분에, 딸과 지내는 시간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애초에 고향의 사고뭉치들과 달리 아이렌 군을 닮은 프린은 꽤 조용한 편이었고, 제게 호기심을 보이는 커다란 오빠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흥미로워하며 장난을 거는 여장부라서 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오히려 내가 걱정하는 건, 이 애와 곧 헤어져야 한다는 냉정한 현실 쪽이었다.

 

‘이제 몇 시간 정도 남았지?’

 

이데아 씨의 말대로라면 이 ‘결과물’은 6시간 정도 유지된다고 했다. 정확하게 시간을 잰 것은 아니지만, 아마 지금까지 3시간 정도 흘렀으니 남은 시간은 딱 반 정도라는 걸까.

아. 아쉽기도 하지. 이왕이면 하루 정도는 온전하게 함께 있고 싶은데. 어차피 수업을 들어야 하니 몇 시간은 못 보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쉬운 걸 어쩌겠나.

 

“아빠, 나 이거 따줘.”

“응? 아.”

 

만약 시간이 더 있었다면 무얼 더 해보았을까 상상하는 사이. 혼자서 기숙사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딸이 자그마한 캔 음료수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혹 돌아다니다 넘어지진 않았을까 가볍게 팔다리를 훑어본 나는 상처 하나 없는 피부를 확인한 후 캔을 넘겨받았다.

 

“이리 주십셔. 그런데 이건 어디서 났슴까?”

“아까 멋있는 오빠가 줬어.”

“……레오나 씨가?”

“이거 먹고 얌전히 있으면, 또 준다고 했어!”

 

이런, 레오나 씨. 아이는 질색이라고 하더니, 아이렌 군을 닮은 얼굴에 혹해서 나름대로 놀아주시기라도 한 걸까. 아까처럼 프린에게 시달렸을 레오나 씨를 생각하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나저나, 마실 걸 준다면 내 것까지 두 개를 주셔야지. 하여간 무신경한 사람이다. 목이 마르긴 하지만 아이 걸 뺏어 먹는 못난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은 나는 뚜껑을 딴 캔을 프린의 손에 돌려주었다.

 

“엄마는 언제 와?”

“곧 올검다. 오늘 일이 많아서 평소보다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거든여.”

“흐응. 그렇구나.”

 

이 나이대 아이들이라면 보챌 법도 한데, 역시 아이렌 군을 닮아 얌전한 걸까. 프린은 더 묻거나 따지지도 않고 내 옆에 앉아 주스만 홀짝거렸다.

쫑긋쫑긋. 주스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움직이는 귀가 얼마나 귀여운지.

‘부모란 자식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라는 말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실감한 나는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만약 아이렌 군이랑 정말 결혼해서, 딸을 낳는다면…….’

 

그러면 지금 내 옆에 있는 결과물과 똑같은 아이가 나올까. 아니면, 생긴 건 비슷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아이가 나올까. 어쩌면, 딸이 아니라 아들이 태어날 수도 있지. 그렇다면 내 쪽을 더 닮을까. 확실한 건, 어떤 아이가 태어난다 해도 아이렌 군은 좋은 엄마가 되어줄 거 같다. 아이렌 군은 후배지만 여러모로 의지가 될 만큼 믿음직하고 야무진 사람이고, 아이도 좋아하고, 정도 많은 사람이니까.

 

“러기 선배, 저 왔어요.”

 

그렇게 행복한 상상에 빠져있을 즈음. 아이렌 군이 드디어 내 곁으로 돌아왔다.

입이 작아 아직 주스를 반도 못 마신 프린은 캔을 두 손으로 소중하게 쥔 채, 3시간 만에 재회 한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엄마!”

“그래, 잘 있었어? 아빠 말 잘 들었고?”

“응!”

 

기운차게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딸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누가 보면 놀이동산이라도 갔다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놀아준 시간만큼 다른 녀석들이 놀아준 시간도 긴데.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워한다는 건, 역시 이 기숙사가 마음에 든 걸까. 과연 내 딸다웠다.

 

“엄마, 이거 먹을래?”

“응? 이게 뭐니?”

“아까 잘생긴 오빠가 줬어.”

 

프린이 내민 오렌지 주스 캔을 받아든 아이렌 군은 잠깐 고민하더니, 딸이 말한 ‘잘생긴 오빠’의 정체를 금방 추리해냈다.

 

“혹시 사자 귀 달린 오빠가 줬어?”

“응. 이거는 커다란 오빠가 만들어줬고.”

“푸흡, 그래?”

 

잭 군이 만들어 준 색종이 목걸이를 본 아이렌 군은 웃음을 억눌러 삼키더니, 맞은편에 자리 잡고 앉아 프린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 모습은 퍽 익숙해서, 나는 잠깐 아이렌 군이 진짜 저 애를 낳은 게 아닐까 착각하고 말 정도였다.

