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4부 4화

두코 바이...


사무관과 함께 왔던 남부의 기사도 그들을 따라 이주민들을 분류했고, 크로마는 그 기사에게 은근히 다가가 왜 이쪽을 돕느냐고 물었다. 기사는 크로마가 그런 질문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해 한 박자 늦게 답했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검사한다고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여기까지 오는 시간보다 적을 텐데 굳이 검사를 생략하면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말이 잘 통하는 분이 와주셔서 다행이네요.”

크로마의 미소에 기사는 살짝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북부 기사단에 지원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로 남부에 눌러앉게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이쪽에 있어서요. 여러분과 집행자께 도움이 된다면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여긴 정말로 일이 많아서요. 농담으로라도 추천하고 싶진 않군요.”

그런 말을 하면서도 크로마는 사람들을 꼼꼼하게 검사했고 기사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다시피 했다.

두코와 아페는 한 조가 되어있었고 사무관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기사단이 바쁘게 움직이며 인적사항과 검사 대상자를 대조하고 다닐 때, 두코는 수상한 움직임을 하나 포착했다.

‘저 사람, 계속 뒤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두코는 남들 몰래 아페의 손을 툭툭 쳤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제 생각을 속삭였고 아페는 확실히 그가 뒤로 가고 있다고 대답했다. 확신이 선 두코가 정확히 한 사람을 지목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자네, 잠시 거기 멈춰보게. 주변인들에게 묻지, 저 이가 원래 거기 있던 자인가? 아니면 앞줄에 있다가 뒤로 이동한 자인가?”

누군가가 대답했다.

“원래 앞줄에 있던 사람인데 계속 뒤로 왔습니다.”

검사가 끝나 다른 곳에 서 있던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처음에 저 사람은 제 근처에 있었습니다. 뒤로 간 게 확실합니다.”

다른 기사들은 어느새 지목된 이에게 다가갔고, 그는 자신을 향해 오는 이들을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나마 간격이 넓은 곳을 향해 뛰었다.

“여기가 왜 트여있었는지까지는 생각을 못 해봤나 보군.”

바람처럼 달려간 두코가 그를 제압했다. 순식간에 바닥에 엎드려진 채, 버둥거리는 이를 두고 두코는 사무관을 불러 명단을 꺼내달라고 요청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사무관도 군말 없이 두코의 말을 따라 종이뭉치를 꺼냈다. 그는 거수자의 옷차림을 보고 종이를 넘기다가 어딘가에서 멈춘 채 말했다.

“이름과 신분, 직업을 말하게.”

“….”

잇새로 짧게 소리를 낸 두코가 손에 힘을 주어 거수자의 등을 꾹 누르자 그제야 대답이 흘러나왔다.

“저는… 미리 이주 신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셔도 없을 겁니다.”

화가 난 얼굴로 사무관은 넘겼던 종이를 되돌렸다. 두코는 손을 떼고 일어나 기사들에게 그를 심문하라고 넘겨주었고 그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얌전히 압송되었다.

다행히 이 소동 이후로 사무관도 투덜거리는 걸 멈추고 검사에 협조하였고, 검사 도구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페가 두코에게 다가와 말했다.

“부단장님, 도구를 다 사용해서 남은 인원은 내일 마저 검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검사가 끝난 인원은 저하와 크로마가 이송하는 거로 하죠. 어디로 데려가야 하는지 위치는 기억하고 계시지요?”

“위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이미 검사가 끝난 사람들을 저와 크로마 씨가 데려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을 보내도 괜찮지 않나요?”

두코는 잠시 고민했다. 이런 사소한 일에 두 사람을 투입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맞는 말이긴 해. 하지만 우리 중에 착하게 생긴 사람이 이 둘밖에 없는걸….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두코는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당초 목적은 아까처럼 수상한 이를 찾는 것이었으나, 오랜 이동으로 지쳐있던 사람들이 아페나 크로마가 검사를 요청하면 마음이 녹은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나 발견할 수 있었다.

