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스테 드림 단편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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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아 슈라우드 드림

디지털 자료라는 것은 편리하지만 덧없는 것이다. 걸음을 떼기 전부터 최첨단 시스템을 접하고 살아온 이데아는 이 모순을 잘 알고 있었다. 열심히 짠 프로그래밍 코드는 저장 실수나 바이러스 따위로 쉽게 소실되지만, 크레파스로 스케치북에 아무렇게 그린 낙서는 책장정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0년 가까이 멀쩡히 보관되다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저장과 복사가 쉽지만, 인터넷이나 전원이 끊기기만 해도 접근이 불가능해지는 디지털 정보. 복사도 쉽지 않고 수정도 힘들지만, 세월의 축복만 받는다면 몇백 년 후에도 유물로서 전해질 수 있는 아날로그의 정보.

각각 장단점이 이리도 명확하니, 이런 시대에도 종이 공책을 쓰고 필름 사진기로 촬영을 하는 이들이 있는 거겠지.

 

‘하지만 이 경우는 역시 디지털이라 다행인 쪽에 가깝지 않나?’

 

이데아는 본가에서 보내 준 낡은 노트북을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에 연결 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이제는 굴러가는 게 용한, 고물에 가까운 기기에서 거의 10년이나 지난 데이터를 찾는 건 범인이라면 분명 불가능한 일이었겠지.

그러나 그는 이데아 슈라우드. 모두가 인정하는 천재이자, 마도 공학의 전문가였다. 그런 그에겐 연구소 어디에 처박혀 있을지 모르는 일기장을 찾는 것보다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데이터를 찾는 쪽이 편했다.

 

‘삭제한 건 아니겠지…….’

 

그 당시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창 상태가 좋지 않았을 시절이라, 오르토의 일을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찼었으니까. 하지만 제 성격을 생각하면, 홧김에 데이터를 삭제하는 경솔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솔직히, 살아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 지웠을지도.’

 

만약 지웠다 해도 그건 제 잘못이라고 하긴 힘들지 않을까. 아무리 신변 보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해도, 목숨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건 외도 중의 외도이지 않은가.

 

“아!”

 

초조함에 쫓기며 열심히 낡은 데이터 조각 사이를 떠돌던 이데아는, 이윽고 자료가 뒤엉켜 있는 파일에서 비밀 폴더를 발견했다.

‘포플러’라고 적힌 폴더는, 깜찍하게도 기본 폴더 아이콘이 아닌 큼직한 나뭇잎 모양 아이콘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왓, 웃기고. 꼬맹이 시절의 졸자 좀 귀여울지도.”

 

드디어 자료를 찾았다고 생각하니 굳어있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고 농담도 튀어나온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과거의 자신 따위에게 질 리가 없다 확신하는 이데아는 삭제되지 않고 살아남은 추억을 찾기 위해 열심히 비밀 폴더의 암호를 풀어내었다.

 

“됐다!”

 

아아. 삭제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폴더 안 가득한 메모장─대부분은 포플러와 함께 짠 프로그래밍 코드나 기계 설계도지만, 아마 일기장도 섞여 있을 것이다. 부끄럽게도.─과 저화질의 사진 몇 장을 찾아낸 이데아는 어느새 이마에 맺혀있던 땀을 닦고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만약 삭제했다면 과거의 졸자를 영령 소환해서 복수할까 했는데, 살았구려. 히히…….”

 

아마 그 당시 제게도 포플러의 기억은 그만큼 소중했던 거겠지. 그 독특한 유니크 마법 덕분에, 그 무엇으로도 삭제할 수 없는 추억의 백업본을 가질 수 있는 소녀이지 않았나. 가뜩이나 제 또래에 아는 사람이라곤 방계친척인 하이드 가 남매뿐인 제게, 자신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명석하며 상냥하기까지 한 소녀의 존재는 너무나도 치명적이었지.

뭐, 오타쿠식으로 말하자면 ‘필승의 소꿉친구 플래그’ 같은 느낌이란 뜻이었다.

 

“……진짜 다행이다.”

 

아아. 일에 열중했더니 목이 탄다.

머리의 열이 식은 이데아는 폴더 속 자료를 빤히 바라보다가, 냉장고 속 음료수를 꺼내기 위해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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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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