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ido

4부 2

1501년 5월, 오순절 행사 도중에 벌어진 일

“몸조심해서 다녀오십쇼. 이쪽은 제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두코가 아페의 옆에서 손을 흔들었다.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크로마도 그 옆에서 일행을 배웅했다. 오랜만에 두른 검은 망토가 어색했지만, 시도폰은 말에 가볍게 올라탔고, 그 뒤를 솔라를 비롯한 기사 몇 명이 따랐다.

아직 게이트가 전부 만들어진 건 아니어서 일행은 평소 오순절 행사에 참석할 때보다 조금 작은 규모로, 일찍 출발했다.

‘이번엔 무슨 꽃을 선물하면 좋으려나.’

시도폰은 단순히 그런 생각을 하며 말을 몰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백성들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마을을 지나칠 때마다 수시로 사람들에게 붙들려 환호를 받아야 했다.

‘난 위쪽으로 진격한 지 오래되어서 별로 감흥이 없었는데, 이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건 달랐겠구나.’

집행자로 각성한 뒤 처음 남부로 내려갈 때와 비슷한 느낌에 시도폰은 새삼스러운 기쁨을 느꼈다. 그때처럼 허둥거리거나 어색해하지 않고 자연스레 사람들의 호의를 받아낸 시도폰은 기사들과 남부에 도착했다.

 


1501년 5월 20일

그렇게 도착한 거리 곳곳에 교회의 직인이 붙은 전단이 붙어있었다. 시도폰은 천천히 말을 몰았지만 전단에 글자가 빼곡해, 다 읽을 수 없었다.

‘대충 읽었을 때는 기사단이 3차 경계까지 인간의 영역을 넓혔으니 그 공을 칭송한다는 내용인 것 같은데, 그 아랫부분이 잘 안 보여. 문단이 나눠진 거로 보면 다른 주제인 거 같은데.’

계속 걸어서 신전으로 가야 했으니 시도폰은 더 꾸물거릴 수 없었다. 그는 지난 오순절 행사 때와 다르게 교황의 몫으로도 선물을 준비해두었다. 물론 솔라가 미리 추천해둔 거로 골랐고, 시도폰은 그걸 전달하기만 했지만.

첫날은 평소처럼 행사가 진행되었다. 솔라는 여전히 피데이스가 걱정되었는지, 시도폰에게 양해를 구하고 행사가 끝나자마자 그를 찾으러 갔다.

시도폰은 카리타스에게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 카리타스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베일을 쓴 채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모레 사람을 보내겠다고 대답했다.

못내 아쉬웠던 시도폰이었지만, 이번 오순절엔 평소보다 조금 길게 있을 예정이었으니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한쪽에 마련된 수련장에서, 그는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고 할버드를 휘두르며 짚으로 된 인형을 여섯 개씩 베어 넘겼다.

어느새 돌아온 솔라가 대련 상대를 자처하며 나섰고, 그의 뒤에선 한동안 짚 인형을 교체하던 하인들이 솔라를 간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시도폰은 한구석에 수북이 쌓여있는 인형의 잔해들을 볼 수 있었다.

“미안하군. 솔라, 부탁하네.”

솔라는 무기를 교체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밤에 금속제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건 확실히 민폐였으니, 시도폰은 목검으로 무기를 바꾸었다. 복도에 서 있던 솔라도 검을 기둥에 세워두고 훈련용 목검을 집어 들었다.

“…피데이스 상태가 많이 안 좋은가? 통 집중을 못 하는군.”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솔라의 손에서 검이 날아갔다. 다행히 밤이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어, 검은 그대로 땅에 떨어졌고, 솔라는 살짝 후들거리는 손목을 잡고 시도폰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시도폰은 얼른 검을 주워오라는 듯 팔짱을 꼈고, 솔라가 검을 집어 자세를 잡자마자 달려들었다. 사과하고 나서도 솔라가 여전히 대련에 집중하지 못하자 시도폰이 표정을 굳히며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검끼리 부딪치던 소리가 멎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약한 바람이 지나갔다. 솔라는 아무 일이 없었다고 대답하며 검을 힘주어 잡았다.

“아무 일이 없었다는 거짓말을 해봤자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피곤하면 피곤하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네.”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네. 잘 쉬고 내일 보지.”

피데이스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걱정하는 시도폰을 두고, 솔라는 묵묵히 몸을 돌렸다.

솔라는 훈련용 목검을 제자리로 돌려놓은 뒤 자신의 검을 챙겨 숙소로 먼저 돌아갔고, 시도폰은 여전히 남는 체력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무기를 정리한 뒤 맨몸운동을 하고 돌아갔다.

