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바다에서 바다리까지 두 달 하고도 보름
!공사중!
안장 아래 디룽디룽 짐을 달은 채 깃을 고르는 짐새.
왼발은 꿈나라요 오른발은 등자 위. 나는 잠을 쫓아 녀석의 맨들맨들한 깃털에 힘껏 볼을 문대었다. 달밤에 뭐 하는 짓이람….
"나 진짜 가?"
이렇게나 갑작스레 집을 떠나라고?
머리카락을 타고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된새바람에 마른 피부에는 짭짤한 소금 가루가 맺혀 있다. 옷이야 당연히 축축하고.
평소 같았으면 단물로 씻고 옷도 새 옷으로 갈아입었을 텐데. 으 짭짤해라.
"간고등어가 친구 하자 할 이 짭조름한 모습 좀 봐. 정말 이 꼴 그대로 집을 떠난다고?"
"전하께서는 다음 13월 25일을 기다리기에는 시일이 촉박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에 대관절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까라면 까는 것이 저의 일인 터라…."
"일인 터라?"
"깠지요! 보다시피 말입니다. 비록 지금과 같은 여러 실수가 발생하였으나 이를 어찌하오리까. 열흘밖에 시간이 없었는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르는 커다란 손.
왕할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띠쇠를 조여 이삿짐을 꾸려 넣은 안장주머니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곧 전하께서 오실 겁니다. 두 분이 동시에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도라님께서는 오시지 못할 테지만요."
"그럼 언니랑 오빠들은?"
"여력이 되는 한 오실 겁니다. 다만 장담은 못 하는 것이, 이번 계획은 워낙 번갯불에 콩 볶듯 이루어진 터라 어디서 무슨 변수가 터졌을지는…."
하늘새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터벅터벅 맥아리 없는 발걸음. 된바람에 실려 온 해파리 마냥 하느작거리는 발소리가 나와 왕할머니의 시선을 끌었다.
"나르뎌이!"
"쉿. 밤이잖아."
아차차, 밤에는 조용히 해야지!
나는 안장에 몸을 바짝 붙혀 첫째 오빠를 내려다보았다. 이러면 소곤소곤 말해도 다 들리겠지?
"나댜가 제일 먼저 온 거야? 웬일이래?"
"나라고 항상 늦는 건 아니야."
"나댜는 일 년 열세 달 중 열두 달을 늦잖아. 그럼 웬일이 맞지."
말없이 귀를 삐쭉이는 첫째 오빠.
내가 뭘?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넌 정말….”
“정말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데 오빠가 고모할머님과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좀 있거든. 그동안 나고는 이것 좀 오물이고 있을래? 재미없는 이야기기도 하고,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재미없어? 그래도 무슨 얘기 하는지는 좀 궁금한데.”
“어, 음, 정말로 재미없는 이야기라서 그래. 하품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지루하고 고루하여 익살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됐어. 바구니 이리 내. 아주 어른들만의 시간을 보내 버려라.”
무릎 위 얹어놓은 멸치 바구니와 소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지는 어른들.
도대체 왜 날 빼놓고 이야기하려는 거지?
소용돌이치는 의문은 어느덧 잠을 몰아내고 내 눈을 말똥말똥하게 만들었다.
맑은 눈에 비추어진 건 희끄무레한 하늘과 뭉개진 밤의 도시와 분명 저 너머에 있을 바다. 이름이 지어지기 전 부터 나를 품어주었던 고향. 언제나 선명한 나의 집.
아빠랑 왕할머니는 오지 못 하는 곳이었지만. 어머니와 언니 오빠들도 자주 오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정말 기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냈다!
릴이 있었으니까.
바다 소리가 좋았으니까.
가끔은 더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은 고동이 느껴졌다. 쏙처럼 다정하고 가재처럼 사랑스러운 울림소리. 한 발짝.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노랫소리의 주인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아, 모르겠다! 진지한 생각은 힘들어!
머리 쓰니까 배고프다. 나는 바구니를 뒤져 가장 통통한 멸치를 집어 들었다. 이제 대가리를 똑 따고 뼈와 내장을 발라내야지.
대가리랑 뼈, 내장은 짐새 부리로. 나머지는 내 입으로.
냠! 역시 이 맛이야.
멸치 한 바구니를 전부 먹기 전까지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겠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길어지겠어?
“길어지네….”
이대로 가다가는 햇님이 해넘이를 시작할 때까지도 도시 관문을 떠나지 못 할 것 같았다.
13월 25일이 되기 전에 도시를 떠나야 한다며. 해 뜨면 25일인데?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나는 조심스럽게 고삐를 움켜 잡고 어른들이 있는 곳으로 짐새를 걷게 만들었다.
사실, 내가 녀석을 걷게 만든다기보다는 멸치를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진 녀석이 장단을 맞춰 주는 것에 가까웠지만. 애초에 나는 짐새 모는 법을 모른다!
“……물의…인…시선을….”
“…슨! 그런……로……물의…인의 시선을….”
슬슬 소리가 들리네.
“……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리는 축복은 가장 추악한 저주이며 그것의 사랑은 가장 끔찍한 집착이지. 미드라쉬히는 정녕 그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빼내겠다고 한 게냐?”
“어머니께서는 나기디아를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름이 지어진 후 부터 그 아이는 늘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또렷해졌어.
“나르뎌이. 너는 그것을 모른다. 사람이 그것 앞에서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몰라서 그리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고모할머님.”
뭐야. 공기가 왜 이리 무겁지?
“나 빼놓고 뭘들 그리 재밌게 얘기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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