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악마도 반품이 되나요?

2화

1차 BL

Rose by 제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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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남자를 바라봤다. 10학년 미술사 수업 시간 때 배운 것이 뇌리를 스쳤다. 스탕달 신드롬, 뛰어난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충격으로 혼란, 어지러움 등의 증상이 생기는 것으로 그 당시 오스카는 그저 지나치게 사고가 드라마적인 사람들이 과장하는 것이라고 비웃었었다. 하지만 오스카는 약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개념을 확실히 이해했다. 이 남자는 방금 루브르 박물관에서 걸어 나온 것처럼 완벽했다. 이 남자가 인간 세상에 한번 얼굴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외모에 현혹되어 수많은 시와 그림, 조각으로 그를 담아내려 하고 그 창작물들은 몇 세기 동안 칭송 받을 것이다. 그 창작물이 그의 아름다움의 1/10도 담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충격 받은 오스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눈앞의 남자는 인상을 쓰고 오스카를 파악하려는 듯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스카가 그의 말에 답하기를 계속 기다리던 남자의 인내심은 이벤트용 0원 쿠폰보다 더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다. 참을성을 잃어버린 남자가 손가락을 튕겨 공기포가 폭발하는 소리를 내자 오스카는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잠시 얼타며 두 눈만 끔벅이던 오스카는 남자의 심통난 표정으로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제가 당신을 소환했어요!"

"제...제 이름은 오슳, 아! 죄송해요. 혀를 깨물어서....저는 오스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오스카는 혀를 깨물고 목소리는 염소 목소리에 오토튠 보정한 것마냥 괴상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스카는 진정하기 위해 가슴을 크게 부풀렸다 줄여가며 심호흡을 했다. 천천히 숨을 내뱉고 약간 긴장을 푼 오스카는 용기를 내 남자를 올려다봤다. 석회암 같이 창백한 피부는 그의 이질적인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했다. 용기를 낸 오스카는 손을 뻗어 남자의 손목을 꽉 잡았다. 조각상 같은 온도, 색상에 뼈가 느껴지는 살짝 말랑한 팔. 이 기묘함에 오스카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갈라테이아의 현신 같은 남자는 그저 눈앞의 피그말리온을 조금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남자의 손목을 잡고 걷는 내내 둘은 아무 말 없이 고요했다. 보통 다른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지금까지 남자는 처음 한마디를 제외하곤 그저 인상만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인큐버스였다면 천을 극도로 아낀 스파브랜드 s/s 신상 같은 걸 입고 아주 눅눅하고 축축한...무언가를 했을 것이다. 방에 갈 시간도 없이 이미 다락방은 사우나로 개조되어 그 아래층에 누수가 발생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이들을 보라. 남자의 옷은 재택근무 하다 끌려 나온 직장인처럼 지나치게 단정했다. 귀여운 변태처럼 말해야 했을 말투는 얼음이 핫팩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물리학자들이 지금 이 남자를 봤다면 오늘 이후로 절대영도의 기준이 바뀌었을 것이다. 남자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레드라이트였다.

끝없는 의심만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오스카는 인간 실격이었다. 오스카의 뱃속에 나비가 훨훨 날아다니느라 의심이 싹 틀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나마 남은 자리엔 저 아름다운 남자와 함께 v-card를 해지할 눅눅한 생각들이 포자를 날리고 있었다. 챔피언처럼 의기양양한 오스카는 복도 끝에 있는 자신의 방문을 확 열었다. 오스카의 기세와 달리 방은 초라하고 지저분했다. 부끄러워진 오스카는 바닥에 떨어진 빨래들을 발로 차서 방구석으로 밀어 넣고, 책상에 아무렇게나 놓인 과제물들을 서랍 안에 대충 쑤셔 넣었다. 아무 일도 없는 척 하기엔 오스카는 토마토가 되었다. 남자가 오스카를 바라보는 게 느껴지자 오스카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어색함에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긴 오스카는 남자를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안내했다.

"너무 지저분하네, 죄송해요. 하하.........어...음....저기....앉으실래요?"

남자는 까치발을 하고 학처럼 걸어 빨래가 있던 곳들을 속속 피하며 침대로 갔다. 그리고 시트에 최대한 닿지 않게 아주 살짝 걸터앉았다. 오스카도 어깨 넓이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았다. 들숨 날숨이 가장 큰 소음인 상태가 지속되던 중 오스카는 용기를 내고 남자의 옆모습을 슬쩍 바라봤다. 순수하게 감탄이 나오는 얼굴에 오스카는 얼굴이 또다시 달아올랐다. 새빨개진 오스카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렸다.

"너 진짜 예쁘다..."

잠시 허공에서 몇 번 손을 움츠리던 오스카는 용기를 내 커다란 손으로 남자의 오른쪽 볼을 감쌌다. 쿵- 쿵- 여전히 둘 사이엔 아무 말도 없었지만 오스카는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고 어지러워서 혹시 달팽이관이 고장 난 게 아닐까 의심했다. 우주라도 담은 것처럼 검고 깊은 남자의 눈과 오스카의 눈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팝핑캔디가 터지듯 스파크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꽃을 감싸듯 조심히 남자의 양 볼을 감싼 오스카는 머릿속에서 가위로 v-card 한 가운데를 자르며 눈을 감고 입을 맞췄다. 오스카의 뜨거운 체온과 만나며 남자의 말랑한 입술은 미지근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왼쪽 뺨이 통째로 뜯긴 건 같은 통증과 함께 오스카는 바닥에 오른쪽 뺨을 대고 누워있었다. 밀리는 느낌이 전혀 없었기에 오스카는 자기가 왜 여기 누워있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빠진 오스카의 머리 위에서 서릿발 같은 시린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네?"

오스카는 너무나도 아프고 당황스러웠다. 분명히 아까까지 귓가에서 스파크가 터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귓방맹이가 터져있었다. 눈물이 찔끔 고였지만 남자의 매서운 눈초리에 오스카는 앓는 소리 한번 못 내고 얼얼한 왼쪽 뺨만 문질렀다. 맹수 앞의 선 강아지처럼 쫄아버린 오스카는 눈을 내리 깔고 낑낑거리듯 말을 더듬었다.

"ㄴ..ㄴ네..어..음...알잖아요, 사람들이 인큐버스를...."

"인큐버스?"

남자는 오스카의 말을 끊고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뜬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되물었다.

"인큐버스으?"

남자가 분노의 숨을 내뱉자 앞머리가 살짝 들렸다. 잠시 주변을 돌아다니던 남자는 바닥에 널브러진 오스카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떤 겁 없는 놈이 감히 날 불렀나 했더니....이런 바보라고?"

남자는 두 손가락으로 미간을 꾹꾹 누르며 한숨을 쉬었다. 오스카는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요즘은 인큐버스라는 호칭을 안 쓰나? 혹시 지옥 기준 무례한 호칭인가? 이런 멍청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 멍청한 얼굴과 마주치자 남자는 참으려던 울화통이 터졌는지 오스카를 향해 윽박질렀다.

"넌 진짜 네가 뭘 부른지 모른다고?"

오스카는 남자의 말뜻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두 눈만 끔뻑거렸다. 남자는 결국 울컥해서 방이 흔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난 악마야 이 새대가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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