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젬에메

[아젬에메] 수면 부족

* 파이널판타지14 확장팩인 효월의 종언과 8인 레이드 판데모니움, 그리고 작성자의 개인 해석과 설정을 덧붙힌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공식 비화나 인게임 스토리 등 여기저기서 다 가져와 보고 싶은 내용으로 버무렸으므로 열람시 주의를 요합니다. 

정말 강한 스포를 담고 있으니 효월 미 클리자가 열람시 책임은 저에게 있지 않습니다 ㅠ___ㅠ)...

효월 다 깨고 읽어주세요! 효월 깨고 판데모니움까지 다 깨고 읽어주세요!

* 공식 설정을 기반으로 날조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에테르, 기억, 고대세계 관련해서 걍 다 날조입니다.

* 아젬의 외모 묘사가 없으나,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남중휴 '메테오'를 베이스로 삼고 있습니다.

* 분열 전 고대세계를 배경으로 아젬 X 에메트셀크 BL 입니다

* 잠시 손 풀이로 가볍게 쓴다는 게 6천자가 되어 포타에 올려둡니다. 추후 아젬 시점에서 이어질지도... 아닐지도...

피곤하다. 최근 들어 에메트셀크가 느낀 감정은 그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잠을 잔 지가 언제였더라? 최소 72시간은 지났던 거 같은데. 식사는 또 언제 했었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것은 그저 일, 서류, 회의, 추가 업무, 잔업, 야근, 특근, 조기 출근 같은 것들뿐. 

명계를 들여다보는 자리라는 특성상, 평소 업무는 다른 14인 위원회에 비하면 적당한 편인 에메트셀크원이지만 이렇게 한번 일이 몰리기 시작하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터져나가곤 하니 그 아무리 성실하고 유능한 에메트셀크라고 해도 피곤함에 찌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에메트셀크 뿐만 아니라 에메트셀크원 소속의 성실한 사람들도 하나같이 피곤함에 찌들어 있으니, 제일 윗사람인 자신이 편하게 쉴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에메트셀크는 멍하니 서류를 들여다보다 뻐근한 뒷목을 풀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리고, 뒷목을 쭈욱 당기는 느낌으로 움직이다 어깨를 가볍게 돌리고 팔을 위쪽으로 쭉 펴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몇 번 하고 나니 조금 개운해지는 것 같아 비틀 때마다 우두둑하고 소리가 나는 허리도 움직이고, 팔을 귀 옆으로 붙여 옆구리까지 쭈욱 늘리면서 양옆으로 움직이다 보니 시야에 이상한 것이 잡혀 눈을 가늘게 뜨고 정신을 집중했다.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인지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아모로트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해서 멍하니 눈을 깜빡여 조금 더 시야를 또렷하게 바꾸어 놓았다. 

일반적인 시야로는 보이지 않는, 에테르의 흐름이다. 그 흐름에 집중하니 망망대해 위에 둥둥 떠 있는 듯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물질계와 에테르계의 구분이 흐릿해지고, 귀가 먹먹해지며 자신의 몸이 잔잔한 물결에 흔들리는 것처럼 고요하고 나긋하게 허공을 유영하는 듯한 착각에 천천히 숨을 내뱉으면, 에테르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었으므로 에메트셀크는 벽 너머, 보이지 않아야 할 곳까지 내다보았다. 마치 잠들기 직전처럼 정신이 붕 뜨는 듯해 당장이라도 잠들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포근하게까지 느껴졌지만-

 

“…뭐야.”

 

피곤함에 쩍, 쩍 갈라지는 목소리였으나 에메트셀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간을 좁힌 채 에테르를 더 살피기 위해 시야를 확장시켰다.

물질이라는 개념이 더욱더 희박해지고 보이는 건 스스로의 색으로 빛나는 에테르들뿐이라 자신이 찾으려던 것 외의 다른 것들은 신경질적으로 시야에서 치워버리며 제 시선을 잡아 끈 에테르를 쫓았다. 분명, 아모로트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에메트셀크원의 문을 박차고 들어올 테지. 그렇다면 저는 그 머리에 다쟈를 한 대 쥐어박고 잔소리를-

 

“……?”

 

하지만, 그 에테르의 주인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기대감을 배신하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카렌세스 광장을 지나 창조물 관리국으로 이동해버려서 에메트셀크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뭐, 그래 그럴 수 있겠지. 매번 이런저런 이데아를 빌려 가니까 빌린 걸 반납하는 게 우선인 게 맞다.

단순히 빌려 가기만 했으면 모를까 국장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무기 삼아 무단 반출해 가는 것도 제법 많았으니까, 창조물 관리국 국장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혹은 라하브레아 의장의 불벼락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아모로트로 돌아온다면 거기를 먼저 들리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었을 터였다.

물론, 그 녀석에게 상식을 기대하면 안 된다는 건 이쪽이 더 잘 알고 있지만. 

