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움, 그 시작의 이야기
어이, 날 동료로 삼아라
토레님 커미션
변방의 작은 마을. 특별한 것 하나 없는 흔하디흔한 마을이었지만 이곳엔 조금 특별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츠보미. ‘꽃봉오리의’ 츠보미는 마을의 재단사였죠. 츠보미의 집안은 예로부터 실력 좋은 재단사 가문이었습니다. 개중엔 큰 도시로 나가 쁘띠끄를 연 유명한 사람도 많죠.-물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다신 고향 땅을 밟으러 오지 않지만요- 츠보미는 자신이 이런 가문의 재능 있는 아이라는 사실에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름 전통 있는 핏줄이기에 무용담(?)이 꽤 많았지요. 그 중 츠보미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느 고성에 사는 고풍스럽고 새하얀 남자-사람들은 뱀파이어라고 불렀어요―의 옷을 지어준 일화였습니다.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츠보미는 언젠가 자신도 그런 멋있고 빛나는-얼굴은 본적 없지만요- 사람의 옷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츠보미는 어릴 때만큼 반짝이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두근거림도 느껴지지 않았어요. 소위 말하는 슬럼프라는 것이었지요. 작은 마을이다 보니 늘 같은 일상만 반복해서 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은 마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라곤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아빠였다거나. 정육점 아저씨와 과수원 집 언니가 야반도주 했다거나 하는 싸구려 촌극 같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루해……."
언덕 위 공방의 낡은 책상에서 가위질 하던 손을 내려놓고 작은 창문의 밖을 쳐다보았습니다. 늘 똑같은 변함없는 푸르른 하늘이었죠. 이 지루하고 한결 같은 장소를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늘 가슴 한켠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만, 혼자서 떠나는 여행엔 좀처럼 자신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주 작은 계기가 생긴다면 좋을 텐데.
하아…….
한숨을 쉬며 한참을 멍을 때리다보면 창문에 무언가가 달라붙습니다. 종이 같아 보이는 그것엔 처음 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것을 가져오면 거기엔 [Twilight Troupe]라는 글씨가 적혀있습니다.
'Twilight Troupe' 이는 츠보미도 잘 아는 이름이었습니다. 최근 비행정을 타고 곳곳을 누비며 무료로 공연을 보여주는 기곡예단이었죠.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합니다.
츠보미는 오랜만에 눈을 반짝였습니다. 이 공연을 보면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도 몰라─. 입을 중얼거리면 종이는 어느새 구겨져있습니다.
"앗, 그런데 늘 무언가 보물을 가져간다고 했지... 으음 이 작은 마을에 보물이 있나? 촌장님 집에 금괴라던가 있을 거 같지만……."
똑똑.
누군가 공방의 문을 두드립니다. 츠보미는 의아해 하며 나무로 된 문을 엽니다. 낡은 문은 끼이익 하는 불쾌한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문을 열면 거기엔 남자가 서있습니다. 로브를-엄청 고급스런 천으로 만들어진 옷이에요!- 푹 눌러쓴 남자는 한손에 토끼를 닮은 인형을 들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
"저기?"
아무 말 없이 입술만 달싹이며 우물쭈물 거리던 남자는 손에 잡고 있던 인형을 위로 올립니다. 츠보미와 인형의 눈높이가 맞춰지고 곧 인형의 뒤에서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
[여기가 재단사가 있는 곳이라고 들었어. 수선 해줬으면 하는 게 있어서…….]
"어머 그런가요? 으음, 맞긴 하지만 오늘은 쉬는 날인데……."
"……."
인형과 남자의 얼굴이 축 늘어지며 비에 젖은 고양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런 표정을 봐버린 이상 다정한 츠보미는 이제 이 남자를 모른 척 할 수 없게 됩니다.
"어쩔 수 없죠. 들어오세요. 급한 건가요?"
인형을 든 남자는 얼굴과 인형을 동시에 끄덕였습니다. 츠보미는 그런 그의 행동이 귀여워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지요.
"수선 맡길 옷을 보여주세요."
츠보미는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자는 품에서 새로운 인형을 꺼냈습니다. 옷이 아닌 인형인 것에 조금 놀라 주춤 했지만 이내 다정한 녹색 눈동자로 인형을 바라봅니다. 인형은 옆구리가 찢어져 솜을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인형을 수선하면 될까요? 츠보미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인형과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습니다.