반면에 자신이 검사를 요청하면,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순순히 검사에 응했다. 두코는 내심 억울했지만 겁먹은 사람들한테 겁먹지 말라고 말해봤자 먹힐 리 없었으니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둘러댈 말을 고르지 못한 두코는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저하, 지금 사람들은 오랜 이동으로 지쳐있습니다. 게다가 바로 입주하지 못하고 이렇게 묶여있으니 불안한 마음도 클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들이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저하입니다. 당신께선 그렇게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이해합니다만, 저 사람들을 위해서 부탁드립니다.”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크로마는 두고 가도 되지 않나요?”

“지금 예언 때문에 과하게 제 쪽을 신경 쓰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하, 경계에 더 가까이 갈 사람은 제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악마들이 쳐들어오면 당신이 더 위험합니다. 그러니 크로마를 데려가라는 거고요.”

솔직히, 두코는 아페가 자신을 이렇게 걱정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했다.

시도폰이 없다고 해도 다른 기사들이 있고, 자신이 있는데 아페의 걱정은 이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아페는 말에 올라타 크로마와 함께 사람들을 데려갔고, 두코를 비롯한 기사의 대부분은 나머지 사람들을 감시하고자 남았다. 이미 체력이 한계에 달한 듯한 사무관은 낮은 목소리로 두코에게 물었다.

“부단장님, 그러면 지금 얼마 정도 검사가 완료된 겁니까?”

“7할 정도 되었습니다. 내일 재료가 마저 올 테니 사무관께서는 쉬고 계십시오. 이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두코는 고개를 까딱여 사무관을 안내할 기사를 불렀다.

‘별로 한 것도 없으면서 엄살은….’

사무관과는 대조적으로, 그와 함께 온 기사는 멀쩡해 보였으니 두코는 그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아까는 크로마를 따라 다니더니 이제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코가 헛기침하며 은근히 눈치를 주자 그제야 기사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프라이에가 아니었다면 저 사람이 날 좋아한다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네. 프라이에는 잘 오고 있으려나? 구 기사단 본부가 다 정리되고 나서 기념 파티를 열면 그때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두코는 기사들에게 사람들을 임시 숙소로 안내하라고 명령했고, 그 자신도 말에 올라탔다. 다행히 사람들은 순순히 기사들의 안내를 따랐고 빠르게 숙소가 채워졌다.

숙소와 물자를 배정받지 못한 이가 없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 두코는 아까 잡혔던 수상한 이를 심문하기 위해 이동했다. 얼마나 긴 밤이 될지 예상이 가지 않았기에, 두코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자 했다.

가장 효과가 좋은 소재라고 한다면 당연히 프라이에였다.

‘맞다, 지난번에 프라이에가 부탁했던 필사본 받아왔는데 이번에 왔을 때 미리 주면 되겠네. 본부는 프라이에 생일 이후에나 다 정리될 것 같다고 했으니까.’

프라이에는 자신의 생일이 아예 봄도 아니고 아예 여름도 아니라 애매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두코는 그 시기의 날씨를 가장 좋아했다. 두코가 그렇게 말하자 프라이에는 자신의 생일이 좋아졌다고 말을 바꾸며 웃었다.

‘그치, 넌 추운 걸 제일 싫어하잖아.’


미온의 바람이 불었다. 책상 서랍의 첫째 칸 맨 안쪽에 보관된 붉은 가죽 책을 생각하며 두코는 말에서 내려 막사 커튼을 넘겼다.

그러자 두코를 알아본 이가 꿇어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그는 입에 물려있던 재갈이 풀리자마자 억울하다고 소리쳤다. 갑작스러운 고성에 두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엇이 그리 억울한가? 명단에 자네 이름이 있기라도 하나?”

“….”

대답이 없었다. 확실히 미등록자인 것이 판명되었으니 두코는 그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정말 몰라서 물으십니까? 먹고 살려고 그런 것이죠. 하, 물론 여기 계신 귀족 나리들은 배곯는 괴로움은 전혀 모르시니 이렇게 말해봤자 소용이 없겠습니다만.”

“내가 사무관에게 듣기로는 엔간한 빈민들은 신청하면 받아주었다고 했는데 말이지, 범죄자를 제외하고는.”

