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헥스 헤이와이어 x 시클링 (당신)
* 헥스 헤이와이어에 대한 개인 해석과 날조가 있습니다.
* 밑도 끝도 없이 헥스를 다독입니다.
가장 상냥하고 마음 여린 사람들이 언제나 가장 먼저 미친다.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모르고 계속 같은 짓을 반복하니 그 옆에서는 피해자가 늘어난다. 더 나쁜 것은, 피해자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자신이 이겨내지 못해서, 자신이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내가 나약해서. 그런 식으로 자책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다. 타인을 비난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상처 입히는 자들. 타인에게 원인을 돌리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는 자들. 그들이 언제나 가장 많이 아프고, 가장 오래 아프다. 상냥한 이들이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주 봐 왔다.
아프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니 적어도 오래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아주 없을 수는 없으니 적어도 상처가 생긴다면 금방 아물기를 바란다. 당신이 너무 강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강한 이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강해진 것이기 때문에. 그만한 풍파를 겪고 난 뒤에 비로소 단단해지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이 되지는 않으면 좋겠다. 그저 천진하게 남아도 좋다. 순진하다느니, 세상 물정 모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좋다. 나는 당신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을 조금만 멈춰 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당신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당신이 좀 더, 뻔뻔하게 고개를 들고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고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자신하면 좋겠다. 나는 당신이 좀 더 듬뿍 사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혹 그는 욕조에 있는 물이 다 차갑게 식을 때까지 그저 가라앉아 있을 때가 있다. 옷을 다 입은 채로 욕조에 빠지듯 들어가서 그저 잠기고, 잠기고, 잠기는 기분으로 멍하니 의식의 끈을 놓는다. 충분히 키가 큰 덕분에 욕조에 빠져 익사하는 일은 없었지만 의식적으로는 이미 몇 번이나 익사하고도 남았다. 차가운 물이 피부를 다 얼리고 뼛속까지 추위가 스며들 무렵에야 부스스 눈을 떠 천장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는 말간 천장에 빛 무리가 어룽진다. 신체 말단의 감각이 온통 뻣뻣하다. 이대로 더 있으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른다. 감기보다 더 심한 병이 들 수도 있겠다. 어쨌든 체온이 이런 식으로 떨어지는 것은 결코 몸에 좋지 않을 테다. 그럼에도 헥스 헤이와이어는 욕조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나른하고 피곤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분명 이 차가운 물에서 지나치게 오랜 시간을 보낸 탓이겠지만, 알고 있는 것과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는 몇 단계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곁에 있을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욕실 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가서 잔소리를 몇 마디 한 다음, 욕조 안에 있는 그를 일으켜 세운다. 아무래도 그가 훨씬 키도 크고 물에 젖은 옷 때문에 몸이 무거워 완벽히 자신만의 힘으로는 일으키기 힘들지만, 어쨌든 들어와서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쏟아 붓는 사람이 있으니 그도 마지못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욕조 마개를 뽑아 차가운 물을 전부 버린 다음 따뜻한 물을 콸콸 튼다. 뜨끈뜨끈한 수증기가 한 순간 확 올라와 욕실 안의 거울을 희게 덮는다. 물 온도를 체크하며 적절히 따끈한 물을 욕조에 받는다. 젖은 옷은 전부 벗으라고 잔소리 한 다음 몸을 충분히 녹이고 나오라고 덧붙인다. 마른 옷이랑 수건은 밖에 둘 것이고 따뜻한 우유를 데워 둘 테니 식기 전에 나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발목에서 정강이로, 정강이에서 무릎으로 따스한 물이 차오르는 욕조에 우두커니 서 있다. 듣고 있어? 다시 한 번 묻는 목소리에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착하지. 머리를 두어 번 토닥토닥 쓰다듬고 젖은 옷을 개의치 않고 한 번 끌어안는다. 밖에서 기다릴게. 그리고 욕실을 나선다.
헥스 헤이와이어가 따뜻한 물에 제대로 된 목욕을 하는 동안, 말해 둔 대로 마른 옷과 수건을 바깥에 준비해 놓는다.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몸을 말리고 닦을 수 있도록 특별히 크고 두꺼운 타월을 준비했다. 그리고 커다란 머그잔에 우유를 데우기 시작한다. 살짝 데운 우유는 유막이 생기기 전에 불에서 내리고, 약간의 꿀을 섞는다. 달콤하고 포근한 맛은 수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울적한 마음에도. 욕실에서 약간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헥스 헤이와이어가 목욕을 마치고 나오려는 것 같았다. 만약 이번에도 물이 식을 때까지 욕조 안에 있었다면 안으로 들이닥쳐서 직접 씻겨 주느니 어쩌니 하며 잔소리를 한바탕 쏟아 놓으려 했는데, 다행이다. 여차하면 정말로 그를 직접 욕조에서 꺼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헥스 헤이와이어가 간단한 티셔츠와 긴 바지를 입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털며 나오면, 가볍게 인사를 건넨다. 그의 몸이 따끈한지 우선 확인한다. 물이 식기 전에 나온 덕분에 손발은 말랑하고 뺨도 약간 발그레하다. 좀 더 혈색이 돌아도 좋을 텐데, 체질이 차가운 것인지 아니면 어디가 아프기 시작한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음에는 욕조에 거품을 풀어 주겠다며 농담하고, 헥스 헤이와이어는 거품 목욕에 대해 생각해본다. 흰 거품이 몽글몽글 피어 오르도록 입욕제를 넣은 물에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에 그런가, 하고 생각하는 표정이다.
