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악마도 반품이 되나요?

3화

1차 BL

Rose by 제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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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귀가 먹먹해졌지만 오스카에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남자의 말이 오스카의 귓바퀴에서 뱅뱅 돌았다. 짧은 문장이지만 오스카의 뇌가, 18년간의 상식이 그것을 거부해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마침내 이해한 오스카는 온 얼굴의 구멍을 확장하며 멍청하게 되묻는다.

"네?"

오스카는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오스카는 그저....그저 혼자 집에 남은 틈을 타 귀여운 인큐버스랑 즐거운 시간을 좀 보내려고 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이상하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불타오르는 왼뺨, 예쁜 얼굴과 그렇지 못한 성격을 가진 살벌한 존재. 오스카는 그저 빨래마냥 바닥에 널브러져 뺨만 부여잡고 있었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오스카는 차마 악마의 그 흉흉한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 깐 채 나름 반문했다.

"아니...전 인큐버스를 불렀는데......그 쪽이 잘못 오신 거 아니에요..?"

"하."

악마는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로 어이가 없었던 건지 악마는 실소를 터트리다가 정색했다.

"미친 건지, 아니면 멍청한 건지....."

오스카는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마음속에 알 수 없는 호승심이 생겼다. 분명 머리 속 본능은 나대면 X 된다고 외치고 있지만 12년 학교생활 중 몸으로 체득한 것이 있다. 인생은 기세다. 상대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가슴을 부풀리고 가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그가 불러낸 악마가 아닌가? 자고로 악마란 소환자의 영향 아래 있을 수 밖에 없다! 오스카는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최대한 여유로운 척 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며 SNS에서 여자를 꼬시기 위해 잘생긴 척 하는 남자들처럼 한쪽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뭐, 상관 없어요. 인큐버스든 아니든. 어쨌거나 난 당신을 소환했고, 당신은 내 명령에 따라야 하는 거 맞죠?"

오스카는 악마를 압박하듯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6'2 (189cm)인 오스카는 비록 싸움은 못할지언정 큰 키로 누군가를 압박하는 것엔 능숙했다. 일차적으로 키에서 밀린 남자들은 꼬리를 말고 도망쳤으니까. 악마는 고개를 움직이지 않고 커다란 눈동자만 데굴 위로 굴려 자기 앞에 다가온 오스카를 올려다봤다. 약간 소름끼치는 모습이었지만 악마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에 오스카는 묘한 승리감을 느끼며 이죽거렸다. 이 기세를 몰아 오스카는 악마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부드럽게 정리하며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일단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

악마가 아무 말 없이 검지손가락만 까딱거리자 오스카 앞의 악마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오스카는 당황해서 뒷걸음질을 쳤다. 치려고 했다.....하지만 발밑에 닿는 게 없었다. 공포감에 오스카는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자 천장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것을 깨달음과 동시에 즉시 팔다리가 제압되어 마치 관에 누워있는 시체처럼 정자세가 된 오스카는 천장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처박혔다. 아까 인생은 기세라고 했던가? 아니다. 오스카는 오늘 새로운 규칙을 배웠다. 같은 종으로 분류되어야 가오 대결도 가능하다는 것, 절대적인 강자 앞에선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것.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질겁한 오스카는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는다.

"아악!!!죄송해요,죄송해요! 그만 나댈게요! 제발! 제발 내려주세요!"

그를 공중에 처박아둔 악마는 오스카의 비명을 무시한 채 천천히 오스카의 방을 둘러봤다. 미처 집어넣지 못한 sat 문제집과 교과서 등이 노트북과 함께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악마는 지저분한 책상에 흥미를 잃고 책장을 훑던 중 꽤나 흥미로운 책을 한 권 발견했다. 게티아. 솔로몬이 저술했다고 알려진 책으로 72 악마에 대한 프로필과 소환, 그들을 부리는 방법이 기술되어있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악마 포x몬 도감이다. 예전 거래처였던 솔로몬의 이름을 보자 반가워 책을 펼치려는 찰나 책 표지 위에 물방울이 톡 떨어졌다. 위를 쳐다보자 오스카가 벌게진 얼굴로 커다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걸복걸 하고 있었다. 악마는 마법으로 눈물방울을 소멸시키며 싸늘하게 말했다.

"자꾸 그렇게 돼지처럼 울부짖으면 진짜 돼지 새끼로 만들어버린다. 여물어."

