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창작

그 집안은 유독 쌍둥이가 잦았다.

슬램덩크 / 김낙수 / 이치노쿠라 사토시 / 약 동오낙수 동낙

산왕공고의 이치노쿠라 사토시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자면, 참을성 하나만큼은 끝을 달리는 선수라는 사실이었다. 농구부원 모두와 큰 탈 없이 지냈지만 같은 3학년인 미노루와는 특히 좀 더 가까웠다. 카즈나리만큼이나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 달관한 표정으로 무엇이든 버텨냈다. 괜히 인내심의 왕자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그는 좀체 구체적인 집안 이야기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종종 본가에서 보내준 물건들을 내보이며 구경시켜주곤 했으나, 유독 사토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일단 택배 상자부터 다른 소년들과는 다르게 어쩐지 정갈하고, 단란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에서 보내온 물건을 수령한 날이면 그는 늘 자신의 기숙사실에 틀어박혀, 조용히 정리하곤 했고 그에 그 누구도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늘 사건의 시작점은 갑자기 발생하기 마련이다.

"왜?"

미노루의 눈에, 낯선 것이 들어왔다. 어딘가 낡은 듯, 하지만 어쩐지 이치노쿠라 사토시의 분위기에 썩 어울리는 얇은 금속의 팔찌.

"그건 뭐야?"

"아, 이거. 부적같은 거야."

집에서 이번에 보내줬어. 사토시는 짧게 답한 후 마저 제 입으로 점심을 쑤셔넣었다. 별 것 아니라는 투였으나 어쩐지 그 뒷맛이 영, 미적지근했다. 하지만 본인이 말을 안하는데 별 수 있나? 미노루 역시 제 앞에 놓인 점심을 열심히 수저로 퍼올렸다.

그리고 산왕 농구부의 하루는 다시 시작한다. 코트에 부딪혀 다시 위로 튀어오르는 공의 궤적, 그리고 그 까랑한 소리는 소년들의 심장을 가열하기 제격이었다.

오늘도 참을성의 왕자 사토시는 끈질기다,고 미노루는 속으로만 감상을 표했다. 슈팅 가드로서 코트 위를 지켜내기에는 적당한 기질이겠지. 하지만 오늘은 뭐랄까, 평소보다 더 날이 섰다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유를 모른 채로 미노루는 락커로 향했다.

"... 그래서, 주말에 본가로 간다고용."

"감독님한테는 미리 말했어."

"알겠어용. 다음 주에 지장만 없도록, 뿅."

본가? 이치노쿠라 사토시가, 본가를 간다. 기이하게도 마츠모토 미노루는 그 대목에 흥미가 동했다. 그래서 그는 카즈나리와 이야기를 마치고 기숙사로 향하는 사토시를 잠시 방해했다.

"이치노쿠라, 네가 본가를 간다고?"

"왜?"

그게 이상하냐는 듯한 반문에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집에 가는 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니, 그냥. 갑자기 간다고 하니까 궁금하길래."

저의 말에 갑자기 사토시가 미노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표정을 읽기는 어려웠다. 그는 늘 어딘가 달관한 듯한 얄쌍한 낯만 띄웠으니까 말이다.

"뭐, 별로 거창하거나 그런 집은 아니야."

"으음... 그래?"

"아, 마침 잘 됐네. 짐 좀 챙길 건데 시간 나면 좀 도와줄래, 마츠모토."

사토시의 소지품이라 함은, 어마어마한 양이 되지는 않았다. 비교적 단란하고 필요한 것만 딱, 이게 왜 있지 싶은 것이 아주 가끔 두어개. 그 뿐이었다. 하지만 굳이 거절할 핑계도 없어서 미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로 없네."

"그러게."

그의 짐을 함께 챙기면서 툭 던진 말이었으나 그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집에 무슨 일 있어?"

"?"

"그, 집에 간다고 한 것도 그렇고... 전에 이거."