그는 게임을 하는 기사들 사이에 솔라가 없는 걸 확인하고 자신이 괜히 피곤한 사람을 붙잡았던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자네들 중에 혹시 대련할 사람 없나?’라는 말을 꾹 삼킨 시도폰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의 성격대로라면 저 말을 하고도 남았을 텐지만, 그는 지난번에 그런 말을 했다가 그걸 전해 들은 베론에게 혼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요즘 제대로 싸워보지 않아서 몸이 안 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경계의 악마들도 안정이 되었으니 풀 만한 상대가 없네.’

내심 아쉬워하긴 했지만, 시도폰은 이런 평화로운 상태가 좋았다. 그는 얼른 카리타스가 보낸 이가 자신을 찾아오길 바라며 눈을 감았다.


1501년 5월 21일 새벽 

새된 비명을 지르며 아페가 눈을 떴다.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를 닦아내지도 못하고 침대에서 굴러떨어지다시피 내려왔다. 어깨 근처에서 달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멋대로 뻗쳐있었지만, 아페는 그걸 신경 쓰지도 않고 잠옷 차림으로 내달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누군가의 방문 앞이었는데,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는 문을 두드렸다. 방주인이 늦잠을 즐기는 편이긴 했지만, 이 시각엔 기상 담당인 이를 제외하면 아무도 일어나있지 않았다.

하지만 아페는 점차 문을 세게 두드렸고 마침내 방 주인이 누구냐고 신경질을 내며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댕그란 눈으로 아페를 내려다본 이는 현재 남부로 내려간 시도폰을 대신해 3차 경계선을 담당하고 있는 부단장, 두코였다. 그는 잠이 덜 깬 얼굴이었지만, 아페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금방 정신을 차렸다.

“이주민을 안 받을 순 없을까요?”

“그게 무슨….”

“왕족인 제가 이런 말 하는 거, 부당하게 들린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이번 이민은 받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잠깐, 잠깐, 일단 진정하시고 안으로 들어와서 차분하게 이야기해주시죠. 저도 지금 자다 깨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고, 복도에서 이런 이야기는 좋지 않은 것 같네요.”

해가 어슴푸레 뜨고 있었기에 창문으로 빛이 조금씩 들어왔고, 두코는 아페를 방으로 들이고 나서야 그의 얼굴에 땀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페가 의자에 앉지도 못하고 서성이자, 두코가 그를 끌고 와 의자에 앉힌 후 작은 수건과 물잔을 가져다주었다.

아페는 고맙다고 작게 중얼거리며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동시에, 그의 손에 쥐어진 수건이 와락 구겨졌다.

“여기 와서는 말할 일이 없어서 굳이 말하지 않았는데, 제겐 치유에 사용할 수 있는 신성력 외에 다른 힘이 있어요. 이걸 굳이 이름을 붙이자고 하면 예지몽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꿈속에서 얼마 뒤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아페는 고개를 들어 두코가 자신의 이야기를 믿고 있는지 살폈다. 두코는 잘 듣고 있다며 맞은편의 침대에 앉았다. 덤덤한 표정에 두코가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던 아페는 꿋꿋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지난번에 홍수가 나기 전에 투르스 거리에 대한 예언을 받았고, 성녀께서도 비슷한 예언을 들으셨는지 저를 도와주셨어요. 그것 때문에 방재작업을….”

“괜찮습니다. 계속하세요.”

미들 부인, 그러니까 두코의 어머니가 이 방재작업 과정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으니 아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두코는 이제 그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재촉할 뿐이었다.

“네, 그래서 홍수를 막기 위해 방재작업을 했고 그해 투르스 거리에는 예년보다 많은 비가 내렸지만, 예상보다는 피해가 적었어요. 그러니 제가 하는 말을 믿어주세요. 이번 이민자 무리 중에 위험한 인물이 섞여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 사람을 색출해내지 못하고 경계에서 넘어온 악마들에게 큰 공격을 받게 될 거예요.”

“그들 중에 악마 숭배자들이라도 있다는 말씀입니까?”

“비슷해요. 정확히 그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민자들 사이에 섞여 있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도착하는 게 다음 주니까 어떻게든 막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민자들은 이미 제망의 국경까지 도착했다고 보고를 받았습니다. 되돌려 보낼 수는 없어요.”

단호한 두코의 말에 아페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아페는 미간을 찌푸렸다가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위험해요. 부단장도 죽, 죽을 수 있다고요. 꿈속에서 기사들이 찢기듯이 사라지는 걸 봤어요!”

