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1부 11화

오드샤 첫 등장

“이번 주 빨래 담당 누구야?”

가득 찬 빨래 바구니 여러 개를 내려다본 프라이에가 폰에게 물었지만, 폰은 알 턱이 없었다. 프라이에는 고개를 젓는 폰을 지나쳐 빨래통이 놓인 벽에 붙은 종이를 읽었다.

“… 학교 쪽 사람이네. 예상대로긴 한데, 정말로 안 할 줄은 몰랐어.”

요리는 위험하다며 기사단 소속 주방에서 담당하지만 빨래는 수행단이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다. 편한 대로 명단을 짜다 보니 거주관 아이들과 학교 소속 예비 사제들이 나뉘었고 이번 주부터는 학교 쪽이 담당이 된 것이었다.

카리타스는 폰과 같이 빨래를 하며 처음 해본다고 하였으니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었던 사람들은 빨래를 해봤을 리 없었다.

“학교에서 그런 거 안 배우나?”

“할 필요가 없는데 뭐하러 그런 걸 배웠겠어. 그 시간에 책이라도 한 글자 더 읽었겠지.”

뒤에서 들린 소리에 폰과 프라이에가 놀라 뒤돌자 두 사람 사이로 빨래가 날아들어 정확하게 빨래통으로 들어갔다. 태연한 얼굴로 빨래를 던진 이는 오드샤, 이번 주 빨래 담당이었다.

“오드샤! 그냥 이렇게 던지고 가는 거야? 지금 빨래통 가득 찬 거 안 보여?”

그대로 돌아가려던 오드샤에게 폰이 소리쳤다. 오드샤의 고개가 다시 천천히 돌아가 폰을 바라보았고 아주 낯선 소리를 들은 것 같은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그런 건 평민들이나 하는 거지, 내가 그런 걸 왜 해?”

천진난만하게 들리는 말투가 폰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곧장 빨래를 집어 들어 던지려던 폰은 프라이에에게 제지당했다.

“그러면 다음 주엔 무슨 옷을 입으려고 그러는 거야? 지금이야 잠깐 미룬다고 해도 여벌 옷이 남아있지만, 그것까지 다 쓰면 알몸으로 돌아다닐 생각이야?”

“이상한 소릴 하네, 없으면 사다가 입으면 되지. 그리고, 이 날씨에, 이 추위에 빨래하라는 게 말이 돼? 이런 걸 수행이라고 하고 앉아있다니. 솔직히 실망했어.”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도 마땅히 수행 일부야. 여태껏 우리 애들이 빨래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서 인제 와서 너희만 책임을 회피하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는데.”

프라이에가 간신히 화를 참으면서 뱉은 말에 오드샤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어진 대답에 폰은 결국 뛰쳐나갔고 프라이에는 잡지 못했다.

“너네랑 우리가 같냐? 그런 건 너네 같은 평민들이나 하는 거라니까? 우리가 그런 잡스러운 일을 하는 건 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네가 입은 옷을 네 손으로 빨라고 하는 데 거 되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

폰은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오드샤의 멱살을 잡아, 천장까지 올라갈 기세로 뻗어있던 그의 고개를 끌어내렸다. 갑작스레 당기는 힘에 오드샤는 휘청거렸고 옷깃에 목이 눌려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저번 주 빨래 담당이 나였거든, 괜히 열심히 했네…. 난, 우리가 같이 수행하는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앉아서 옷 받아 입은 네가! 그런 소리를 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평소에 너희들끼리 얘기할 때 빈민들을 구제해야 한다느니, 신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느니 하더니, 그거 다 거짓말이었구나?”

“윽.”

“폰, 그만해 숨을 못 쉬고 있잖아!”

“베론 님이 교육 때마다 지금 주변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맡길 동료라고 말했던 거, 전혀 안 듣고 있었지?”

“시도폰!”

복도 끝에서 다급한 한 마디 문장이 날아왔고 폰이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오드샤와 폰 사이에는 작은 나무가 자라났다. 헉헉거리는 숨소리를 고르며 도착한 이는 나뭇가지를 길게 뻗어 얇은 그물 벽을 만들었고 충격에 빠진 듯 고개를 들지 못하는 오드샤를 지나쳐 폰에게 다가갔다.

“카리….”

“네가 이유 없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격한 행동이었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채, 카리타스의 등장에 당황한 폰을 대신해 프라이에가 이전 상황을 설명했고 그러는 동안 오드샤는 천천히 일어나 폰을 향해 소리쳤다.

“감히 나한테 이딴 짓을 해?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고!”