미노루는 손가락을 펴 슬쩍, 사토시의 팔목에 여지껏 걸려있는 팔찌(부적 같은 것이라 했던)를 가리켰다.

"뭔가, 큰 일이라도 있나 싶길래."

"아아."

대답할 듯 말 듯 하다가, 사토시는 마저 가방에 옷가지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잠시 정적을 주더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마츠모토 미노루를 당혹시키기 충분했다.

"기일이야."

기일. 기일? 미노루는 무어라 답을 할 지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사토시는 딱히 대답같은 것을 바란 게 아니라는 듯 툭툭, 제 할 말을 던져댔다.

"근데 나도 얼굴은 몰라."

내가 3살일 때인가, 아무튼 아주 어릴 때 죽었대. 그러니까 나도 잘 모르지.

"그래..."

이런 답이 나올 줄 몰랐기에 미노루는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덤덤했다.

"쌍둥이라 그런 걸지도."

"쌍둥이?"

"응, 나랑."

시덥잖은 말에도 그는 어깨만 으쓱, 했다. 여전히 사토시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형태란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스러진 제 쌍둥이가 있다는 건 무슨 감각일지 마츠모토 미노루로서는 결코 느껴볼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집안이 쌍둥이가 좀 자주 나온대. 그리고..."

뒷말이 없었지만 미노루는 직감적으로 그 다음 문장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이건 이치노쿠라 사토시의, 쌍둥이의 기일이 되는 것일까.

"궁금해?"

"아, 아니. 그건."

하지만 어쩐지 더 캐물어 보고 싶었다. 이유는 몰랐다. 딱히 감출 것도 아니야. 그렇게 이치노쿠라 사토시의 집안에 대해서, 그 본인이 기어코 입을 열었다.

말한 적 없던가? 우리 집이 대대로 신을 모셔오고 있거든. 우리는 그 분을 모시고, 신께서는 그 댓가로 우리 집안에 가호를 내려주시고. 식신,이라기 보다는 수호신? 그 편이 맞겠다. 근데 뭐... 예전에 조상 중에서 그 분 심기를 좀 거슬리게 했나 봐. 어른들 입장에선 큰일이었겠지. 신이 분노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까. 그런데 그 때 하필, 쌍둥이가 태어난 거야.

근데 신께서 그 쌍둥이를 마음에 들어 하셨대. 짐작 돼? 신이 인간을 마음에 들어하면 어떻게 되는지.

뭐, 어떻게 됐겠어. 어른들이 쌍둥이 중 한 명을 바칠 테니, 화를 거두어달라고 빈 거지. 그렇게 이치노쿠라 집안에 태어난 쌍둥이 중 한 쪽이 신께 선물되었고, 그 분은 만족했어. 아주 잠시 동안은.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우리 집안의 신께서 욕심이 좀 많으신 가봐. 아니면 인간의 영혼을 맛 보고, 그걸 잊지 못하셔서일까? 아무튼, 다음에도 쌍둥이 중 하나를 바치라고 하신 거야. 근데 이게 인간들이 그러고 싶다고 해서, 쌍둥이라는 게 막 태어나나? 그래서.

그래서, 우리 집안은 대대로 쌍둥이가 잦았어. 한 세대를 걸러 한 번. 가끔 가다 두 세대. 그리고 또 아주 가끔은 곧바로. 신께서 그렇게 하셨겠지. 이치노쿠라 가문의 수호신이니까.

수호신이 그래도 되는 거야?

나도 모르지. 그 분들 마음을 어떻게 알아. 여튼, 그렇게 우리 집안의 풍습이 생기게 됐어. 신을 모실 것. 쌍둥이가 태어나게 되면, 그 중 한 명을 바칠 것. 그래서 바쳐진 쪽은 이름도 없어. 마치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애초에 신께 바칠 목적으로, 그 분이 내려보낸 존재나 다름없으니까, 이름도 붙일 필요가 없던 거야. 애초부터 그 분의 아이이니까. 웃기지?