잔뜩 찡그린 미간을 펴지도 못한 채, 에메트셀크는 시야에 점점 더 선명하게 그려지는 에테르를 바라보며 팔짱을 끼고서 코웃음을 쳤다. 분명 창조물 관리국에서의 볼일이 끝나면 저를 귀찮게 하러 올 녀석이다. 이번엔 누가 쉽게 들여 보내줄 줄 알고? 어림도 없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문을 더 견고하게 걸어 잠갔다. 

어차피 곧 쳐들어올 텐데 에테르를 더 살펴봤자 의미가 없다. 에메트셀크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 눈앞에 산더미같이 쌓인 서류를 바라보고 울컥 치솟는 감정을 내리눌렀다. 천장에 닿을 만치 높다랗게 쌓여있던 서류가 며칠 밤낮을 갈았더니 그나마 책상 높이까지로 내려왔으니 조금만 더 고생하면 정말 편히 쉴 수 있겠다 싶다가도, 여러 변수로 인해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더욱 늘어나기만 했던 며칠을 떠올리며, 끝없이 쌓이기만 하는 서류가 마치 아젬 녀석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을 해도 뭐하나. 제 선에서 처리하지 못한, 혹은 제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불명확하고도 규정하지 못할 일들 덕분에 서류가 늘어나고 피곤해지는 건 아젬이나 명계의 일이나 똑같은데. 

그 어떤 잔소리를 해도 무의미했고, 짜증을 내도 무의미했다. 귀찮으니 달라붙지 말라고 밀어내면 밀릴 것 같으면서도 꽉 버티고 서서 저를 잡아끄는 녀석이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고, 14인 위원회로서 별에 공헌하는 삶을 살기로 받아들였다면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하라고 암만 소리를 쳐도 헤헤 웃으며 귓등으로 흘리는 녀석이니 잔소리를 하는 제 입이 더 아플 터였다. 그렇다면 외면하거나 무시하면 그만일 텐데 그게 쉽지 않으니 스스로가 우스울 지경이라, 이번에는 그 어떤 도움 요청도, 그 어떤 수작질도 기필코 무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차피 1년 365일 중 300일 정도는 아모로트 밖에서 살고 오는 녀석이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지도 않은데, 그런 거에 일일이 휘말리고 성질을 내기엔 제 앞으로 쌓인 일이 많았다. 일만 많았을까, 해야 할 것도 공헌할 것도 많았다. 매일 시시덕거리며 놀고 있는 녀석과는 차원이 다르단 말이다. 여유 시간에 사고만 치는 녀석들보다, 명계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게 유익한 일일 거라며 에메트셀크는 그렇게 몇 번이고 말을 곱씹고, 혀 위에서 단어를 굴리다가 힐끔 문 쪽을 바라봤다. 

…왜, 안 오지? 이미 올 시간이 넘었는데. 창조물 관리국에서 에메트셀크원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이데아 반납 절차가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닌데. 하다못해 휘틀로다이우스의 에테르도 움직임이 없으니 스물스물 불안감이 느껴져서 에메트셀크의 구겨졌던 미간이 더 구겨지고 말았다.

대체로, 두 녀석이 붙어있으면 제 선에서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 법한 일이 감당 불가능한 일로 증식되곤 하니 불안한 거라고, 에메트셀크는 애써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도 가벼운 현기증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아, 오늘은 정말 자야겠어. 아젬 녀석도 돌아왔으니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겠지……. 에메트셀크원이 아니면 자신의 집에 쳐들어와 귀찮게 엉겨드는 녀석이니 분명 오늘은 자기 싫대도 억지로 잠이 들고 말 거라고 에메트셀크는 막연히 생각하다 허? 하고 멍청한 소리를 흘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그 녀석이 아모로트에 돌아오면 자신을 보러 올 거로 생각하게 되었지? 에메트셀크원에 있던 자신의 집에 있던, 어떻게든 찾아올 거라는 확신을 하고 기다리고 있게 됐지? 왜, 그 녀석이랑 같이 잠을 잘 거라고…… 생각했지?

그저 저를 귀찮게 하고, 심란하게 만드는 바보 같은 녀석인데…… 대체 언제부터?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순간, 에메트셀크의 머릿속엔 온통 그 녀석으로, 아젬으로 가득 차 버렸다.

매번 지저분하고 꾀죄죄한 몰골로 와서는 안녕, 하데스! 나 돌아왔어! 하고 활짝 웃던 모습이나, 조금은 침잠한 모양새로 잘 지냈어? 하고 눅눅한 얼굴로 묻던 거나, 훌쩍대면서 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우울해하던 거나, 잔뜩 찢기고 다친 모양새로 별것 아니었다고 덤덤히 말하던 것들까지. 언제나, 정말 한 번도 변함없이 그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모로트에 발을 대는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제일 먼저 저를 찾아왔었으니까, 그게 자신에게도 익숙해질 만큼 정말 오랜 시간을 그랬던 녀석이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그렇지 않고서, 지금을 납득할 수가 없었기에. 

이건 다, 며칠째 잠도 못 자고 일만 해서 그럴 터였다.

