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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한/세모하나] little by little

201501 권세모x차하나 개인지

Archive of TREE by 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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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 【대도시 침략 작전】에서 판매했던 회지를 웹 발행합니다. 포스타입( https://posty.pe/hs9siy )에서 본문 전체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원작과 다른 평범한 현대 AU에 가까운 배경. 권세모와 차하나의 고등학교 시점 이야기를 다룹니다. 쓴 시기 탓에 언수외탐(…!)을 배우던 때의 교육 과정과 학교 생활을 배경으로 합니다.
※쓴 시기가 시기라 시대착오적인 표현과 갈등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반드시 고려하신 후 구입해 주세요. 수정하자니 끝이 없어서 원문에 가깝습니다. 해당 사유로 이 글은 언제든 내려갈 수 있습니다.


little by little (1)

 

그건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그때의 권세모는 친한 친구라고 할만한 녀석이 차두리밖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자신이 그 시끄럽고 산만한 차두리와 친하게 지내게 됐는지 의문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면 항상 차두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게 비록 차두리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일방적으로 끝내는, 대화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었을 지라도 말이다. 그래도 고아였다는 소문과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아버지, 남들과 다른 팔다리를 없는 것처럼 무시하고 같이 지낼 수 있었던 또래는 차두리뿐이었다.

그날은 날이 말도 못하게 더웠다. 권세모는 여느 때와 같이 그저 빨리 집에 가고 싶었고, 차두리는 그날도 역시나 더 놀고 싶어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 하늘은 놀고 싶어하는 아이들까지는 말리지 못했다. 남아서 축구를 하고 간다는 차두리를 두고 가려던 권세모는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차두리에게 붙잡혔다.

─야, 권셈. 오늘은 같이 하자.

─…그냥 평소처럼 딴 애들이랑 해.

─사람 모자라.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된다니까?

정신을 차렸을 때 권세모는 이미 운동장에 서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을 쫓는 아이들 뒤에서 멀찍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데 아이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권세모는 손등으로 땀을 훔치면서도 그냥 차두리의 손을 뿌리치고 갔어야 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표정을 펼 줄을 몰랐다.

그냥 그날은 엉겁결에 그러겠다고 했다. 그해 들어 가장 더운 날이었음에도 왜 그렇게 쉽게 그런 대답을 했는지 지금도 권세모는 알지 못한다. 평소 아이들이 자신을 피했던 이유도 망각한 채 운동장에 서게 된 이유도.

─뭐 해! 빨리 차!

차두리의 목소리였다. 권세모는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골대로 차면 되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왼 다리가 움직였다. 더위를 먹었는지 순간적으로 눈앞이 흐려졌다. 아차, 하는 순간 공은 이미 날아가 버렸고 공은 골대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그 옆을 지나가던 애꿎은 사람의 머리를 맞췄다. 척 보기에도 같은 학교 학생 같던 아이는 그대로 공을 맞고 바닥에 넘어졌다. 가장 먼저 달려간 건 차두리였다. 권세모는 멍하니 서 있다가 뒤늦게 그 뒤를 쫓았다.

─차하나, 괜찮냐?

아는 애인가. 차두리의 목소리에 어느새 바닥을 짚고 앉은 차하나가 고개를 세게 몇 번 흔들고 차두리를 바라봤다. 권세모는 멍하니 서서 그를 내려다봤다. 더위 때문에 속이 울렁거려서 땅이 움직이는 것 같다.

─넌 무슨 그거 하나 맞고 쓰러지냐?

─네가 찬 거야? 엄청 아팠…,

─코피….

권세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붉은 피가 뚝뚝 운동장 바닥을 적셨다. 한 삼초 정도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차두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양, 양호실 가자 빨리!

권세모가 차하나를 일으켜 세운 뒤로는 숨돌릴 틈도 없이 셋이서 양호실까지 뛰었다. 차두리는 이초마다 빨리라는 말을 내뱉었다. 차하나가 손으로 코를 막긴 했지만 양호실에 도착했을 때는 입주변과 손이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놀란 양호선생님이 차하나를 봐주는 동안 권세모는 차두리의 화를 받아내야만 했다. 다리에 터보 엔진이 달렸냐느니,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었냐느니, 당사자에게라면 몰라도 차두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권세모는 시끄럽게 떠드는 차두리를 무시하고 차하나에게 다가갔다. 양호 선생님의 이제는 괜찮을 거다, 라는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권세모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뒤에서는 여전히 차두리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호 선생님이 한번 주의를 주자 입을 꾹 다물긴 했지만,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권세모의 귓가에서 웅웅 소리를 냈다.

