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멸의 징후
미션
"큭... 크큭... 킥..."
식탁 앞에 앉아 고스란히 엎어진 밀런이 음침한 웃음을 흘려댔다. 그 반대편에 앉아 멍하니 턱을 괴고 있던 메리는 근육으로 부푼 등이 들썩거리는 모습을 보며 눈을 가늘게 접었다.
"지금까지 나온 증상에 뭐뭐가 있었죠?"
메리의 목소리는 고열과 갈증에 시달리는 통에 쩍 갈라져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밀런은 여전히 식탁에 이마를 박은 채 중얼거리듯 말한다.
"39도 이상의 고열, 갈증, 구역질... 그리고 일반인 속도로 돌아온 회복력."
"거기에 정신이상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돌았습니까? 메리가 그렇게 덧붙여 물었지만 밀런은 더욱 높은 목소리로 킥킥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메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밀런이 쥐고 있는 펜과 종이를 빼앗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끄적끄적 글을 적어내렸다.
[정신이상 (특이사항 : 밀런 크레이스 한정일 가능성이 있음)]
그렇게 적어둔 메리는 문득 고민한다. 밀런은 원래부터 좀... 그렇지 않았나?
"......"
메리는 문장 위에 두 줄을 찍찍 그어 그 항목을 지웠다. 밀런은 지극히 정상이라 판단하며.
"그래서... 뭐가 그렇게 웃기신지."
메리의 물음에 밀런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얼굴을 드러냈다. 왼뺨을 차가운 식탁에 딱 붙인 밀런의 얼굴은 열에 들떠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본래 나나레에게서 받은 약으로 증상을 억누르던 밀런이었지만, 현재 그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보고서를 쓰려고 일부러 약을 끊었더니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재밌잖아."
"아픈 게요?"
지운 걸 다시 되돌려야 하나. 아니면 원래부터 마조히스트였다든가. 메리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지만 밀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흡, 깊게 숨을 들이마신 밀런은 아까부터 간헐적으로 찾아오고 있는 두통에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약의 부작용인 줄 알았는데, 이처럼 극심한 적은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이것도 이상 현상 중 하나에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밀런은 낮게 욕설을 읊조리며 메리가 가져갔던 펜과 종이를 다시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두통 (혹은 무작위 통증)]
펜을 내려둔 밀런이 메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연다.
"지난 몇십 년간...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언젠가 끝나길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멸이 계속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건 좀 반칙인 거 같아서."
"아... 확실히 올 게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메리가 공감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밀런과 메리 두 사람은 불사의 몸이 된 자신들의 상태를 환영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길 바랐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치 지금까지 겪었어야 했던 고통들을 한꺼번에 받는 것처럼 몰아치는 증세가 달가울 리는 없었다.
"그래도 막상 시간의 저주가 풀리기라도 한 걸까... 라고 생각하면 그건 또 아니란 말이지."
그랬다면 지금쯤 레지스탕스의 교류책이 사망소식을 실어날랐을 텐데,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황제도 위독해졌다 했을 뿐 죽지 않았으니.
메리가 허공을 응시하며 가만히 생각하다가 툭 말을 뱉는다.
"그럼 징후, 라고 하는 게 제일 적합하겠군요."
"그런가~"
밀런은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보고서 맨 위쪽에 남겨두었던 공간에 큰 글씨로 문장을 적었다.
"필사... 아니, 필멸 쪽이 좀 더 그럴듯한가."
[ 필멸의 징후에 관하여 ]
제법 멋들어진 필기체로 쓰인 문장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밀런은 느리게 눈을 끔뻑이더니 꾸벅꾸벅 고개를 기울이다가 결국 다시 식탁 위로 엎어졌다.
"그럼 나는 좀 잔다."
"......? 그럼 침대로 가서 주무세요."
"거기까지 가기 귀찮으니까..."
말꼬리가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메리가 무어라 더 말을 붙일 새도 없이 드르렁 코를 고는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갑자기 잔다고? 밀런은 요 며칠 새에 못 볼 꼴을 몽땅 보여주려는 것만 같았다.
메리는 현명하게도, 스스로 식탁을 잠자리로 선택한 밀런을 침대로 옮겨다 놓겠다는 친절한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남긴 보고서의 나머지를 채워넣기로 한다.
[지나친 수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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