날씨 좋은 광장에서 따듯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잠시 낮잠이라도 잤다면 이딴 생각 같은 건 안 했을 텐데. 아니, 하다못해 텁텁한 시데리티스 차라도 뜨겁게 데워 마실 수 있는 여유라도 있었다면, 아주 조금만 몸이 덜 뻐근했더라면, 그랬다면. 

에메트셀크는 복잡미묘한 얼굴을 하고 문 쪽을 쳐다보다 서류를 한 번 보고, 아젬 녀석 따위 알게 뭐냐, 잠을 오래 못 잤으니 멍청하고 나사 빠진 생각이나 하는 거라고 자신을 스스로 구박하고서 깃펜을 손에 쥐었다.

전에 누구였더라, 수면과 정신건강의 관계성에 관한 토론을 민중 회의실에 상정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거기에 참관이라도 해 볼 걸 그랬나? 어쩌면 저는 훌륭한 표본으로서, 수면 부족이 인류에게 미치는 해로움에 대해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아아니,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아니지……. 

귀찮게 할 거라 예상했던 녀석이 찾아오질 않는다는 건 오히려 다행이지 않나. 빨리 남은 서류를 처리하고, 괴상한 생각이나 하는 머리통을 레태 해에 푸욱 담가서 차갑게 식힌 다음에 어둑한 명계로 들어가 실컷 잠이나 자고 나와야지. 거기라면 휘틀로다이우스도, 아젬 녀석도 저를 귀찮게 하지는 못할 테니까 제게 그 어디보다 안전한 요람이 되어줄 터였다. 물질계의 시야던 에테르계의 시야던 죄다 닫아버리고,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잠에 빠져들어 며칠이고 잠들었다가 나와야지.

그래, 그게 좋겠어.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어느 정도 정리되어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었음에도 에메트셀크의 눈동자는 서류에 고정된 채로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분명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인데도, 한숨이 푹푹 새어 나오고 자꾸만 문 쪽을 보게 되어서, 에메트셀크는 손안에서 깃펜을 반쯤 너덜거릴 정도로 꽉 잡고 있었고, 그의 손아귀 힘을 버티지 못한 펜에서 으적거리는 소리가 나고서야 신경질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아젬 녀석이 보고 싶어서 일어난 게 아니다. 휘틀로다이우스 하나로도 벅찬데, 거기에 오랜만에 돌아온 아젬까지 붙어있으면 분명 귀찮고, 여러모로 열 받고, 성질이 나고, 짜증이 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줄줄이 터지고 말 테니까 당장 수작질 못 부리게 제가 들이닥쳐서 잔소리를 해야 했다. 그래, 그래서 일어난 거였다. 지금 그 악동 녀석들은 머리를 맞대고 작전 회의 따위를 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지!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잔뜩 생각한 후에, 서류를 보려고 닫았던 시야를 다시 열고 고개를 창조물 관리국 쪽으로 돌리자 에메트셀크의 시야에 보인 건, 휘틀로다이우스의 에테르 하나여서 눈을 꿈뻑이지도 못한 채 가만히 얼어버리고 말았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보였던 게 보이질 않으니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라 머릿속이 엉망진창으로 엉켜 들어갔다. 

어디 갔지……? 아니, 아모로트 내에 없어?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잖아. 대체 어딜 간 거지? 왜, 아모로트에 왔는데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지……? 뭐야, 지금까지 이런 적 한 번도 없었잖아…….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거지 그 녀석. 어디, 아픈가……? 혹시, 많이 다치기라도 했나? 내가 잔소리 할까 봐 어디 숨기라도 한 건가? 아니 숨었어도 보이는 게 정상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는 걸 보면 아모로트를 빠져나간 게 분명했다. 그 잠깐 사이, 창조물 관리국만 들렸다가 다시 나갔다고? 왜? 

에메트셀크는 멍하니 자리에 다시 앉고서 미간을 잔뜩 구기고 말았다.

언제나 예상 밖의 행동을 하는 녀석이라 예상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걸 아모로트의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예상이 빗나가서 이렇게 크게 동요한 적은 처음이라, 그가… 아젬이 자신을 보지도 않고 다시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아젬 하나에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스스로가 어이가 없었다. 

대체, 그깟 게 뭐라고. 아젬이 저를 쥐고 흔드는 듯한 지금 이 상황이 불유쾌해서 에메트셀크는 에테르로 보던 눈을 닫고 코웃음을 친 채 서류에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서류는 많았고, 에메트셀크는 피곤했으며, 아젬은 아모로트에 없었다.

늘 똑같은 하루일 뿐이었다. 매일같이, 변함없이, 에메트셀크에게 주어진 24시간이란 늘 그랬다. 분명 그랬어야 했을 텐데. 

어쩐지 에메트셀크는 아까보다 더 피곤해져서 결국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말았다. 딱 5분만 자고 일어나야지. 머리가 완전히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하겠으니까, 딱 5분만. 

…그렇게 바쁘면 인사만이라도 하고 가지.

하여튼,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는 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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