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성장

에이스 트라폴라 드림

「아이렌, 잠깐 우리 기숙사로 와줄래?」

 

느긋한 주말 오후. 에이스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하츠라뷸 기숙사로 온 아이렌은 자연스럽게 담화실로 향했다. 메시지에는 구체적인 장소 같은 건 적혀있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높은 확률로 거기에 있으리라는 나름의 확신이 있기 때문일까. 화려한 복도를 걷는 아이렌의 발걸음엔 망설임이라곤 없었다.

 

“에이스, 여기 있어?”

 

예상은 적중했다. 슬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눈동자 두 쌍이 마치 마중이라도 하듯 아이렌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아, 왔다!”

“왔다니, 누가? ……어라, 아이렌?”

 

에이스는 웃으며 반기고, 듀스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인다. 거기까지는 특별히 이상할 게 없었지만, 아이렌은 순식간에 무언가 평소와 다른 걸 느끼고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두 사람과 눈높이가 다르다. 평소에는 서로 2~3cm 차이밖에 나지 않아 올려다볼 일도 내려다볼 일도 없는 사이인데, 지금은 눈높이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눈동자를 위로 굴려 에이스를 보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듀스까지 본 아이렌은 제가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 싶어 볼 안쪽 살을 물어보았다. 당연하지만, 고통을 주고 눈을 비벼보아도 그들의 모습이 달라지진 않았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언뜻 보아도 에이스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 더 커져 있고, 듀스는 한 뼘 정도 작아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나란히 선 두 동급생은 무려 두 뼘 정도의 어마어마한 키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지.

놀란 아이렌의 표정을 보며 짓궂게 웃은 에이스는 ‘날 마셔요!’ 라고 적힌 유리병 두 개를 보여주었다.

 

“그게 말이지~”

 

에이스의 설명은 이러했다.

약 10분 전, 에이스와 듀스는 샘의 가게에서 흥미로워 보이는 마법약을 발견하고 하나씩 사서 마셨다고 한다. 그 흥미로운 마법약이란 하트 여왕의 전설 속에 나오는 물약을 흉내 낸 제품으로, 마시는 이의 키를 랜덤하게 키워주거나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당연하지만, 마시기 전까지는 커질지 작아질지 모르는 제품이었고 말이다.

‘어쩌면 이걸 마시면, 상대를 내려다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악우인 16살의 장난꾸러기들은 그런 맛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고, 동시에 마법약을 마셨다.

그리고 그 결과, 에이스만 웃을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니……, 그게 바로 지금 이 모습이었다.

 

“이런 마법약이 합법으로 팔려도 되는 거야?”

 

설명을 다 들은 아이렌은 황당해하며 마법약을 노려보았다. 아무래도 마법이라는 게 없는 세계에서 온 그가 보기엔, 사람의 크기를 마음대로 재구성하는 물약이라는 건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일상에 녹아든 이들의 생각은 달랐으니. 에이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곧장 반박했다.

 

“왜? 몸에 나쁜 약도 아니고, 어차피 30분이면 효과가 끝나는 데다가 중독성도 없는데.”

“…….”

 

아, 이것이 세계관의 차이라는 걸까. 아이렌은 결국 그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손님이 조용해진 사이, 둘의 대화에 끼어든 건 평소보다 귀여워진 듀스였다.

 

“그래서, 넌 아이렌을 왜 부른 거야?”

“그냥, 궁금해할 거 같아서? 아이렌이 ‘에이스도 3학년 쯤 되면 180cm까지 성장할 수도 있지’라고 한 적이 있거든.”

“진짜야, 아이렌?”

 

그건 사실이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닌 사실에 아이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봐.’ 마치 그리 말하는 듯한 눈으로 듀스를 본 에이스는 슬쩍 아이렌에게 다가섰다.

 

“그래서, 어때? 성장한 내 모습을 미리 본 기분은?”

 

이런 것까지 감상을 듣고 싶은 건가. 역시 이 나이대 남자 애들이란 귀엽다.

속으로 그런 생각부터 든 아이렌은 슬쩍 에이스를 훑어보았다. 덩치는 거의 같지만 키만 커져서 그런 걸까. 그의 기숙사 복은 소매와 기장이 훅 짧아져 손목이나 허리가 슬쩍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졸업 때까지 안 클 수도 있는 거 아냐?”

 

갑자기 일행 중 가장 커져서 의기양양해진 에이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듀스는 꽤 냉철한 지적을 해왔다.