[응. 그리고 이것도.]
또 다시 로브 안에서 꺼낸 것은 작은 옷이었습니다. 예상하건데 이건 인형이 입는 옷이겠지요. 츠보미는 활짝 웃으며 네! 라고 기운차게 대답했습니다. 그 기운찬 대답을 들으면 마을의 모두가 절로 미소를 짓곤 했는데, 인형을 들고 온 남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과묵한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거든요.
째깍. 째깍. 다 낡은 시계가 흐르는 이례적인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났을 때 쯤. 츠보미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의자에서 일어섰습니다.
"말끔하게 고쳤어요!"
수선 자국조차 남지 않게 말끔히 바느질을 마친 츠보미가 기운찬 목소리를 내며 남자에게 인형과 인형 옷을 내밀었습니다. 기운찬 모습에 남자는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지만, 손은 제대로 츠보미가 건네 온 것을 받아 들었습니다. 온기가 남아 있는 그것은 따스했습니다.
[고마워. 넌 정말 실력이 좋네.]
제대로 물건을 건네받은 남자는 다시 로브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짤랑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 보수를 주려는 거겠죠. 하지만 츠보미는 받지 않았습니다. 의아해하는 남자에게 오늘 그런 기분이라며 봄바람 같은 웃음을 살풋 터트렸죠.
[…오늘 이 마을에서 곡예단의 공연이 있는 것 알고 있어?]
"네,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보러갈 참이었답니다."
[…답례로 최고의 공연을 보여줄게.]
"네?"
남자는 그 말만 남긴 채 낡은 공방을 나갑니다. 덜컹거리며 나무로 된 낡은 문이 닫히는 것을 츠보미는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남자가 남긴 말을 이해하기 까진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형은 제대로 수선 한 모양이네요."
모자를 쓴 남색의 남자가 말했습니다.
[응. 소문대로 이 마을에 실력 좋은 재단사가 있었어. 정말 귀여운 아이야.]
인형을 든 남자는 기분 좋은 듯 말하는 목소리가 다소 높아져 있었습니다.
"…그런가요?"
"잡담은 그만하고 공연 준비나 하세요. 누구 덕분에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까요."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금발의 남자가 나왔습니다. 칼엔 잘 버려진 작은 나이프가 들려있습니다. 어쩐지 나이프를 인형을 든 남자에게로 겨누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자자, 이제 싸움은 그만~ 또 찢어지면 이번엔 진짜 큰일이라구"
이번엔 나긋하게 말하며 오렌지 빛의 남자가 등장. 등과 손엔 여러 악기가 들려있습니다. 말하는 목소리엔 특유의 음률이 섞여있습니다. 평범한 말도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죠.
"그 말대로. 지금은 공연에 집중하죠. 우리의 쇼를 봐주는 사람들이 또 많이 모였으니까요."
[응.]
그 아이도 와 있겠지.
Twilight Troupe의 공연이 이제 막 시작 될 참이었습니다.
3
2
1
제로!
"여러분─. 부디 쇼의 마지막까지 즐겨주시길───."
어두웠던 무대 위의 모든 조명이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한꺼번에 켜지면 무대 위는 그야말로 장관. 처음 보는 풍경에 이 공연의 관객인 마을 주민들은 시선을 빼앗깁니다. 신선한 자극에 몸도 마음도 빼앗겨 버리죠.
'칼잡이'의 다소 아슬아슬한 곡예. '음악가'의 천상의 목소리. '인형사'의 모두를 매료시키는 인형극.
이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앙상블을 만들어냅니다. 관객들은 눈을, 귀를 도저히 어디다 둬야할지를 모르며 행복한 고민을 합니다.
아아. 이거야. 이거라구!! 침을 삼키며 눈을 깜빡이는 시간마저 아쉬워하며 무대의 모든 것을 츠보미는 자신의 녹색 눈동자에 담습니다. 환한 조명 탓일까요? 눈동자는 보석 같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츠보미는 저도 모르게 무대 위로 손을 뻗습니다. 자신도 저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욕망이 튀어 나온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앗."
