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는 가정

Anest by 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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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게이트3 / BG3

고타쉬->다크어지 / 어두운 충동

※ 이걸 더지타쉬로 볼수있을까요. 선성향 다크어지와 연인(정해진 캐릭터가 없음)이 등장합니다.

다크어지 / 어두운 충동의 성별과 종족 모두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 폭풍권역 소서러를 암시하는 묘사가 몇개 있습니다만, 반드시 폭풍권역 소서러를 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겐 주문서가 있으니까요.

※ 3막을 포함한 게임 스토리 전반의 스포일러 포함


 

바알 스폰이 살아있다. 벼락처럼 내리치는 번뜩임으로 언제나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빌어먹게도 오만하고 거만했던 바알의 총아. 그 소식에 자신도 놀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 고타쉬는 오린의 방자한 태도마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적색의 오린이 스스로가 혈육을 꺾고 바알의 새로운 선택받은 자가 되었다 말을 한 이후로 이렇게 가슴이 뛴 적이 있던가? 고타쉬는 적확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가 담당해야 할 일이 정확히 세배가 늘었으니.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에서 늘어난 수염과 눈 밑 그늘을 보며 혀를 찼던 것도 잠시, 그는 정말 거울을 볼 틈도 없이 바빴다. 외모를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잠시라도 눈을 감고 혹사당한 눈과 정신을 쉬어야 했을 정도였을 지경이었다. 넌지시 머큘의 사도인 케더릭 토름에게 사소한 일을 떠넘겨 보았으나, 그는 칼같이 그것은 저의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오린? 뭔가를 맡기느니 차라리 죽어서 베인의 곁으로 가겠다.

  아무튼, 고타쉬는 바알 스폰이 발더스게이트로 향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 오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 확신했다. 바알 스폰이 돌아오면 이 빌어먹을 네더브레인도 더 이상 허튼 생각을 관두겠지. 그렇게 되면 고타쉬가 겨우 땜질해서 힘들게 굴러가기만 하던 계획이 드디어 제 궤도에 오르게 될것이다. 머큘의 사도의 빈자리 정도는 바알 스폰이채우고도 남을 테니 그의 자리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돌아온 탕아는 네더스톤을 두 개 가질 자격이 있다. 그리고 이제, 세계는 완벽하게 끝장이 나겠지. 고타쉬는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날 밤, 발더스게이트에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도시도 제 운명을 아는 모양이었다. 슬프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들으며, 고타쉬는 자연스레 바알 스폰을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도 오늘처럼 폭풍우가 치던 밤이었다. 두어 번, 둔탁한 소리가 문을 두들기고, 고타쉬는 쉰 목소리로 눈치 없는 경비병을 향해 짜증을 담아 소리쳤었다. 이 시간에는 내가 방해하지 말라 말하지 않았나! 그리고 곧 귀가 멀듯 한 천둥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풍기는 탄내를 맡았더랬다. "…폭정의 검은 손, 문을 열어." 아홉 지옥의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목소리. 고타쉬는 그 목소리를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행동도.

  그자는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겉옷을 벗어 고타쉬가 꼬박 일주일을 밤새워 그린 설계도 위에 집어 던졌다. 그때 고타쉬는 자신이 아직까지 머리 꼭대기까지 화를 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성을 겨우 붙잡은 고타쉬는 과거와 현재의 모든 인내를 쥐어짜 내 그에게 질문했었다. "그대는 누구고, 어찌 이리 무례하게 행동하시오?" 그 자가 고타의 질문에 답했는가? 기억나지 않는다. 대답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설명하는 걸 만들도록. 그다음엔 넌 나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창고로 가면 돼."

"미친새ㄲ…. 뭐?"

"우린 카서스의 왕관을 손에 넣을 거야."

"…계획만은 들어주지."