하지만 에이스는 기대를 깨부수는 그 이성적인 의견에 조금도 기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여유롭게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난 농구 하니까 더 클걸?”

“허, 그런 게 어디 있어?”

“원래 농구 하면 더 큰다고. 계속 점프하니까. 어디서 들어서 알아.”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라는 거잖아?”

 

이런. 또 싸우는 건가.

오늘도 사이좋은 에이스와 듀스의 대화에 헛웃음이 터진 아이렌은 분위기를 환기할 만한 질문을 건넸다.

 

“그러는 에이스 네 기분은 어때?”

“응?”

“나를 내려다보는 기분 말이야. 평소에는 눈높이가 거의 같았잖아?”

 

역으로 질문 받을 거라곤 생각지 못한 건지, 에이스는 곧바로 답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였다.

확실히, 평소와는 느낌이 꽤 다르다. 살짝 눈을 치켜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시선이나 유독 동그랗게 보이는 뺨 같은 게, 제법 귀여워 보인다고 할까.

상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게 된 에이스는 홀린 듯 감상을 내뱉었다.

 

“음, 조금 색다른 거 같기도.”

“그래?”

“응. ……아차, 이게 아니지!”

 

하지만 그 몽롱한 상태는 오래가지 않았으니. 솔직하게 대답한 에이스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이렌의 어깨를 팔로 감싸 안았다. 평소라면 아이렌의 뺨 바로 옆에 닿아야 할 그의 머리였지만, 오늘은 상대의 정수리 옆 즈음에 에이스의 뺨이 닿았다.

 

“대답 피하지 말고. 어때? 막 설레고 그래?”

 

이렇게 가까이 붙어있으니 더욱 키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아, 만약 제가 잘만 성장한다면 미래엔 이런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설레는 에이스는 능청맞게 웃으며 아이렌의 대답을 기다렸다.

 

“……음.”

 

그런데, 설레는 건 그만이 아니었던 걸까. 평소와는 온도가 다른 눈빛으로 에이스를 가만 올려다보는 아이렌이 느리게 마른침을 삼켰다.

불그스름하게 핏기가 확 도는 뺨, 일렁이는 제비꽃색 눈동자 한 쌍, 그리고 달싹이는 입술까지.

평소엔 절대 보여주지 않는 얼굴로 침묵하던 아이렌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게.”

“어?”

“좀 설렐지도.”

 

평소에도 에이스에게 잘생겼다는 말을 달고 살았던 건 농담이나 놀림이 아니었던 걸까. 아이렌은 약의 힘으로 부쩍 성장한 동급생의 모습을 찬찬히 살피다가 저도 모르게 그 얼굴에 손을 뻗었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장난스러운 붉은 눈. 평소보다 오뚝해 보이는 콧대. 각도 탓에 더 선명히 드러나는 턱선과 목젖까지.

그의 변화에 제가 느끼는 설렘을 솔직히 털어놓은 아이렌은 뺨을 매만지던 손을 턱에 고정한 채, 슬쩍 고개를 들었다.

 

“!”

 

이런, 이러다가는 입술이 닿고 만다.

척추가 오싹해질 정도로 놀란 에이스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후다닥 물러섰다. 우당탕. 요란한 발걸음에 겨우 열중하던 상태에서 풀려난 아이렌은,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미안해.”

“……아니, 그…….”

 

왜 사과하는 거지. 아니, 사과해야 하는 일인가? 애초에 자신은 왜 물러선 걸까?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더듬는 에이스는 이 이상 말했다가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은 소란스러운데 입은 움직이지 않는 몸이 상당히 불편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대처 같은 건 없었다.

 

“아이렌, 언제 왔니?”

 

그때. 열린 문 너머로 리들이 아이렌을 알아보고 이름을 부른다.

누가 봐도 도망가기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아이렌은, 그대로 몸을 돌려 리들에게 다가갔다.

 

“리들 선배, 안녕하세요.”

 

지금 에이스와 듀스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생각한 걸까. 친절하게도 그는 나가면서 담화실의 문을 닫아주었다.

쿵. 달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담화실에는, 경악하는 듀스와 얼빠진 에이스만이 남아버렸다.

 

‘바, 방금 뭐야?’

 

혹시, 제가 뒤로 물러서지 않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답을 알 것만 같은 에이스는 제 눈동자처럼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마른 손으로 뺨을 마구 쓸어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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