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속과 탈출 - 1.0
인어공주와 독 사과
제목에 .0이 들어가는 화에서는 본편에 나올 모브들의 짧은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
트위터에서 풀었던 썰 https://twitter.com/Ti_one_dmj/status/1671175406970638337?s=20 기반
천장에는 아름답게 반짝이는 샹들리에, 벽에는 은은하게 빛나는 연노란색 조명. 흐드러지게 피어난 허브의 향이 가득하고, 우아한 선율이 퍼지는 고요한 식당의 어느 VIP룸. 그리고 그 안에서 정찬을 즐기는 한 쌍의 연인. 그 중 하나인 남자는 메인디쉬로 나온 스테이크를 한 입 먹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 피처럼 붉은 와인의 색이 식욕을 부드럽게 돋구었다.
“추천한 대로 주문해봤는데 제법인걸. 이게 잘 어울릴 거라고는 어떻게 생각했어, 여보.”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말없이 웃을 뿐이었다. 남자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고는 다시 고기를 썰었다. 여자는 본래 말수가 적었고, 그러니 당연하게도 이번에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것이라 생각한 남자는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여자가 자신의 와인잔을 가늠하듯 빤히 보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남자가 다시 와인을 홀짝였다. 그리고 그 순간.
“흑, 컥! 크허억.”
“...”
“헉, 헉, 이게, 무슨...?”
남자는 갑작스레 흐려지는 시야를 바로잡기 위해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여자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미미하게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그제야 남자는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 여보, 이 와인, 뭔가 이상한데...”
“...”
여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꺼내고는 느릿한 손길로 그것을 남자의 눈앞에 던져주었다. 남자는 허겁지겁 그것, 눈앞에 떨어진 빈 병을 받아들었으나, 이내 눈살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그것을 바닥에 던져버렸다.
“독 사과 문양...? 여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말 좀 해 봐, 왜 아무 말도 안 해!”
남자의 반복되는 채근에도 여자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쯤 되자, 공포에 질린 남자의 머릿속에도 어떤 소문이 떠올랐다. 독 사과는 두 사람의 몫이라는 말, 타겟과 의뢰인이 모두 죽을 각오로 사용해야만 한다던. 남자는 희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설마, 당신도...?”
남자의 손등으로 떨어지는 따스한 눈물이 여자의 답을 대신했다. 헐떡이는 두 개의 숨소리, 시시각각 끊어져가는 생명. 여자는 조심스레 남자의 뺨을 쓸었다. 굳어가는 살가죽은 이제 곧 물처럼 녹아버리리라.
“제발, 말 좀 해봐. 왜 말을 못 해, 왜...”
“...”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그랬어...”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사랑과 임무, 살해해야 할 타겟을 사랑하게 된 스파이는 결국 스스로의 목을 틀어막을 독 사과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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