 

“프린은 선배 닮아서 붙임성이 좋아 다행이네요.”

“예?”

“저도 어릴 때는 외향적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니……. 절 닮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믿기지 않는다. 내가 붙임성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아이렌 군이 옛날엔 외향적이었다고? 지금은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는 것과 별개로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인간보다는 동식물을 좋아하고 연회장에 가느니 도서관에 가는 아이렌 군이?

좋은 의미로 의아함을 느낀 나는 몸을 움직여 거리를 좁혀 앉았다.

 

“어린 시절 아이렌 군이라, 좀 궁금하네요.”

“굳이 따지자면 골목대장에 가깝긴 했어요. 또래랑 비교해서 책 읽는 것도 빨랐고 만화 영화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나가면 앞장서서 뛰어다니는 아이였다고 할까. 게다가 저, 어렸을 때부터 키가 큰 편이었거든요.”

“최고다…….”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님다.”

 

다른 종족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하이에나 수인에게 있어 여자란 당찰수록 좋다 여겨졌다. 만약 아이렌 군이 나랑 같은 동네에 살았다면……, 나는 분명 그때부터 이 후배를 좋아했을지도 모르지.

역시, 프린은 외모는 내 쪽을 더 닮았어도 성격은 아이렌 군을 더 닮은 거 같다. 그리 결론 내린 나는 문득 오늘따라 내 상상력이 상당히 풍부하다는 걸 깨닫고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언제나 살아남을 걱정과 배와 지갑 속을 채울 궁리만 했던 나인데. 생존과 관계가 없는 쪽으로도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갈 줄이야. 옛날보다는 지금이 몸도 마음도 더 여유로워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이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인 달콤함은 분명 아이렌 군이 알려준 것이겠지.

 

작은 거라도 먼저 물어보고 챙겨주는 세심함. 사소한 것도 칭찬하고 예쁘게 봐주는 다정함. 본래는 독립적이고 냉정한 면모가 있다는 것도 잊게 하는 애정이 뚝뚝 흐르는 눈빛과 가끔은 나조차도 깜짝 놀라게 하는 강단까지.

그 모든 걸 항상 옆에서 보여주었으니, 잠깐만 생각해도 추억들이 잔뜩 떠오를 정도로 보람찬 시간을 함께했으니, 내게도 겪어본 적 없는 과거와 아주 먼 미래까지 상상할 수 있게 된 거 아니겠나.

 

“저, 아이렌 군. 고맙슴다.”

“네? 고맙다니요?”

“어……, 저를 선택해 줘서?”

 

머리에 몰리는 피에 혀끝까지 뜨거워지는 와중. 넘쳐흐르는 생각과 마음을 세련된 말로 정제할 능력까지는 없던 나는 일단 생각나는 대로 말을 내뱉었다.

분명 아이렌 군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긴 한데, 그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그 기계의 테스트 상대로 나를 골라준 덕분에 어쩌면 미래에 존재하게 될 수도 있는 딸을 만났으니, 거기에 고마워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미적지근한 생각으로 한 인사였는데.

 

“그런 감사는 나중에 예식장에서 말해줘요.”

“……예?”

“이건 그냥 시뮬레이션이니까 말이죠. 좀 더 아껴뒀다가 실전에서 말해줘도 돼요.”

 

쿡쿡거리며 소리 죽여 웃는 아이렌 군의 뺨은 오늘 중 가장 붉었다.

하지만, 아마 내 얼굴이 더 붉겠지. 그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목 위로 불타는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데, 어떻게 모르겠나.

 

“엄마, 나 배고파.”

“응? 그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침묵을 끊은 것은 드디어 주스를 다 마신 딸이었다.

빈 캔을 받아 분리수거 하기 편하게 구긴 아이렌 군은 방금 제가 무슨 말을 했냐는 듯 간단하게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선배, 저녁 아직 안 먹었어요?”

“예? 아, 네! 그, 안 먹었슴다.”

“그럼 셋이서 외식할까요? 아, 이대로 밖에 나가면 곤란해지려나. 그럼 고물 기숙사로 가서 밥 먹을까요? 뭔가 시켜 먹어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도 내가 먹을 거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 중요한 건 저녁밥이 아니지 않나.

일단 대답은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위로 끄덕이는 건지 옆으로 젓는 건지도 모르게 머리를 움직이긴 했지만, 내 정신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날아간 후였다.

 

‘미치겠네.’

 

예식장은, 어디가 좋지. 할머니한테 물어봐야 하나.

또 말 한마디로 저 먼 미래까지 생각이 앞서버린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입 안 살만 깨물어 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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