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선우x주란] 재회

히어로x빌런 AU

조각 by P_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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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

히어로 선우 X 빌런 주란

“주란 주변엔 재미난 일이 참 많아~”

“좀 닥쳐봐. 생각 중이잖아, 생각! 나도 지금 골치아프다고!”

안그래도 짜증나 죽겠는데 옆에서 더 속을 긁어대. 내 속이 지금 어떤지 전혀 모르면서! 저 망할 고양이에게 몇마디 더 쏘아붙여줄까 했지만, 한숨으로 대신했다. 그녀에게 화를 내봐야 무엇이 달라질까. 골이 아픈 이 상황은 결국 나 혼자 해결해야할 일인데.

골머리가 썩는 이유는 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유성빈. 히어로명 ‘선우’로 활동하고 있는 저 남자 하나 때문에!

“왜 성질을 내고 그래. 결국 이 모든 원인은 주란이 저 회색머리 영웅 놈이랑 연애놀음 하느라 생긴 문제잖아? 다른사람에게 화풀이하면 못쓰지.”

…할 말이 없다.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는 고양이 놈을 노려봤다. 눈을 꾹 감고 몸을 뻗던 고양이, 그러니까 ‘앤’은 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꼬리를 살랑였다.

“그러니까 사람을 제대로 봤어야지.”

“얼굴보고 덥썩 좋아서 연애 시작했는데, 그 놈이 히어론지 시민인지 빌런인지 알게뭐야.”

이건 그러니까…빌런인 내가 히어로인 유성빈과 연애를 했었다는 얘기다. 일의 원인을 따지자면 ‘지독하게 얼굴을 밝히는 빌런 서주란’이 될테고.

“하긴 그놈이 좀 혹할 정도로 잘 생기긴 했지.”

차라리 그날 바(Bar)를 가지 말았어야 했나. 칵테일이 지독히 땡겨서 술을 한잔 했을 뿐인데, 그곳에서 선우, 그 놈을 만났다. 친구가 졸라 어쩔 수 없이 왔다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며 술 대신 물을 들이켰다. 바 특유의 희끄무레한 조명 속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외모 때문에 말을 섞게 되었지. 회색 머리칼과 느른하게 웃던 푸른 눈동자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첫 눈에 반했다고 하면 그런 느낌일까? 심장소리가 내 말소리보다 더 큰 것 같아서, 그 소리가 당신에게 들킬까봐 두려웠던 그날 밤이 아직까지도 선명했다.

나는 그의 외모를 안주삼아 술을 들이켰고, 그는 내게 이끌려 긴 밤을 보냈다. 연애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솔직히 말도 잘해, 얼굴도 잘생겨, 매너도 좋아, 거기에다 속궁합까지 잘맞는 사람을 그냥 보내기에는 너무 아쉬웠으니까. 나는 그가 쓰다듬어주는 손길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사랑을 증명하듯 제게 안겨오는 손길을 사랑스럽다 말했다. 작은 스킨십, 애정어린 말 조각 하나에도 환히 웃던 당신을 보며 ‘행복’을 새로 정의해 나갔다.

그가 ‘히어로’라는 걸 알았던 날은 평소와 다름없던 어느 날이었다. 내 구역과 조금 떨어진, 다른 빌런의 구역에서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게 화근이었다. 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고 선우는 당연하게도 시민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인정해. 그 망할 사랑 때문에 조금만 캐치해도 알 수 있었던 단서들을 놓쳐왔던 거. 데이트를 하다가도 일이 있다며 중간에 가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데이트 자체를 하는 횟수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을 때 마다 ‘사건이 터진 날’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해왔다. 뉴스에 나오는 그의 실루엣이 익숙하다 생각하면서 겹쳐보려 하지 않았다. 함께하는 일상을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으로.

하지만 그가 시민을 구하러 뛰어가는 순간, 영웅의 모습을 하며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빌런과 싸우는 그 장면은 지금껏 머리로 짐작하고 있었던 모든 추론을 결국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떠났다. 세상을 구하는 그를 뒤로한 채. 그렇게 이어져 온게 지금.

“그런데 그 녀석도 눈썰미가 좋긴하네. 어떻게 빌런폼인 너를 알아봤지?”

그리고 문제가 되는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가 ‘내가 빌런임을 알아본다는 것’

“내 말이!”

“배를 얼마나 맞추고 다닌거야?”

“그딴 걸로 알아보겠냐고 이 미친 고양아.”

