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2)

가오냥냥 by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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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이 전례없이 유연하고 독특한 사람들. 그런 부류의 대부분을 우리는 아이라고 할테다. 아이, 영아, 유아. 혹은 그 외에도. 그러니 당연하게도 샤나의 어린 시절의 뇌리에 틀어박힌 일주일간의 꿈이 어른들에게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샤나가 학교를 다니기 이전, 사진첩에나 남아있을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보통 아이들이 그렇듯 잠든 사이에 무궁무진한 꿈을 꾸고, 또 그것을 잊어버리기 마련인데 그 날 꾸었던 꿈만큼은 잊히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온통 안개가 낀 거리에서 마주쳤던 여자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멀리서 자기를 눈치채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뛰어와서는 마치 오랜 단짝이라도 되는 것처럼 곁에 섰다. 손을 맞잡고 보폭을 맞춰 걸으며(정작 어디를 걷는다는 자각은 전혀 없었음에도) 산책을 했다. 헤어지기 전에는 내일도 만나자는 인사를 했다.

보통의 꿈들이 으레 그랬듯이 이 일도 금방 잊혀질 거라고 생각했던 샤나가 생각을 달리 한 건 이틀 후였다. 그때까지도 잠에 들 때마다 그 여자아이가 찾아와서 꿈 속 세계를 함께 거닐었으니까. 보통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만큼 잠들기 전에는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생각해뒀다. 오죽하면 삐뚤빼뚤하고 좌우가 뒤집히거나 철자가 틀린 글씨로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잔뜩 써놓고 머리맡에 두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꿈만 꾸면 온통 여자아이에게 질문만 받고, 내일 만나자는 인사를 나눌 때쯤 꿈에서 깼다. 낮잠을 자다 만난 날이면 여자아이는 내일 만나자는 말이 아닌 다음에 만나자는 인삿말로 배웅을 했으니 그런 소소한 차이로 하루를 점쳐보는 것도 어린 나이의 소소한 놀거리였다.

그것이 닷새가 될 때쯤 샤나는 부모님께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이에는 멋도 모르고 자신만의 상상친구가 생겼다며 즐거워했다. 비록 부모님은 조금 의아하게 여기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지만 어린 나이의 샤나가 눈치챌 새는 없었다. 그리고 하루이틀이 지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지 꼭 일주일이 되던 때에, 꿈은 조금 달라졌다.

온통 안개낀 듯 흐릿하던 세계는 공통적으로 안개가 꼈을 뿐 배경이 바뀌곤 했다. 벽돌길이 깔린 거리였을 때도 있었고, 울퉁불퉁한 돌들과 흙이 깔린 숲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안개가 하나도 끼지 않았고, 그런만큼 어디에 있는 것인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집 근처에서 멀지 않은 번화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곤 하지만 제 기억을 더듬어봐도 이렇게까지 모르는 가게가 많지 않았다. 저 곳에 걸린 간판의 로고가 무슨 가게를 뜻하는지, 자기가 기억하는 그 자리의 가게는 종종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뛰어가던 장난감 가게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여자아이가 말을 걸었다.

“샤나는 나와 만나는 게 즐거웠어?”

“즐거웠다면 다행이다. 당분간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거든.”

“지금까지는 내가 샤나의 꿈에 찾아왔으니, 다음에 만날 때는 꼭 샤나가 나를 찾아와야 해.”

그 뒤로 꼭 찾아오라느니, 잊으면 안된다느니 몇 마디를 더 하다가 꿈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전까지의 꿈은 그래도 꽤 상쾌하게 잘 자고 일어날 수 있었던 반면에, 이번 꿈은 그렇지 않았다. 창 너머로는 햇살이 아닌 새벽의 푸르스름한 달빛이 들어오고, 등 뒤는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은지 오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여겨 다시 이불을 덮자, 그 뒤로는 거짓말처럼 그 아이를 만날 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샤나 레가토 스위트하트의 인생이 갑자기 무속인의 길을 걷거나, 독실한 신자가 되어 악귀를 몰아내는 의식을 행한 것도 아니었다. 샤나는 사지 멀쩡하고 정신 멀쩡하게 튼튼히 자랐고, 그런 꿈은 두 번 다시 꾸지 않게 되었다. 학교에 입학하여 좋은 친구를 사귀고 성실한 학생이 되어 성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물론 집 근처의 번화가를 지나갈 때마다 느꼈던 위화감은 그 당시에 꾸었던 꿈이 어느 하나 거짓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장난감 가게가 없어진다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는데, 그 자리에 익숙한데 생소한 스타벅스가 들어섰을 때처럼.

그날도 특별한 이변 없이 평범히 집으로 귀가하는 길이었다. 일이 쌓이는 바람에 귀갓길이 조금 늦었고, 거리는 사람이 없어 고요한 대신 가로등만이 약한 전류에 껌뻑였다. 늦은 밤의 서늘함과 초가을의 쌀쌀함에 샤나는 코트를 여몄다. 꼭 이런 날에 사고가 나던데. 동아리에서 봤던 오래된 공포 영화를 떠올리던 샤나는 자신의 손을 잡아채는 누군가의 힘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겨우겨우 중심을 잡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런 간 큰 짓을 하는 사람이 누군지 뒤돌아본 샤나는,

“찾으러 와달라고 했는데.”

거진 20년만에 보는 새까맣고 긴 머리와,

“오죽 찾으러 오질 않아서 내가 다시 찾아왔잖아.”

잊혀질 리 없는 샛노랗게 째진 서늘한 눈,

“아니면 잊어먹었나?”

그 순간 뇌를 스쳐지나가는 유년기의 짧은 꿈을 떠올리며 상대의 어깨 너머로 간간히 점멸하는 스타벅스의 로고를 봐야했다. 눈 앞에 있던 여자아이는 어느새 자기와 엇비슷한 높이가 되어 자신을 붙들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얼핏 섬짓하다고 느꼈던 눈빛이 여전히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기분탓이 아닐테다. 어쩌면 그저 토라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이제라도 만났으니 섭섭하게 헤어지겠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

단순히 꿈 속의 일로 치부하여 몇 번 사과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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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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