카리타스가 말릴 새도 없이 오드샤는 재빨리 복도 끝으로 달려가 기사단장실 문을 두드렸다. 막 카리타스와 대화를 끝내고 베론과 뒷일을 상의하던 헤일로는 다급한 소리에 놀라며 문을 열었다.

씩씩거리는 오드샤에게 자리를 내어준 헤일로는 문을 닫았고, 닫히는 문 틈새로 폰이 달려오는 것은 보지 못 했다.

“헉, 헉…. 들어가 버렸어. 일이 커지겠는데.”

뒤이어 따라온 프라이에는 굳게 닫힌 문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았다. 폰은 될 대로 되라며 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리고 돌아섰고 그대로 카리타스를 지나쳐 숙소로 향했다.

빠르게 폰의 얼굴을 살핀 카리타스는 그를 붙잡지 않고 보내주었고 프라이에는 자기가 중재를 제대로 했었어야 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폰이 거기서 뭘 더 안 하게 막아줘서 고마워. 멱살만 잡고 끝났으니까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얼굴이라도 한 대 쳤어 봐, 어우.”

낯빛이 어두워진 카리타스는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저런 애들은 대응하면 오히려 못살게 구니까…. 무시하는 게 해답이라 그렇게 한 건데 역시 폰은 그런 방법이 이해가 안 됐나 봐. 딱히 오드샤 편을 든 게 아닌데 그런 식으로만 생각 안 했으면 좋겠어.”

“뭐, 아무래도 우리가 아는 폰은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앞에서 털어놓고 해결하는 걸 좋아하지? 성격상 그렇게 무시하는 게 안되는 것도 있을 거지만, 폰도 오드샤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믿은 만큼 배신감도 컸을 거야.”

카리타스는 ‘그런 애들은 믿어줄 필요도 없는데.’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얼마 전, 제가 한 말에 모순된 말이지 않나. 사람을 가리지 말고 도와야 한다고 말한 게 모두를 믿어야 한다는 말과 동치는 아니다.

하지만 그 대화 이후로 폰이 학교 쪽 사람들과 대화하는 빈도가 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쯤에 폰이 오드샤와 친해졌다며 말해준 것이 기억이 났다.

‘오드샤한테는 어린 여동생이 있대. 쌍둥이도 아닌데 자기랑 비슷하게 생겨서 신기하다던데 궁금하더라고. 걔도 신성력이 있어서 자기 후배로 들어올 거래. 사실 학교 쪽 사람들은 우리랑 다르니까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야기해보니까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할 때는 그렇게 다르지도 않더라? 재밌었어.’

‘내가 그 애를 내 마음대로 바꾸고 있는 건가?’

처음 본 모습이 좋아서 함께 있고 싶어진 건데, 계속 그 상태로 있기 위해 그 애를 바꾸려고 드는 걸까? 아니, 폰은 원래 상냥하니까.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잠깐 그때만 회의감이 들었을 걸 거다.

원래 그 애는 모두를 돕는 사람이니까, 내 말에 영향을 받아서 변한 건 없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갑자기 학교 사람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 건 합동 훈련처럼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 거겠지.

애써 혼란스러운 머리를 비우려던 카리타스에게 프라이에는 숙소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갑작스레 등장한 베론에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굳어,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시도폰은 어디 있지?”

“아마 숙소 쪽으로 갔을 겁니다. 그런데 아까 오드샤 일 때문인 거라면 폰의 일방적인 과실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생각해주세요.”

“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지만 일단 이야기는 당사자한테 들어봐야 하니 마주치면 어떻게든 단장실로 보내도록.”

“…네.”

프라이에가 고개를 숙이자 카리타스가 말을 이었다.

“오드샤가 뭐라고 하던가요?”

“아마 예상하신 대로 말했을 겁니다. 귀족인 자신한테 빨래를 강요했다고 하더군요. 헤일로 단장께선 그게 수행의 규칙 중 하나라서 틀린 말은 아니라고 대신 변명해주긴 하셨습니다만, 폭행까지 당했다고 진술하니 폰의 변명도 들어봐야겠다며 찾아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폭행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뭔가 더 덧붙였다간 괜히 폰이 불리해질까 봐 카리타스는 말끝을 흐렸고 베론은 아무쪼록 만나면 단장실로 보내달라며 되돌아갔다. 왜 직접 가시지 않느냐는 프라이에의 물음에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닌데 자기가 나서면 괜히 큰일이 될까 봐 그런다고 대답하며 베론은 점차 멀어졌다.

“그렇게 큰 처벌을 받을 것 같지는 않네. 괜히 늦게 데려갔다가 더 혼날까 봐 걱정된다. 어서 가자.”

