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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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의 애인은 눈물이 많아도 참 많았다. 어느 정도로 많았냐 하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곧바로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그런 정도였다. 그런 연인을 가장 많이 울린 장본인이 바로 본인이었으니, 입이 10개라도 할 말이 없었으나 성한은 그것에 대해 단 한 번도 제 잘못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당황하는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금방 엎어져
클라이스트가의 사남이 본격적으로 ‘이런’ 사업에 뛰어든 건 아카데미를 졸업했다고 알려진 연도 보다 1년 후였다. 그 동안의 그의 행적은 묘연했으나, 떠돌아다니는 소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울어지는 차남과 삼남의 진영을 보고 눈치 빠르게 장남에게 줄을 댔다지, 뒤늦게 뛰어든 승계 경쟁이 사남에게 상냥했을 리가 없으니 그는 아마 장남이 시키는 모든 궂
……그거 알아? 이런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야……. (똑.) 도무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하긴, 난 이제 겨우 졸업생이고…. (똑.) 형들은 한참 전에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당연한가. (똑.) 이래서 아카데미 졸업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거야. 어쩔 수 없어, 그렇다고 여기서 죽어버릴 수는 없잖아. (똑.) 그야 당연하지, 똥밭을 굴러도
편질 쓰는 건 항상 서툴렀지.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단지 편지뿐만이 아니라, 그냥 사람 간의 대화 자체가 조금 서툴렀던 건지도 몰라. 무엇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더라. 시간이 갈수록 머리가 점점 굳는 것 같으니까, 빨리 생각해내야 할 텐데. 아, 맞아. 오해 때문이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어. 그냥 대화도 서툰데, 어떻게 오해를
X월 XX일 A는 이 일을 하다 미쳐버릴까봐 일기를 쓴다고 했다. 어쩌면 현명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황실 특별지령이 내려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건 안다. 그렇지만 그 쪽 역시 급하기는 한가보지. X월 XX일 그들이 지명한 발명품은 확실히 환영받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남아있기 위해서
우리는 뼈로 만들어진 무덤 위에서 살아요, 죽은 동료의 살점과 피로 만들어진 성 위에 서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전부 똑같은 것이지, 우리가 모르는 새 누군가는 피 흘리며 죽어갔던 것이고, 우린 그 피를 양분삼아 자라난 터에 자리 잡고 살았던 거다. 그러니 지금은 그것을 돌려주어야 할 때이고… 미래의 누군가가 다시 우리의
사람이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행한 하루가 있는 법이다. 엔슬리 P. 기어하르트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두통이 일었던 것이다. 저혈압으로 인한 두통이라고도 보기 어려웠다. 누군가 머릿속에서 야무지게 쥔 주먹으로 짱돌을 쾅쾅 찍어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고통이 차마 생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의
모든 반짝이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진다. 심지를 다 태운 초가 꺼지듯이, 이글이글하게 아스팔트를 달구던 여름의 해가 지듯이, 그리고 무대를 가득 채운 함성소리와 조명들이 암전하듯이. 마치 빌린 물건을 때가 되어 반납하는 것처럼, 우리는 그것을 잠시 빌려다 썼다가 다시 내려놓아야할 때가 있다. 올해 봄부터 전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데뷔 오디션 프로그램은 올
- 오웬과 웨일 두 사람 모두 현대사회 미국거주 AU - 현실 고증 전혀 없음 죄송합니다... (진짜 대충 씀) “어때, 심각해?” “…음, 완전히 퍼진 것 같은데.” 조수석에서 내려 타이어 바퀴를 살피던 오웬이 창문으로 몸을 반쯤 꺼낸 웨일의 물음에 차분히 답했다. 오웬이 말이 거짓은 아닌 듯, 손가락으로 타이어를 찌를 때마다 바퀴가
눈꺼풀 위로 비치는 햇살에 별안간 웨일은 인상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아무래도 꼼꼼히 여매지 않았던 커튼이 범인인 듯 했다. 미세하게 갈라진 그 틈 사이로 정확히 햇살이 웨일의 얼굴로 비쳐들어왔던 것이다. 몇 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평소의 기상시각보다 이른 것은 분명했다. 웨일은 작게 끙, 하는 앓는 소리를 내며 제 옆에 누워있는 연인 –
10살, 네가 내게 넌 커서 무얼 하고 싶냐며 꿈에 대해 물었던 날을 기억한다. 그 때에 나는 어렸고, 미숙했고, 미련하기 짝이 없어서, 어떤 답이 옳은지에 대해 알 수가 없어서, 네가 내게 남김없이 베푸는 호의에 슬쩍 숨어 대답을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이의 기대가 아닌, 자기 자신만의 일로 심장이 뛰어본 적은 그 때가 최초, 차마 역사에서 지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온전히 나의 선택인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타적인 동시에 이기적이며, 순종적인 동시에 무척이나 반항적이기 짝이 없다. 나는 부모님의 희망에 따라 부모님의 일을 도왔고, 내 동생들의 희망에 따라 내 물건들과 시간을 양보했으며, 친구들의 희망에 따라 놀이에 어울렸다. 그것이 온전히 내가 원해서 한 일이냐 묻
생각해보면 눈이 참 싫었던 것 같다. 발이 푹푹 빠지는 것도 그닥이었고, 녹고 나면 푹 젖게 되는 것도 별로였다. 그러니까, 그 때 당시에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란 소리다. 몸이 감당 가능한 수준 이상으로 피곤해지면 쓸 데 없는 생각이 늘게 된다. 오늘따라 어깨에 걸친 황립 기
1일차 [야라림하] 1 [오세준봣냐] 1 [아님연락이라도] 1 림하는 이제 막 나온 부대찌개를 한 스푼 뜨며 다음과 같은 연락을 읽었다. 한 술 뜨다 말고 시선을 테이블에 고정한 림하를 보며 현성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데? 눈빛으로 묻는 현성을 두고 림하는 고개를 저으며 화면을 껐다. 으레 다른 대학로가 그렇듯, 뇌문雷門대학교 앞 대학교 앞
미조레가 걸린 감기가 꽤나 독했다. 1년 365일 내내 추운 홋카이도지만, 그래도 제법 기온이 따뜻해지는 여름에 걸린 이상한 감기였다. 여름 감기는 바보도 안 걸린다던데. 바보란 소릴 밥 먹듯 듣는 내가 아닌 누나가 여름 감기에 걸릴 줄이야. 괜스레 옆에서 미코토가 쫑알거리자, 미조레는 그냥 작고 힘없이 웃으며 팔을 올려 미코토의 머리만 두어번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