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1
Assassin's Creed - Altair/Maria * 블러드라인 이후
마리아는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더운 날씨에도 상관없이 시장은 항상 활기가 넘쳤다. 생계를 위해 분주히 물건을 파는 사람들, 물건을 하나하나 재가며 흥정하는 사람들, 먹을 것을 든 사람들, 아이들 손을 잡은 사람들...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마리아는 북적거리는 시장 속에 그들이 찾는 단서가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나머지는 그들 안에 몸 담갔던 사람으로서 몸에 익은 그들의 수상한 낌새를-이라고 해도 티도 나지 않겠지만- 알아챌 눈썰미에 달려있었다. 한 때 그들과 함께 했지만 진실을 알아버린 이상 마리아는 기사단의 만행을 지나칠 수 없었다. 마리아는 여행자들이 으레 입는 후줄근한 로브에 달린 후드를 덮어쓰고 신중히 거리를 살피며 걸었다. 시장 거리와 골목에는 누군가 흘려서 부서졌을 과일조각, 쓰레기들이 떨어져 있었다. 작게 뚫린 담벼락 구멍을 쥐들이 분주히 오가는 게 보였다.
그러던 마리아가 하늘을 바라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시장 바닥을 면밀히 살피며 걷던 마리아는 눈이 피곤해졌음을 깨닫고 그늘진 담 쪽으로 다가가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러자 하늘 저 너머에- 더 정확히는, 가까이 자리한 높은 탑 위에 한 그림자가 보였다.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보았지만 마리아는 이내 그 그림자가 최근 들어 손톱만큼 친숙해진 인영과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허연 옷자락 같은 것이 나부끼는 게 보였다. 여전히 한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녀는 그 사물에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남자였다. 지금까지 그녀의 인생에 이만큼 놀란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마리아는 경악했다.
알테어는 벽돌을 잡은 손가락과 팔에 힘을 주어 매달린 몸을 끌어올렸다. 소매에 감싸인 팔의 힘줄이 불거지고 부츠바닥으로 벽을 차며 몸을 올리자 수평진 딱딱한 돌바닥이 안정감을 안겨주었다. 그가 저 바닥부터 올라온 탑의 높이는 까마득하게 높았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얼굴을 때렸다.
알테어는 언제나처럼 탑에서 툭 불거지게 나온 나무기둥에 발을 올렸다. 범인이라면 아래를 쳐다보지 않아도 이미 겁에 질려 발을 헛디디거나 아예 올리지도 않았을 높이지만 그에겐 친숙한 감각이었다. 능숙한 자세로 알테어는 고개를 들었다. 탁 트인 도시 전경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남들과 다른 유별난 감각이 다른 사람들이라면 볼 수 없을 곳까지 남김없이 모아 그에게 선물했다.
그가 뛰어다닐 모든 곳이 보였고, 어느 건물 한 켠에 그가 찾아갈 암살단 지부의 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자신의 위치와 도시 길을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알테어가 도약하려 했을 때였다. 그리 멀지 않은 옆길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알테어는 그녀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마리아는 이쪽을 보며 어딘가 당황한 듯이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부르고 있는 것이리라. 알테어가 도약했다. 탑에 올라갈 때와 는 달리 중력의 도움을 입은 몸이 단번에 하늘을 가르며 떨어져 내렸다.
“거기에서 뛰어내리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가? 미쳤나? 제정신이긴 한가? 애초에 대체 거긴 왜-”
지상을 밟은 알테어를 반긴 첫 마디였다. 지푸라기를 떨구며 수레에서 나와 얼마나 걸었을까. 군중 속에서 가느다란 팔이 강한 힘으로 그를 끌었다. 알테어의 멱살을 잡고 골목으로 끌어간 마리아는 잔뜩 흥분한 마리아는 팔을 내저으며 윽박지르듯 알테어를 몰아세웠다. 격한 마리아의 반응에 당황한 알테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마리아가 눈을 하얗게 뜨고 자기가 받은 충격을 남김없이 알테어에게 전달하려는 듯이 쏘아붙였다.
“아래에 짚단이라도 있었으니 다행이지, 거긴 대체 왜 올라간 거지?”
“일단 진정하게. 거기에 올라간 건 용무가 있었네.”
알테어가 느끼는 당혹감과는 별개로 격앙된 목소리와 상반되게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마리아를 더 화가 나도록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얼마나 놀랐고, 당황했고, 무서웠는지 전달이 안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마리아는 방향을 바꿔 빈정거리기로 했다.
“아, 그래? 사람 놀래키는 재주라도 피로하고 싶었나 보지? 하긴 위에서 갑자기 사람이 떨어져 죽으면 얼마나 놀라겠어. 그것도 아는 사람이-”
“그만. 거기까지 해.”
과연, 자존심 높은 그에게 빈정대기는 효과가 좋은 모양이었다. 부르는가 싶어서 내려왔더니 용건은 고사하고 머리 괜찮냐는 말부터 해서 빈정거리는 말까지 듣자 알테어도 퍽퍽한 성질이 올라오기 시작했는지 아까보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르렁거렸다.
발끈한 성질을 누르며 알테어가 무뚝뚝하게 왜 불렀는지 묻자 마리아가 기가 차다는 눈빛을 보냈다.