두코는 부드럽게 아페의 손을 감쌌다. 하지만 그의 어조는 아페보다 단호했고, 아페는 그런 그를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런 사람이 백성들 사이에 섞여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런 거라면 더더욱 여기까지 끌고 오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만약 억지로 돌려보내다가 그들이 무언가 눈치를 채고 도망친다면 그들을 잡을 기회조차 없어지는 겁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니 아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뜻을 굽힌 건 아니었기에 아페는 두코의 소매를 붙든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을 제가 검사하게 해주세요.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직접 봐야겠어요.”

“알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같이 가시죠. 하지만 검사할 때 제 뒤에 계셔야 합니다. 그들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마시고요.”

“제 안전이 걱정되셔서 그러는 거죠. 하지만 괜찮아요. 저도 제 몸은 지킬 수 있어요.”

하지만 두코는 굳은 얼굴로 거듭 경고했고, 가볍게 받아넘기려던 아페도 두코가 지나치게 걱정하자 불쾌함을 내비쳤다. 살짝 찌푸린 눈으로 아페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당신은 저를 왕녀가 아니라 동료로 봐주는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런 취급을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도 이제는 아실 텐데요. 당신께서 다치시면 누가 책임을 대신 지게 되는지를요. 저는 당신을 동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저만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괜찮은 일이 아니잖습니까. 국왕 전하께 직접 왕실과 연을 끊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 이상, 당신께선 계속 왕실과 묶일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두코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처럼 가문과 연을 끊으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는 아페가 종종 왕실로 편지를 보내는 걸 눈감아주었으니까.

‘저하께선 내가 눈치챘다는 걸 모르시는 눈치야. 다행이군.’

혀에서 껄끄러움이 굴러다녔다. 두코는 애써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고, 아페는 심통 난 얼굴로 대답했다.

“예언과 관련된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겁니까?”

“네, 성녀님과 아마도… 집행자님 외에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성녀님께서 아무에게나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잘 하셨습니다. 성녀님의 예언 능력만큼 정확하지 않다면 잘못했다가 당신은 마녀로 몰릴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이 사실을 비밀로 하겠다고 다짐하고 아페는 두코의 방에서 나왔다. 크로마가 다른 사람들의 호출을 받고 그 앞에 서 있었는데, 아페가 등장하자 그는 무슨 일로 두코를 찾았냐고 물었다. 아페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갈무리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별거 아니었어요. 나중에 부단장께서 잘 설명해주실 거예요.”

퉁명스러운 말투에 크로마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물었다.

“…심각한 일은 아닌 건가요?”

“아직까지는요.”

애매한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아페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크로마는 그를 뒤쫓지 않고 두코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야?”

“접니다. 아페 저하께서 갑자기 부단장의 침대로 뛰어들었다는 제보를 받아서요.”

“어떤 미친놈이 그딴 소리를 했대….”

황당한 목소리로 문을 연 두코의 얼굴엔 잠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크로마는 어깨를 으쓱하고 두코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었다. 두코는 빗지 않아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다가 답했다.

“심각한 일이 될지도 몰라. 아무튼, 여기서 이야기할 만한 건 아니네. 나중에 오전 회의가 끝나고 둘만 있을 때 논의할 만한 일이야.”

그 말에 크로마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자, 두코는 벌써 긴장하지 말라고 놀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없었기에 크로마는 방문이 닫히고 나서도 굳은 얼굴로 돌아갔다.

그렇게 오전 회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크로마가 두코와 둘만 남게 되자마자 그를 노려보았다.

“노려보지 말게. 숨기는 거 없이 이야기할 테니까.”

두코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그리고는 아페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이주민들 사이에 이단이나 악마 숭배자가 있는지 철저하게 검사할 것을 명령했다.

“되도록 저하가 이주민들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두코는 그렇게 말하고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봉투를 불만스럽게 두드렸다.

“그건 프라이에님이 수행단을 데려다주신다고 남부로 갔다가 받아온 서류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무슨 내용인지 못 봤군요.”

“정략결혼을 하게 아페님을 보내달라는 이야기였네. 볼 필요도 없지.”

너무 놀란 나머지 크로마는 입을 닫지 못했다.

“아니, 그런데 이미 이 대륙엔 멀쩡한 나라가 브리오소 외에는 없는데 어디와 정략결혼을 시키신다고…. 거기다가 아페 저하 위로는 두 분이나 더 계시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이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두 분과는 나이가 맞지 않는다고 하더군. 저하가 올해 열다섯이시지? 상대방이 열여덟이라고 하더군. 아, 그 상대방은 저쪽 대륙 어디 왕실이라고 들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나.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넘어가지.”

