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최한솔 (가짜)배신 IF ^^
언제 정신을 잃었는지도 모르게, 눈을 뜬 혜성은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익숙한 모양새다. 건물의 천장이 다 그게 그거라 하면 반박할 수는 없다마는. 몇 달 전. 혹은 얼마 전. 이미 큰 신세를 진 곳이었기에 그는 확실히 기억했다.
그렇다면 다음 일은 자연스러웠다. 혜성은 옆으로 손을 뻗어 너스콜을 눌렀다. 그러자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이 낯익은 간호사가 의사를 대동하고 병실로 들어왔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벌써 이곳으로 돌아왔느냐는 힐난 어린 눈빛이 돌아왔으나, 그들은 자세히 묻지 않았다. 과연 프로답다면 프로다운 반응이었다.
가볍게 문답을 나누고, 검사를 위한 약간의 피를 뽑고, 팔뚝에 달린 링거를 새로 갈고 난 후에야 혜성은 질문할 시간과 자격을 얻었다. 그는 물었다.
“눈은 어떻게 됐습니까?”
거즈와 붕대, 보호장구로 덮여 고정된 눈은 답답했다. 다만 멀쩡한 한쪽 눈이라도 뜰 수 있는 건 조금 이상했다. 아는 바로는 멀쩡한 눈도 함께 가리고 있어야 했을 텐데. 정확한 메커니즘은 모르겠지만, 보통 두 안구는 함께 움직이기 마련이니 더 큰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는 조치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나. 결국 그렇게 되었던가. 담담히 수긍하려던 혜성에게 의사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꿰맨 눈꺼풀이 낫기까지는 좀 걸리겠지만요.”
“…예?”
혜성은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허벅지 위에 얌전히 놓여있던 손이 꾸욱 오므라들었다. 눈을 껌뻑이는 혜성에게 의사는 무척 신기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출혈이 심해서 처음엔 저희도 실명할 거로 생각했습니다만… 들여다보니 안구에는 상처 하나 없더군요. 눈꺼풀만 베였어요. 운이 좋았군요.”
아니. 아니다. 그건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상대의 실력이 좋았던 거지. 그 난전 속에서, 얇디얇은 살갗만을 베어낼 만큼. 대체 왜?
“…….”
말이 없는 혜성을 뒤로 한 두 사람이 자리를 비웠다. 시계 초침이 똑딱 굴러가는 소리만이 소름 끼치게 울리는 하얀 병실에 홀로 남은 혜성은 창밖으로 시선을 내던졌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은 소독약 냄새. 마취가 풀리며 서서히 밀려드는 통증과 낯선 감각들 속에, 뚝 끊겼던 사고가 다시금 이어졌다.
각오를 했다. 알량한 놈이었다. 죽음을 상정하지 않았으니 안일하고 뻔뻔했다고 해도 변명은 못 한다. 눈알 한 짝 떨어지는 걸로 끝나면 싼 편이지. 딱 그 정도의 생각. 그것을 믿음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걸, 혜성은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던 사람 중에 사망자는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대체 왜냐고 하면 한솔은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던 거다. 설마 이 정도까지 무르게 굴 줄 몰랐던 것만이 그의 기쁘고도 부끄러운 오산이었다.
“정말 너란 놈은….”
느릿느릿 저무는 노을이 어둠을 불러오고, 그 사이 어딘가로 사라졌을 검은 유령을 떠올린다. 한 눈으로 보는 세계는 몹시도 좁아서 지금 찾는 건 힘든 일이 될 테다. 그러나 두 눈으로 본대도 별반 다를 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며, 혜성은 낮게 숨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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