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겨울에 덥다고 짜증내기(부제:감기(上))
ADVENT MHTS / 동거 n년차 뿅감독×송선수 setup
태섭이 간밤에 잔기침을 좀 했다. 저녁부터 목 안이 조금 간질거린다 느끼긴 했지만 피곤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이라 가볍게 넘긴 건 태섭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아파용?하고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던 명헌의 음성에는 잠이 가득하면서도 애정이 어려있어 태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품을 실컷 누렸다. 혹시 모르니까 아침 러닝은 하지 말라는 말이 뒤에 붙어 따라왔단 기억은 잠결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그렇게 평소처럼 러닝을 했고 집에 들어왔을 때 겨울의 해가 아직 오르지 않아 어둑한 푸름이 내려앉은 거실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 있는 명헌의 실루엣에 비명 한 번 질러줬다.
말 안 듣고 다녀온 거냐는 뚱한 소리와는 다르게 태섭의 얼굴을 쭈물쭈물대는 손길은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태섭 스스로는 아프다-라는 의식이 없었다. 아직 목이 간질거린다는 느낌 외엔. 하지만 연인의 무서운(척하는) 얼굴에는 잠시 꼬리를 내렸다. 그런데 씻고 나왔을 때 명헌이 아침으로 내준 계란죽에 이정도 환자는 아니라 한마디 얹었다가 초반에 제대로 안 잡으면 길게 앓을 거고 지금 중요한 시기인데 아파서 어쩌자는 거냐는 잔소리 폭격에 왠지 서러워져 도중에 수저를 내렸다.
“알았어요”
오늘따라 명헌도 좀 예민해 보이긴 했지만 틀린 말 아닌 게 더 짜증나.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명헌이 정말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어 죽 그릇 옆에 놓인 약과 레몬 사탕을 꼬나보다 탈탈 털어 먹었다. 명헌도 이땐 죽 마저 다 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정도든 저정도든 약 먹었으면 자면 된다. 침대 속은 전기매트로 적당하게 데워져 있었다. 짜증은 녹아 사라지고 그 위를 잠이 덮었다. 명헌은 방의 커튼을 단단히 쳐 빛을 막고 태섭이 쉴 수 있게 자리를 피했을 뿐이었다.
태섭이 오늘 하루 정도는 푹 쉬면서 감기를 잡을 수 있게 명헌은 집안에서도 큰 소리를 내는 일은 피하고 거실에서 경기 모니터링이나 훈련 일정, 전술 체크 등을 하며 오전을 보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병원을 데려갔다 올 생각으로 휴일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예약도 해둔 상태였다. 시간이 되면 깨울 테지만 그 전에 깨어날지도 모르는 연인의 소리를 캐치하기 위해 방문은 살짝 열어두었다.
"이명헌"
역시나 문틈으로 자신을 부르는 연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름 석 자로 호출하는 건 예상 밖이었지만. 불을 켜는 대신 아침에 쳐둔 커튼을 걷었다. 빛이 찬 방안에는 태섭이 이미 일어나 앉아 있었다. 잘 때 덮어준 이불이 침대 아래로 떨어져 있어 명헌이 주워 올렸다.
"더워, 덥다고.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땀 좀 빼야 해용"
"그것도 정도가 있지, 지금 방이 얼마나 끓고 있는지 알아?"
잘 자고 있다 땀과 열에 등이 젖어 듦과 동시에 너무 뜨거워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들이쉬는 공기까지 후덥지근하기까지. 얼마나 땀을 흘린 건지 머리카락은 피부에 들러붙어 있었다. 태양의 뜨거움이 주는 산뜻함이 아닌 이런 열기의 축축함은 사양이다. 감기열 때문에 어지러운 건지, 방의 열기가 몸 안으로 들어차 어지러운 건지 알 수도 없다. 땀에 전 자신과는 달리 같은 집에 있는 이명헌은 너무나도 멀끔해 보여.
“당신은 왜 멀쩡해?”
“방 난방만 조절했으니까용”
아. 맞다. 가능하지 그거. 아니 이게 아니고.
“지만 쾌적하면 다야? 애인은 죽이고?”
“죽이다니용”
“비켜요, 여기선 도저히 못 있어”
씻기도 좀 씻어야겠고. 홈웨어 윗옷을 벗으려 끌어올리는 손이 명헌에게 막혔다. 자신의 손을 저지하고 있는 연인을 보는 태섭의 눈썹 한쪽이 슬금 올라간다. 그러면서도 명헌의 손 채로 올려 버리겠다며 팔에 힘을 준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 열이 더 오르는 얼굴. 진짜 이 형이 왜 이러는 건데. 누가 보면 몸살이라도 난 줄 알겠네.
“아아아!!! 진짜!”
팔에 힘을 푼 태섭이 신경질적인 움직임으로 명헌의 손을 털어낸다. 명헌은 아까부터 변화 없는 표정으로 태섭을 보고 있었다. 웃으면서 봐줄 생각은 전혀 없다. 오늘 스스로 정한 송태섭 감기 떨어트리기 미션은 명헌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다.
“아프니까 응석 부리는 건 괜찮다 뿅”
“어디를 응석으로 보는 거예요”
“거실이랑 온도 차가 크니까 옷은 입고 이동해용”
“거봐 죽이려고 했다니까”
너무나 굳건한 의지로 세워진 벽 앞에서는 전투의 의지를 상실하기도 하는 법이다.
“말 들을 테니까 점심까지 죽으로 주는 건 좀 참아주시죠 이감독님”
“대신 병원 뿅”
“어차피 갈 거였으면서 딜하는 척은, 진짜 약았다 이감독”
“뿅”
이불을 몸에 두른 태섭이 방을 나선다. 아아 점심 뭐 사달라고 할까.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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