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024

홉킨스 씨의 정원 (1)

집에 돌아온 그는 일주일 동안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유적 by 량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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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역에 도착하는 마지막 기차에서 내렸을 때 시간은 거의 새벽 한 시에 가까웠다. 밤하늘에 낀 구름 때문에 하늘은 회색에 가까웠고, 공기 중에서는 날카로운 풀 냄새가 났다. 맥스 홉킨스는 기차역을 지키던 역무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뒤 기차역의 불빛을 등지고 몇 걸음 걸어가다가 곧 무언가가 생각난 듯이 멈춰 서 돌아보았다. 하지만 밝은 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곧 역무원이 전등을 꺼 버려 주변이 한껏 어두워졌다.

그래서 맥스는 그냥 짐가방을 한 손에 들고 깜깜한 교외의 밤길을 걸어갔다. 길 양쪽으로 돋아난 잡초들 사이로 풀벌레 우는 소리가 끝도 없이 피어올랐다. 그는 익숙한 길을, 마치 걷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필요 없는 사람처럼 걸어갔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새벽의 거리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가게 문을 열었고, 익숙한 물건들이 진열된 가게를 가로질러 같은 건물의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 맥스는 계단을 마주하고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행과 열을 맞추어 늘어져 있는 깡통과 봉투들. 그는 잠깐 말없이 가게 문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계단을 천천히 올라갔다. 2층에 꾸려진 집은 3년 전과 달라진 것이 많이 없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맥스는 그 소리가 잠든 사람을 깨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췄다가, 곧 아무도 잠에서 깨지 않을 것임을 깨닫고 침실로 들어갔다. 아이의 키를 잰 칼자국이 3년 전의 것에서 더 늘지 않은 기둥을 지나, 여자의 심장이 멎었던 침대 앞까지.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는 기차 안에서 덜컹거리느라 곤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누운 채 천장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눈이 감겼지만, 자꾸만 잠에서 끄집어져 나오듯이 깼다.

새벽녘쯤에는 이런 것들을 생각했다: 성 베사 보육원 출신의 숙녀들과 키다리 아저씨 클럽 신사들의 친절한 웃음. 로렌스 씨의 기적적인 귀환과 마지막 졸업식. 편지 상대의 공개.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피후견인의 정체와 수줍은 축하. 노래와 웃음과 낭만. 그리고 기차에 오르자마자 들었던, 어떤 무거운 충동. 런던 교외를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맥스는 지난 일주일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그 모든 게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짐없이 지나쳤다. 지난 반년, 그리고 그 이전의 모든 일에 비해서. 이윽고 그는 중얼거렸다. 나를 위한 게 아니야.

그건 나를 위한 게 아니었어. 그는 반복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맥스는 조금 더 눈을 감고 잠들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몸을 일으켜 베개에 허리를 기대고 앉았다. 시선이 침실의 한쪽 구석으로 자연스럽게 향했다. 방 안이 캄캄해 그 구석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는 그 어둠 안에 로렌스 저택에서의 일주일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풀지 않은 짐가방 속에 꼭꼭 숨겨진 순수한 기쁨이. 판도라, 그것을 열지 말거라. 희망을 무단투기하지 마. 네게 아직 쓸모가 있을 테니까.

문득 미지근한 것이 심장에 닿아, 그는 가슴팍을 더듬었다. 손에 잡힌 것은 로켓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였다. 벗어 놓는 것을 깜빡 잊어 실내복 안에서 체온만큼 따뜻했다. 목걸이 안에는 여자와 아이의 사진이 들었다. 그는 그것을 열어 보지 않아도 두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 그릴 수 있었다. 펜던트를 쥔 채로 가슴 앞에 주먹을 쥐고 있다가, 천천히 손을 놓았다.

 

지나치게 이른 아침에 눈을 뜬 그는 조금도 춥지 않은데도 손이며 몸이 와들와들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옆머리와 등이 온통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그는 처음에 그것이 핏물인 줄 알고 황급히 손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눈이 아득해지는 색이 묻어나지 않아 안심했다. 물론 간밤에 독일군 제복을 입은 괴한이 들이닥쳐 그의 머리를 깨부숴 놓고 도망쳤을 리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떨리는 손을 주먹 쥐고 심호흡했다. 담배가 있으면 숨이 눈에 보이니 좋을 텐데. 하지만 담배는 겉옷 주머니 안에 들어 있었다. 눈앞이 하얗던 것이 조금 괜찮아지자마자 비틀거리며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는 주방으로 가서 용암처럼 뜨겁고 진한 커피를 한 잔 만들었고, 설탕을 정확히 여섯 스푼 넣었다. 커피잔을 저은 티스푼을 빨자 눈앞이 조금 더 맑아졌다.

맥스는 주방 개수대 앞에 서서 커피를 한 잔 다 마셨다. 그러고는 선반을 손으로 짚고 잠깐 서서 심장이 관자놀이에서 뛰는 기분을 한참 느끼다가, 몸이 더는 벌벌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잡화점의 문을 열러 내려갔다.