아오, 이 미친 고양이. 얄미운 마음에 고양이의 볼을 쭉 늘이다가 그대로 소파에 던지듯 놓았다. 저런 단어는 대체 어디서 배운건지. 짧은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 접어 놓은 종이를 꺼냈다. 아까 ‘일’을 하러 나갔을 때 적절히 내 일을 방해한 선우가 내게 남겨놓은 것.

[보고싶다. 우리가 처음 추억을 나눴던 곳으로-.]

어쩐지 이상하더라. 나는 고작 B+정도 밖에 되지 않는 빌런임에도 무려 S급인 선우가 내 구역에 파견 나온 것. 그리고 무려 S급이나 되어놓고선 아슬하게 나를 놓쳐버리고 나는 그대로 도망가는 이 상황이 반복되었던 것. 심지어 오늘은 건물에 박혀서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이딴 쪽지나 주고 그냥 가더라. 물끄러미 쪽지를 보다가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모자가 어디있더라.

“어디가?”

“잠깐 밖에.”

“보러 갈거야?”

“누굴?”

“회색머리 히어로 말이야.”

“네가 알 거 없잖,”

“보스한테 이를거야.”

현관문을 잡던 손이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고양이를 보았다. 아무튼 못된 것만 배워선 약점을 쥐고 흔드는 데는 선수다.

“츄르 사올게.”

“나는 지금 자고있는거야. 아무것도 못봤어.”

얼씨구? 츄르 사온다는 말에 금새 엎드려서는 눈을 감고 그새 자는척을 한다. …이거 고양이 아니고 여우 아냐?

“…안가?”

“가. 갈거야. 간다고, 가.”

문고리를 잡아 현관문을 나섰다. 내가 뭐 좋아서 만나러가는 줄 알아? 정체를 들킨 상황에 수습을 해야되니까 어쩔 수 없이 만나는거지. …절대 얼굴 생각나서 만나는거 아니라고, 절대.

밤바람은 따뜻했다. 겨울이 지나고 이제 봄인가. 아직까지 차가운 기운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아. 가벼운 코트를 입고 나서기 좋은 밤이다. …조금 오래 걸었을까. 도착한 곳은 으슥한 골목길. 정확히는 처음 만났던 바(bar)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길이었다.

“나와줬네.”

이제는 익숙해져선 안될 목소리가 인적 드문 골목을 울렸다. 나는 건물 벽에 기대 팔짱을 낀 채로 그를 마주했다.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푸른 눈동자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마주하는건 오랜만이지.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낮은 목소리가 무척이나 부드럽고 다정하게 들려서…….

“우리 서로 쿨하게 헤어진거 아니에요?”

“난 동의한 적 없는데.”

“아, 왜그래요 정말. 서로 누가 누군지 다 알았으면 자연스럽게 헤어지는거지.”

“넌 그렇게 하고 싶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다가왔다.

“봐. 너도 제대로 대답 못하잖아.”

“…어차피 우리는,”

“많이 보고 싶었어.”

“…….”

“그러니까 우리,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

어느새 그는 내 두 손을 감싸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니 새삼 내가 그에게 반했던 이유를 다시 한 번 체감했다. 분명 단호히 잘라내야 할 타이밍인건 머리로 아는데, 입으로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젠장.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렸다.

“어떤 영웅과 빌런이 서로 연애를해요?”

“비밀로 하면 되잖아.”

“말이 쉽지-,”

“그래서, 싫어?”

“…….”

“좋은지 싫은지, 네 마음만 말해줘.”

도대체 이 사람은 왜이렇게 잘생긴걸까. 얼굴만 잘생긴게 아니라 목소리도 잘생겼다. 말도 잘해. 제기랄.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당신을 똑바로 마주했다. 내 마음만 말해달라고? 두근두근. 당신을 마주할 때 부터 울렁이는 마음이 결국에는 속절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냥 거절하기엔 함께 지냈던 과거가 너무 평화롭고 행복했기 때문에. 빌런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존재이니, 나도 내 욕망에 따라 충실히 이행할 뿐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마냥 거절하기에 간절하게 물어보는 저 얼굴은 너무 잘생겼고, …여러모로 끝내줬으니까.

“들키면 얄짤없는거에요. 그땐 정말 헤어지는거야.”

“그땐 이깟 영웅놀이 그만하지 뭐.”

“그 대단한 능력을 정부에서 잘도 놓아주겠어요.”

…이 모든 과정과 결과가 그의 계획 안에 있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일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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