  그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제 계획을 설명했고, 고타쉬는 그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받아들였다. 다른 자가 제안했으면 그자를 당장 워그의 밥으로 던져줄 만한 계획이었지만, 고타쉬는 도저히 그 계획이 실패할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을 ‘감’이라고 하던가. 고타쉬는 평소 ‘감’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며, 지성이 있는 자라면 냉철한 이성의 판단하에 움직여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카서스의 왕관과 함께 쌍을 이루는 네더스톤을 들고 ‘아무 일도 없이’ 지옥을 빠져나온 순간, 고타쉬는 이 자야말로 꿈에 그리던 완벽한 파트너임을 깨달았다. 고타쉬는 흥분으로 떨리는 손으로 미소 짓는 제 입가를 매만졌다.

"자네와 내가 힘을 합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군."

"무엇이든 해낼거다. 폭정의 검은 손, 내가 널 고르긴 했지만… 다소 과소평가했네. 너는 내 곁에서 어깨를 나란히 할 자격이 있어."

"편히 고타쉬라 부르게. 자네라면 그럴 자격이 있지."

  그 뒤로는 정말 끔찍하고, 아름다운 날이 나날이 이어졌다. 고타쉬에게는 행운이었고, 세계에는 불행이 찾아왔다. '세 개의 네더스톤이 나 아니면 너의 손에 두 개가 쥐어진다면 권력관계가 생길 거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그 관계가 대등할 수 없어. 우리 계획이 잘 흘러가려면 하나가 더 필요하다.' 그런 고타쉬의 의견을 받아들인 바알 스폰은 세 개의 네더스톤을 나누기 위해 머큘의 사도에게 계획을 공유했다.

  고타쉬는 머큘의 사도는 꼬장꼬장하고 융통성 없는 재미없는 자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기에 바퀴 하나의 축을 담당할 만큼의 수준은 되었다. 그는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 할 줄 알았고, 엘더 브레인 역시 바알스폰에게 감화되어 순순히 족쇄를 차는 것을 수락했다. 이 얼마나 순조로운 진행인가. 하지만 상승이 있다면 하락도 있는 법이다. 이 비극은 그 끔찍한 적색의 오린이 마차도 몰 줄 모르는 주제에 제 것이 아닌 고삐를 채가며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제 바알 스폰이 돌아올 테니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너는 누구지?" 경계심 어린 표정, 그런데도 궁금한 것이다. 당연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무이하게 너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자였으니. 그 말을 목으로 삼키며 고타쉬는 그저 대관식을 보고 가라 초대했다. 때가 되면 바알스폰은 고타쉬를 찾아올 것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그랬던 것처럼. 얼더의 아들과 옛 경호원이 그를 향해 당장이라도 주먹과 도끼를 휘두르고 싶어 보였지만 그것은 지금의 고타쉬가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바알스폰이 어련히 알아서 잘 처리하겠지. 고타쉬는 그들에게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 저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 게 바알 스폰이 맞나? 저건 뭐지?' 고타쉬는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그 기품 있고 위엄이 넘치던 바알스폰이 저런 멍청…. 얼빠진…. 고상하지 못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고? 기억을 잃었더라도 타고난 사람의 눈길을 이끄는 불가사의한 것이 있으니, 자연스레 제 사람을 만들어 올 것은 충분히 예상했다. 누가 그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저 기분나쁜 표정은 도대체!' 어째서인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진정시킨 고타쉬는 완벽해야 할 대관식을 위해 차림새를 다시 한번 가다듬었다. 조금 긴장되어 보이는 모습도 가산점일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는 없다. 시민들이 원하는 것은 영웅, 구원자의 당당한 모습이므로.

  어차피 탐탁지 않아 보이는 바알 스폰의 표정은 질리도록 봐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적은 없었는데. 무언가 기묘하고 불쾌한 감정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다시 고타쉬의 뇌를 쿡쿡 찔렀다. 

  그런 고타쉬의 눈에 바알스폰의 행동이 하나 들어왔다. 설마. 바알스폰이 다른 동료와는 사뭇 다르게 대하는 이가 하나 있다. 서로를 툭툭 건드리는 가벼운 몸짓. 조금 더 조심스러운 눈빛. 눈동자에 담긴… 신뢰? 설마. 아닐 거야. 그가 그런 관계를 누군가와 맺을 리가 없다.

- ㅁㅁㅁㅁ.