그렇게 서 있는 그를 데려와 소파에 앉힌 뒤 담요를 덮어 준다. 그가 좋아하는 캐릭터 담요로 덮어 주면 거절하지 못하겠지, 싶어 준비한 커다란 담요였다. 그는 담요를 걷어낼 생각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마음에 든 건지 귀여운 캐릭터 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가만히 앉아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안경이 없다. 아마 욕실에 두고 온 모양이다. 나중에 챙겨 와야지, 생각하며 준비해 두었던 따끈한 우유를 건넨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볼 뿐, 손을 내밀어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당신은 직접 헥스 헤이와이어의 손목을 쥐고 손을 들어 올려 그 손 안에 머그잔의 손잡이를 쥐어 줘야 했다. 헥스 헤이와이어의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면, 당신은 이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뜨거워. 얼른 받아 줘.
한 모금 마셔 보라고 재촉한다. 헥스 헤이와이어의 눈이 느리게 깜빡인다. 꿀을 조금 넣었어. 진짜 달콤할 거야. 두어 번 더 재촉하자, 그가 느릿하게 머그잔의 가장자리에 입술을 댄다. 혀가 데지 않도록 온도를 꼼꼼히 체크했기 때문에 너무 뜨겁지는 않을 테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느릿하게 한 모금을 머금고, 다시 한 모금을 삼킨다. 그가 따끈한 우유를 마시는 것을 보며 당신은 조금 안심한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그의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따스한 것을 먹이고 포근한 담요로 감싸 덮어 준 것에 만족한다. 쉬는 게 좋지 않겠어? 당신이 물으면 헥스 헤이와이어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대답한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다고. 당신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헥스 헤이와이어의 젖은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다.
“무리하지 않으면 좋겠어. 자신을 더 소중히 챙겨 주면 좋겠어.”
헥스 헤이와이어는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은 억지로라도 그를 재우기로 결심한다. 어쨌든 그는 지금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자신은 아니라고 말하며 좀 더 깨어서 무언가 다른 것을 더 하려 하겠지만, 누가 봐도 헥스 헤이와이어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깊은 잠. 꿈도 없는. 그래서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가 우유를 다 마시도록 곁에서 기다려 준다. 우유 더 줄까? 아니면 다른 거 줄까? 당신이 물으면 그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괜찮다고 대답하며 우유를 좀 남기고 잔을 내려놓으려는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가 몸을 일으키자 함께 일어난다. 그리고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아 이끈다. 오늘은 그만 쉬어 줘. 나를 위해서. 헥스 헤이와이어는 당신의 말에 잠시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당신은 한번 더 말한다. 나를 위해서 쉬어 줘. 그리고 당신은 그의 손을 감싸쥐듯 쥐고 그를 침실로 이끈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다행히도,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얌전히 걸음을 옮겨 주었다. 당신은 그 사실에 약간 안도했다.
그의 침실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당신은 그를 위해 침대를 데워 놓았다. 차가운 침대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따뜻한 침대에 들어가는 게 더 기분이 좋으니까. 그리고 더 편한 잠을 잘 수 있을 테니까.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의 어깨에서 담요를 내리고 거의 다 마른 그의 머리카락을 한 번 살펴 본 다음 그를 침대에 앉힌다. 헥스 헤이와이어의 눈높이가 당신보다 낮아졌다. 아직도 약간 멍해 보이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를 토닥이며 다정히 말한다. 아무 걱정 하지 말고, 아무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눈 감고 푹 자자. 당신의 말에 헥스 헤이와이어가 잠깐 고개를 들어 희미하게 웃는다. 푹 자자. 당신은 그 미소에 마주 미소 지으며 다시 말한다. 헥스 헤이와이어는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침대에 눕다가 문득 생각난 듯 당신을 바라본다. 왜? 당신이 묻는 시선을 보내고, 헥스 헤이와이어는 약간 몸을 뒤로 움직여 침대에 한 사람이 더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차라리 이렇게 요구해 주면 다행이었다. 안 그래도 헥스 헤이와이어가 잘 잠들 수 있을지 걱정이었던 당신은, 그의 곁에 누워 그가 푹 잠들 때까지 기다리며 그를 다독이고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재우기로 한다.
침대는 당신이 데워 놓은 대로 따뜻했고, 두 사람의 체온이 섞여 더욱 따스해졌다. 두툼하고 폭신한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려 덮은 뒤 당신은 헥스 헤이와이어의 눈을 손으로 감겨 준다. 가만히, 그의 눈을 손으로 덮어 준 다음 작게 자장가를 허밍한다. 자장자장, ……. 애정 어린 자장가에는 소망을 담는다. 좋은 꿈을 꾸기를. 혹은 꿈도 없이 깊이, 푹 잠들기를. 그저 행복하기를. 다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아프지 않기를.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소망을 담아 자장, 자장, 허밍하면 그의 가슴팍이 천천히 오르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고, 그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다시 한 번 이불을 꼼꼼히 끌어올려 덮어 준 다음,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고 속삭인다. 잘 자. 좋은 밤. 내일은 좀 더 행복하기를. 그렇게 하루 하루 어제보다 내일이 더 아름답기를. 당신은 허리를 펴고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방을 나간다. 소리 없이 문이 닫히고, 꿈 꾸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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