앞장선 프라이에를 따라 걸음을 옮긴 카리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숙소로 가는 도중 스키피를 만나 폰의 위치를 알아냈고 곧 단장실에선 헤일로, 폰, 오드샤 셋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된 건지 대충 오드샤에게 이야기는 들었다. 폭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이니?”

“제가 오드샤의 행동에 화가 난 건 맞지만 때린 적은 없어요! 옷깃만 잡았을 뿐이에요.”

헤일로는 폰의 말에 오드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획-하고 고개를 숙인 오드샤는 작은 목소리로 변명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폭행에 비할 정도의 위협이었다고요. 그런 행동은….”

다시 헤일로의 시선이 폰을 향하자 폰은 욱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주먹을 쥐었다.

“…무서웠다니까 그건 사과할게. 갑자기 그렇게 옷을 잡았으니까 놀랄 만하다고 생각은 드는데, 너도 그런 말 한 거 사과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든 마지막 말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 시도폰을 살피다가, 헤일로는 오드샤에게 고개를 들어보라며 찻잔을 그쪽으로 살짝 밀어주었다.

“아직 어린 나이이니 주변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들은 것들이 네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아무리 경전에서 모두가 동등한 인간이라고 설파해도 여전히 신분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그런 생각이 쉽게 바뀌리라고 기대하고 있지도 않아.”

평소 모습보다 한층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나가는 헤일로의 눈은 어딘지 슬퍼 보였다. 하지만 곧 기운을 차리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폰의 등을 큰 손으로 북 치듯 두들기는 헤일로에게 폰은 맥을 추리지 못했다.

“오드샤! 폰이 이미 말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폰이 너를 동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화가 났으리라 생각한다. 열심히 고개 끄덕거리고 있는 것 보렴. 그리고 빨래는 수행단의 규칙이기 때문에 너도 신분에 상관없이 참여해야 하는 게 맞다. 정 하기 싫으면 수행을 그만두는 것도 한 방법이지.”

“예?”

“하지만 나도 네가 그런 이유로 수행을 포기하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니 되도록 참여했으면 하구나. 빨래하는 동안 폰이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너희가 이번 주에 있을 마물 토벌에 참여해보면 동료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겠지만, 그걸 깨닫는 게 너무 늦을 때도 있으니 말이다.”

“웃으면서 너무 살벌한 말씀을 하시네요.”

폰이 헤일로의 마지막 말에 소름이 돋는다며 제 어깨를 싹싹 문질렀다. 입술을 질근 물고는 입을 다문 채로 생각에 잠겨있던 오드샤는 헤일로의 눈을 피했다. 그러면서 다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야기가 끝난 것 같으니 나가보겠다고 말하며 돌아섰다.

“잠깐만, 그래서 빨래는?”

“아, 할 거야!”

씩씩거리며 나가버린 오드샤의 뒤로 난감해진 폰과 헤일로가 남았다.

“제대로 해결된 것 같지는 않구나. 하긴, 아직 저 나이 땐 부모에게서 배운 것들과 주변 친구들의 의견을 자기 의지라고 생각할 때긴 하지. 오히려 저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자기 생각도 바꿔야 머리가 딱딱해지지 않는데, 안타깝구나.”

“베론 님은 교육 시간 때 저희가 모두 신 앞에서 평등한 인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오드샤는 그건 전혀 듣고 있지 않았던 걸까요?”

“입 밖으로 내진 않았으니 우리가 함부로 그 애의 생각을 짐작할 수는 없다만,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 고민을 해본 것 같긴 하더구나. 남은 건 저 애한테 달려있으니…. 그리고 폰, 너는 성질 좀 죽여야겠다. 많이 죽인 거라고는 들었지만, 아직 부족해. 사람이 인망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저도 막 때리고 다니고 그러진 않아요…. 하지만 알겠습니다.”

허리를 숙이며 인사한 폰은 단장실을 걸어나갔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과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헤일로는 한숨을 쉬며 합동 훈련을 시간표에 추가했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운 폰은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꽉 잠긴 창문이 바람에 덜컹거렸지만, 수면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달도 뜨지 않아 그야말로 어둠에 잠긴 방에서 폰만 눈을 말똥거리고 있었다. 그런 어둠 속에서 폰의 머릿속은 찜찜함으로 가득 찼다. 올리비아의 일도 그렇고 오드샤도 그렇고 제대로 해결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내 문제인가? 올리비아 일은 내가 나서지 않고 지켜만 봐서 코지가 그런 일을 당한 거고 오드샤는 내가 뭔가 저지르는 바람에 무슨 일이 생긴 거잖아. 나서야 할 때와 그러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나?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했던 건지 모르겠어.’