  그리고 그자가 작게 바알스폰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것을 입에 담았을 때, 고타쉬는 순간 표정을 관리할 수가 없었다. 바알스폰의 이름? 그런 것이 있던가? 내게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금세 표정을 갈무리한 고타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게 혀를 찼다. 최고의 날이어야 할 날이 최악이 되었다.


  그날, 고타쉬는 제 것이 된 대공 집무실에 앉아 무언가를 생각했다. 바알 스폰. 아니, ㅁㅁㅁㅁ. 무척이나 어울리는 이름이다. 수많은 이름을 떠올려봤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이름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을 만큼이나. 그 이름을 가진 자를 세상에 단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 고타쉬는 생각을 멈췄다. 생각이라는 건 가끔 이렇게 폭주할 때가 있는 법이다.

  짧게 심호흡을 한 고타쉬는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이지? 나만이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고작 기억을 잃었다고 그렇게 변해버린다고? 이번에는 도저히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치솟는 분노를 아랫배에 꾹꾹 눌러둔 고타쉬는 오래전 바알 스폰과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자넨 언제 내게 이름을 가르쳐줄 건가?"

"고타쉬, 내게는 그런 의미 없는 게 있을 필요가 없다. 결국 이 대지에 마지막으로 남을 것은 내가 유일한데."

"바알스폰은 둘이잖나. 구분해야지."

"…그러면 살육의 선택을 받은 자, 바알의 총아, 어두운 충동 그중 네가 원하는 것으로 부르도록."

  바알 스폰은 분명 그리 말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얼굴의 근육도 긴장이 풀려있었다. 분명, 분명 그랬는데. 다른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다른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오로지 고타쉬만이 그렇게 부를 수 있었다. 진정한 바알 스폰은 그자 하나였고, 남은 것이 구분을 위해 오린이라 불린것이기에.

  고타쉬는 가만히 떠올리던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을 발견했다. 우연히 듣게 된, 어느 날의 바알 스폰의 기도. 늘 경건한 모습으로 올리던 것과는 달랐던, 마치… 지어서는 안될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처럼 들렸던 그것.

- 아버지, 저의 몸은 아버지가 내려주신 피와 살과 숨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 제 심장은 아버지의 것이고 영혼마저 그대의 일부입니다. -

- 제가 어찌 당신을 거스르겠습니까. -

- 저는 당신의 충실한 종이고 당신을 위한 처음이자 마지막 제물입니다. -

- 아버지, 나의 아버지시어… -

  '그래, 그것이군. 그때는 왜 몰랐지?' 미간을 찌푸린 고타쉬는 그때 바알 스폰의 손등에 박힌 붉은 단검을 떠올렸다. 제 손등에 칼을 박아 넣고 광기 어린 눈빛으로 조용히 오열하던 모습은 지옥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자부하는 고타쉬에게도 제법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 그는 잠시 겁을 먹었다. 그가 그것을 뽑아 제게 휘두를까 봐. 고타쉬는… 그때는 그가 자리를 피하는 게 옳다 생각했었다. ‘친구’의 치부를 모두 볼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날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알 스폰은 오린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깔깔대며 혈육을 가장 비참한 꼴로 만들었다 소리 지르는 오린을 당장이라도 계획을 망쳤다며 찢어버리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고타쉬는 그것이 계획을 망친 것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단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 끼기긱. 끼긱.

  고타쉬의 화려한 금속 장갑이 탁자를 거칠게 긁는 소리가 집무실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고타쉬는 입 밖으로는 아무런 말을 내뱉지 않았다. 말을 참기 위해 강하게 짓씹은 입안의 살이 터져 비릿하고 뜨뜻한 무언가가 입안에 고였다, 목뒤로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조금 더 집요해야 했는데.'  그날 내가 눈치챘다면, 네 이름을 아는 것은 나였을 것이다. 끝내 바알에게 내주더라도, 단 한 번이라도 내가 네 이름을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너를 신뢰하지 않은 것이다. 네가 내게 칼을 휘두르리라 생각던 것이 나의 실패였구나. 그래서 내가 널 잃었어. 고타쉬는 눈을 감았다. 지금 그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생각은 불필요하고, 쓰잘데기 없고, 의미도 없는 가정임을 자신도 충분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주 잠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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