‘범죄자’라는 단어에 두코가 묘하게 강세를 주었다. 정곡을 찔렸는지, 상대방은 또 침묵했다. 한숨을 쉰 두코가 물었다.

“정체가 그러니 더 강하게 심문할 수밖에 없겠지. 그쪽 말대로 난 귀족이라 아량이 넓지 못해서, 제대로 대답하는 게 좋을 걸세. 아까는 단순히 미등록자인 걸 들킬까 봐 다른 사람들 뒤로 숨은 건가?”

“….”

당당하게 대답을 하지 않고 버티는 모습에 두코는 꿇어앉은 이의 칼집으로 내려쳤다. 맞은 이의 단말마가 막사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두코는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괜히 동요하면 성가셔져. 큰 소리를 내지 않고 내가 시킨 대답만 하겠다고 맹세하면 풀어주겠다.”

서늘한 협박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풀려난 이는 조금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 사람이 제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어차피 여기선 범죄자로 낙인찍혔으니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못할 거고, 언제까지 남의 물건을 훔치면서 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두코는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범죄자의 시시콜콜한 사연이야 들어줄 필요가 없었지만, 동조자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은, 그러니까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 아름다웠고, 친절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미간을 눌러 핀 두코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라고 쏘아붙였지만, 상대방은 이미 두코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분을 위해서라면….”

“한 대 가지곤 부족했나.”

두코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 순간, 바깥에서 비명과 함께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묶인 채 앉아있는 상대방을 그대로 두고, 두코와 기사들이 막사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게… 어떻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얼핏 보면 인간처럼 보이는 검은 형체가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늑대 무리를 이끌고 기사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올라오는 악한 기운에 두코는 기사들에게 곧바로 전투를 명령했고, 가장 먼저 뛰어들어 무리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늑대들이 자신들의 주인을 감싸듯이 두코의 앞을 막아섰고, 개중에는 그의 머리를 노리고 뛰어드는 개체도 있었다.

‘성가시게!’

바람을 일으켜 그것들을 쳐내려던 두코는 제 머리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불화살에 잠깐 멈추었다. 높게 날듯이 뛰어든 늑대는 눈을 관통한 화살에 깨갱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추락했고, 네 다리로 공중을 마구 휘젓다가 그대로 늘어졌다.

급하게 말을 몰고 온 크로마가 전투에 합류했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낙상을 면하며 말에서 뛰어내렸고 두코의 뒤에 있던 늑대 세 마리의 다리에 화살을 쏘았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두코가 묻기도 전에 크로마가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이주민을 보호하는 동안 악마들이 이쪽으로 곧장 달려가 버려서 저희 쪽에서 막지 못했습니다. 사태 원인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고, 아페 저하께서 이주민들을 진정시킨 뒤 이쪽으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할 말이 많았던 두코였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으니 그는 이를 꽉 깨물고 바람을 일으켰다. 늑대들은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져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 때문에 두코에게 달려들지 못했고, 그들을 지나친 두코는 곧장 그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에게 도달했다.

“이게, 무슨!”

단검을 휘두르려던 두코는 순간적으로 멈춘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발아래에 살얼음이 이끼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오싹한 냉기에 두코가 원래 있던 곳에서 한 발짝 물러나자마자 그곳에서 얼음 기둥이 솟아올랐다.

연이어 솟아오르는 얼음을 피해 뒤로 물러난 두코는 어느새 늑대 무리의 주인이 자신의 종복처럼 늑대로 변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그는 다른 늑대들과 다르게 두 발로 서있었으며, 그의 등엔 고슴도치처럼 얼음이 솟아올라 있었다.

보통 인간들보다 두 배는 커다란 덩치인 데다가, 작은 빙하가 움직이는 게 아닐까 싶은 모양새에 기사들은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다들 물러섰다. 그때 두코가 단검을 고쳐잡으며 말했다.

“정신 차려! 평소에 훈련했던 것만 잊지 않으면 우리가 이긴다. 크로마, 졸병들은 다른 놈들에게 맡기고 자네는 나랑 가지. 내 바람에 맞춰서 불꽃을 일으키면 녹일 수 있을지도 몰라.”

