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한 갈래 길
심향 덕분에 편하게 진청시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날이 밝은 오후. 사람들로 해변은 북적거렸다. 포켓몬들과 물놀이를 즐기는 관광객들도 있었고, 저 멀리서는 어부들이 배에서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심향이 곧장 약국으로 향한 사이 제노와 실버는 포켓몬 센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실버가 ‘왜 그런 녀석을 기다려줘야 하느냐’하고 투덜거리던 중, 누군가 벌벌 떨면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 이봐… 너희 포켓몬 트레이너지?”
“뭐야?”
질문에 시비로 받아치는 실버의 태도. 아주 양아치가 따로 없었다. 히익, 하고 숨을 들이켠 상대가 안색이 더욱 안 좋아져서는, 힘겹게 말을 걸었다.
“너, 너희 강해 보이는데… 부탁이야, 내 포켓몬을 맡아줘!”
불쑥 내밀어지는 몬스터볼. 얼떨결에 실버가 받아 들자 안에는 단단지가 들었다는 설명과 함께 남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로켓단 녀석들에게 소중한 포켓몬을 빼앗겼다고! 지닌 포켓몬이 한 마리 남아있지만, 또 공격해 오면… 그, 그러니까, 부탁해! 잠시 포켓몬을 맡아줘!”
“… 어이.”
“히익!”
실버가 어두운 표정을 한 채로 남자를 불렀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그 녀석들은 어디로 갔지?”
“저, 저기. 저기 보이는 집이 내 집인데, 그 옆에 있는 산길로…”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실버가 산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자에게 살짝 고개를 까딱인 제노도 그의 뒤를 따랐다.
*
바위산을 수색하는 과정은 검은먹시티에서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조금씩 지쳐가는 제노가 보이는지, 다행히도 이브이는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이브이, 뭐 찾은 거 없어?”
열심히 바닥 냄새를 맡던 이브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네가 윈디는 아니니까. 그때 이브이의 귀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연신 귀를 쫑긋거리던 이브이가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아~! 정말! 조용히 좀 해!”
이브이를 따라 바위 뒤로 몸을 숨기고 고개만 살짝 너머를 바라보자, 로켓단원으로 보이는 긴 머리의 여자가 우리 안을 향해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보였다. 단단해 보이는 우리 안에선 포켓몬 한 마리가 철창을 마구 할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실버가 속삭였다.
“저건….”
“포푸니야.”
악/얼음 타입 포켓몬. 은빛산 근처에서나 볼 수 있는 녀석이니 확실히 정석적인 방법으로 가진 것은 아닐 터였다.
포푸니의 손톱은 제법 날카로워 보였으나, 철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단발머리를 한 남자가 옆으로 다가와 한마디 거들었다.
“포기하시지~ 이 철창은 쉽게 부서지지 않는단 말씀!”
“얌전히 우리를 따라오는 게 좋을 거다옹.”
“헐.”
나옹이 진짜 사람 말을 하잖아….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제노는 놀란 나머지 숨어있다는 사실도 잊고 입 밖으로 큰소리를 내었다. 포푸니를 놀리던 로켓단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더 이상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실버가 앞으로 나섰다.
“당신 바보야?”
“뭐… 어차피 싸울 거였잖아.”
“그렇긴 하지.”
고작 두 사람과 이브이 하나. 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로켓단이 우쭐한 미소를 지었다.
“이봐, 그 포켓몬 놓아주시지.”
“’그 포켓몬 놓아주시지~’라고 물으신다면!”
“어림없는 소리~ 라고 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로켓단이 번갈아 말하는 사이, 실버가 포켓몬을 둘 꺼냈다.
“가라, 주뱃, 고오스.”
“야!! 사람이 말을 하고 있잖아!!!”
“이 건방진 꼬맹이가!! 가라, 세비퍼! 독케일!
포켓몬들이 2대2 대치 상태가 되었다.
“혼자서 할 수 있겠어?”
“흥, 당연하지.”
그럼 맡겨볼까. 이브이와 제노는 관전 상태에 들어갔다. 실버의 실력을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상대는 둘이지만 여기는 명령을 내리는 머리가 하나. 거기에 상성만으로 누가 유리하다고 말하긴 힘든 조합. 실버의 포켓몬에 대한 이해도와 전술 센스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세비퍼, 뱀눈초리! 녀석들을 겁먹게 만들어!”
세비퍼가 혀를 날름거리며 배의 무늬로 겁을 주었다. 마비 효과를 주는 공격이라,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자, 독케일! 이 틈에 염동력이야!”
“고오스, 피하고 이상한빛! 주뱃, 너도 초음파로 상대를 혼란시켜!”
고오스가 고스트 타입에 치명적인 에스퍼 타입 공격을 피했다. 고오스가 날린 이상한 빛이 세비퍼에게 적중했다. 반면 독케일은 날아서 초음파를 피할 수 있었다.
“주뱃, 날개치기!”
일부러 초음파로 독케일을 세비퍼로부터 떨어트린 건지, 독케일이 높이 날자마자 주뱃이 가까이 달려들어 큰 날개를 부딪쳤다. 효과가 굉장한 선취점이었다. 독케일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가깝게 내려왔다.
“독케일, 지지 마! 세비퍼, 깨물어부수기!”
세비퍼는 혼란에 걸린 상태에서도 위협적으로 달려들었다. 고오스는 날카로운 이빨을 몇 번이고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독케일, 염동력으로 고오스의 움직임을 멈추는 거야!”
“그렇게는 안 되지. 주뱃, 다시 한번 독케일에게 날개치기!”
주뱃이 아까와 같이 독케일에게 달려들었다. 빠른 속도로 하강한 주뱃의 날개가 독케일에게 닿았을 때, 고오스를 노리던 세비퍼가 돌연 방향을 틀어 주뱃을 물었다.
주뱃의 공격처럼 목표가 명확할 때 움직임이 가장 읽히기 쉬운 법이었다. 독케일이 날개치기의 충격에 정신을 차리는 동안 주뱃을 제대로 문 세비퍼가 몸통에 이빨을 박아 넣은 채 고개를 강하게 흔들다가, 주뱃을 던져버렸다. 주뱃이 입을 크게 벌리고 비명을 질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에 부딪힌 주뱃의 몸통이 스르륵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주뱃, 정신 차려!”
급소에 들어간 공격. 실버의 외침에 주뱃이 겨우 몸을 일으켜 다시 날갯짓을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계속 주뱃을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실버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세비퍼의 이빨에 살짝 스친 고오스가 뒤로 크게 물러났다.
끼어들 생각 없이 가만히 경기를 보고 있던 제노가 입을 열었다. 실버, 너…
“더블배틀 한 번도 해본 적 없지.”
“시끄러워!”
제노의 말이 맞다는 대답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가 한 번에 정리해 버릴 수도 있지만… 제노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배틀에 집중하는 실버와, 그의 포켓몬을 보았다. 이건 끝까지 나서지 않는 게 예의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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