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문동 호러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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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문동 호러 스토리

“이번엔 진짜라니까. 내 말 못 믿어, 여 선생?”

쌍문더힐 공인중개사 사무소 최 소장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여장선은 벽걸이 달력으로 권태로운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다를까 월요일이었다. 언제 또 주말이 갔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낯으로 가까스로 하품을 삼켰다. 

상근직 회사원들과 달리 프리랜서와 자영업자의 사이를 오가는 업종에 몸담고 있는 그에게는 기실 주말이랄게 달리 없어 어제만 해도 평택파주고속도로를 타고 예산에 내려갔다가 새벽 두시에 가까스로 다시 상경한 참이었다. 월요일 아침 일곱시 반부터 걸려온 전화만 아니었더라면 필경 해가 중천에 뜰 때 까지 늘어지게 자다가 오후가 다 되어서야 기어나왔을 것이나.

‘사무실로 나와봐. 나 자기한테 할 말 있어!’ 

광복 이전에야 문무양반을 으뜸으로 쳤대도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이치 아래에 있는 이십일세기 대한민국에서 으뜸은 누가 뭐래도 건물주였다. 임대인이 할 말이 있어 나오라면 임차인은 그냥 나와야 했다. 심지어 최 소장은 그냥 건물주도 아니고 쌍문역 이번 출구 십분거리에 위치한 부영빌딩 204호를 시세의 반값에 내어준 귀인 중의 귀인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암만 쌍문동이 방배동이나 서초동 같은 강남3구 노른자위 땅에는 한참 못 미친대도 서울은 서울이고 역세권은 역세권일진대 수도권 어디 가서 이 값에 이만한 사무실을 차리겠느냔 말이다. 어림도 없지. 

물론 당연하게도 애초에 건물을 지어 올릴때부터 부귀영화, 줄여서 부영빌딩이라고 이름 붙일만큼이나 물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최 소장이 순전히 자선의 마음으로만 그만한 은혜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여장선이 세들어 살고 있는 204호는 일종의 사고 매물로, ‘나온다’는 소문이 퍼져 이 년 사 개월 동안이나 세입자 없이 공한지로 놀고만 있었던 최 소장의 오랜 애물단지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소문인지는 알 수 없어도 헛소문인 것이 분명하지 않냐며 세상에 귀신이며 유령 따위가 다 어디 있느냐고 엄중한 태도로 일축했으나, 직전 세입자였던 피아노 선생, 그리고 그 전전 세입자였던 중식집 사장, 그리고 그 전전전 세입자였던 스포츠센터 관장까지 연달아 세 명이 채 일 년을 못 채우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듯 계약을 종료하자 귀신보다 적자를 더 무서워하는 최 소장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그제서야 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최 소장 앞에 나타난 것이 바로 젊은 독경사(讀經師) 여장선이었다. 그는 미색 정장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쥘부채를 멋들어지게 꼬나쥐고선 204호 공한지를 한바퀴 둘러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이 건물 올린 땅 문서. 누구한테서 사셨습니까?’ 

 

소장이 대답하기도 전에 촤라락, 쥘부채 펼치는 소리 이리한참 요란헐제, 말하지 않더라도 알리로다. 이내 여장선은 철종 대부터 내려온 토지 사유의 내력을 줄줄 읊어 내리고선 대한민국 부동산 중개업의 여러 사면에 이골이 난 최 소장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은원과 비화마저 꿰뚫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지막 화룡의 점정으로다 ‘집에 수험생 있으시죠? 지금 작년부터 뭐가 대단히 안 풀리고 있을텐데, 관운이 꽉 막혀가지고. 그게 다 쫓아낸 두꺼비가 애먼 운자리를 막고 있어서 그런겁니다.’ 라며 웃는데, 아니나다를까 최 소장 둘째 딸내미가 삼수생이었다. 그러니 별 수 있나. 홀리라면 홀려야지. 

‘보십시오, 소장님. 이미 딱지 붙은 물건 누가 들여가겠습니까. 이 사람 밖에 없지요?’ 

아무리 근대가 지구를 협소하게 만들고 개화된 도시가 미신이며 지엽적인 신앙 따위를 모조리 아스팔트와 시멘트 아래로 사장시켜버렸다고는 해도 사람들은 아직 불가해와 신비를 믿는다. 집값은 단지 사용가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고, ‘나온다'는 소문은 겉보기에는 전연 흠잡을 데 없는 매물의 값도 놀랄 만큼이나 쉽게 떨어트렸다. 