그때는 차하나와 차두리가 쌍둥이라는 걸 몰랐기에, 자기가 공을 맞은 것도 아니면서 뭐 저렇게 시끄럽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권세모는 차하나와 차두리가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뒤늦게 들려온 목소리는 차분했다. 시선 끝에 닿은 건 검붉은 피가 눌어붙은 그의 옷이었지만 웃고 있다고 확신했다. 고개를 들었다. 차하나의 웃는 얼굴을 보였다. 권세모는 그날, 처음으로 차하나를 만났다.

 


01. 그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차두리가 다 먹은 식판을 옆으로 치우더니 테이블 위로 무너진다. 보나 마나 또 싱거운 이야기겠지. 권세모는 눈길도 주지 않고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고, 옆에 앉아있던 독고오공만 무슨 일이냐는 듯 차두리를 바라봤다.

“아니, 전화번호가 궁금하면 본인한테 물어보면 되지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누구 전화번호?”

“권셈.”

아아, 독고오공이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하지만 반응은 그게 다였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점심 대신으로 사온 빵 봉지를 뜯었다.

“권셈 너 나한테 할 말 없냐?”

“…무슨 할 말?”

“미안하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해보겠다거나…,”

“내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네 말마따나 궁금하면 나한테 물어보면 되는 건데 왜 그러는지 내가 알겠냐.”

“난 알 것 같은데.”

독고오공의 말에 권세모와 차두리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그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두리 네가 대하기 편하잖아. 세모는 좀 어렵고. 너 발도 넓어서 입학한 지 2주도 안 됐는데 같은 학년 중에 너 모르는 애 없더라? 뭐, 다른 의미긴 해도 세모도 그렇긴 하지만.”

“…요약하면 내가 쉬워 보여서 나를 이용해 권셈과 친해져 보겠다, 이런 생각인 거라고?”

“쉽게 말하면 그렇긴 한데…….”

“와, 이런 무심한 녀석이 뭐가 좋다고.”

그러게나 말이다. 한숨을 내뱉듯 말한 권세모가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것도! 차두리가 잽싸게 자기 식판을 위에 겹쳐 놓는다. 권세모는 눈길만 한 번 주고는 별 말없이 식판을 가져다 놨다. 급식실을 나설 즈음 권세모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 연락처는 주지 마.”

“예예, 안 그래도 그러고 있네요. 독공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고등학교 와서는 할 말만 딱 하고 방과 후에는 바쁘다고 가버리고, 차하나도 학년 초부터 벌써…,”

“아, 차하나는 오늘 무슨 일 있어?”

“…빨리도 묻는다. 걔 회장이잖아. 오늘 점심에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서 그거 끝나고 따로 먹는대.”

그랬었지. 권세모는 무심코 목덜미를 매만졌다. 문득 지난주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도 중학교 때와 별다를 것 없는 하굣길이었다. 방향이 다른 독고오공과는 항상 교문에서 헤어졌다. 권세모와 차하나, 차두리는 서로의 집까지 3분도 걸리지 않기에 친해진 뒤로는 언제나 셋이서 함께 하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하굣길은 늘상 비슷했다. 차두리가 떠들고 차하나와 권세모는 별말 없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 10여 분을 혼자 말하던 차두리는 집 근처 횡단보도 앞에 서서야 좀 조용해졌다. 차하나가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아, 나 회장 됐어.”

“또?”

차두리와 권세모가 동시에 말했다. 차하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쩌다 보니까. 높낮이가 없는 차분한 목소리에 차두리가 미간을 구겼다.

“넌 그걸 귀찮아서 어떻게 하냐?”

“생각보다 하는 일도 별로 없어.”

차하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꼬박꼬박 일 년 중 한번은 학급임원을 맡았다. 그가 워낙 성실하다는 인상이 강해서-실제로도 그렇긴 했지만- 이제는 거의 당연한 일로 굳어져 버린 것 같다. 고등학교도 대도중에서 대도고로 와서 권세모만 해도 반에서 얼굴을 아는 애들이 반을 넘었다. 차하나라면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올해는 회장. 권세모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파란불이 들어왔다.

“너희 반은 어때?”

“잘 모르는 애가 회장이고, 부회장이 누구더라?”

“중학교 때 전교 부회장 했던 애.”

“맞아 걔.”

차두리와 권세모는 같은 반이지만 둘 다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는 터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았다. 선거가 다 끝나고 나서 청소시간에 차두리가 물으러 왔었다. 그래서 회장이랑 부회장이 누구라고? 차두리보다 뒤쪽에 앉았던 권세모는 선거 내내 차두리가 졸고 있던 것을 봤다. 아마도 중간에 나왔던 기권표는 차두리 몫의 표였으리라 짐작한다. 권세모가 눈짓으로 교탁 주변을 가리켰다. 그 와중에 문득 차하나도 뭔가 맡았으려나, 궁금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럼 부회장은 누구야?”