... 웃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그랬고. 나와 내 이름도 모를, 얼굴도 기억 안나는 쌍둥이. 물론 세상에 나자 바로 바친 건 아냐. 처음엔 그랬는데 수호신께서 점점 더 욕심을 부리신 거지. 좀 더 크면 바치라고. 그래서 나는, 아마... 3살 때였나. 그 때 사라졌어. 그리고 나도, 어릴 때니까 그냥 병 정도로 죽은 것으로 알았고. 틀린 얘기는 아니야. 신의 곁으로 갈 때까지 끔찍한 신병을 앓아야 했으니까. 나도 함께. 어쨌거나 그와 나는 반쪽으로 나뉜 하나였으니.

그때까지 이치,라고 불렸어. 하나. 제법 기이해. 그게 이름이었어. 어느 쪽을 신께서 원할 지 모르니까 둘 다 그 전까지는 이름 없이 그렇게만 어른들이 불렀어. 그리고 열병이 시작됐어. 살아남은 건,

너였구나, 사토시.

응, 그렇게 된 거야. 아, 이름은 사실 있었겠지? 근데 그건 어른들만 알고 부모님이나, 우리는 몰랐어. 한 쪽이 사라질 때까지. 근데 그 신병의 영향을 견딘 게 나여서, 내가 살아서 이치노쿠라 사토시가 된 거고. 그 때도 견디는 건 잘했었나 봐.

그 때 이후인가? 내가 농구를 시작한 것도 사실 어른들은 탐탁치 않아 했는데. 스포츠가 양기 넘치는 행위인 것도 있고, 내가 소질이 있어보이니까 다들 그냥 하라고 한 것 같아. 그래서 농구 명문인 산왕까지 오게 됐네. 대충 그런 일이야.

그래서, 이번 주말이 내 절반이 바쳐진 날이야. 근데 이것도 좀 웃긴다? 우리 집안에서 신께 돌아간 이들의 기일은 다 똑같아. 아마 그 날이, 제일 최적인 것 같지. 마츠모토.

대체 어떻게 답해야 할 지 모르겠네.

하하, 하긴... 나도 그렇겠거니 짐작만 하는 거야. 나는 집안일에는 그렇게 신경 안쓰고 있으니까. 그리고 기숙사에 나와서 사니까 더더욱. 사실 경기 일정 때문이라도 집안에 일 있어도 못 간 적도 꽤 있고. 그래도, 이것만큼은 빠질 수 없어서.

아무튼, 짐 정리 도와줘서 고마워. 다음주에 보기로 하자. 아, 맞다. 이걸 잊을 뻔 했네. 마츠모토, 당부 하나만 하자.

뭔데?

사실 이 얘기, 어른들이 막 하지 말라고 했거든. '사토시, 네가 이 지역을 벗어나 있어도 넌 이치노쿠라 집안의 사람이고 때문에 신께서도 계속 널 지켜볼 거다. 그러니 늘 조심해라. 함부로 바깥에 가문 내의 일을 얘기했다가는 그 분께서 어떻게 할 지 모르니까 말이다. 알겠니?' 이러면서. 그래서 내가 딱히 집안 얘기 잘 안 하긴 했는데.

해버렸네? 왜 너한테는 다 말했을까. 그러니까 일단은 너만 알아둬. 이 부적은 너가 가지고 있어. 신께서 너한테까지 무슨 일 일으키면 곤란하잖아. 나는 기숙사에 놔두고 왔다고 하고 하나 다시 받아오면 되니까.

뭐? 아니, 잠깐. 이치노쿠라!

네가 나랑 엮여서, 그건 좀 즐겁네. 아, 내친 김에 말하면 내가 너를 좀 좋아하거든. 이건 몰랐지? 나는 참을성이 많으니까, 이것도 말 안하고 있었어. 다녀와서 보자, 미노루.


이전에 포타에 올렸던 글 백업 겸 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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