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 破器
부닌을 죽여. 목숨만 취하면 그 다음은 내키는 대로 해도 좋아.
의뢰를 수주받는 것은 행정을 처리하는 자들의 몫이다. 성가신 들짐승 잡는 일부터 장거리 호위, 지주 간의 분쟁, 사사로운 복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고용주들이 적법하고 적당한 계약의 절차에 따라 일을 맡기면 그때부터 오쉰, 그와 같은 칼잡이가 나서는 것이다. 묵묵하고 겁이 없는 칼잡이는 쉽게 각광받는다. 그는 묻지 않고 목숨을 쉽게 걸었다.
‘그 다음은 내키는 대로 해도 좋다’까지가 의뢰의 내용이었으므로 오쉰은 부닌을 죽인 자리에서 내키는 일을 찾았다. 아름다운 검 한 자루가 눈에 띄었다. 오쉰은 그 검이 가지고 싶었다. 저것을 가져가 돈으로 바꾸면 의뢰 두어 개쯤 건너뛴 채, 예년보다 몇 달 정도는 일찍 귀향할 수 있겠지. 그답지 않게 영악한 계산을 빠르게 마쳤다.
어부들이 사는 외딴 마을, 언덕길에 지어진 자그마한 벽돌집에 아직도 오쉰의 어머니가 홀로 살았다. 나 혼자서도 우리 두 식구 살림은 거뜬히 해치웠던 것 모르니. 괜찮으니 가거라. 오쉰의 어머니가 버릇처럼 하던 말이 반쪽짜리 진실이라는 것을 그는 진작에 눈치챘다. 풍랑에 휩쓸린 집안을 혼자 힘으로 돌보는 것은 말처럼 거뜬한 일이 아니었다. 오쉰도 어머니도 몸소 겪어 깨달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오쉰이 십수 년째 돈주머니를 좇아 바깥으로 나도는 것이고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부득불 오쉰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은 여생 편안히 내 걱정도 남 걱정도 않고 살 만한 돈이 모이면. 그가 매년 무작스럽게 돈 벌어다 바치는 이유가 그것 아닌가. 더 연로하시기 전에 부양해야겠지. 그래야 어릴 적 빚진 보살핌의 절반이라도 되갚을 수 있겠지. 그래서 그는 죽은 사람의 검을 훔쳤다.
우아한 검집을 손에 쥐었을 때, 불현듯 고랑에 떨어져 죽은 걸로 모자라 차고 있던 검까지 빼앗긴 사람이 고개를 치들었다. 오쉰! 햇볕에 늘어놓아 말리던 생선을 못 참고 손으로 건드리면 그런 고함이 떨어지고는 했다. 희끗한 새치가 보이던 무렵의 어머니는 화롯가에 앉아 불씨를 쏘삭이던 중에도 어린 아들이 살금살금 걷는 소리만은 놓치는 법이 없었다.
너 이놈! 오쉰! 형형한 보라색 눈동자가 오쉰을 노려보았다. 어딜 손을 대려 들어! 너 혼자만 가져서 될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어! 네 누이와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다같이 누려야 마땅한 것이라고! 손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하하. 입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버석하고 비쩍 마른 한숨처럼.
그의 나이가 이제 서른여섯이다. 서른여섯 해를 살았단 말이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소싯적 이야기로 사람 뇌리를 휘저어 놓으려 들다니. 오쉰은 휘황한 검집을 떨쳐내고 검신을 꺼내들었다. 희고 푸른 광채 탓에 눈이 부셨다. 너 이노오옴! 오쉬이이이인! 왜 한 번 죽은 것들은 그 단 한 번을 제때 죽지 못해서 산 사람 심기를 이토록 어지럽히는지. 빠드득 이가 갈렸다. 검을 처음 쥐어 본 소년처럼 악에 받쳐 자루를 휘둘렀다. 썩은 무조차 베지 못할 엉망진창인 일격에 피골상접한 시체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아래, 마법진 위에 놓인 것은 작디 작은 단지였다. 어머니를 넣어 놓았던 관짝보다도, 유골을 수습해 모아둔 네모난 함보다도 작은 단지. 뚜껑을 열면 분가루가 휘날릴 것만 같은, 단아하고 그래서 누군가를 닮은 항아리.
오쉰은 떨리는 두 손으로 단지를 소중한 보물처럼 감싸쥐고 주저앉았다. 혹여 깨어질세라 조심스럽고 부드러운 손길로 그것을 다시 바닥에, 원래 있던 자리에 돌려놓고는 검을 역수로 쥐었다.
힘을 싣는다.
그의 얼굴은 두려울 만큼 무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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