곧바로 활을 내려놓은 크로마가 다시 돌진하는 두코의 뒤를 따랐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기사들이 전열을 재정비했고, 두코는 땅에서 솟아오르는 얼음을 피해 공중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거대한 늑대의 어깨 근처에 도착한 두코가 다시 검을 휘두르려던 때, 늑대의 묵직한 주먹이 두코를 향해 날아왔다.

“지금!”

두코의 외침에 크로마가 불꽃을 일으켰다. 바람을 따라 늑대의 몸을 휘감고 타오른 불꽃에 늑대는 뻗으려던 팔을 순간적으로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에 두코는 안정적으로 늑대의 어깨를 밟았고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늑대의 눈을 향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쑤셔 넣었다. 으깨진 눈알에서 검붉은 액체가 튀어, 두코는 팔로 얼굴을 가렸다.

기괴한 비명을 지른 늑대가 나머지 한쪽 눈으로 흐릿하게나마 두코를 따라잡으려 했지만, 그 눈마저 크로마에 불꽃에 방해를 받아 자유롭지 못했다.

두코는 나머지 하나의 단검을 양손으로 잡고 늑대의 목에 박아넣었다. 가죽인지 살인지 모를 것이 검의 움직임을 막으려는 듯 꿈틀거렸지만, 두코는 아예 늑대의 몸을 다리로 붙들고 칼을 찔러넣고 있었으니 막을 방법은 없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삼분지 이가 잘려나간 늑대의 목이 부러졌다.

잘린 목 단면에선 검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솟아올랐고 덜렁거리던 머리는 두코의 발길질에 땅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머리를 잃은 몸이 바닥에 주저앉았고 바람을 밟고 천천히 지상에 내려온 두코는 자신이 뒤집어쓴 액체를 털어내며 말했다.

“잔당 소탕은 맡기겠네. 이것부터 씻어내야겠어. 아페 저하께선 아직 오고 있으신가?”

크로마가 활을 다시 들며 답했다.

“거의 다 오신 듯합니다. 저쪽에서 급하게 말을 타고 오고 있는 사람이 저하이신 것 같은데요.”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두코가 고개를 돌리자 정말로 아페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아페는 두코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소리로 외쳤다.

“뒤에! 뒤에 늑대 머리가!”

“잘려있는 게 보기 좀 그러신가….”

두코는 중얼거리며 다시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머리가 잘려나간 목에서 어느새 머리 두 개가 자라나 있었다.

순식간에 두 명의 기사가 한 사람은 팔을, 한 사람은 다리를 물린 채 공중에 들어 올려졌고,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두코가 명령하며 다시 날아올랐다.

“크로마, 오른쪽!”

‘쯧, 머리를 자르는 건 소용이 없었나.’

두코가 아까처럼 악마의 눈을 찌르자, 악마는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물고 있던 악마를 떨어뜨렸다.

풀려난 기사에게 곧장 아페가 달려가 지혈과 정화를 진행했고 곧 다른 기사도 풀려났다.

“부단장, 물립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아페는 당황해서 고개를 들었고 두코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둘 사이를 빠져나가는 광경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치료는 더 받아야 해요. 급하게 한 거라 나중에 마기가 번질 수 있어서….”

아페는 부상병들을 데리고 가 줄 기사를 찾았지만, 다들 늑대들을 상대하느라 남는 손이 없었다. 결국, 아페가 직접 다리를 다친 기사를 부축해 후방으로 옮겼고 부상병을 인계한 후 빠른 걸음으로 전장에 돌아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전장의 상황은 아까보다 더 나빠져 있었다. 조무래기였던 늑대들이 우두머리를 따라 두 발로 일어서서, 자유로워진 앞다리로 기사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당황한 아페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어있다가 누군가의 비명에 고개를 들었다.

“…부, 부단장님.”

“뭘 멍하니 보고만 있어! 나 보고 계속 이러고 있으라고?”

“아뇨, 아닙니다!”