퇴마업과 중개업 사이의 기이한 공조가 필요한 까닭도 이와 같았다. 내로라 하는 중개업자들이 암암리에 철학관이나 역술소 따위에 줄을 대어놓는 이유가 따로 있겠는가. 그거 다 집값 때문이다. 

결국 오만 실랑이와 흥정질 끝에 상부상조의 도리와 저울추의 이치가 알맞게 자리잡히고 나서야 양자는 공조 합의에 이르렀다. 계약서를 인쇄한 최 소장이 볼펜 뚜껑을 입에 물며 으르댔고, 여장선은 싹싹하게 웃었다. 

‘내가 중개업 이십년차에 자기 같은 속물은 처음 본다.’

‘아유, 별 말씀을요.’

이와 같은 내력으로 일층에 십자가 간판을 단 장로교회 사람들이 주일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축마퇴령! 무엇이든 해결해드립니다!’라고 대문짝만하게 적힌 현수막을 꼴아본대도 여장선은 내쫓길 걱정 없이 당당하게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다만 사소한 애로사항이라고 한다면 최 소장이 필요 이상으로 자주 찾아온다는 점일까? 애시당초 약속은 204호를 시세의 반값에 후려치는 대신 주위의 잡귀신을 쫓아주거나 미심쩍은 매물의 터운 따위를 봐주는 것이었는데 중개업자 답게 발 넓고 귀 밝은 최 소장은 어디서 조금만 수상한 건수가 들렸다 하면 냅다 물고와 여장선 앞에 내팽개치며 ‘내가 자기 밥줄 붙여주는 것'이라면서 오만 생색을 다 부렸다. 여장선이 보기에는 그냥 그러는 일에 재미들린 것이 분명하지만 어쩌겠는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이상 고객 비위 맞추기 역시 업무의 일환이었다. 적당히 추려 발품 파는 수 밖에. 

그러나 다 참아준대도 딱 한 가지, 여장선이 묵과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으니.

“소장님, 다 좋은데.” 

여장선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면서 믹스커피가 든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저는 자원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장한평 역사에 지박령이 붙었든 구걸귀신이 붙었든 그게 어찌 내 소관이겠어요. 따지려면 저기 서울교통공사한테 가서 따지셔야지.” 

“알 만한 사람이 고지식하게 구네. 마케팅 몰라, 마케팅? 지금 SNS니 유투브니 하는데서 장한평 귀신이다 뭐다 해서 한창 유명한데 자기가 딱 나서서 해결해봐. 이 바닥 입소문 중요하다며?”

“입소문 만큼이나 이미지도 중요한게 이 바닥이에요. MZ세대 애들 가십거리에 휘둘려서야 강북지 꼰대 어르신들 앞에서 면이 서질 않지요. 저는 가늘고 길게 벌어먹고 싶거든요? 한탕이니 한방이니 하는 사이버 협잡꾼들의 인생 모토는 도통 믿을 만한 게 못된다고요.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모르십니까, 소장님. ”

“……자기 안 그래 보이는데 은근히 꽉 막힌 데가 있다?”

“이 일 하다 보면 다 그렇게 됩니다.”

그럴리가. 어엿히 신내림 받은 무당들도 다 인스타그램으로 예약받고 유투브로 홍보하는 2020년대일진대 한낱 독경사가 뭐라고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겠는가. 그가 이렇게 젊은 사람답지 않게 고지식한 사고방식을 갖게 된 데에는 직업상의 이유보다는 그의 개인적인 성장 배경의 영향이 컸다. 그가 지금까지 살면서 겪은 죽을 고비가 몇 번이고 명재경각의 위기가 몇 번이었게? 일찍이 영안(靈眼)이 트이고 봐선 안될 것들을 보며 들어선 안될 것들을 듣게 된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그 역시 삶과 죽음 사이에서 여러 번 곤경을 겪었다. 다만 무슨 조화로 말미암아서인지는 몰라도 그 때 마다 매번 요행과 길운이 따른지라 가까스로 명줄을 붙잡으며 여지껏 살아오기를 스물 몇 해. 비범한 위기를 몇 차례나 겪는 중에도 사지 멀쩡하고 일신 온전했으니 그것만큼은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만은, 그 결과로 그가 배운 교훈이랄게 다소 얍삽했다. 첫째로 사람은 쉽게 죽으니 경거망동 말고 안분지족하며 분수에 맞게 살라는 것이었고 둘째로 최저시급도 안나오는 일에는 목숨 걸지 말라는 것이었다. 돈이 아무리 중한들 목숨보다는 못한 것이니까. 

