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아무말해요

어느 소년의

마지막 이야기_아이작 그레고리의

“누가 내 집 앞에서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나 했더니.”

돌로 장식된 길 위에 구둣발 소리가 맴돈다. 그 목소리에 아이작은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옷을 털고 웃었다.

“네 집이자 내 집이죠.”

“십수 년전에 나갔지 않은가. 이름과 함께 전부 두고 가길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집사를 데리고 대동한 은발의 청년은 아이작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같은 머리색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두 사람을 혼동할지도 몰랐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아이작과 다르게 청년은 그 고운 미간을 구기면서 말을 이었다.

“팔은 또 어디에 버리고 왔나.”

“은혜를 갚았죠.”

“뒤처리한다더니, 뒤처리 당한 모양이군.”

“어라,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나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이작의 왼팔은 텅 비어 있었다. 후드의 팔 부분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거나 묻지. 왜 돌아왔나? 그대로 해적 행세를 하며 떠돌 줄 알았는데 말이야.”

“오랜만에 본 형님한테 너무 매몰차게 구는 거 아니에요? 이 형님, 슬퍼요.”

아이작은 제 형제들에게 했던 버릇처럼 입가를 가린 채 웃었다. 얄궃은 일이지. 이 웃음을 볼 형제들은 이제 제 앞에 없으니.

“장난질 하는 것을 보니 먹고 살만 한가 보군.”

“뭐― 도망치고 살아남는 거 하나는 특기잖아요. 내가.”

“그래서 가주 자리를 두고 도망쳤나?”

너 때문에 내 계획이 엉망진창이란 말이네. 청년의 말이 퉁명스레 내뱉어졌다. 분명, 악의따위는 담기지 않아, 어쩌면 어린 아이의 투정같기도 하다고 아이작은 생각했다. 그야 악의가 담겼다면 직접 나오지 않고 하인을 시켜 내쫓았을테니까.

“그래도― 이제와서 그 무거운 자리를 내려놓을 생각은 없잖아요?”

“당연한 소리 말게.”

“그럴 줄 알았어요.”

바람 결에 웃음소리가 묻어나오고, 은발의 청년, 미카엘은 머리가 아파온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정말 본론이 뭐야, 이삭.”

“어라라― 그 이름, 정말 오랜만이네요.”

“네가 이삭이 아니면 뭐란……. …본론.”

“에이, 안 넘어오네요. 어릴 때의 그 귀여움은 어디로 사라졌담?”

“이 나이에 어린 시절을 찾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두 사람 사이에 짭조름한 바닷 바람이 불었다. 꽤 멀지 않았던가, 싶어도 섬은 섬인가보다 싶어서 웃음을 흘린 아이작이 자신감있게 입을 열었다.

“네 재능으로 나를 빛나게 해줘요.”

“또 뜻 모를 말만 하는군.”

“어라, 이런 것도 못 알아들으면 바보가 아닌가 싶은데요—?”

“내쫓기고 싶다는 말은 돌려서 하는 게 아니라네.”

“차가워라.”

미카엘은 알고 있었다. 가족이라고 불렀던 동료를, 신체의 일부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온 자신의 형이 무엇을 바라는지. 그는 과거의 상처를, 아픔을 잊으려 목숨을 걸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일로 모든 것을 잊을 생각이라니. …어쩌겠는가, 아이작은 그의 하나뿐인 형이었고, 미카엘은 그것을 내칠 정도로 냉정하지 못했다.

“…그레고리의 이름으로 살 생각은 말게.”

“어라, 그런 특혜까지 바라진 않았네요~.”

아이작은 자연스럽게 발을 옮겨 거대란 저택 안으로 향했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집, 아이작은 그렇게 천천히 흐려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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