공격당하기 직전이던 기사를 밀쳐낸 두코의 왼쪽 팔이 늑대에게 물려있었다.

얼이 빠져 자리에 주저앉아있던 기사는 여전히 두코를 물고 있는 늑대의 눈을 공격했고 고통을 이기지 못한 늑대가 턱에서 힘을 뺐을 때, 두코는 늑대의 가슴 근처에 단도를 찔러 넣었다.

바스락 소리와 함께 늑대를 만들어낸 원천이 부서졌는지, 늑대는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놈들의 약점은 심장에 있다! 무조건 그쪽으로 공격해. 대장은 상대하지 말고 내 쪽으로 넘겨.”

급하게 달려간 아페는 두코의 팔을 붙들고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순식간에 검은 기운은 사라졌지만, 늑대의 잇자국은 그대로 남아있었고 상처 때문에 생긴 출혈은 멎었지만, 피를 보충해줄 만한 시간이 없었다. 두코는 출혈이 멎자마자 괜찮다며 팔을 뺐다.

그는 왼손으로 단검을 잡으려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검을 공중에 띄웠다.

크로마가 대장 늑대를 맡다가 뒤로 밀리고 있었는데, 빠르게 날아온 단검이 크로마에게 향하던 늑대의 손을 쳐냈다.

“뒤로 빠져! 네 상대가 아니니까. 심장을 노려서 계속 화살로 공격해, 시선은 내가 끈다.”

“부단장, 상처는요?”

“치료했어. 문제는 없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두코의 얼굴은 평소보다 창백했다. 출혈이 멎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잃은 피가 돌아오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 시도폰이 이디스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혈액을 신성력으로 보충하는 방법은 차분하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처럼 늑대와 기사가 여기저기서 맞붙으며 살벌하게 싸우는 곳에선 불가능한 치료 방법이었다.

‘내가 한가하게 치료나 받는 동안 이 녀석들이 얼마나 다칠지 예상도 안 돼. 빨리 해치우는 게 더 나아.’

두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대장 늑대의 뒤로 돌아가 얼음 기둥을 밟아가며 늑대의 머리를 향해 검을 날렸다.

눈을 맞추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검은 살짝 흔들려 궤도를 이탈했고 크로마는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검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크로마의 위치에서는 두코가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하며 외쳤다.

“부단장? 무슨 일이십니까! 대답해주세요.”

“…조용히 해. 머리 울리니까.”

비틀거리며 바닥에 간신히 두 발로 착지한 두코의 허리에선 피가 뚝뚝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코는 출혈을 막으려는 듯 손으로 상처를 눌렀고 그걸 목격한 아페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다가오지 마십시오, 저하. 얼음 기둥이 나와서 스쳤을 뿐입니다.”

“그런 상처를 입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화를 내며 아페가 다가가려고 하자 두코는 재차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쳤다. 피범벅이 된 두코의 손은 어느새 지혈을 마치고 검을 쥐고 있었다. 양손으로 검을 단단히 움켜쥔 두코는 크로마와 함께 늑대의 앞에 섰다. 가쁜 숨을 뱉듯이 내쉰 두코가 물었다.

“크로마, 심장을 노렸던 건 어떻게 됐나?”

“상처는…, 아뇨 됐습니다. 심장을 노리고 여러 번 화살을 쐈지만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저놈의 가슴은 갑옷을 입은 것처럼 화살을 전부 튕겨냈습니다.”

작게 욕을 중얼거린 두코는 주변을 살폈다. 기사들은 다행히 늑대를 잡는 요령을 터득했는지, 둘씩 늑대 하나를 붙들고 대치하고 있었고 뒤늦게 부른 인력들도 전장에 합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을 다 처치한다고 하더라도 대장이 살아있으면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이놈 하나 때문에 전멸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두코는 피 맛이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잠깐 멈춘 사이에 늑대 대장의 공격이 다시 들어왔다.

