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미션 전문 샘플] - 너와 있는 여름
1차 자컾 - 🚨가스라이팅 묘사 주의🚨
커미션 안내:
1차 자컾/자캐 작업물 샘플:
인물: 2인(기본)
작업 기간: 2주(기본)
글자 수: 7,630자
신청 타입: B. 키워드+짧은 씬
너와 있는 여름
w. 목화
D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티끌 하나 없이 새파란 하늘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덮치고 들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지평선과 가까운 곳에, 산등성이와 함께 높이 솟은 뭉게구름과 매미 소리 한 가닥 들리지 않는 적막. 운동장의 흙바닥에 아지랑이가 어지럽게 피어오르고, 조금만 걸어도 찐득한 습기가 폐부 가득 들어찼다. 덕분에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 시간에도 운동장에는 공을 차러 나오는 아이들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D는 운동장 한쪽, 삐죽이며 팔을 뻗은 나무들의 좁다란 그늘 아래를 따라 걸었다. 날카로운 햇빛과 숨이 턱턱 막히는 온도가 생경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을 뿐인데 기괴할 정도의 새파란 하늘에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위압감과 공포가 D를 짓눌렀다. 맑은 날이었음은 분명했으나 숨이 막힐 정도의 짙은 푸른색을 가득 채운 하늘이 청명하고 드높은 여름과는 퍽 거리가 멀어서. D는 눈썹을 일그러뜨렸다. 불쾌한 계절이었다.
치렁치렁하게 풀어헤친 D의 머리카락 아래로 후덥지근한 공기가 달라붙기 시작했다. 관자놀이를 따라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대충 닦아내며, D는 치마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 들어있던 머리끈을 만지작거렸다. 머리를 묶을까, 말까. N이 자신을 부른 체육관이 바로 코앞이었다. 체육관 문까지 고작 스무 걸음도 남지 않은 거리를 앞에 두고, D는 더위에 질려 멍한 머리로 덧없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늘이가 머리 안 묶는 게 더 어울린다고 했으니까…….’
D의 머릿속에서 엎치락뒤치락 무겁게 오가던 생각들의 대립은 결국, 언제나처럼 N의 말에 따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을 건네던 N은 그 어느 때보다 예쁘게 웃고 있었고, 그 눈에서 가득 묻어나던 애정을 알아챘기에 D는 N의 말을 허투루 듣고 흘려보낼 수가 없었다.
어느덧 삼선 슬리퍼를 신은 D의 발이 모래 먼지가 풀풀 날리던 운동장을 벗어나 체육관 문 앞에 멈춰 섰다. 투명한 유리문 손잡이에 잠금이 풀린 자물쇠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D가 손을 뻗어 유리문 위에 박혀 있는 손잡이를 붙잡아 밀었다. 열기에 데워진 쇠 손잡이가 D의 손바닥을 달구었다. 여린 살 아래로 느껴지는 뜨거운 온도에 D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고작 그런 것에 시간을 버릴 틈은 없었다. D가 걸음을 재촉했다. N이 제게 오라고 속삭였던 시간이 곧이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체육관 입구는 촌스러운 파란색의 유리 벽으로 이루어진 좁은 공간이었고, 그곳에서 몇 걸음을 더 걸어 닿는, 커다랗고 푹신한 방음문을 힘주어 잡아당겨야 비로소 탁 트인 체육관에 들어설 수 있었다. D가 따끔거리는 손바닥으로 재차 방음문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주욱, D가 힘을 주는 방향을 따라 묵직하게 열리는 문짝의 틈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나와 D의 발목께를 휘감았다.
에어컨을 틀어놓은 듯, 시원한 체육관 내부에 D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습하지 않은 상쾌한 공기가 기도로 잔뜩 넘어왔다. 바깥에 비해 호흡하기 편한 온도의 공간에 D는 그제야 찌푸렸던 얼굴의 주름을 펴고, 고개를 들어 올려 체육관 안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무도 없는 듯 텅 빈 체육관은 아득할 정도로 천장이 높았고, 천장 바로 아래 벽면을 따라 난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바깥의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똑같이 환하고 눈부신 빛이었지만, 한차례 유리창을 통과한 탓인지 바깥에서 보던 것만큼 강한 열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아.”
