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화 - 마이너스와 마이너스 (2)

첫인상과는 전혀 다른 의외의 사실에 노아가 그제야 뒷장에 딸린 부가자료를 세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 두꺼운 서류뭉치의 절반 이상을 별다를 것 없어보인 사람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대마법관님, 이건…”

“자네가 보기엔 어떤가?”

“...정말로 이 자가 운디네의 계약자입니까?”

“제대로 봤다면, 그래. 레인은 운디네의 정령사이기도 하고, ‘샬레’의 제작자이기도 하지.”

“샬레의…”

저도 모르게 허리춤에 매어둔 스틱 홀스터에 손이 갔다.

“중요 인물인건 이제 알겠습니다만, 그게 저를 호출한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노아의 물음에 소파에 등을 기대고 있던 아르크가 몸을 바짝 숙였다. 마치 이 자리에 있는 두 사람 외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될 것처럼. 평소와 다른 은밀한 움직임이었다. 한껏 목소리를 낮춘 아르크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3개월 전부터 상임 연구원 3명이 실종되었다네. 상임연구원이라지만 과거 수석 연구원과 샬레 연구를 함께한 한 연구팀이었다더구만. 그래서 이들의 실종이 단순 실종이 아닌것으로 추정되고 있네.”

“그 말은…?”

“납치 혹은…”

차마 이어지지 못한 뒷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남아있었다.

“국가 중요 인물들이 사라진 큰 일인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 있는겁니까? 중앙은 왜 아무런 조치도 없던겁니까?”

“조치가 없던게 아니라 할 수 없던것이네. 그들의 의미를 알지 않나. 이 소식이 나우 전체에 퍼지면 뒤따라올 혼란이 어떠할지도 모르지 않을거라 믿네.”

“그래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저는 차라리 수석 연구원을, 이 레인이란 사람을 납치했을 겁니다. 그게 더 깔끔하고 덜 번거롭지 않습니까?”

노아가 손가락을 튕겨 레인의 사진을 ‘툭-’ 건드렸다.

“그래서 중앙은 레인이 이 실종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아르크의 말에 노아의 모든 행동이 멈칫했다. 시큰둥하고 날카롭게 이어지던 대답이 침묵으로 바뀌었다.

“노아, 자네를 부른건 레인을 감시하기 위함일세. 표면적인 사안은 납치범들의 최종 목표로 보이는 레인의 경호지만, 자네의 진짜 임무는 그의 감시인거지. 자네 말대로 레인만 남아있다는 게 중앙의 눈에도 이상하게 보인 모양이지.”

늘 유쾌하고 가벼운 아르크였으나 지금의 그는 낯설정도로 무겁고 진중했다. 

“노아, 자네의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야. 이 일만 잘 해낸다면 뒷배로 ‘수석 마법사’가 되었다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겨우 이정도 일로 말입니까?”

일직선으로 뻗어있던 노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뒷배때문에, 노아는 제 스승의 성인 ‘하퍼(hopper)’를 잇지 않았다. 자신의 모든것을 부정해도 따라오는 소문은 여전했고 중앙은 변명조차 없었다.

무책임하게 방치해놓고 이제와서-

“다른 곳도 아닌 중앙 위원회에서 직접 자네를 지명하여 맡긴 일일세. 평생 감시하라는 것도 아니고 5년만 감시하면 되는 일이야. 딱 5년만 버티면 중앙 위원회에서 자네에 대한 공식적인 후원과 지지를 약속했다네.”

서류 모퉁이가 잿빛으로 너덜거렸다. 무얼 하던 인정보다 비아냥을 받는데 익숙했기에 오히려 노아의 입장에서, 아니 누가봐도 달콤한 국가 최고 기관의 제안은 낯설었다. 

‘수석’이라는 이름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 그저 호칭뿐인 이 말에 묶여있는 자신과 레인이 너무나 초라해보이는 건 발끝을 타고 기어오르는 비참함 때문일까. 

차라리 아무것도 아니길 바란 적이 더 많았다.

“왜 저입니까?”

노아의 물음에 아르크의 입술이 달싹였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답을 알고있을 현명한 제자에게 상처를 더해주고 싶지 않았을테다. 그렇게 생각과 시간을 혀끝에서 고르고 고른후에도 적당한 답을 찾을 수 없으면, 그는 부드럽게 미소만 지었다.

그래, 지금처럼.

“그 질문의 답은 이미 알고 있지않은가?”

답할 수 없는 다정은 비겁함이란 이름의 상처로 되돌아왔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크를 뒤로한 채 집무실에서 나오는 노아의 손에는 붉은 실로 엮은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

사람은 본인이 아는 것만큼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노아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적어도, 레인의 정보를 보기 전까지는.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들에 자꾸만 시선이 걸렸다. 가던 길을 멈춘 노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노아가 조금 전까지 있었던 ‘탑’이 우뚝 서 있었다. 방어와 보안 마법식을 새긴 푸른 샬레가 일정 간격을 두고 벽에 세공된 두 개의 새하얀 건물 사이를 다리가 잇고있었다. 시내에 흐르는 수로 위의 다리와 달리 세공된 아치형이 아닌 통나무 속을 파내 그대로 끼워 넣은 듯한, ‘탑’과는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모양새였다. 왼쪽 탑은 마법사들의 집무실이 모인 ‘마법동’이었고, 오른쪽 탑은 연구원들과 연구실이 위치한 ‘연구동’이었다. 