“왜? 왜냐고? 그 높은 데에서 사람이 떨어지려 하는데 안 부르게 생겼나? 당신은 그런 상황에서도 아, 떨어지겠군. 하고 멀뚱멀뚱하고 바라보나 보지?”
마리아는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속으로만 당황하던 알테어는 속사포 같은 마리아의 추궁을 듣고 나서야 둘 사이에 오해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마리아가 신뢰의 도약을 처음 봤다는 것을 안 알테어는 차분하게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마리아. 내가 올라간 건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서지, 떨어지려 한 게 아니야.”
“떨어지려 한 게 아니라고? 당신은 떨어졌어.”
“떨어진 게 아니고 뛰어내린 거네.”
“어느 쪽이든 위험한 건 같아.”
“남들에겐 그렇겠지.”
거기까지 말하고, 알테어는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마리아의 얼굴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함을 느꼈다.
“마리아. 우리 암살자들은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신념을 나타내기 위한 의식으로써 치루고, 나도 그렇네. 우리들에게 뛰어내린다와 떨어진다는 달라.”
“그 높이에서?”
마리아가 납득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했다. 암살자에게 그런 의식이 있다는 것은 배웠지만 설마 그런 높이일 거라곤 생각치 못 했다. 알테어는 마리아의 반응을 보고 그녀는 신뢰의 도약을 직접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알테어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사실 그가 농담이라는 걸 하는 지나 의문이었다.- 마리아는 아무리 봐도 목숨을 허공에 내던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의식이라는 것을 억지로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후에 알테어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당신, 거기는 왜 올라간 거지?”
“주위 지형을 둘러보려고 올라갔네.”
“거기에서? 그 높은 곳에서 지형들이 보이나?”
마리아의 눈빛은 아직도 미심쩍은 듯 했지만 정말로 궁금한 것 같았다. 알테어는 조금 생각하다가 “나는 보이네.” 하고 대답했다. 애매한 대답에 마리아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알테어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도 모른 척하고 자세히 대답하지 않기로 했으나, 마리아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올라가면 지형도 한 눈에 보인다고?
마리아가 말했다.
“그러면, 알테어. 나에게도 올라가는 것과 뛰어내리는 것을 가르쳐주게, 유용할 것 같아.”
“뭐라고?”
순간 무뚝뚝한 표정이 무너지고 알테어가 눈을 크게 떴다. 마리아의 말을 듣고 알테어의 머릿속에 지나간 건 잘못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진 노비스들의 모습이었다. 옆에서 보았을 때는 그저 잘못 뛰어내렸군. 하고 자세의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 거라는 둥의 생각이나 조언만 했던 그였지만 지금 머릿속에 지나간 그들의 모습에 마리아가 겹쳐지자 저도 모르게 그의 입이 먼저 말했다.
“그건 안 돼. 위험한 의식이야.”
“하지만 당신들은 하잖나.”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네. 그러고도 서툰 자들도 많아. 다리가 부러지거나, 다른 곳이 잘못 되기도 하지. 능숙한 자들도 때로 실수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떨어지는 건 쉬울지언정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것은 쉽지 않아.”
“남들이 배워서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네, 알테어.”
확고한 마리아의 의지는 알테어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알테어는 그녀를 포기시키기 위해 다른 이유를 끌어와 덧붙였다.
“내 시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좋네, 마리아. 자네가 올라가도 자네가 원하는 만큼 보이진 않을거야.”
“남들은 당신이 보는 만큼 볼 수 없다고?”
마리아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알테어가 그렇다는 듯이 평소의 표정으로 마리아를 마주보았다. 나에게 가르쳐주기 싫은 걸까? 내가 여자라서? 전 템플러여서? 아니면 암살단의 의식이라서? 마리아는 알테어를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았지만 알테어는 더 꿋꿋이 마리아를 바라보았다. 알테어는 스스로가 그녀에게 진실만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그녀를 걱정해서 말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함구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고집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더 굳세었다.
“혹시 나도 당신만큼 볼 수도 있잖나. 올라가보면 알겠지.”
“마리아.”
아까보다 조금 더 굳어진 그의 표정을 보며 마리아는 얼굴을 구겼다. 정말로 가르쳐주지 않을 생각이군. 고향에서 자신을 보던 가족들이며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 떠올라 마리아는 기분이 상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됐네. 어쩔 수 없지. 난 가보겠어.”
“간다고?”
“나도 놀고 있던 게 아니네. 추격자가 있을지 모르니 시장을 돌면서 기사단의 흔적을 찾고 있었어. 별 일 없거든 저녁에 보도록 하지.”
거기까지 말한 마리아가 몸을 돌려 아까 가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알테어가 마리아를 불러세웠다.
“그럼 용건은-”
“없어. 당신이 거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것뿐이니,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니라는 걸 안 걸로 됐네. 그럼.”
용무가 끝난 여자의 발걸음은 매정하고 신속했다. 후드를 다시 쓰고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마리아의 뒷모습을 보며 알테어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그녀가 사라진 자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언젠가 암살단에 들어온다면야.”
정신을 찾은 알테어가 들을 사람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짧게 한숨 쉰 그가 담을 짚고 올라갔다. 그들이 찾은 이 도시의 암살단 지부에 가기 위해 남은 한 사람마저 자리를 뜨자 골목 한 구석, 눈치만 보던 쥐 한 마리가 찍, 하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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