냉기로 둘러싸인 발톱이 날카롭게 크로마와 두코 사이를 갈라놓았고 머리가 각각 하나씩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크로마는 뒤로 빠져서 화살을 날렸지만, 세차게 날아든 손톱이 그것을 튕겨냈고 두코는 아까처럼 늑대의 등 뒤로 또 올라갔다.

재차 얼음 기둥이 두코를 노리고 솟아오른 그때, 두코가 크로마를 향해 외쳤다.

“지금 쏴!”

그러자 크로마가 쏜살같이 화살을 날렸다. 두코에게 신경을 쏟고 있던 늑대가 뒤늦게 그쪽을 향해 앞발을 들어 방어하려고 했지만, 냉기가 돌지 않는 발톱은 불화살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발톱을 지나친 크로마의 화살이 늑대의 가슴에 박혔다.

“됐습니다!”

“아직, 아직 안 끝났어!”

기쁨에 눈을 빛내던 크로마는 늑대가 포효하며 화살을 뽑아내자 당황하며 뒤로 물러섰다. 바닥에 착지한 두코도 조금 물러서서 늑대를 관찰했다. 크로마가 물었다.

“박혔는데… 예상보다 얕게 박혔습니다. 혹시 냉기를 몸의 한 부위에서만 활성화할 수 있는 겁니까?”

“그런 것 같아서 시험해봤네.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하는데 자네 쪽 앞발에만 냉기가 도는 게 이상했거든. 예상대로, 얼음 기둥을 움직일 때는 심장을 보호할 얼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군.”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심장을 노리자는 두코의 제안에 크로마가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두 사람이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늑대가 아니었으니 두 사람은 대화를 중간중간 끊어가면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발톱을 사용할 때에도 심장을 노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굳이 위험하게 부단장께서 주의를 끌 필요가 있습니까? 아까도 그렇게 하다가 다치셨잖아요.”

“저놈이 앞발로 후려칠 때는 몸 전체가 함께 움직이니까, 심장을 노리기 힘들잖냐! 얼음 기둥은 등에 신경 써야 하는 동작이다 보니 저놈도 동작이 조금 느려. 머리가 두 개라고 해도 완전히 따로 몸을 움직이는 건 안 되는 것 같으니 이 방법이 제일이야.”

크로마가 수긍하자 두코는 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여차하면 팔이든 다리든 얼음 기둥이 꽂히는 건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두코가 다시 바람을 일으키자 늑대는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는지 크로마를 내버려 두고 두코의 양옆을 두 머리로 포위하려 들었다.

하지만 두코는 재빨리 발을 빼, 그놈들의 머리를 밟고 곧장 등으로 착지했다. 곧이어 얼음 기둥이 솟아오를 걸 예상한 두코가 땅으로 떨어지며 늑대의 등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아페가 외쳤다.

“크로마! 피해요!”

이번에도 늑대는 예상을 벗어나는 행동을 보였다. 그것은 가까운 두코를 공격하는 대신, 크로마에게 달려들었다.

활을 쏘려던 크로마는 그런 돌발 행동에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자리에 굳어버렸고, 뒤늦게 이를 눈치챈 두코가 늑대를 따라갔다.

급하게 뛰어든 아페가 크로마 앞에 방어막을 쳤고, 동시에 늑대는 등의 얼음 기둥을 활성화하며 그대로 두코의 몸을 꿰뚫었다.

크로마와 아페는 늑대의 등에 가려진 참상을 볼 수 없었다. 그때, 두코는 얼음 기둥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신성력을 두른 손으로 그것을 붙잡고 외쳤다.

“지금! 심장을 노려라!”

대답 이전에 화살이 날아갔다. 늑대는 얼음 기둥을 회수하려 했지만, 단단히 붙잡혀 고정된 얼음은 돌아가지 못했고 그대로 늑대의 심장은 활활 타는 불화살에 꿰뚫렸다.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검은 연기가 되어 흩어지는 거대한 늑대의 뒤로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아페는 서둘러 방어막을 거두고 연기를 흩어냈다.

크로마와 아페가 무언갈 인식하기도 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누군가 땅에 쓰러졌고, 기사들이 놀라 달려들어 그를 붙들었다.

아주 짧은 탄식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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