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U404+UDI lab.

[언내추럴/나카도+UDI] 녹슨 태엽

핑크색 하마는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 투비로그에 23.02.01.에 올렸던 글을 고스란히 옮겨옴(가필수정X, 언젠가 할지도….)

* 언내추럴 전체를 관통하는 사건의 진상이 들어있습니다. 엔딩을 보지 않으셨다면 열람을 추천하지 않습니다. 만일을 위해 엔터쿠션을 넉넉히 넣어둡니다

* 엔딩 이후의 나카도 케이(+아주 잠깐 UDI 멤버들). 개인적인 해석 다수 있음.

* 나카도 씨가 다시금 미래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결국 그 자식, 타카세 후미토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한 때 지독하게 찾아보았던 형사법과 판례가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네 명 이상을 죽였다면 참작의 여지가 없는 한 사형.

그놈은 자백 상으로는 스물 여섯을 죽였다. 그러나 적어도 스물 여섯인 거라고 나카도는 생각한다. 아이들 글자 보드 위에 수놓아진 별 거지같은 살해수법(그러나 사인과 도구와 환경이 다 뒤섞인)을 보았을 때, 과연 한 번에 그렇게 죽일 수 있었겠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아마도 한없이 사실에 가까울 거다. 혼자만의 상상은 아니다. 언외에 쇼지도 비슷한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임상병리사를 하면서 피하주사라거나에 익숙해진 거지, 두피정맥에 피하주사라니, 그런 거 학부 1학년 때에 시키면 절대 못 할 거라고. 아무 지식도 실습대도 없었을 범인이 대체 어떻게 한 번에 깔끔하게 해치웠겠는가.

그러나 그 모든 여죄추궁은 검찰의 몫이다. 까만 건 까맣다고 말해줄 검사에게 넘겼으니, 알아서 지지고 볶고 할 거다. 눈꺼풀이 무겁다. 나카도는 앓는 소리를 내며 오피스 소파에 등을 기댔다.

팔 년 내내도록, 끝을 바랐다. 지독하게 바라왔다. 오히려 복수에 눈이 멀어 유키코를 꿈에 볼 수 있을 정도의 정성은 모자랐지만, 그 그리움과 억울함을 전부 분노로 승화해 빌어먹을 개똥같은 살인자 자식의 멱살을 쥐고 그 면상을 곤죽이 되도록 패고 싶었다.

모든 것은 상상과 달랐다.

현실은 여전히 상상과는 달라서, 너는 결코 그렇게 차고 버려진 곳에서 죽어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상과도 달라 너는 결국 아름다운 꽃이 되지 못했다. 네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지닌 놈이 못 된 탓에 세 번째로 부검대에 올라온 너의 시신에 한 조각 감상도 싣지는 못했다. 그저 너는 또 나에게 빛으로 남아주느냐고. 내가 꿈 속에서는 몇 번이고 넘었던 그 선을 넘지 못하게.

생각해온 끝은 너무나도 달랐다. 아니, 사실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범인을 죽이고, 감방에서 썩던가 그냥 죽던가 따위의 잡상이나 빈 손에 굴렸던 것 같다.

빗장뼈 사이를 빼곡하게 채운 것은 무엇일까. 강청색으로 들이찼던 것은 처음부터 열기도 온기도 없었으나 확실하게 부피를 가지고 있었다. 터져나갈 것 같은 것은 겨우 한순간의 섬광이고 모든 게 끝나니 휘발되었다. 그걸 성취감이라고 부르기에는 얄팍하고 단순하게 허무감이라기엔 분명히 의미가 있다.

돌연 아, 이제 너 없는 세상을 나는 정말로 살아가야 하는구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하고 숨이 막힌다.

벽시계에서 소리가 난다. 한번도 의식하지 않았던 소리가 똑, 딱, 똑, 딱, 하고 귀에 틀어박힌다. 만 2년은 질기게 보아왔던 UDI 오피스의 색채가 돌연 새겨진다. 유키코의 그림은 손에 있다. 그 애의 온기가 증발한지 훨씬 오래일 그것은 확실하게 종이의 감촉이다.

모든 감각이 새롭다. 지나치게 낯선 감각에 호흡하는 법마저 어설퍼진다.

핑크색 하마 두 마리가 같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야.

그렇지만, 유키, 나는 이제 혼자 남았는 걸.

타카세는 증거품을 태웠다고 했다. 아마 그 날, 뒷마당에서 타오르던 것 중에는 유키코의 다른 그림들도 있을 것이다. 두 마리의 핑크색 하마가 나란히 걷는 그림도 그날의 가방에 있었을 것이라고 코지야 씨가 언급했기 때문에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면 완전히 소실된 것이다. 나는 그걸 영원히 볼 수 없겠지.

혼자가 되어버린 핑크색 하마는, 나는, 정말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저만치서 너댓명의 발소리가 몰려들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형광등을 켜고,

"깜짝이야! 나카도 씨, 있으면 불 켜고 있지 그랬어."

"로쿠로~ 얼른 들고 와! 사카모토 씨도!"

"여기서 뛰면 국물 엎어져요!"

"안돼. 그렇게 뛰면 노른자가 터질지도 모르니까. 무민처럼 말랑한 노른자는 소중하잖아?"

"쇼-지, 우리 일회용 수저 어디에 놨었지?"

"으음~. 그러게. 아! 기억났다. 여기여기!"

삽식간에 왁자지껄해졌다. 눈을 마주치고 깜짝 놀란 카미쿠라 소장, 여느 때처럼 텐션이 높은 쇼지, 그 말 하나하나에 반응하고 있는 어수룩한 쿠베, 돌아오고서는 긁어도 생채기 하나 안 나는 멘탈의 소유자가 된 사카모토, 여전히 마이페이스의 미스미까지. 회의실 책상 위에 신문지를 쫙쫙 펼치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덮밥집에서 포장해온 저녁을 늘어놓는 소란스러움이 상념을 북북 찢었다.

그랬다. 현 두 개를 넘어서 밤중에 도착할 거라는 사법해부 때문에 다같이 나란히 야근을 하게 됐었지. 밥 사온다는 말에 남겠다고 했었고, 대강 아무거나, 라고 답한 자신 외에는 모두가 외출했었다.

아직도 소파에 멀뚱그러니 앉아있는 저를 향해 UDI 멤버들이 외쳤다.

"저녁 먹읍시다!"

문득 유키코가 만들어줬던 백반이 떠올랐다. 그때 너는 무어라고 했더라.

아무리 힘들어도 맛있는 밥을 먹고나면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아. 안 그래?

그래, 그랬지. 유키코의 웃는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사소한 대화는 묻어두었다. 오래 지나 제일 먼저 흐려진 것은 목소리.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선명해서. 우선 지금은 밥을 먹고, 갈 길 잃은 핑크색 하마 한 마리는 혼자서라도 여행을 갈 수 있는지 천천히 생각해볼게, 유키. 아직도 네가 말한 죽고서 꽃이 된 갈색 작은 새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언젠가의 끝에 너를 만나면 아름다운 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오래도록 녹슬어 멈춰있던 태엽이 삐이걱, 하고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카테고리
#기타
페어
#Non-CP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