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ㄴㅌ 사나기군한테 닿고 싶지 않으니까 죽고 싶지 않아 2

글터디 10주차

글터디 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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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죽은 건 확실한 거지?

- 그렇다니까. 선배도 봤잖아. 아무도 나 못 알아보는 거.

오른쪽 뺨에 댄 휴대폰이 뜨끈뜨끈했다. 실제로 통화를 하는 중도 아닌데 이렇게 어색하게 뺨에 휴대폰을 붙이고 있는 이유는 니노미야 사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죽음에서 되돌아온 이 후배가 보이는 건 나뿐인 모양이었다. 따라서 니노미야와 대화를 할 때에 남들의 눈에는 내가 허공에 대고 대화를 하는 이상한 꼴로 보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어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척할 수 밖에 없었다.

니노미야가 자신이 죽었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바지 주머니에서 손을 집어넣은 모양으로 지상에서 5cm 가량 둥둥 떠다니는 걸 보면서, 나는 조용히 한심을 쉬었다.

- 그런데 왜 이렇게 태평해?

- …죽어버린 걸 어떻게 되돌려요? 나도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보이고 들리는 건 선배뿐이잖아.

죽은 후배가 되돌아왔다고 해서 극적인 감정의 변화 같은 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오랫동안 연락이 닿지 않던 지인과 재회하게 된 그런 느낌 뿐, 삶과 죽음과 같은 거창한 것과는 먼 감정들만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의미없이 쓸려갔다. 니노미야의 장례식에서 갔다가 죽은 니노미야와 재회하게 된 그 날부터, 니노미야는 뻔뻔하게 내 주변에 눌러앉았다. 학교에도, 동아리에도, 영화관에도, 집에도 뻔뻔하게 날 쫓아다녔고,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나는 내 주변에서 니노미야가 둥둥 떠다니거나, 수업 시간에 불쑥 니노미야 혼자 불쑥 서있거나, 내 침대에 뻔뻔하게 누워있는 꼴을 보는 것에 나름 적응했다.

- …그건 그래.

타당한 니노미야의 답변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진 나는 조용히 수긍했다. 찌르르, 하는 매미 소리가 잠시 적막을 채웠다. 유령이 된 니노미야를 처음 만난 건 초여름이었는데, 어느새 여름이 완연했다. 뜨끈한 휴대폰이 기분 나빠져,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후 본래 통화 연결조차 되어 있지 않던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한숨쉬듯 이야기했다.

- …사실 죽은 너랑 처음 만난 그 날, 네 장례식에 다녀왔어.

- 알고 있어요. 선배, 검은 정장 입고 있었잖아.

- 네 어머니도 봤어.

- …어땠는데?

- 어땠냐니…. 그냥 평범했어.

싱거울만치 짧은 내 대답에 니노미야가 헛웃음을 터뜨리며 먼저 나를 앞서갔다. 그래, 그랬겠지, 하는 혼잣말과 함께.


유령이 된 니노미야는 죽기 전과 무척이나 비슷했지만, 가끔 이상한 행동을 보이곤 했다. 방금까지 잘만 이야기하다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허공을 보거나,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흔들거나 하는 행동들. 유령을 보고 듣는 건 나인데, 하는 행동만 보면 니노미야가 유령을 보는 것 같았다.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는 30분 전 내가 틀어놓은 영화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니노미야가 처음 내 방에 왔을 때 가장 관심을 가진 게 바로 이 블루레이 플레이어와 블루레이가 잔뜩 수납된 책장이었다. 돈이 많은 건 알았지만, 이렇게 돈지랄을 하는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다는 것이다. 그에 나는, ‘그런가? 뭐, 유일한 취미니까….’ 하고 대답했고, 니노미야는 더 재수가 없어졌다고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질릴 만큼 영화를 좋아하면서, 또 혼자 영화를 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유령 니노미야의 존재는 참 고마웠다. 언제든지 부담없이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 니노미야는 동아리에서도 영화를 봐놓고선 집에 와서도 영화를 보냐며 어이없는 듯 웃다가, 대신 영화는 네가 고르라는 말에 얼떨떨하게 책장 앞에 서서 영화를 골랐다.