이리저리 분주하게 눈동자를 굴리던 D의 시선이, 짧은 탄성과 함께 한 곳에 멈추었다. 저 멀리 스탠드 의자 구석에 앉아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N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D가 화색을 띤 얼굴을 한 채, 단걸음에 체육관을 가로질러 달렸다. 무릎에 덕지덕지 붙인 밴드 아래로 아릿한 고통이 올라왔지만, 겨우 그 정도의 고통이 D를 멈춰 세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D의 발아래로 체육관 바닥을 가득 채운 색색의 테이프들이 짓밟혔다. 각종 스포츠의 경기장과 트랙을 표시해 놓은 테이프들이었다. 선명한 원색이었을 테이프들은 수많은 발에 짓밟히고 걷어차여, 까무잡잡하게 때가 잔뜩 탄 채였다. 반쯤 뜯겨 있는 것과 이미 군데군데 거칠게 뜯겨나간 자국이 있는 테이프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었다. 그런 체육관 바닥을 힘차게 박차고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달음에 제 곁으로 달려온 D를 향해, N은 생긋 웃으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조심해야지, 넘어질라.”
다정한 목소리가 익숙하게 D의 귓가에 감겼다. D는 N이 앉아있던 스탠드 의자 바로 아랫단에 쓰러지듯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았다. 교실이 다르니 오늘 하루 내내 N을 마주하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이 헬륨가스를 가득 넣은 풍선처럼 끝을 모르고 떠올랐다. D는 두 팔을 쭉 내어 저보다 한 칸 높은 스탠드에 앉은 N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안 넘어졌어.”
시원한 체육관에 꽤 오래 앉아있었는지, N의 품에선 서늘한 한기가 묻어나왔다. 그 찬 온도가 딱 기분 좋을 정도여서, D는 두 눈을 가만히 감고 N의 무릎 위에 머리를 기대었다.
“오늘 많이 덥지. 오는 데 괜찮았어?”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여기는 시원하니까 괜찮아. 좋아.”
나긋나긋한 N의 목소리가 기분 좋게 울렸다. D는 푹푹 찌는 더위에 틀어막혔던 숨통이 그제야 트이는 듯했다. 점심시간에 체육관에서 보자. N의 문자 하나에 냉큼 달려온 곳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시원한 교실에만 붙어있으려는 학생들 덕에 이 시간의 체육관은 사용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쾌적하고 조용한 공간이었다. 물론 두 사람이 이곳에서 조용한 밀회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수업 시간 외엔 늘 굳게 잠겨있는 체육관 문을 열기 위해 N이 몰래 체육관 열쇠를 복사해서 가지고 다니는 덕이 컸지만.
“교실은 시끄럽잖아. 난 그 아이들이 널 싫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단 말야.”
N의 음성이 단조로웠다. D는 그런 N의 말에도 가만히 그의 무릎에 옆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을 뿐,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N의 말은 늘 옳았다. 제가 어떻게 행동하든 항상 제 태도를 탐탁지 않아 하고, 뒤에서 제 흉을 보고, 아니꼬운 눈길을 보내며 헛소문을 만들어내는 같은 반 학생들과는 마주 보고 앉아있어봤자 좋을 게 없었다. 얇은 귀를 가졌는지 근거 없는 소문에 잘 휘둘리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모습이 퍽 멍청해 보였으나 서로 대면해보았자 각자의 이유로 기분만 나빠질 테니 D는 그들이 멋대로 떠드는 말에 굳이 해명을 하고 나서지 않았다. 그런 데 버릴 힘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N이 그들에게 소문을 바로잡고자 말을 걸어보았자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거라고, 다 헛수고일 게 뻔하다며 괜한 고생을 하지 말라고 저를 만류했으니까.
D는 두 손에 꼬옥 쥔 N의 셔츠 자락을 고쳐 쥐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뭐라고 떠들건, N만 있다면 아무렴 어찌 되든 좋았다. N만 있으면 됐다. 누가 뭐라든 제가 숨을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언제나 N의 곁이었다.
“희야, 많이 더웠나 보네. 땀 좀 봐.”
사실 시원한 N을 끌어안고,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체육관에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으니 더이상 더위가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본관 건물에서 체육관까지 오는 길을 걷는 동안 뻘뻘 흘린 땀이 아직 마르지 않은 것뿐인데. 그러나 N에게 D가 여전히 더위에 허덕이고 있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겉으로 D를 살펴보는 것이 최선이라.