손을 뻗은 곳엔 토끼를 닮은 솜 인형이 있습니다. 어딘가 익숙한 인형. 츠보미는 한참 전 공방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역시 곡예단 사람이었구나. 츠보미는 좀 더 시선을 올립니다. 거기엔 인형을 움직이는 사람이 보입니다. 츠보미의 앞에서 소심하게 행동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사람을 홀릴 듯한 미소를 지은 채 인형들을 조종합니다. 그가 움직이는 인형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 같습니다.
"…!"
순간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무대 위의 '인형사'는 츠보미를 향해 천천히 입 꼬리를 올립니다. 그리고 곧───. 인형들이 일제히 춤을 추듯 한곳으로 몰려듭니다. 마치 폭발하듯 그것들은 튀어오르며 시선을 빼앗았습니다. 인형이 꼭 저들만의 자아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느껴질 정도로 인형의 움직임은 자연스럽고 생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츠보미의 빛나는 녹색 눈동자는 완전히 인형의 움직임에 몰입했습니다.
…츠보미가 인형들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에도 '인형사'는 여전히 츠보미를 보고 있네요.
‘Twilight Troupe’의 공연은 계속됐습니다. 이 날 이후 츠보미의 일상엔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공연을 보고 당일 지쳐 잠들 때까지 공방에서 옷을 만드는 일을 반복했죠. 그거 자신의 본능, 감각에만 의지 한 채 만들고 있는 옷은, 본인도 본인이 무슨 옷을 만드는 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것이 완성 된다면. 필히 근사한 보물이 될 것이라는 사실 하나 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시간은 흐르고 공연의 마지막 날. 츠보미는 이 날은 공연을 보러가지 않았습니다. 옷을 마저 완성해야만 했으니까요. 멀리 공연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츠보미는 충분했습니다.
"오늘은 오지 않았나보군요."
커튼 뒤에서 빼꼼, 무대 밑 관객석을 두리번거리던 '인형사'에게 '칼잡이'가 퉁명스럽게 말을 던집니다. 마치 그가 던지는 단검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였습니다.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시치미 떼지 마세요. 매일 앞자리에서 우리 공연을 보던 어떤 여자애를 계속 신경 쓰고 있었죠?"
[…그애 눈이 정말 예쁜걸. 눈동자가 마치 빛나는 보석 같아!!]
인형이 갑작스레 자신의 바로 눈앞까지 다가오자 '칼잡이'는 답지 않게 당황합니다. 그리곤 표정을 구깁니다. 이래서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때가 되었군요.”
어두운 공방. 끼이익 하며 나무로 된 낡은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달빛을 받으며 어느 남자가 서 있습니다. 달빛을 전부 흡수 하는 것 같은 그 남색의 남자는, 'Twilight Troupe'의 '단장'이었답니다. 남자는 나무로 된 바닥을 걸어 나갑니다. 삐걱. 삐걱. 곧 걸음이 멈추고 시선의 끝엔 마네킹이 있습니다. 옷이 걸려 있네요.
"...놀랐습니다. 숨어있지 말고 나오시죠."
단장의 깊은 남색 눈동자는 마네킹, 그 너머를 바라봅니다. 너머의 어둠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멋쩍게 웃으며 나오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이 낡은 공방의 주인인 ‘재단사’ 츠보미입니다.
"알고 있었나요?"
"당연하죠! 이 마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공연 마지막 날 완성 된 바로 이 옷일 테니까요."
자신이 만든 옷을-감히 저의 역작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부드러운 눈빛으로 어루만집니다. 자기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자애 넘치는 눈빛 같다고, 단장은 생각합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달빛은 옷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무대 위의 주인공 같습니다.
"보기 좋네요. 그런 자신감. 아, 참고로 비꼬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정적.
"...한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들어드리죠."
"전 늘 이곳을 떠나 여행을 하고 싶었어요."
드물게 진지해진 눈빛으로 말을 느릿느릿 내 뱉으며 츠보미는 점점 앞으로 다가옵니다. 츠보미의 눈동자는 어둠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았습니다. 녹색 눈동자는 똑바로 단장을 쳐다봤습니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어요. 저를 당신들의 배에 태워주세요. 저를 동료로 받아주세요!!!!!!!!"