권세모가 묻자 차하나가 곧장 대답했다. 하나. 그 대답에 권세모가 되물었다. 하나?

“우리 반에 이하나라고 나랑 이름 같은 애 있어. 너랑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다던데?”

차하나랑 이름이 같으면 기억할 법도 한데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는 것은 흐릿한 인상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권세모가 끝내 고개를 젓자 차하나가 멋쩍게 웃었다.

 

그게 지난주 금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벌써 일이 생기다니. 점심시간 직전에 짧은 방송이 나왔는데 아마 이 이야기였던 것 같다.

차하나의 이야기 이후 대화가 끊겼다. 중앙 현관까지 가는 길에 차두리가 독고오공에게 무어라 말을 걸었지만 그마저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끝이었다. 세 사람은 그대로 말 없이 중앙계단을 올랐다. 교실이 있는 층에 다다랐을 즈음 앞서나가던 차두리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지금 끝났냐?”

계단을 내려오던 차하나와 마주쳤다. 같이 내려오는 사람은 아마도 같은 반 부회장이라는 애 같았다. 귀찮다고 아무도 걸고 다니지 않는 목걸이 명찰을 걸고 있다.

이하나. 하나라는 이름에 눈이 간다. 권세모는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점심시간이 겨우 십분 남짓 남았다.

“근데 지금 가서 밥이나 먹을 수 있겠냐?”

권세모가 입을 열기도 전에 차두리가 툴툴댔다. 매점에라도 가면 되지. 돌아온 답이 차하나다웠다. 그래, 뭐. 밍숭맹숭한 반응을 끝으로 차두리가 계단을 올랐다.

뒤를 따르던 권세모가 계단을 내려가던 차하나의 손목을 잡았다. 차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쳤다.

“가서 그냥 밥 먹어. 어차피 반마다 다들 늦을 텐데 사정 얘기하면 선생님들도 이해해주실 거야.”

“…아, 걱정 마. 가서 먹을게. 말만 그렇게 한 거야.”

옅은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권세모가 손을 떼자 따라서 멈췄던 이하나에게 미안, 이라고 말한 그가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권세모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본 후에나 계단을 올랐다.

“하여간 권셈, 차하나는 엄청 챙겨요.”

“내가?”

뒷반이라 한 층 더 올라가야 하는 독고오공에게 손짓으로 인사하고 복도를 꺾을 때 차두리가 말했다. 권세모로서는 별로 동의하지 않는 말이었지만 큰 부정도 없었다. 어떤 대답을 하든 차두리는 끝까지 물고 넘어질 테니까.

“차하나한테 빚이라도 진 것처럼 열심히 챙겨주잖아. 그래도 내가 차하나보다 너랑 오래 지냈는데 네 옆에 있는 친구를 더 챙기고 싶은 마음은 안 드냐?”

“네가 뭐가 예쁘다고 챙기냐.”

“차하나는 예뻐서 챙겨줘? 얼굴도 똑같은데.”

“안 똑같아.”

권세모가 앞질러 교실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온 차두리는 들어오자마자 거울부터 찾았다. 똑같은데. 한참 뒤에 그가 권세모를 보며 던진 말이다. 권세모는 그 말에 한숨을 쉬고 헤드폰을 집어 들었다. 평소에는 안 닮았다고 입이 닳도록 말을 하면서 이럴 때만 닮았다고 얘기한다.

권세모가 차하나와 차두리가 쌍둥이라는 사실을 믿게 된 건 차하나가 제 입으로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였다. 차두리가 말할 때는 믿지도 않다가 차하나의 말에 대번 ‘그래?’라고 입을 열었을 때, 차두리가 엄청 화를 냈었다. 사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때는 여전히 긴가민가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 의식을 하게 된 지금에서야 화낼 때 표정이 비슷한가, 정도만 생각할 뿐이다.

권세모가 음악을 듣는 건 아랑곳하지도 않고 차두리는 권세모의 앞에서 쉼 없이 떠들어댔다. 간간이 차하나가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렸던 거 보면 아직까지 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빚,”

권세모가 대뜸 툭 내뱉은 말에 차두리가 말을 멈췄다.

“빚?”

“빚진 거 있어.”

“그거 생각하고 있었냐? 그보다 네가 뭔 빚을 져?”

권세모가 검지끝으로 코끝을 툭툭 두드린다. 코피. 그가 그렇게 말하자 차두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너 차하나 때린 적 있어?”

답보다 고개를 젓는 것이 빨랐다. 조금 늦게 말을 잇는다.

“기억 못하나 보네, 그렇게 잔소리를 해놓고.”

뭐라는 건지. 차두리의 중얼거림에 그가 픽, 짧은 웃음을 흘렸다. 차두리는 표정을 구긴 채 한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 수업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나서야 제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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