잡화점 앞의 우체통에는 일주일 정도 분량의 서신이 밀려 있었다. 그는 잡화점의 문에 붙여두었던 휴업 안내문을 떼고 편지봉투들을 한 아름 우체통에서 꺼냈다. 봉투들을 가게 계산대에 쏟아 놓고 잡다한 서신, 안내문, 공문, 조금 늦게 도착한 편지 따위를 분류했다. 그중에는 함께 영국으로 돌아온 전우 게일에게서 온 편지가 있었다. 맥스는 계산대 서랍에서 칼을 꺼내 봉투를 열었다. 안에 든 것은 편지가 아니라 부고장이었다.

그날 하루 그는 정확히 세 명의 손님을 응대했고 세 명의 손님 모두가 그에게 그간 대체 어딜 다녀왔는지를 물었다. 이 마을에 유일하게 규모 있는 잡화점을 지킬 의무를 저버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불편을 안겨준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맥스는 세 명에게 모두 다른 대답을 하고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잊어버렸다. 오후 여섯 시가 되자마자 가게를 닫고, 잡화점의 2층으로 올라와서 집안일을 했다. 그리고 그날의 첫 번째 식사를 하면서 우체통에 있던 서신들을 다시 읽었다. 우체통의 가장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부고장에는 이미 지나가 버린 게일의 장례식 날짜가 적혀 있었다. 전우의 장례식에 참석해 그가 왜 죽었는지 알아볼 기회를 놓친 것이다. 맥스는 자신이 그 사실에 크게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유감스러웠다. 그렇다면 날 위한 게 아니야. 그는 식탁 앞에 앉아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서 대체 이 세상에 남은 것들 중 무엇이 그를 위해 준비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 후로도 그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설탕을 넣은 커피를 한 잔 마셨고, 잡화점에 내려가서 하고 싶은 만큼 일했다. 매일 도착하는 안내문과 공문과 편지를 읽었고, 그러지 않을 때는 책을 조금씩 읽었다. 매일 술을 조금씩 마셨다.

편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왔다. 내용은 비슷비슷했다. 그의 건강과 일상이 잘 유지되기를 바라는 기원이었다. 그는 그것도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답장을 적는 것은 한동안 미뤘다. 맥스가 답장을 쓸 필요를 느낀 것은 성 베사 보육원 출신의 미망인으로부터 온 편지에 ‘그래서 언제 찾아뵈면 되겠느냐’고 방문이 언급되었을 때였다.

그는 그제야 자기가 해 놓고 잊고 있었던 약속을 떠올렸다. 방문. 그것도 대규모의. 식탁 앞에 앉아 있던 그는 고개를 들어 집 안을 둘러보았다. 잡화점의 2층은 혼자 살기엔 다소 넓은 집이었지만 4명이 살기엔 조금 빠듯했다. 방문을 약속한 숙녀들만 몇 명씩이나 되다 보니, 아무래도 공간이 턱없이 모자랄 듯싶었다. 집에는 여전히 하트 부부와 윈슬로 홉킨스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는 그 흔적을 어떻게 지워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날 맥스 홉킨스는 작은 마을의 부동산업자에게 찾아가 마을에서 가장 큰 주택을 둘러보았고, 입주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 뒤로 그의 일과는 빠짐없이 노동으로 채워졌다. 잡화점은 오전에 운영했고, 오후부터는 지나치게 큰 집에 돌아가 사람이 살지 않았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벽지를 바르고 페인트를 칠했다. 떨어져 나간 문짝을 달고 가구를 직접 만들었다. 런던의 가구상에 의뢰해 숙녀들을 위한 적절한 침대를 들여놓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욕실을 공사해 넣었다. 정원에는 미나리아재비며 프림로즈, 데이지를 심었고 담벼락에는 인동덩굴을 드리웠다. 잔디를 식재하고, 잡초를 뽑고, 뒷마당에는 텃밭을 만들었다. 그 사이 성 베사 보육원의 숙녀들이 몇인가 왔다 갔다. 그녀들이 있는 동안은 밤낮 할 것 없이 집이 무척 시끄러웠지만, 이웃 중 그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이 살지 않던 으스스한 주택이 맥스의 손길이 닿자 아주 봐줄 만한 아름다운 집이 되었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식은땀을 흘리며 기억나지 않는 꿈에서 깨어난 맥스 홉킨스는 애비게일 페탱에게 보낼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페탱 부인은 서부 전선에서 돌아온 이후로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의 저택에서 도련님의 전쟁 후유증을 보살피는 중이었다.

맥스는 그날 새벽녘부터 쓴 편지를 아침에 부쳤다. 편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이번에 새로 짓다시피 한 주택에 시간을 내 한 번 더 방문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겠다. 그리고 원한다면, 만약 당신이 정말로 괜찮다면 여기서 계속 살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당신을 홉킨스라는 이름으로 소개해도 나는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을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말은 진실이며, 부디 당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가 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자신이 그 편지를 보낸 진짜 이유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불행할 정도로 지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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