N은 제 무릎을 베고 누운 D의 머리카락을 가만가만 쓸어넘겨 주었다. 녹음을 담은 듯 짙은 초록색을 띤 기다란 머리카락이 N의 곧게 뻗은 손가락 사이사이를 타고 흘렀다. 바짝 마른 바깥쪽 머리카락과 달리 D의 뺨과 목덜미에 들러 붙어있던 머리카락은 차게 식은 땀에 푹 젖어 있어서, N은 D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에 손부채질을 해 주며 양 눈썹을 늘어뜨렸다.
“많이 더우면 머리 묶고 오지 그랬어.”
N이 안쓰러운 듯 말했다. 다정한 음성에 걱정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D는 제 머리를 조심조심 쓰다듬어주는 N의 손길을 가만히 느끼며 자신의 치마 주머니에 들어있을 머리끈을 떠올렸다. 머리 묶을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전에……, 늘이 네가 나보고 머리 묶는 것보다 머리를 푼 게 나한테 더 잘 어울린다고 해줬잖아.”
D의 마른 입술 사이로 실낱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N이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희야, 넌 머리를 묶는 것보다 푼 게 더 어울려. 언젠가의 제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기도 했다. 흐음, 그래서 그랬구나. N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N은 D의 귓가에 걸린 얇은 머리카락들을 귀 뒤로 한 가닥, 한 가닥 정성스레 넘겨주고, 드러난 하얀 귓바퀴와 그곳에 박힌 새카만 피어싱을 살살 건드렸다. 제 손길에 D가 움찔, 몸을 떠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 작고 가녀린 반응마저 퍽 만족스러워 손의 움직임을 멈추진 않았다.
N은 제 무릎을 베고 누운 D의 낯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뚜렷한 선으로 그려진 얼굴은 땀이 다 마르지 않아 물기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D가 제 손길을 따라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여 N은 D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 진득한 눈길을 느낀 D가 무언가 불안하다는 듯 샛노란 눈동자를 움직여 N을 올려다보았다. 숱 많은 새카만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왜?”
“……아니…….”
D가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N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능청스레 웃어 보였다. D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고르는 듯 입을 벙긋거렸으나 이내 침묵을 택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것으로 D의 작은 저항은 그치는 줄 알았으나 곧이어 D가 슬그머니 N의 무릎을 베고 있던 머리를 들어 올리며 몸을 일으키는 바람에 N은 제 손안에 기분 좋게 감겨오던 부드러운 머리칼과 딱딱하고 반짝이던 검은색 피어싱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N이 D의 안색을 살폈다. 체육관에 들어올 때와 달리 얼굴에 옅은 홍조가 떠오른 것을 보아하니 그저 싫다는 반응은 아닌 것 같은데. N이 턱을 괴었다. D는 스탠드 옆 벽에 등을 기댄 채 헝클어진 머리를 느리게 정리하는 중이었다. 턱을 괴고 D를 관찰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N이 입을 떼었다.
“아, 그리고 희야.”
“응?”
“이번 주 주말에 시간 돼? 나 보고 싶은 영화 있는데.”
D의 금빛 눈동자가 작게 요동쳤다. 이번 주 주말엔 양일 모두 아르바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요즘 들어 N과 학교 밖에서 함께 어울리는 시간이 늘다 보니 계획했던 것보다 지출이 더 늘었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 어렵사리 구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였다. 아무리 내년에 성인이라는 점을 내세워도 고등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해주는 곳은 흔치 않아 여기저기 발품을 팔다 겨우 확보한 자리인데.
“아……, 그날은 조금…….”
D가 머뭇거리며 어렵사리 거절의 말을 꺼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르바이트였고, 이렇게 갑작스레 하루 쉰다고 말을 꺼내면 편의점 점장님이 분명 싫어하실 거다. 일하는 곳에서만큼은 잘 보여야 제때 제 몫의 완전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끝을 흐리던 D가 흘끔 시선을 들어 N의 눈치를 보았다. 잿빛 눈동자가 미동도 없이 자신을 꿰뚫듯 응시하고 있었다. N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아, 내가 늘이의 기분을 망쳤구나. 눈앞이 새하얘졌다. 쿵쾅거리는 맥박이 머릿속에서 커다랗게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시간 안 돼?”