니노미야가 골라온 영화를 아무 말 없이 받아들어 플레이어 속에 집어 넣자, 니노미야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 혹시 본 영화예요?

- 응. 한 4번 정도….

- 그렇게 많이 봤어요? 그럼 다른 거 봐요.

- 그 책장에 있는 영화들은 다 그 정도는 본 영화들이야. 좋아하니까 여러 번 봐도 상관 없어.

내 대답에 잠시 질린다는 얼굴을 한 니노미야가 ‘그래요, 그럼.’ 하고 대답하며 쇼파에 풀썩 앉았다. 익숙하다는 듯 나도 그 사이에 간격을 두고 편안히 앉았다. 배급사의 로고가 지나간 후에, 익숙한 주인공의 독백으로 영화가 시작했다.

이상함을 감지한 건 니노미야의 시선이 플레이어 화면이 아닌 그 너머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죽음을 경험하면 시간을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세 번째 죽음은 심정지가 온 트럭 운전자가 아무 죄 없는 그를 트럭으로 받아버리며 나타났다. 무척이나… 니노미야와 닮은 죽음이었다. 이에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화면에서 시선을 떼 니노미야를 쳐다봤고, 그 이상함을 감지하게 되었다.

- …니노미야?

- …….

어디를 바라보는지 알 수 없는 그의 초점 없는 눈동자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몸이 좋지 않나? 그런데 유령도 몸이 좋지 않을 수 있나. 탁탁, 니노미야의 눈 앞에서 손가락을 튕기던 나는 한숨을 쉬며 니노미야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정확히는, 잡아 흔드려고 했다. 내 손이 니노미야의 어깨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마치 찬물을 끼얹은 듯 문득 정신이 또렷해졌다. 맞다, 니노미야는 보이고 들리지만 만질 수 없다.

왜냐하면, 니노미야는 죽었고, 유령이니까.

갑자기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나만은 아니었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니노미야 역시 조금 크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탁해 초점이 없던 눈동자가 완전히 나를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어쩐지 뒷목에 싸한 느낌이 들었다.

- 아…. 불렀어요?

- …응, 어디 몸이 안 좋나 해서. 어디 보고 있었어?

- 아, 아뇨. 별 거 아니였어요. 영화 어디까지 보고 있었죠?

니노미야가 인상을 찌푸리며 제 왼쪽 귀를 왼 손바닥으로 탁탁 내리쳤다. 이명이 들릴 때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그 행동에 나는 시선을 집중하면서 대답했다.

- 방금 주인공이 세 번째로 죽었어. 다시 시간이 되돌아갔고.

- 와, 저 주인공 진짜 운도 나쁘네요. 한 번 경험해도 개 같았던 걸 저렇게 여러 번이나.

- …….

- 왜요, 할 말 있어요?

니노미야가 고개를 기울이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자, 곧바로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보기에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곧바로 그런 물음이 날아들어오는 걸 보면.

- …죽을 때 말야, 많이 아팠어?

- 아팠냐고요?

내 질문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니노미야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의 소리가 다 묻힐 정도로 아주 크게, 생생하게,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 어떻게 대답해주길 원하는데요? 원한이 생겨서 유령이 될 만큼 아팠다고? 아님 죽음을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아서 유령이 되어서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있는 줄 알았다고?

- …됐어. 그렇게까지 꼬아 들으라고 한 말 아니었어.

- 그래요, 그럼 한 마디만 해줄게요.

자살하는 사람 막아줄 만큼 아프긴 했어요. 됐어요?

영화는 결국 주인공이 자신을 괴롭히던 회귀에서 벗어나 영원히 평안한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났다. 니노미야는 그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선배는 뭐 이런 영화를 4번씩, 아니 이제 5번씩이나 봤냐고 시비를 걸었고, 나는 무시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니노미야가 사라졌다.

일주일 동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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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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