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최비연
총 13개의 포스트
“마약이 들어 있는 것 같네.”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던 의뢰인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런 그를 보는 탐정-야닝 도노반-은 단서를 잡아 기쁘다는 말도, 착잡하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파이프 연기를 뻑뻑 내뱉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사랑하는 상대의 결혼식 케이크 안에, 10킬로그램의 마약이 들어 있다는 소식은 썩 유쾌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 낯선 여자와 결혼식을
찬란한 바다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언젠가는 잡히는 대로 사람을 쥐어 터뜨려 그 피를 묻혀야 하는 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마저도 살인자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꿈이었던 걸까. 총 끝이 향한 대상은 언제나 악이었노라고 스스로에게 되뇌고 되뇌다, 결국 긴 밤이 끝나고 몽롱한 정신으로 깨어 있는 순간이 오면 총구를 자기 머리에
펜 딸깍이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는 학교 자습실, 나는 방학에도 꼬박꼬박 출석을 나오는 고등학교 3학년이다. 공부 중 쉬는 시간을 아이패드에 설정해두고 짬짬이 글을 적고 있노라면 고 3 아직 할 만 한데? 싶다가도 이렇게 느낀다는 것 자체가 해이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반증 같다. 아니라고 변명할 거리도 없어서 더 짜증이 난다. 공부 습관이 덜 든 탓이라고
📜성대한 혼돈의 시대📜 (최대) 2132 | 15세 이상 권장 | 디스코드 캐입 | 정통 판타지 | 올종족 모든 것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 넓은 판타지 세계관을 자유롭게 탐험하고 즐기실 수 있습니다. 마법과 다양한 이종족이 존재합니다. 이 세상은 그저 무대일 뿐, 이곳에서 무엇을 하실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무대는 여러분의
좁다란 서고에 봄빛이 들었다. 겨우내 내린 눈이 품고 있던 새싹들을 떨치고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라 알리는 시기가 돌아왔으니, 이는 낯선 사건이 생겨도 생길 징조라. 봄빛을 마주한 서적들도 새 생명의 가치를 아는 듯 은은한 다색을 띠었다. 조용한 서고 안에서 홀로 책장을 넘기는 여인에게 있어 초대하지 않은 활기는 썩 달갑지 않았던 모양이다. 열린 창틈으로 기
호텔 아더월드는 그 수상쩍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의 인간들에게서 호응을 얻고 있었다. 아마도 고급스러운 시설 때문이겠지. 그것도 아니면 아더월드의 '아더' 부분을 유명하기에 그지없는 '그 왕'의 이름으로 착각했거나. 어쩌면 호텔 팸플릿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서 하단에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지배인 다니엘에 현혹되었는지도 모
당신을 동경했다. 당신처럼 되고 싶었다고 감히 말해본다. 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어느 시점부터 너무나도 냉정해진 아버지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때를 그 기점으로 삼겠노라. 감히 선언해 본다. 나의 어린 날이 품었던 따스함은 갑작스럽게 식어버렸고 끝나지 않을 겨울만이 찾아왔다. 봄을 불러오고 싶었다. 내 방은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죽음이었다. 내가 증오한 너는 나의 손에 스러졌고 더는 깨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 그것은 죽음뿐만 아니라 복수. 달콤하기 짝이 없는 복수였다. 내가 사랑한 모든 것이 너의 손에 스러졌던 순간을 기억한다. 가족이라 불러도 좋을 이들과 친구라 불러야 마땅할 이들. 그 달콤한 나날들을 한 번에 깨뜨려 산산이 부서지게 한 것은
평야, 복잡하고 아름다운 생명의 땅이죠. 풀을 뜯어 먹는 일로 목숨을 부지하는 어린양이든, 자신보다 나약한 이들의 살점으로 내일을 이어갈 위안을 얻는 사자든, 우리는 그곳의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물론이죠, 가끔 우리는 단순한 군것질로도 생명을 앗아가는걸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지켜볼 이는 필요에 의해 식사하므로, 어떤 면에서는 우리보다 낫다고
햇볕이 백사장을 찌른다. 거친 상흔을 입은 모래가 뜨거운 숨을 토해내는 순간에 그녀는 그 자리에 있었다. 새하얗게 달궈진 파편들은 태양을 그대로 품어 공기 중으로 돌려주었다. 모래들의 숨결이 그녀를 붙잡아 일어서지 못하게 한다. 열기가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이라면 분명 이런 것을 말할 테다. 움직임 없이 숨만 붙어서는 하릴없이 바다로 쓸려가는 알갱이들을
안녕, 이건 네가 먼 훗날 펼쳐봤으면 하는 편지야. 그리고 이러한 글들이 흔히 그렇듯 나의 마지막을 대비하고 있어. 유언장을 쓰면서 가족이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여자아이 앞으로 편지를 부친다는 건 꽤 모순된 일일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상관없어, 다른 이들이 우리의 관계를 뭐라고 말하든 간에, 나에게 너는 가족이었으니까. 먼 훗날 펼쳐보라고 말은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이는 다소 곤란하고도 철학적인 질문이다. 이런 말을 수련에게 물어본다면 돌아올 대답은 물론, '아니오'겠지만. 그녀는 흔해빠진 운명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녀가 인연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다소 모순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당신은 인연을 믿는가? 수련이 생각하기에 인연은 존재한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관계가
"야, 수련아, 내가 너 밤새울 만한 얘기 하나 해줄까." 같은 방에서 맥주를 홀짝이던 친구가 캔을 내려놓고는 그렇게 말했다. "뭔데? 너 귀신이 어쩌고 하는 거면 뒤진다. 나 그런 거에 약한 거 알잖아." "헐, 귀신일 수도 있는데." 그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빈 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술기운에 없던 패기까지 생긴 모양이었다. "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