악마의 위협은 효과적이었다. 오스카는 즉시 입을 꽉 다물고 흘러나오는 울음을 목젖 아래로 밀어 넣었다. 조용해지자 만족한 악마는 게티아의 한 페이지를 읽더니 따분한 얼굴로 책을 다시 꽂았다.

' 완전히 가짜로군.'

악마는 고개를 들어 천장에서 힘겹게 울음을 참는 잘생긴 얼굴을 한번 바라봤다. 악마의 뛰어난 미감으로 봤을 때도 오스카는 못생기지 않았다. 오히려 오스카는 잘생긴 축에 속했다. 약간 지저분한 고동색 곱슬머리에 버터스카치색 피부, 짙은 눈썹과 갈색에 일부분 녹색을 띄는 헤이즐색 눈동자, 길고 날렵하게 뻗은 코, 그리고 큰 키까지. 외관 하나는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모든 장점을 상쇄하는 찌질함에 악마는 혀를 끌끌 찼다. 악마는 팔짱을 끼고 얼굴이 시뻘건 오스카를 향해 말했다.

"야"

"끕...넵?"

심기를 거슬렀다가 돼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오스카는 울음을 참느라 빨개진 얼굴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그 한심한 모습에 악마는 약간 경멸하는 듯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소환 의식을 벌였던 곳이 어디지?"

"다락방이요....."

"안내해라."

악마는 손가락을 휘저어 오스카의 속박을 풀었다. 오스카는 그대로 쿵 소리를 내며 카펫 위로 추락했다. 계속 공중에 묶여있던 팔다리가 젤로처럼 파르르 떨렸지만 악마의 매서운 눈초리 때문에 아프다는 소리 한 번 못 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대로 기선 제압당한 오스카는 빠르게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은 뒤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쭈뼛쭈뼛 다가갔다.

"저기...선생님, 따라오세요...."

둘은 아무 말도 없이 어색하게 복도를 건넜다. 오스카는 최대한 태연한 척 하려고 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이미 거대한 소요가 발생했다. 악마와 인큐버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미래에 대한 걱정 등이 뒤섞여 온통 질척하고 지저분한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악마는 정말 아름다웠다. 맹세컨데 이 얼굴로 천사라고 말했다면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겠지.

"뽑기 전에 눈깔 치워."

악마의 시퍼런 경고에 오스카가 자신이 넋을 놓고 악마를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시 눈을 깐 오스카는 다락방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을 안내했다. 다락방 문을 열자 그곳엔 이전 소환술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적갈색으로 말라붙은 피와 바람에 흩날린 인센스 가루 그리고 바람에 날려 뒤집어진 상자들. 마리아가 봤다면 즉시 슬리퍼로 두들겨 맞았을 것이다. 악마는 성큼성큼 가운데로 걸어가 인센스 병 (5 oz, 39.99 달러)을 들고 킁킁거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저급 제품은 어디서 산 거야? 네 안목은 튜닉을 입고 하프 치는 날파리들보다 형편없어."

병을 대충 아무 데나 던진 악마는 소환진 앞에 쭈그려 앉아 천히 살펴봤다. 이리저리 흩날린 인센스 가루들과 분필로 그린 커다란 오각성, 오스카의 피가 굳어 적갈색으로 변한 인장과 굳은 초 그리고 악마의 눈이 그려진 칼. 악마는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며 칼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오스카에게 까딱까딱 손가락질하며 명령했다.

"책 가져와."

"네엡..."

오스카는 착한 강아지마냥 쫄래쫄래 저 너머로 날아갔던 '제 0의 서'를 주워 와 건네줬다. 낡은 초록색 가죽 책을 받은 악마는 '제 0의 서' 를 펴서 소환진과 책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대충 대조하던 악마는 그가 그린 어지러운 인장의 한 부분을 보더니 멈칫했다. 악마는 흥미롭다는 듯 책을 처음으로 넘기더니 빠르게 비교하기 시작했다.

옆에 서 있는 오스카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아까까진 퇴근 30분 남은 직장인마냥 영혼 없던 악마가 책과 주문진 사이로 빠르게 오가며 간간이 이죽거리는 것은 그를 퍽 두렵게 만들었다.

'왜...왜 갑자기 웃지...무섭게....'

하지만 또 열받게 했다가는 '그레고르 잠자' 의 돼지 버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가리에 지퍼를 야무지게 채웠다. 한참 동안 책에 고개를 박고 있던 악마가 드디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한심함, 흥미로움, 즐거움이 뒤섞인 그런 표정. 악마는 꿈틀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억누르며 오스카를 향해 물었다.

"누가 네게 이 책을 팔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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