“거절하셨죠?”

“당연한 소릴. 저하께서 안 계시면 한 달 안에 치유 사제들이 과로사할 게 뻔해. 그렇게 대놓고 거절했더니 저하가 잘 있는지, 왕족으로서 품위에 어긋나는 일을 하진 않는지 꼬치꼬치 캐묻더군. 저하에겐 비밀이지만, 품위유지비라는 항목까지 만들어서 거짓으로 보고도 했고.”

크로마는 황당함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저 몰래 언제 그런 걸 하셨던 겁니까?”

“자네는 외부에서 전투하느라 바빴으니까. 행정은 내가 더 자신이 있었거든.”

뻔뻔하게 미소지은 두코는 대화가 너무 돌아왔다며 자세를 바로 했다. 두 사람은 이주 일정을 다시 점검했고 크로마가 신원 확인서를 넘겨보면서 말했다.

“남부에서 미리 검사한 사람들을 데려온다고 하긴 했지만, 그들이 검사한 걸 저희가 믿을 필요는 없죠.”

크로마는 다소 냉소적인 태도였지만, 두코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남부에서 열심히 한다고 해도 이동 중에 바꿔치기 되는 일도 있을 수 있었으니까. 두코가 손뼉을 쳤다.

“자, 그럼 이제 돌아가서 평소처럼 일하게. 이주민들 검사는 나와 저하가 준비할 테니 자네는 이주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예,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부르십쇼.”

크로마를 따라 방을 나선 두코는 곧바로 아페를 찾았다. 두 사람은 악마 숭배자들의 상징과 특징을 미리엄에게 교육받았고, 그들을 판별해내는 도구도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보았다.

“재료가 모자랄 것 같은데요.”

아페의 말에 두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창고에 남은 재료가 있는지 살피러 가는 도중, 작업자들끼리 모여서 수군대는 걸 발견했다.

“자네들, 거기서 뭣들 하고 있나? 공사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숨기지 말고 말하게.”

기사단 본부는 거의 다 완공이 되었지만, 마무리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두코는 작업자들이 그것과 관련된 회의라도 하는 줄 알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나이가 많은 이가 말했다.

“아, 작업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냥 이 자가 어제 유령을 봤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말이지요.”

“유령? 어떻게 생겼나?”

지목당한 이는 어쩌다가 이곳의 조경을 맡게 된 플뢰르였다. 그는 고개를 축 떨구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제 낮에 다 못한 작업이 있어서 잠깐 밤에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아니, 경계 가까이 가진 않았고요, 그냥 본부 근처에 있었습니다. 퇴비를 조금 옮겨두려고 했던 게 답니다. 유령을 본 건 그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서였습니다. 그, 유령은 온통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길고 구불구불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건물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 색은 어떤 색인지 보았나?”

“옷이 하얀색인 게 눈에 띄어서 어떤 색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밝은색이었던 건 확실합니다. 옷과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였으니까요.”

플뢰르는 손을 덜덜 떨었다.

‘유령을 본 것만으로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있을까?’

“단순히 보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게.”

두코는 머뭇거리는 플뢰르를 독촉했다.

“유령이 울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심하게 울고 있었는데 소리는 내지 않았어요.”

그의 이야기를 듣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자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그래서 혹시나 눈을 마주칠까 봐 바로 등을 돌리고 도망쳤죠. 그 뒤로도 계속 거기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가보지는 않았거든요.”

두코는 가장 중요한 걸 묻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유령을 어디서 봤나?”

“저하의 방 근처였습니다. 거긴 저하의 명령대로 창문틀에 화분을 놔뒀으니 제가 헷갈릴 일은 없어요.”

아페가 간밤에 악몽을 꾼 건 유령 때문이었나 생각한 두코는 우선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말라고 명령했다. 창고로 향한 두코는 담당자에게 필요한 재료를 이야기했는데 담당자는 난처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것 중에 이 약초는 다음 주나 되어서야 들어올 예정이라서요. 아마 이주민들이 도착하고 다음 날에 올 것 같습니다.”

“괜찮네. 넉넉하게 이정도가 필요한데… 되겠는가?”

“네, 수량엔 문제없습니다.”

“고맙네. 그때 약초가 도착하면 바로 내 쪽으로 보내주고.”

담당자의 배웅을 받고 두코는 아페에게 돌아왔다. 두 사람은 대비책을 더 세울 게 있는지 고민하며 며칠을 보냈다.

 

“이주민들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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