“하지만 그날은 일……, 이 있어서…….”
“난 네가 필요하다고 할 때면 언제든지 네 곁에 있어 줬는데.”
넌 내가 널 필요로 할 때 나를 버리는구나. 내내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N의 낯에서 순식간에 미소가 사라졌다. D는 요란스럽게 뛰던 제 심장이 순간 뚝, 박동을 멈춘 채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아닌데. 늘아, 난 너밖에 없는데. 뱉어내야 할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엉켰다. 무엇부터 발음하며 N의 화를 풀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 D의 비쩍 마른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됐어, 희 네가 그렇다면. 영화 정도는 다른 친구랑 같이 가면 되니까.”
“아니야, 그게 아니라…….”
“재밌어 보이는 영화라 같이 보고 싶었던 건데……. 너는 영화 별로 안 좋아했던가? 나만 희랑 영화 보러 갈 생각에 들떴었구나.”
D가 끼어들 틈도 없이, N의 입에서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제 서러움을 토로하는 말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D의 얼굴이 혼란과 다급함으로 물들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불과 3분도 채 지나지 않은 일이, 제가 N의 무릎을 베고 누워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을 받고 있던 순간이 저 멀리 아득한 곳으로 떠내려가는 기분이었다.
D가 두 손을 꾹 말아쥐었다. N을 실망시키기 싫었다. N의 곁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기 싫었다. N의 옆엔 늘 제가 있어야 했고, 저를 바라보는 N은 언제나 예쁘게 웃는 얼굴이길 바랐으니까. D가 마른침을 꿀꺽 삼킨 후, 바락 외쳤다.
“아니야, 시간 돼! 나 그날 시간 많아. 늘아, 나랑 같이 영화 보러 가자.나 말고 다른 애랑 가겠다는 말은 하지 마…….”
D가 N의 손을 부여잡으며 울먹였다. 언제까지나 N이 자신만을 바라봐주길 원했다. N은 D의 유일한 친구이자, 연인이자, 보호자였다. 가족보다도 더 가족 같은 존재였고 언제나 자신만의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사람. N이 제 곁을 떠나는 상황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만큼 N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은 저여야 했고 N이 다정하게 웃어주는 것 역시 저 한 사람뿐이어야 한다고. D는 제 두 손에 간절히 움켜쥔 N의 손을 붙잡아 제 뺨에 가져다 댔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 D의 뺨을 조심스레 감쌌다.
“……희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렇게까지 불안해해.”
안절부절못하는 D를 말없이 지켜보던 N이 긴 침묵 끝에 말문을 열었다. 그새 물기가 어린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D의 낯에 N은 절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끌어내렸다. D가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D가 제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네가 같이 가겠다고 말해줘서 기뻐.”
N이 한껏 부드러워진 어투로 D를 향해 속삭였다. 젖은 눈동자가 금색으로 반짝이며 눈앞의 N을 가득 담았다. 절실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난 표정에 N은 가슴께가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네가 우는 걸 보니 썩 마음이 좋진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게 그냥 오롯이 나에게만 의지하면 될 걸, 아르바이트 같은 건 갑자기 왜 하려고 들어서. N이 제 손 안 가득 들어찬 D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희야, 난 역시 너밖에 없어.”
난 널 사랑하니까, 네 곁에 있는 사람 역시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 네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도, 네 우는 얼굴을 보는 사람도, 네 까칠한 성격을 받아주는 사람도 나 하나면 되는 거잖아. N이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빛 한 줄기 담지 못한 잿빛 눈동자가 어여쁜 초승달 모양을 그리는 눈꺼풀 뒤로 가려졌다.
“응, 응. 나도 너밖에 없어, 늘아.”
그러니까 넌 절대 날 버리면 안 돼. 계속 내 곁에 있어 줘야 해. 다급하게 말을 흘리는 D에, N이 D 몰래 헛웃음을 지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각은 하고 있는 건지 몰랐다. 하지만 네가 먼저 그렇게 말해줬으니, 나도 기꺼이 그럴 거야.
“그래. 착하다, 우리 희…….”
N이 허리르 숙여 D의 이마에 제 이마를 맞댔다. 색색거리는 두 사람의 숨소리가 텅 빈 체육관에 고요히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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