레인은 수석 연구원이니 연구동에서 유명하고도 남았겠지만, 설마하니 마법동까지 그 명성이 뻗쳐있을 줄은 몰랐다. 탑 꼭대기에 위치한 대마법관 집무실을 내려오는 내내 레인과 관련된 홍보물이 없는 곳이 없었고, 심지어 외근을 나온 시내 관광 안내소까지 그가 그려진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작은 박스같은 안내소의 벽에 마련된 게시판에 홀로그램으로 만든 ‘포츈’의 지도가 띄워져 있었다. 이미 한 바탕 휩쓸고간 인파로 인해 바구니에 팸플릿이 담겨있는 바구니는 점점 깊어져 가고 있었다. 간신히 하나 집어든 노아가 빛에 반짝이는 종이를 문질렀다.

본디 소도시에 불과했던 포츈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마법’이라는 기술 덕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출현한 마법사가 국가 공무직으로 전망이 밝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포츈에는 점점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다. 물론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일한다는 사람이 늘어나니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까다롭고 자격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절로 ‘아카데미’로 향했다. 여러 곳의 국립 아카데미중에서도 포츈의 아카데미가 가장 수준이 높다고 알려졌기에 그 곳에 입학하려는 인파들로 시내가 북적이고 있었다.

그 마법의 창시자가 바로 ‘레인’이었다.

그러다보니 다른 곳은 몰라도 포츈에 거주하면서 레인의 그 무엇도 알지 못했던 노아 자신이 되레 이상하게 여겨졌다.

‘나 하나 유지하기도 벅찬데 무슨……’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챙긴 노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르크의 집무실에서 생각 이상으로 시간을 잡아먹은 탓에 예상보다 출발 시간이 늦었다. 품에 든 서류뭉치가 거슬렸지만 방에 들렀다 올 시간은 없었다. 온 신경을 제게 쏟으며 빠르게 걸어가던 그 때였다.

‘쿠당탕-!!!’

인기척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제게 다가오는 이를 돌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세게 부딪친 노아가 크게 넘어졌다. 가지런히 모여있던 서류들이 공중에서 지면으로 흩날렸다. 

“윽, 뭡니까?!”

이마를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킨 노아가 저와 충돌한 이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상대는 이미 자리를 벗어난 것인지 흩날리는 옷자락조차 볼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흰 그림자를 본 것 같았으나 어디로 향한 것인지 방향을 짐작할 수 없었다. 일단 주변부터 정리해야겠다고 판단한 노아가 무릎을 털고 일어나자 시큰거리는 통증이 밀려왔다. 바짓단을 걷어보니 생각보다 크게 넘어진 모양인지 피가 맺혀있다가 주륵, 흘러내렸다.

“하…별게 다 진짜…”

아침부터 꾹꾹 내리눌렀던 짜증이 결국 터져버렸다. 

 

손수건을 찾아 겉옷 안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었다. 미간을 팍 찌푸린 노아가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바스락-’

방향을 돌린 발끝에 흩뿌려진 서류가 걸렸다. 혹여나 아르크로부터 받은 것인가 싶어 황급히 서류 뭉치를 찾았다. 다행이도 바로 옆에, 동여맨 그대로 떨어진 채였다. 

“가만, 그럼 이건 뭐지?”

몸을 숙인 노아가 종이를 집어들었다. 대충 훑어봐도 의미 모를 계산식과 그래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널부러진 것들을 주워 모은 노아가 새겨진 발자국을 털고는 혹여나 남아있는 것이 있는지 길 위를 둘러보았다. 곧 몇 발자국 앞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를 집자, 다른 하나가 또 떨어진 것이 보였다. 무릎이 아픈것도 잊은 채 노아가 종이를 따라 시내 안쪽으로 이동했다. 짐작컨데 자신과 부딪힌 사람이 떨어뜨린것이 분명했다. 급하게 흘겨쓴 식이 겹치자 그제야 어디선가 본 듯, 눈에 익었다. 기시감의 출처를 곰곰이 생각하는 노아의 허리춤에서 스틱 홀스터가 달랑거렸다. 

“..샬레..? 그렇다면, 연구동 사람인가?”

스틱에 새겨진 마법식을 생각해낸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출처도 알았으니 서류의 주인을 찾는 일만 남았다. 인파로 인해 이정표가 될 종이는 흩어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그건 문제되지 않았다. 필체를 비교하던, 마법식의 패턴을 검색하던 찾을 방법은 많았다. 

그렇게 생각을 매듭짓고 이동하려던 그 때였다.

‘쾅!!!!!!!’

지면이 흔들리고, 흙먼지가 나부꼈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귀가 터질것 같은 폭발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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