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한아/NCP] 이름을 불러
다시 한번 아이돌 2차 창작, 서현우 중심
백업 :: 2021. 07
■■■는 꿈을 꾸고 있었다.
흐릿한 먼지 한 톨 떨어진 것 없이 희기만 한 공간이었다. 그림자 지는 곳 하나 없이, 명암은 고려할 바도 되지 못한 듯 그저 하얗고 하얄 뿐이었다. 그 색은 깜빡이는 눈꺼풀 너머마저도 하얗게 물들여 눈을 감고 뜨는 것을 분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바닥과 벽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나 이음매 하나 없이도 가두어졌을 뿐인 공간이었다. 색이 비어있는 이곳은 소리마저도 없었다. 불러야 할 것에 색이 없으니 소리도 의미 없이 멀겋게 부서졌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꿈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공허하기만 한 공간에 그는 존재하고 있었다. 벽이며 바닥과 마찬가지로 하얗게 비어있으면서도 그는 자신이라는 존재가 이곳에 있음을 구분했다. 자신이라는 덩어리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있었다. 하여, 그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고는 스스로의 안에서 사무치는 감정들을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는 줄곧 방황하고 있었다.
닿아야 할 곳을 모르고, 찾아야 할 것을 모르면서 막연하게 무언가를 헤아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눈꺼풀의 안과 밖이 명확치 않았으나 분명 그리했을 것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눈앞을 물들이는 것은 파란색이었다. 바닥을 흐르며 찰랑거리는 파아란 강이 눈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게도 자리 잡았다. 하늘이 넘쳐흘러 땅을 푸르게 덮었다. 발목에 찰랑거리는 푸른 방울 탓에 울렁거림이 목을 타고 징그러운 덩어리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뜨면 이제는 하얀색이 아닌 다른 색이 보였다. 푸른 얼룩 속에서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이 망설이는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는 참방거리는 소리를 눈으로 듣고 있었다. 소리 없는 춤에도 발끝에서 태어나는 물소리는 작은 동작에도 파랗게 찰팍거렸다. 내밀어진 손을 잡고 그는 춤을 췄다. 지팡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지도 모를 이와 즐거운 놀이라도 하듯 호흡 맞춰 몸을 움직였다. 바닥에서부터 튀어 오른 물방울이 하얀 그의 몸에 파란 얼룩을 새겼다.
쫙 펼쳐진 팔과 함께 춤이 끝나자, 볼일도 함께 끝났다는 듯 파란 사람이 흔쾌히 등을 떠밀었다.
영문도 모르고 ■현■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찰칵거리는 셔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파란 강이 그의 걸음을 따라 계속 흐르고 고였다. 가만히 있으면 바닥으로 녹아내릴 것 같아, 그는 그저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코가 간지러워졌다. 에취. 소리 없는 재채기에 몸이 둥글게 굽어졌다 펴졌다. 펼쳐지는 것은 만개하는 붉은 꽃이었다. 먼지도 없던 공간을 대신하듯 붉은 꽃잎이 시야를 떠다녔다.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는데 부끄러움 많은 웃음이 그 사이에서 그를 찾아내고 잡아끌어 앉혔다. 여린 손끝이 그를 스쳐가자 머리 위에 가벼운 무게가 느껴졌다. 머리 위를 짚는 손가락 끝에 붉은 물이 들었다. 붉은 꽃내음이 나는 것만 같았다. 웃고 있는 이가 자신도 붉은 화관을 머리 위에 올린 채로 다정하게 손을 잡아왔다. 꽃비가 내리듯 수도 없는 꽃잎이 불어오지도 않는 바람을 따라 거세게 날아갔다. 그 사이로 번쩍이고 매서운 무언가가 떨어져 내렸지만 다정한 손길이 그의 눈과 귀를 덮었다. 어여쁘게도, 꽃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붉은 꽃물이 들었다.
꽃비가 그치자 붉은 화관의 사람이 조심스럽게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아쉬움도 없는 가벼운 포옹을 마치고 마찬가지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서■■는 다시 걸었다. 이제는 발자국을 따라 꽃잎이 춤을 췄다. 여전히 발치를 흐르는 푸른 강물에 떨어진 붉은 꽃잎들이 녹아내렸다. 무슨 색인지 떠오르지 않는 이름 모를 색이 조용히 번져나갔다.
까앙! 경쾌한 금속음이 커다랗게 울렸다. 색을 가지고 구체화되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자 휘둘러지는 야구배트 뒤로 묵직한 녹음이 능청스럽게 번져나갔다. 와르르! 반대로 돌린 시선 끝에 보이는 것은 와르르 무너진 거대한 젠가와 그 위에 걸터앉아 흥겹게 흔들리는 발끝이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갑작스러운 온기에 시선을 떨구자, 어느샌가 그의 손 위로 클로버를 한아름 올리고 방긋방긋 웃는 사람이 보였다. 동화 속의 투명한 고양이처럼 짓궂게 키득거린 이의 뒤로 커다란 나무가 순식간에 자라나 그에게 그늘을 드리웠다. 그 사이로 뛰어내린 사람은 그를 편안히 쉬게끔 앉히고는 자신은 나무에 걸터앉았다. 알아듣지 못할 언어가 소리가 되어 초록 빗방울처럼 흘러내렸다. 그를 두드리는 소리의 고운 방울이 간지럽고 기꺼웠다. 드리워진 나뭇잎을 따라 흘러내리는 방울이 싱그러운 새싹을 피워냈다.
그친 노래와 떠오른 태양이 시원한 녹음으로 그의 가는 길을 배웅했다. 그의 머리를 헤집는 손길이 떨어져 나가고 어깨에 둘렀던 손이 멀어졌다. 등을 떠미는 손길이 가벼웠다.
■■우의 걸음은 이제 자연스러웠다. 푸르게 흐르는 강도, 어여삐 내리는 붉은 꽃비도, 그를 시원스레 이끄는 녹음도. 한참을 걷고 걷다가 스스로 손을 들어 눈앞을 가렸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에 보이는 것은 더 이상 희지 않았다. 둘, 셋. 숫자를 헤아리며 손을 떼어냈다.
상냥하고 다정한 소리가 들려왔다. 물거품처럼 오색 반짝이던 거품은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을 부유했다. 떨어지는 대신 잠시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다녔다.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빚어내는 것은 앙증맞은 노란 나비들이었다. 도. 날개를 펼치고. 레. 더듬이를 흔들고. 미. 애정 어린 손길이 그의 손을 이끌었다. 그의 손끝에 닿은 것은 피아노의 건반이었다. 노란 나비가 그의 손가락 끝에 내려앉았다. 악보를 대신해 노란 나비들이 춤을 췄다. 나비들의 날갯짓을 연주하는 손가락은 그것마저도 연주의 일부라는 듯이 시시때때로 그를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가 함께 손가락에 힘을 주어 건반을 누르자 환한 미소가 번져나갔다.
노란 나비를 따라 춤을 추듯 이루어진 연주가 끝나자 연주자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놨다. 노란 나비들 사이에서 그를 바라보는 이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노란 나비가 나풀나풀 그의 길을 따라 날았다.
서■우는 꿈을 꾸고 있었다.
서현■는 아주 오래 걷고서야 하얀 공간에서 그를 끌어내고 대신 가득 채우는 다정하고 상냥한 색들의 이름을 알았다.
■현■는 스스로의 안에서 사무치는 감정들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색이 있는 곳을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여.
서현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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