“그러니까 직접적으로다가 돈이 되는 걸 가져오시란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여장선의 의사는 묵살당했다. 하늘 아래 지엄하신 자본주의의 이치가 명정하였으므로 ‘잔말 말고 갔다 와!’ 라는 데에야 청산유수 말재간이 하등 쓸모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오후 늦은 시간 부터 장한평 역사 근처 프랜차이즈 카페에 죽치고 있다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을 향해 내려갔다. 

퇴근 시간도 한참 지난 무렵이라 역사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열차가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에 맞추어 드물게 오가는 승객들의 발걸음 소리나 이따금 역사에 울려퍼지는 안내 방송 말소리 정도였다. 사람들은 지하철도 안 타면서 플랫폼에 우두커니 서서 선로의 어느 한 지점을 골똘히 바라보는 여장선을 이따금 곁눈질하곤 했으나, 곧 어지간해서는 남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서울시민들답게 상냥한 무관심으로 그를 지나쳤다.  

“이상하네.”

또 다시 한 차례 열차가 드나든 후에 여장선이 중얼거렸다. 플랫폼에 약 두 시간을 죽치고 앉아 살펴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밤은 야심해져 막차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입때까지도 나온다던 귀신 그림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대신 늦은 시간 귀가하는 취객들만 듬성듬성할 뿐이었다. 되려 그 점이 이상했다. 제 아무리 새로 들어선 신축 역사라고는 해도 발치에 채이는 잡귀나 지박령 따위가 전연 없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쯤 되면 의도적인 소거로까지 느껴졌다. 마치 제가 올 것을 알고 누군가 예비라도 해둔 것 처럼. 

‘그런데 누가?’

등줄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에이, 말자.” 

쓸데없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은 여장선의 나쁜 습관이었다. 돈 주는 일도 아닌데 더 생각해봤자 뭐하나. 돈은 안되고 골치만 무지 아픈 일에 엮이기나 할 것이다. 다년 간의 죽다 살아난 경험이 그에게 귀신이고 나발이고 이만 모른 척 하고 돌아가라고 일러주고 있었다. 확실히 이쯤했으면 최 소장에게 일말의 성의랄 것은 보인 셈이었으니 여기서 그만 접고 돌아갈 셈으로 여장선은 쪼그려 앉아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잠깐 사이였는데도 다리가 저릿저릿했다. 그는 일어나면서 반사적으로 스크린 도어를 짚어 중심을 가다듬으려 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마치 아무것도 없는 벽을 헛짚은 것처럼 몸이 선로 방향으로 휙 넘어갔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 잡아당긴 것처럼. 

‘이런 미친, 한동안 잠잠하더라니만!’ 

아찔한 추락의 감각에 경악하는 그의 귓가에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으니 타는 곳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라'는 안내방송이 쟁쟁하게 울려퍼졌다. 눈 앞이 새까매졌다. 

그 때 누군가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억센 힘으로 끌어당겼다. 그 덕에 가까스로 선로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몸을 바로 세우자, 직후 빠른 속도로 열차가 선로를 향해 달려들어왔다. 귓가를 때리는 바람소리가 얼얼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여장선은 고개를 돌려 제 팔을 잡아당긴 사람을 확인했다. 감사 인사를 할 요량으로.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하얗게 밝은 보름달 같은 눈을 가진 남자가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읽히는 바가 전혀 없는 그 얼굴은 마치 긴 세월동안 닫힌 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문을 두드리는 이도 없고 안에서 나온 이도 없어 빗장과 손잡이 틈틈에 재와 녹이 무겁게 내려앉아있는, 아주 낡고 오래된 문. 여장선은 어째서인지 손을 뻗어 그 문을 여는 자신을 상상했다. 문이 열리고 주인이 나와 그를 반긴다. 지금으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짓고서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이름으로 그를 부르며 계절과 안부를 묻는…….

“…….”

너무 놀라서 일시적으로 미친 모양이다. 

한 시절과도 같은 찰나가 지나가고 곧 차문이 열리면서 내리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플랫폼이 소란해졌다. 하필 막차여서 그런지 지금까지와 달리 제법 붐비는 차량이었다. 

그제서야 현실로 돌아온 듯 정신이 든 여장선이 그제사 뭐라고 말을 붙여보려는데 남자가 지체없이 등을 돌렸다.

“저기요, 잠깐만요!” 

여장선이 불렀지만 남자는 듣지 못한 것인지, 혹은 듣고서도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태도로 인파 사이에 섞였다. 따라가 볼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빠른 걸음으로. 

곧 그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4월 5일, 청명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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