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독스 로이드 4화
카인
불안이라던가, 공포라던가… 그런 세세한 감정을 프로그램 해놓고, 초기 설정을 완료하지 않았다니 말이야.
그 감정이 가짜라고 해도, 너희들은 괴로울 거고, 곤란하잖아. 잘 모르겠지만.
나를 배려한 카인의 말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로봇이라면 착각이다. 카인은 오웬에게 총을 겨눴고, 무선 너머의 목소리는 고철로 만들라고 했다.
아키라
(이 거리는… 어시스트로이드는 뭘까? 에어바이크처럼, 떠올릴 수 없을까…)
카인
아키라, 오웬. 사이드카에 타 줘. 엔지니어인 지인의 가게에 데려갈게.
오웬
하?
카인
내 말을 들어줘. 그렇지 않으면, 갓 태어나자마자… 출품되자마자 너희들을 부숴야 하는 처지가 될 거야.
너희들이 완성되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오너가 있어. 가능하다면 부수지 않고 전해주고 싶어.
오웬
몰라, 오너 따위. 나는 아무에게도 부숴지지 않을 거고, 나는 내 맘대로 움직여.
카인
어시스트로이드에게 자유가 허가되는 건, 관리자의 관리하에 있을 때 뿐이야. 공공 장소에서는…
오웬
그런 건 이유가 안 돼. 나는 먹고 싶은 게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
아키라
(역시, 그 소프트 크림, 먹고 싶은 걸까…)
(그런 현장감 있는 CM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면 먹고 싶어지겠지… 나도 조금은 먹어보고 싶고.)
카인
이 이상 네 떼는 들어주지 않을 거야. 네가 테러리스트의 도구라는 가능성이 있는 이상…
아키라
저, 저기…
카인
왜 그래? 아키라.
아키라
오웬은 아마, 저게 먹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길 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홀로그램으로 된 별이 무너져 흩날리며, 담홍색의 소프트 크림이 튀어오른다.
카인
CBSC? 매년 이 시기에는 먹고 싶어지지. 나도 이미 먹었어.
오웬
하? 자랑?
아키라
CBSC가 뭔가요?
카인
체리 블로썸 소프트 크림이야. 폴먼트 시티의 명물인 천년수를 모티브로 만든 디저트지.
아키라
천년수?
카인
저 광장에 있는 큰 나무야. 예전에는 역사 있는 학원의 정원에 있던 것을 기증받아서, 시가 관리하고 있어.
나는 담홍색으로 만개한 꽃을 피운 큰 나무를 돌아보았다. 천년수라는 건, 천 년 전부터 심어져 있었던 건가.
카인
그런 거라면 얘기가 빠르지. 지인의 라보에 가준다면, CBSC를 사줄게.
오웬
반드시?
카인
그래, 약속할게. 이걸로 됐어?
오웬은 내 의견을 구하는 듯이 나를 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기한 감각에 휩싸였다.
아키라
(약속, 할 수 있구나. 왜일까. 어쩐지, 가슴이 벅차. 기쁜 건지, 놀란 건지, 잘 모르겠지만…)
오웬은 내게 눈을 돌리고, 담홍색 꽃과 같은 색의 눈동자를 깜빡이며,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한쪽 어깨를 올렸다.
오웬
좋아. 하는 말 들어줄게.
카인
좋아, 정해졌어. 아, 그 전에 두 사람 다 입을 벌려줘.
아, 하고 나와 오웬이 입을 벌렸다. 그러자, 카인은 천천히 손가락을 꽂아넣었다.
아키라
으그그……!?
오웬
으그굿…!? 퉷, 퉷! 뭐야!?
카인
아, 입 안이 제대로 되어있구나. 이거라면 사줄 수 있어.
손가락을 빼며 카인은 상쾌하게 웃었다.
카인
음식을 입에 넣으면 고장나는 어시스트로이드도 있거든. 만약을 위해 조사는 해둬야지.
아키라
(이 사람, 상냥하지만 액션이 대범해…)
카인
그런데도, 배가 고프다고 말하게끔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도 하잖아? 정말이지, 부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자, 바이크에 타 줘. CBSC 트럭 근처로 날아가 줄게. 선전이 화려해서 재밌거든.
카인의 수다를 들으면서, 나와 오웬은 에어바이크의 사이드카에 몸을 실었다.
새빨간 서치라이트가 빛나고, 부아앙 하고 에어바이크가 공중에 떴다. 그러자, 세련된 멜로디가 흐르기 시작했다.
들뜨는 것 같은, 어딘가 그리운 것 같은, 남성 보컬의 명랑하고 팝한 사운드.
아키라
이 노래 제목이 뭔가요?
카인
레몬파이 러버즈가 부른 ‘만약 다음 4월이 근미래였다면’. 올디스를 좋아하거든.
튀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우리들은 밤하늘을 가볍게 주행했다.
잠들지 않는 네온 거리에는, 길 위에도, 하늘 위에도, 강의 수면에서도 컬러풀한 빛과 화려한 음악히 흘러넘쳤다.
고층 빌딩 사이를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비전을 옆눈으로 본다.
스타일리시한 포즈를 취한 여성이, 빌딩 그림자에서 거대한 윙크를 날리며, 밤하늘에 떠있는 구체는 웨더 뉴스를 알리고 있다.
호러 영화와 같은 리얼한 좀비가 노면을 가득 채웠다고 생각하자, 안심 단독주택의 세일즈 선전이 들어온다.
하얀 시설의 상공에서는, 새하얗게 빛나는 구름에서 신성한 햇살이 쏟아지는 영상이 보였다.
빛으로 된 커튼 아래에, 천사 날개가 달린 금발의 소년이 기도하는 듯이 손가락을 겹치고, 씩씩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금발의 소년
‘하트 재단으로부터 복지 시설에 기증된 성스러운 어시스트로이드, 이름하여 폴먼트 시티의 천사 리케의 정기 강연회 공지’
‘당신의 모금이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모금을 손에 들고, 저의 강연에 와주세요. ~오늘 밤도 신의 사도 리케가, 당신을 용서합니다~’
카인
저기가 CBSC 트럭이야. 위를 지나갈 거니까, 폭죽이 쏘아올라간 다음에 입을 벌리고 있어봐.
아키라
폭죽? 왓…!
핑크색 트럭의 지붕 위에서, 무수한 폭죽이 일제히 튀어올랐다. 나와 오웬은 입을 벌렸다.
그러자, 눈앞에서 거대한 소프트 크림이 나타났다. 우리들은 정면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아키라
(왓, 크림이 녹는 감촉? 꽃향기가 나는 풍미…? 크림투성이가 된 것 같아!)
오웬
마히하하!
카인
아하하! 혀를 내민 상태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오웬
맛이 났어! 아키라는? 맛이 났지?
아키라
맛이 났어요! 신기해! 먹어본 적이 없는데… 마법 같아!
오웬
이런 맛이구나. 빨리 먹고 싶어. 있지, 저 트럭에 세워줘.
카인
ID를 조사하고 나서.
오웬
반드시야.
카인
알았어, 알았어.
웃으면서 카인은 하늘 높이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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