"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츠보미는 마네킹에서 옷을 벗겨 달려 나갑니다. 단장은 눈앞에서 보물을 놓칩니다. 멀어지며 츠보미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의 배로 갈 거예요!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단장은 한숨을 내쉽니다. 하지만 어쩐지 이런 결말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네요."
한쪽 입 꼬리를 올린 채 낡은 문에 기대어 그는 뛰어가는 츠보미를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 존재가 있음으로서 완성되는 보물 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합니다.
이미 이들의 비공정 위치를 파악해둔 츠보미는 헤매지 않고 도착합니다. 어느곳 하나 흠난 곳 없는 배는 달빛을 받으며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츠보미는 다소 뻔뻔하지만 배에 올라갑니다. 이미 한차례 체력을 소모 했음에도 츠보미에겐 지친기색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밤늦게까지 언덕 위, 자신의 낡은 공방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체력하나는 자신 있었죠.
타악. 배의 갑판에 올라서자 츠보미는 달과 더 가까워집니다. 눈동자는 더욱 빛을 내지만 이것은 비단 달빛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빛엔 미래를 향한 기대, 앞으로 시작될 여행의 두근거림도 들어가 있었으니까요.
"아……."
익숙하고도 낮은 목소리가 들려 츠보미는 얼굴을 돌립니다. 그곳엔 '인형사'가 있습니다.
츠보미와 눈을 마주친 인형사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마치 츠보미의 눈동자에 속박 당한 것처럼 그대로 굳어버립니다. 정말 예쁜 눈동자. '인형사'는 탁. 탁악. 천천히 츠보미에게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물론 손엔 인형을 들고서요.
보석. 아니 특유의 생기를 머금은 녹색의 눈동자는 보석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다. 인형사는 츠보미의 얼굴로 천천히 손을 뻗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욕망.
'갖고 싶어.'
"저, 저기……."
츠보미의 당황한 목소리에 인형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손을 떼어냈습니다. 그는 인형을 꺼내들고 인형을 통해 사과했습니다. 츠보미는 괜찮다며 웃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
"아! 저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여행을 할 거예요! 아 물론 아직 단장님에게 제대로 허락은 받은 건 아니지만 에헤헤……."
다정한 목소리로 해맑게 웃습니다. 그 순간, 함께 있는 이 공간이 봄날의 꽃밭이 된 것을 느낍니다. 봄바람이 불어와 자신을 간질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인형사는 저도 모르게 인형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시간이 지나자 '단장'이 비공정으로 들어옵니다. 갑판엔 이미 '칼잡이'와 '음악가'가 나와 있었는데 갑판의 구석에 칼이 몇 개 박혀 있는 게 보였습니다. 츠보미의 머리는 반쯤 풀려있고, 아무래도 한바탕 한 모양입니다.
"여자에게 냅다 칼을 던지는 건 너무 했어요."
"전 아직 당신이란 존재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침입자에 불가해요."
"자자. 진정하세요. 뭐 저도 난감하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죠."
단장은 상황을 그저 말 한마디로 간단명료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츠보미를 향해 손을 내밀었습니다. 멀뚱멀뚱 바라보던 츠보미는 옷에 손을 쓱쓱, 닦아내고는 단장의 손을 잡았습니다.
"보물은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잘 부탁드리죠. 앞으로는 저희와 함께하는 겁니다."
'칼잡이'는 인상을 구기며 혀를 찹니다. '음악가'는 즉석에서 곡을 뽑으며 츠보미를 환영해줍니다.
그리고 인형사는── 츠보미에게로 가까이 다가갑니다. 인형을 들고요.
"응? ...!"
쪽.
츠보미의 입술에 닿는 것은 푹신하고 부드러운 감촉.
[...잘부탁해. 정말 기뻐.]
"다음 행선지는 정해졌군요.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단장은 바닥을 쓸고 있던 츠보미를 불렀습니다.
"다음 공연을 위한 의상을 부탁하고 싶은데요. 당신은 이 배의 '재단사'니까 가능하겠죠?"
츠보미의 얼굴엔 금세 희열이 차오릅니다. 천천히 커지는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생기가 돕니다. 츠보미는 고개를 세차게 위아래로 흔들며,
"물론이죠! 저는 이 배의 '재단사'니까요. 못 만드는 옷은 없어요!!"
'재단사'의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된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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