뒤척거려 보았자 해결되는 것은 없었고 억지로 눈을 감아도 심란한 마음이 울렁거려, 결국 폰은 해가 뜨는 것을 보고 나서야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거의 눈을 감는 것과 동시에 떠버린 폰의 눈 밑에는 옅지만 어두운 그림자가 생겼다. 카리타스는 깜짝 놀라며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지만, 폰은 그저 잠이 오지 않았다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그런 대답이 미덥지 않았는지 카리타스는 유난히 폰 옆에서 떨어지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폰은 ‘이것도 카리타스한테 이야기할 거리인가?’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는데, 그러려면 코지가 올리비아 때문에 찔렸다는 것까지 이야기해야 할 판이라 ‘아, 안 되겠다.’라며 간신히 벌어진 입을 다시 앙다물었다.

“어제 오드샤 일 때문에 이러는 거야? 물론 과격한 행동은 맞고 단체 생활에서는 그런 건 삼가는 게 맞지만….”

“아, 아냐 그냥 어제 유난히 잠이 안 와서 피곤해서 그러는 거야. 오늘 좀 일찍 자면 괜찮아지겠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방긋 웃어 보인 폰은 훈련에 늦겠다며 복도를 달려나갔고 카리타스는 뒤늦게 폰을 쫓았다. 본관에 도착한 두 사람은 훈련용 목검을 들었고 카리타스는 스키피 앞에, 폰은 두코 앞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초적인 검술부터 시작해서 실제 대련까지 2주가 걸렸는데, 이런 건 자신 없다고 시무룩 해하던 카리타스도 어느새 힘주어 검을 잡고 훈련에 참여할 수 있을 정도로 베론의 훈련은 효과적이었다.

대련에선 기본 동작으로 합을 맞추는 게 정해진 훈련 코스였고 그 이후는 응용 검술, 실전 검술을 사용해서 자율 대련으로 이어졌다.


오늘도 끝까지 자율 대련이 이어지는 페어는 폰과 두코, 프라이에와 오드샤였다. 폰과 오드샤가 각각 검을 놓치면서 대련은 끝났고 땀범벅이 된 아이들은 본관 문이 열리자마자 흐느적거리는 걸음이지만 빠르게 욕실로 향했다.

오드샤는 피곤해 보이는 폰을 흘긋 보다가 말없이 지나쳤고 폰은 그런 시선을 느꼈지만 애써 모르는 척하며 검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저걸 어떡하면 좋지….”

대충 카리타스에게 어제 일에 대해 들은 두코는 그런 두 사람을 멀리서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두코가 우스갯소리로 외부 훈련에 둘만 떨구어 놓으면 어떻게든 화해하지 않겠냐고 농담을 던졌지만, 프라이에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훈련하면서 잠깐 말 걸어봤는데 대답을 전혀 안 하더라고. 그리고 둘 다 싸움 잘 하잖아? 둘만 떨궈놓으면 말 한마디 없이도 다 이기고 돌아올걸.”

“너무 뛰어나도 문제구나. 오드샤도 그냥 가문 버리고 기사단에 들어오면 좋을 텐데.”

“…누구나 너 같은 건 아니니까.”

태연하게 엄청난 말을 하는 두코를, 프라이에는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고 그 대화를 듣지 못한 카리타스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체력이 많이 늘기는 했지만, 그렇게 된 만큼 열심히 검을 휘두르느라 언제나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는 카리타스는, 방금 막 칼을 두고 돌아온 폰에게 자연스럽게 기대어 섰다. 처음에야 당황해하며 카리타스에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었던 폰이지만 이제는 익숙하게 어깨를 내어주었고 두코는 그런 둘을 보며 덥지 않냐고 말했다.

“지금이야 더워도 나가면 바로 추워지니까. 그리고 쓰러지면 안 되잖아?”

폰의 말에 카리타스는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머리는 폰의 어깨에 얹어둔 상태로 카리타스가 뭐라고 웅얼거렸고 바로 옆에 있던 폰만 그 말을 듣고는 ‘아, 아하. 좋아!’라고 대답했다.

“뭐야, 왜 너네끼리 비밀 얘기해?”

“별거 아니야, 오늘 저녁에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카리타스가 <장미의 설화> 읽자고 이야기한 거야.”

프라이에는 책 제목을 듣더니 미묘한 표정으로 카리타스를 쳐다보았지만, 별말 없이 고개를 돌리곤 아이들을 본관 밖으로 이끌었다. 폰의 말대로 본관을 나서자마자 휑하니 뚫린 복도로 차가운 바람이 날아들었고 네 사람은 최대한 서로에게 붙어서 걸었다.

두코는 기둥 사이에 가벽 하나 세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투덜거렸지만, 그렇게 하면 미학적으로는 최악일 거라며 스스로 반박한 뒤 납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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